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소크라테스, 민주주의를 캐묻다 ━ 우리 시대, 사상사로 읽는 원전 : 체제 탐구

 

소크라테스, 민주주의를 캐묻다 - 10점
강유원 지음/라티오

‘우리 시대, 사상사로 읽는 원전: 체제 탐구’ 출간사

서문

1장 민주정이 시작된 역사적 공간 ‘폴리스’_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2장 민주정의 절정기, 체제 유지를 위한 패권 싸움_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크세노폰 《헬레니카》
3장 민주정 시대를 체감한 소크라테스_ 크세노폰 《소크라테스 회상록》
4장 체제의 정당성을 묻는 ‘이념 혁명’_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론》
5장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정치적 지향_ 플라톤 《메넥세노스》

주해: 출간사 주해, 서문 주해, 1장 주해, 2장 주해, 3장 주해, 4장 주해, 5장 주해

 


 

'우리 시대, 사상사로 읽는 원전: 체제 탐구' 출간사

우리는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다. 이 명제는 정치적 의사결정 방식인 민주정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향하는 이념인 민주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그런 방식과 이념이 공화주의와는 어떻게 구별되는지, 민주정이나 민주주의면 충분하지 굳이 공화주의를 덧붙이는 까닭은 무엇인지와 같은 물음에 대답할 수 있을 때에만 제대로 이해될 것이다. 그런데 민주공화국이라고 하는 정치 체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불분명하다. 민주공화국의 태생지라 하는 서양에서도 정확한 원천을 찾기 어려우며, 그것이 온전한 형태로 작동한 시기도 아무리 길게 잡아야 일백 년을 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조차 확정되어 있지 않다. 한마디로 민주공화국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낯선 정치 체제다. 게다가 이 용어는 아무데나 쓰이고 있기도 하다. 현재 지구상에서 거의 유일한 왕조적 세습 독재국가가 자기 나라 명칭에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을 쓰고 있다. 그런 게 민주주의고 공화국이라면 민주공화국 아닌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이 정치 체제에 대한 탐구는 하나의 규칙 一이것이 있는지조차 의문스럽지만―으로 정해진 방식에 따르기보다는 그것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의 사정에 따라 각각의 처지와 관점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 정치 체제의 정의도 여전히 모호하기 때문에 그것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것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까지 탐구해야만 한다. 이는 결국 모든 정치 체제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는 곤혹스러운 사태를 불러온다.

    아주 좁은 의미의 정치는 경제적 자원을 배분하는 힘인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다. 이러한 투쟁은 작은 인간 집단에서도 늘 일어난다. 정치는 특정 집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제 유지 활동, 더 나아가 구성원들의 자기 완성을 위한 조직적 활동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경우 정치에는 가치 지향적 의미가 포함될 것이다. 정치는 아주 넓게는 신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매개체를 만드는 활동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런 의미로까지 확장되면 사실상 정치와 무관하거나 대립되는 종교적 활동을 뜻할 것이다. 정치가 무엇을 가리키든 그것은 일정한 조직을 전제하므로 정치 체제는 좁게는 정치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제도만을 의미할 것이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함축하곤 한다. 제도는 형식적인 법률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지, 즉 집단구성원의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이 뒷받침되어야 움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규범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삶을 규율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을 단순히 형식적인 헌법 규정으로서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200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이 규정이 현실적 실천적 규범으로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고 발전되어야 하는지까지 궁극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채택할 것은 사상사적 방법이다. 이 방법은 인간 집단이 단순한 군집 상태를 벗어나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체제를 독자적이고 의식적으로 구축하고, 그것에 대한 반성적 통찰을 응축시켜 후대에 넘겨준 저작들을 특정한 학문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살펴보는 것이다. 사상사의 연구 대상이 되는 텍스트는 인류가 남긴 거의 모든 것들이겠으나 우리가 그것을 모두 읽을 수는 없다. 우리는 세계사의 일반적 시대 구분에 근거하여 그 시대에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텍스트들 그리고 당대에는 간과되었으나 지금 주목해야만 하는 텍스트들을 '자의적으로' 선별하여 집중적으로 읽게 될 것이다. 시대마다 중심이 되는 텍스트 하나가 이 시리즈 각 권의 중심으로 제시될 것이지만, 그 텍스트 하나만이 아니라 그것과 연관되는 다른 텍스트들을 이해하기 위한 상황 설명을 덧붙여서 하나의 서사를 제시하는 것이 우리가 시도하는 바이다.

    오랜 기간 해 온 공부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고 하는 헛된 자신감에서 이 저작들을 쓰기 시작하였으나 이 일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독자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랄 뿐이다.


2021년 11월
강유원 적음


서문

'우리 시대, 사상사로 읽는 원전: 체제 탐구' 시리즈의 첫째 권에서는 서양 고전 고대의 정치 체제와 관련된 텍스트들을 다룬다. 인류 역사에서 처음 등장한 체제가 민주정이 아니었던 것은 아주 분명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고대 민주정 시기를 살았던 플라톤의 대화편들 특히 '국가'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정체》政體에서 체제에 관한 탐구를 시작한다.

    우리는 이 중요한 저작을 탐구하기 전에 플라톤의 다른 대화편들과 동시대 다른 저자의 텍스트들을 읽을 것이다. 플라톤이 쓴 대화편 중에서도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중심으로 읽는 까닭은 이 저작에 드러난 변론의 내용이 사상사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테나이 체제가 가진 한계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플라톤의 사유에 있어서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근본적 지향점의 역할이 참으로 크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메넥세노스》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세계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텍스트이며, 소크라테스 사상의 맥락과 헬라스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과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크세노폰의 《헬레니카》와 《소크라테스 회상록》 등을 읽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민주정에 반대한 이들이라 여긴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그들은 민주 정체에서 태어나 그 안에서 살았고 자신들의 체제가 이룩한 성취와 문제점들을 체감하였으며, 그것을 더 나은 체제로 진전시키기 위해, 또는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깊이 사색하고 그것으로부터 실천적 처방을 제시하였다. 적어도 1950년대 이전의 사상가들 중에서 그들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고대 아테나이와 같은 민주 정체는 물론이고 다른 어떤 형태의 민주 정체에서도 살아 본 적이 없다. 이점 때문에라도 그들은 체제를 탐구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사상가들인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폴리스라는 공동체에서 살았다. 당대에 이 폴리스들은 외부의 적 페르시아의 침입에 대해서는 헬라스 사람으로서 단결하여 싸웠지만, 그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폴리스들끼리 싸웠을 뿐만 아니라 폴리스 안에서도 패를 지어 격렬하게 다툼을 벌였다. 아테나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극대화된 욕망을 외부로 투사하였고, 투퀴디데스는 이러한 오만함 때문에 아테나이와 시민들이 파멸하는 비극을 그린다. 소크라테스는 이 비극이 모두에게 감지되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출현했다. 그는 쾌락에 빠진 시민들을 바라보면서 탐욕을 버리고 추상적 이념의 입장으로 올라갈 것을 촉구한다.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정신화를 더 밀고 나아간 플라톤은 고요하게 관상하는 인간을 길러 내고 그러한 인간이 통치하는 교육과 체제를 구상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테나이가 근본적으로 탐욕에 휩싸였기 때문에 그러한 쟁투와 내전에 휘말려 들어가게 되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체제를 퇴락시키는 쾌락주의자들을 저지하기 위해 폴리스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케묻기'를 촉구하였으며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깨닫게 하려 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참된 명예, 용기, 절제라고 하는 지향점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그저 추상적인 덕목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면서 체득한 참된 인간의 가치이며, 어떠한 체제의 공동체라도 가장 우선시해야 할 덕목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론· 비롯하여 지금 우리가 읽을 텍스트들은, 항상 위기에 처해 있는 민주정과 그러한 정치 제도의 바탕을 이루는 올바른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를 걱정해야만 하는 우리에게, 체제에 관한 근본적인 고민과 통찰을 제시해줄 것이다.


2021년 11월
강유원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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