박민희: 중국 딜레마 ━ 위대함과 위태로움 사이에서, 시진핑 시대 열전

 

중국 딜레마 - 10점
박민희 지음/한겨레출판

들어가며 왜 중국은 이 길로 가고 있을까

1부 안과 밖
시진핑習近平 황제의 불안, 두려움의 정치
트럼프와의 적대적 공생

2부 설계자들
왕후닝王滬寧 중국몽의 설계자
자오리젠趙立堅 늑대전사의 천하체계
류허劉鶴 반미 경제전쟁의 사령관
왕치산王岐山 공산당과 월가 자본을 잇다

3부 중화의 꿈 아래에서
일함 토흐티Ilham Tohti 중국판 테러와의 전쟁에 억눌리다
라힐라 다우트Rahila Dawut ‘민족개조’에 휩쓸린 위구르 전통의 수호자
홍콩인들 벽에 갇힌 다윗들
한둥팡韓東方 1989 톈안먼이 2019 홍콩에게
차이잉원蔡英文 ‘하나의 중국’을 흔들다

4부 변혁의 불씨
왕취안장王全章 우리는 법치를 요구한다
선멍위沈夢雨 ‘중국은 과연 사회주의인가?’
21세기 중국의 취안타이이全泰壹들
장잔張展 망각을 거부하라
셴즈弦子 황제에 맞서는 ‘언니의 힘’

5부 영합과 저항
인치印奇 디지털 법가 시대, 기술은 죄가 없을까
마윈馬雲 돈키호테가 되고 싶었을까
런정페이任正非 첨단기술 대장정
런즈창任志强 ‘벌거벗은 황제’를 비판하다
보시라이薄熙来 숙명적 라이벌의 긴 그림자

 


14 시진핑 시대중국의 행보는 개혁 개방 이후 40년 동안 누적된 빈부격차와 부패, 성장모델의 한계로 위기에 봉착한 중국공산당의 정통성을 새롭게 강화하려는 시도다. 중국의 권력자들이 강하고 억압적인 모습을 보일수록, 이면의 불안과 위기감도 함께 살펴야만 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027~2028년 무렵 미국을 추월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첨단기술과 군사력도 대약진하고 있다.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를 통해 지정학적, 경제적, 금융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힘'은 분명한 실체다. 하지만 노동자와 농민에게 돌아갈 성장의 몫을 제대로 주지 않음으로써 축적한 거액의 자본을 국가가 대규모로 투자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중국의 발전 모델이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너무나 심각한 불평등과 부패,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절망과 저항을 억눌러야 한다는 권력의 불안이 억압적 사회 통제, 첨단기술 감시와 권위주의적 정치, 그리고 애국주의 선동과 강압적 외교로 표현되고 있다. 중국의 명암을 모두 직시해야 한다.

21 2012년 11월 15일 중국공산당 18차 당대회 마지막 날, 이제 막 공산당총서기에 오른 시진핑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모인 내외신기자들 앞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전 세계의 관심이 중국의 새 지도자에게 집중된 가운데 그는 "오늘날 중화민족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흥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2주 뒤에는 국가박물관을 찾아가 연설을 하면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 '중국몽中國夢'이다. (…) 우리는 역시상 어느 때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목표에 가까이 다가서 있다"고 했다.

당시 베이징 특파원으로서 이 세기의 행사를 취재하면서 오만하게 보일 정도로 대담하고 자신만만한 시진핑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로봇'이란 별명으로 불린, 항상 정해진 틀 안에서 조심스럽기만 했던 전임자 후진타오의 통치와는 완전히 다른 새 시대가 펼쳐질 것이란 예감이었다.

2012년 말 시진핑이 최고지도자로서 등장했을 무렵 중국은 그야말로 '더 이상 예전의 길로는 계속 갈 수 없다'는 데 상하좌우가 공감하는 전환점에 서 있었다. 특파원으로서 중국지도층의 부정부패와 천문학적인 축재, 치열한 권력투쟁에 대한 기사를 쉴 새 없이 썼다.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가 시진핑을 후계자로 정한 당의 결정에 불복해 자신이 최고지도자가 되려고 군대를 동원해 정변을 시도한 사건까지 벌어졌다. 강제철거와 환경오염에 저항하는 시위에 나선 이들,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벌어진 좌-우파의 논쟁에 귀를 기울이며, 중국이 어떤 새로운 길로 가게 될지 무척 궁금했다.

8년이 흐른 지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1세기의 '시황제'로 불린다. 2018년 3월 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폐지하는 개헌안이 99.8 퍼센트의 찬성으로 통과된 뒤, 시 주석이 종신 집권하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미국과는 정면충돌도 불사할 기세다. 미국이 중국을 굴복시킬 수단들을 잇따라 꺼내 들자, 중국은 '장기적으로는 결국 이길수 있다'는 각오로 강하게 맞서고 있다.

나는 쇠락하는 제국 미국을 대신해 중국이 언젠가는 대안적 질서와 가치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오랫동안 중국을 취재해왔다. 시진핑 시대 중국이 점점 오만해지고 강압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곤혹스러웠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한-중 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실망감이 한국의 외교 안보 선택지를 좁히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혐중의 목소리는 넓고 깊게 퍼지고 있다. 혐중은 중국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막고, 중국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 중국인들의 고민을 들으려는 관심까지 차단하는 위험한 현상이다. 혐중을 넘어 중국과 협력은 넓히되 비판할 부분은 비판하고 연대할 부분은 연대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14억 중국인들의 각양각색 고민과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한다. 시진핑 시대, 중국과 홍콩, 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의 현재를 이해할 실마리를 찾아보려 한다. 감히 '시진핑 시대 열전'이라는 제목을 붙여보았다.

51 시진핑 시대 신권위주의 2.0은 강경 신권위주의라고 볼 수 있다. 공산당의 전통 조직과 이념을 강화해 지도자와 당의 중앙에 권력을 고도로 집중시키고, (서구식 민주주의 이념 등) 보편가치, 삼권분립 같은 민감한 용어는 아예 거론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강화해 사회의 다원성을 억제하고 통치질서의 안정성을 강화함으로써 개혁에 대한 반발을 억누르고 개혁을 심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주요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전면개혁심화영도소조', 개혁 과정에서 저항 세력의 반발을 통제하기 위한 '국가안전위원회'가 2014년 설립되었다.

시진핑 시대 당과 최고지도자의 권력 강화 필요성을 설명하는 이런 해석에 대해 시진핑이 집권했을 당시 중국의 리버럴(중국에서는우파) 세력이 정권에 위협이 될 정도로 급진적이거나 과격파가 아니었는데도 존재하지도 않는 표적을 설정해 독재정치를 정당화하려 한다는 비판(장보수 미 컬럼비아대 객원교수 등)이 나온다. 신권위주의는 일정 기간의 강권 통치를 거쳐 민주화로 이행한다는 이론이지만, 시진핑 시대 들어서는 민주화 대신 '중국의 특색을 가진 민주'가 최종 목표로 강조된다. 1972년 유신 당시 박정희 정부가 내세운 '한국적 민주'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보편가치와 민주 제도를 서구적인 것으로 배척하고, 당의 권력을 강화해 국내의 비판과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권위주의 정치 모델을 영속화하려는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116 중국의 정책은 신장의 위구르 사회를 극과 극으로 갈라놓았다. 중국 당국의 감시와 처벌 통제를 말단에서 수행하는 것도 당국에 고용된 위구르인들이다. 이들은 경찰이나 재교육 캠프의 관리자·간수, 검문소의 보안요원으로 고용되어 살아간다. 감시와 통제가 위구르인들의 주요 일자리가 되었다. 반면 수용소에 갇히거나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검문과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주민들 사이에는 골이 깊어졌다.

위구르인 1100만 명 가운데 100만 명 이상이 재교육 캠프에 수용되었다고 유엔 등이 발표한 가운데 부모가 끌려간 뒤 집에 남은 수많은 위구르 아이들을 중국 정부가 기숙학교나 유아원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의 고아원에 수용하고 있다는 보도들도 잇따라 나왔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가족·친지와의 만남이 제한되고 중국어만 써야한다. 다음 세대 위구르인을 위구르어와 가족공동체로부터 분리하려는 정책이다.

177 시진핑 정부 들어 중국공산당이 노동운동을 강하게 탄압하자, 2016년 좌파들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다시 논쟁이 시작되었다. 루디 인민대 교수 등은 중국 이 금융화를 억제하고 국유경제를 바탕으로 인민의 복지를 향상시켜 신자유주의에 일정하게 맞서고 있으므로 진보적 변화의 축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푼응아이 홍콩대 교수 등은 중국이 이미 신자유주의적 세계 체계에 완전히 동화된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고 노동을 탄압하고 있으므로, 노동자들과 연대해 중국의 현 체제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스커지 노동자들을 지원한 좌파 대학생들은 푼응아이 교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자스커지 노동자들과 연대한 학생들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왜 그 체제의 주인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도리어 자본가의 편을 드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이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행동에 나선 것"이라며 "공산당 통치와 사회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노동자들을 조직해 혁명의 이상에서 멀어진 체제를 바로잡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설명한다.

[…]

중국공산당은 "시진핑 사상은 현대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이며, 21세기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발전"이라고 강조한다. 2020
년 가을부터 베이징대, 칭화대 등 중국 37개 주요 대학은 시진핑 사상 강의를 시작했다. 시진핑 사상을 21세기 마르크스 사상으로 떠받드는 중국공산당이 불평등에 맞서 노동자들을 지원하려는 좌파 학생들을 탄압하는 현실은 기묘한 질문을 던진다. 시진핑 지도부가 든 마르크스주의 깃발과 대학생, 노동자들이든 마르크스 주의 깃발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인가.


228 4차산업 혁명으로 각광받는 안면·음성인식,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은 감시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실은 감시 자본주의가 중국에만 존재하는것은 아니다.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네이버, 카카오톡, 틱톡 등 수많은 첨단정보기술 기업들이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실제로는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추출해 개인들의 성향과 행동, 특징을 파악하고 상품화해 거액을 벌어들인다. 우리가 휴대전화, 에스엔에스, 금융 거래를 할 때 기업들은 그 사생활 정보를 빼내 광고, 쇼핑, 감시 산업의 재료로 삼는다. 의료, 금융, 자율주행, 산업용로봇, 물류 등에서 우리의 개인정보 빅데이터가 활용된다.

이 미래 산업에서 중국 기업들은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 기업들을 제치고 선두 주자로 대약진했다. 우선 14억 인구에서 나오는 빅데이터를 기업과 정부가 제한없이 활용하기 때문이다. 혼란을 두려워하고 안정을 원하는 인민이 감시 시스템이 등장한 뒤 범죄가 줄고 생활이 편리해지는 것을 반기는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중국 당국은 범죄와 테러, 재난의 위험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감시망을 구축했고 이를 통해 수집되는 방대한 데이터는 중국의 인공지능 관련 산업에 다른 나라 기업들은 상상하기 힘든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당국은 주민들의 얼굴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고 지문·홍채 정보까지 등록시키고 있다. '중국제조 2025' 정책을 통해 중국정부가 대규모 자금을 이들 미래산업에 전략적으로 투입하고 전폭 지원한 것도 이들 기업이 세계 최강으로 급성장한 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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