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21. 11. 29.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도서출판 숲 |
일러두기
옮긴이 서문_ 그리스 비극, 그리스 정신의 가장 위대한 구현
그리스 비극의 구성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아이아스>
<트라키스 여인들>
<엘렉트라>
<필록테테스>
주석
옮긴이 해설_ 소포클레스 비극의 세계
참고문헌
주요 이름
옮긴이 서문 ― 그리스 비극, 그리스 정신의 가장 위대한 구현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26장에서 시적 효과 면에서 비극이 서사시보다 더 우수한 예술형식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 비극은 조사, 성격, 사상, 플롯 등 서사시가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음악과 장경을 가지는데 이 중 음악은 드라마의 쾌감을 생생하게 산출하며, 비극적 모방은 서사시에 비해 더 짧은 시간에 시적 효과를 산출하는데 압축된 효과는 분산된 효과보다 더 쾌감을 주며, 한 편의 서사시에서 여러 편의 비극이 만들어진 것으로 미루어 비극이 서사시보다 통일성이 더 강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고대 그리스의 언어, 문학, 조형미술과 고대 그리스인들의 자의식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그리스 문학, 나아가 서양 문학의 원천이라는 것은 누구나 수긍하는 엄연한 사실이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간 그리스 비극은 우주와 자연보다는 인간 자신을 탐구 대상으로 삼던 시대정신에 따라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을 끊임없이 재해석하려던 진지하고도 치열한 시도였고, 2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절박한 문제 제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점에서 인간정신이 쌓은 위대한 업적이라 할 만하다. 그리스 비극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지칠 줄모르는 탐구정신에 힘입어 그리스정신의 가장 위대한 구현을 이룩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와 노래, 춤과 웅변술, 그리고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을 한데 묶은 종합예술로서 비극이 전 국민적 사랑을 받았거니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 각국의 무대에 올려지고, 읽히고, 수많은 예술 작품들에 소재와 주제를 제공하는 살아있는 이슈다.
옮긴이 해설_ 소포클레스 비극의 세계
534 이 드라마의 결정적인 사건들, 곧 오이디푸스가 아버지 라이오스를 살해하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하는 사건 등은 극이 시작되기 여러 해 전일이다. 이 드라마는 일종의 분석극으로, 말하자면 오이디푸스가 '어떻게' 스스로 저지른 행위들의 과정과 의미를 깨닫게 되며, 나아가 '어떻게' 이러한 절망적 상황에 대응하느냐를 다룬다.
역병으로 고통받는 테바이 백성들은 오이디푸스에게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바이를 구해준 일울 상기시키며 이번에도 역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애원하며, 극은 시작된다. 오이디푸스는 인자하고 유능한 통치자답게 "내 가없은 아들들이여!"라고 부르며 기꺼이 도움을 약속한다. 이 장면을, 스스로 장님이 된 오이디푸스가 자기를 추방해 달라 애걸하는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과 비교해보면 오이디푸스가 겪는 불행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오이디푸스와 테이레시아스의 박진감 넘치는 대결로, 『안티고네』의 크레온과 테이레시아스의 대결과 비교되기도 한다. 두 장면은 결국 무서운 진실 또는 재앙이 예고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면서도 거기에 이르는 방법은 다르다. 『안티고네』에서는 직선적이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숱한 우여곡절이 있다. 처음에 예언자가 진실을 말하
지 않자 성급한 오이디푸스는 대뜸 화를 내며 테이레시아스야말로 이 범행을 모의한 것이라고 비난한다. 그러자 예언자도 참다못해 다름 아닌 오이디푸스 자신이 친부를 살해하고 친모와 결혼하여 나라를 더럽힌 범인이라고 말한다. 결정적인 비밀을 서두에 폭로하는 일은 앞으로의 극적 긴장을 유지하고 고조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극작가로서는 적잖은 모험이다. 하지만 폭로된 비밀이 너무 엄청난지라 믿기지 않고, 따라서 오이디푸스도 그것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긴다.
또 하나 주시할 부분은,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 이오카스테가 자기 출생의 비밀을 밝혀내기로 결심한 오이디푸스에게는 애원도 소용없음을 깨닫고 비명을 지르며 퇴장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사건의 전말을 아직 알지 못하는 코로스는 오이디푸스에게 그를 낳아준 것은 아마도 어떤 신, 이를테면 판 아폴론, 헤르메스 또는 박코스일 거라며 파국 직전의 안도 또는 환희의 노래를 부른다. 소포클레스가 즐겨 쓰는 '비극의 확대'다.
노래가 끝나자 기다리던 목자가 도착하고, 테이레시아스처럼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는 목자에게 오이디푸스는 빼앗다시피 진실을 토로하게 한다. 이제야 모든 것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오오, 햇빛이여, 내가 너를 보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이기를!"(1183행) 하고 외치며 궁전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코로스가 오이디푸스를 예로 들며 인간 행복의 무상함을 탄식하는데, 이때 등장한 사자가 궁전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고 한다. 이오카스테는 목매달아 죽고, 오이디푸스는 그녀의 시신 곁에서 그녀의 브로치로 자기 눈을 찔렀다는 것이다. 이어서 드라마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도시에 닥친 재난을 극복하려는 인자하고 유능한 왕의 모습을 보여주던 바로 그 장소에 더없이 비참한 몰골의 오이디푸스가 등장한다. […]
이 드라마도 인간의 의지와 신이 내린 운명의 대립이라는 소포클레스다운 주제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해소될 수 없는 이러한 대립은,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의 살해범을 저주하며 라이오스가 마치 그의 친부인 양(264 행) 복수를 위해 싸우겠다며 쏟아내는 호언이나, 이오카스테와 코린토스의 사자가 그를 안심시키려고 한 말이 도리어 그를 파멸로 인도하는, 비극적 아이러니에 의해 극대화된다.
흔히 이를두고 운명극이라고 하는데, 드라마의 내용과 맞지 않는 용어다. 신들이 오이디푸스에게 내린 운명은 더없이 가혹하고, 그 운명과 맞선다는 것은 처음부터 가망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오이디푸스는 일말의 동요 없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운명과 끝까지 대결하고, 또한 그것을 자신의 의지로 받아들임으로써 극복한다. 바로 여기에 오이디푸스뿐만 아니라 아이아스, 안티고네, 엘렉트라같은 소포클레스적 인간들의 위대함이 있다. 순응하고 회피하고 다가오는 무서운 진실 앞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감으려 하는 이오카스데, 테크멧사, 이스메네, 크뤼소테미스 등과는 다르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지금까지 들춰낸 진실을 외면하기만해도 파멸을 피할 길이 있음에도 결연하게 생존보다는 명예를, 외면적 가치보다는 내면적 가치를, 정신의 죽음보다는 육체의 죽음을 선택한다. […]
죄를 지은 인간은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그 후손들이 대물림해서라도 반드시 신의 응징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좋건 싫건 고통을 통해 지혜에 도달한다. 대체로 이런 중심 주제를 가진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에서는 신이 드라마의 주역이고 인간은 신의 의지가 실현되는 장(場)에 불과하다. 반면,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드라마의 주역은 자신의 운명과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대결하는 인간이다. 신보다는 인간을, 가문보다는 개인을 드라마의 중심으로 세우는 소포클레스의 견해는 드라마의 형식에도 반영되어, 아이스퀼로스의 경우 3 부작 전체가 하나의 사건을 다루는 이른바 '연속 3부작'인데 반해, 소포클레스의 거의 모든 3부작은 거기 속한 드라마가 저마다 독립성을 갖는다. 그리고 이쯤에서 아이퀼로스가 배우 수를 한 명에서 두명으로 늘려 대화가 드라마의 중심이 되게 한 것을, 소포클레스가 다시 배우의 수를 두명에서 세 명으로 늘린 것이 이해가 된다. 소포클레스가 지향하는, 인간이 주역인 드라마에서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 다양한 시각에서 등장 인물들의 성격과 의도와 행위를 조명할 필요가 절실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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