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가르침과 배움(24) #Steiner 46쪽

 

2022.03.09 가르침과 배움(24) #Steiner

46 하지만 이 유명한 격언은 어느 정도의 진지함 ━ 후설이 '지향성'이라고 말하는 것 ━ 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28 Yet at what level of seriousness, of what Husserl would call intentionality, is this celebrated avowal to be taken? 
♠ 하지만 이 유명한 자백은 어느 정도로 진지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소크라테스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말을 한 것으로 우리가 발아들여야 할 것인가.
♧ avowal : 격언으로 이해하면 안되고 자백으로 이해해야 한다.
♧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하면서 얼마나 진지하게 말을 했는가, 그의 진지함을 어느 수준으로 이해할 것인가
♧ of what Husserl would call intentionality: 후설이 '지향성'이라고 부르는 것. 여기서 지향성은 의도를 말한다. 내 눈앞에 놓여있는 현전하는 대상을 볼 때 그것을 보는 주체가 어떤 의식적 상태에 있는가에 따라서 그 주체 앞에 놓여있는 대상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스타이너가 여기서 후설의 '지향성'이라고 말하는 것을 왜 끼워넣었는지 의문. 지나치게 과잉의 지식이 들어가 있다.

46 학자들은 이 역설을 끝없이 논의했다.
♧ 역설: 나는 무지하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나는 무지하다, 그런데 나는 안다 라고 하는 서로 상반되는 말이 같은 문장에서 동시에 발화되고 있어서 역설이다.

46 소크라테스는 『메논』 98b장, 『변명』 29장의 한두 지점에서 확실성을 주장한다.
♠ 소크라테스는 『메논』 98b, 『변론』 29의 한두 지점에서 확실성을 주장한다.
♧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만을 알뿐이다라고 말한 것은 어느 정도는 거짓도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

46 무지의 고백을 통해 가르치는 것, 현실적 지혜(칸트의 실천이성 praktischer Vernunft)를 전달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궤변인가?
28 Is there a fundamental sophistry in a profession of ignorance generating the teaching, the imparting of practical wisdom(Kant's praktischer Vernunft)? 
♠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고백하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 가르침을 만들어 낸다고 하는 것(무지의 고백이라고 하는 것이 가르침을 산출한다기도 한다는 것)에는 근본적인 궤변이 있는가.
♧ a profession of ignorance generating the teaching: 가르침을 만들어내는 무지의 고백.
♧ the imparting of practical wisdom: 실천적 지혜의 전수.
♧ Kant's praktischer Vernunft: 칸트의 실천이라고 하는 것. 우리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고, 영혼은 불멸하고, 신은 불멸하고 이런 것들은 요청해야 한다. 그것은 사실이라는 것을 밝혀서 증명해 낼 수 없다. 왜냐하면 자유의지나, 영혼불멸, 신의 존재는 우리에게 어떤 경험적 데이터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틀림없이 있다고 전제해야만 우리 인간이 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것들을 실천이성의 요청이라고 말한다.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있음을 일단 전제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이 바로 실천적 지혜이겠는데 그것을 전수하는 일, 즉 있지도 않은 것들을 있다고 요청하는 태도, 그게 바로 실천적 지혜인데 그것을 전수하는 일은 궤변인가.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나는 무지하다는 것만을 알뿐이라고 고백을 했는데 그 고백을 통해서 가르침이 일어났다는 사태와 칸트의 실청이성이 어떤 연결지점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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