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에이어스: 로크

 

로크 - 10점
마이클 에이어스 지음, 강유원 옮김/궁리

들어가는 글
관념과 사물
제1성질과 제2성질, 힘, 그리고 감각적 지식
제1성질과 '새로운 철학'
실체, 우연, 그리고 본질에 대한 의심
정신과 물질
종(種)

 


 

들 어 가 는 글

존 로크는 1632년부터 1704년까지 살았다. 이때는 잉글랜드뿐 아니라 유럽 대륙 전체가 정치적, 지적 혼란과 격변기의 시기였다. 옥스퍼드를 떠나 휘그당의 창설자인 샤프츠버리 백작의 집에 합류했던 30대 중반부터 로크는 이 격변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는 일급 과학자들의 친구이기도 했는데, 그 중에는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버트 보일과 뛰어난 물리학자 토머스 시드넘이 있었고, 그 누구보다 위대했던 아이작 뉴턴도 있었다. 그는 특히 시드넘과 공동 연구를 했고 그 자신 의사로서 일하기도 하였다. 쉐프트버리가 찰스 2세 아래서 집권하고 있을 때는 잠시 정부 관리직을 맡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찰스 2세와 그의 형제 제임스 2세 모두에게 대항하는 글을 썼을 뿐만 아니라, 모반 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짐작된다. 1670년대에 그는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을 만났다. 찰스 2세와 제임스 2세를 암살하려는 라이하우스 암살음모 사건 이후, 그는 1683년부터 네덜란드에서 망명 생활을 시작하였고 거기서 세 개의 저작을 완성하였는데, 이것들은 그의 주요 저작일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고전으로 남아 있다. 『관용에 대하여』와 『통치론』은 당시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문제인 종교적 관용과 입헌 통치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인 『인간 오성론』은 철학 일반에 관한 것이었다. 제임스 2세가 폐위된 뒤 잉글랜드로 돌아온 로크는 죽을 때까지 철학과 종교에 관한 광범위한 저술 활동을 하였으나 모든 힘을 저술에만 쏟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정부 경제 정책의 조언자였고, 1696년부터 1700년까지는 무역식민성 장관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기도 하였다.

로크는 형이상학과 인식론 분야에서 두 개의 주요 전선과 싸웠다. 17세기의 마지막 10년간은, 비록 지적으로 쇠퇴했다 해도 스콜라 학파적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여전히 영향력과 발언권을 갖고 있었다. 『인간 오성론』은 그것을 대체하는 상세한 이론을 제공하였고, 결과적으로는 대학 교재가 되었다. 더 나아가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와 『인간 오성론』에서 제시된 주장들은 '신들'과 '거인들' 사이의 싸움에서 다루어 질 문제들을 사실상 결정해버렸다. 이 싸움에서 서로 대립하던 이들은 지금은 '합리론자'와 '경험론자'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한 편은 데카르트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자연학에 대한 새로운 기계론적 접근을 주창하면서, 지식을 인간과 신의 관념의 일치로 이해하는 신플라톤주의적 인식론을 채택했다. 다른 한편은 에피쿠로스주의자인 피에르 가생디에게 주로 영향을 받았는데, 이들은 신학의 영향에서 탈피한 동시에 감각에 기초를 둔 지식 이론에 맞추어 자연학을 이해하였다. 18세기의 처음 20-30년 동안 『인간 오성론』과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는 데카르트주의자인 경쟁자들을 그늘 속에 묻어버렸는데, 다음 세대의 위대한 철학적 운동인 관념론이 점차로 그 형태와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의 그늘 속에서였다. 

  칸트를 제외하고는 어떤 근대 철학자도 로크보다 더 폭넓은 영향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며, 칸트 자신도 그가 찬양해 마지않았던 이 선행자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로크는 20세기 들어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인간 오성론』을 처음 접하게 되면 그 책의 산만하고도 장황하며 은유적이고 논쟁적인 문체 그리고 로크의 철학적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수사법과 과도한 아이러니와 마주친 나머지, 그의 철학이 역사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 의아하고 놀라울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전문적인 철학자들조차도 그의 저작의 표면상의 애매모호함 아래로까지 뚫고 들어가 로크가 제기하는 힘차고 급진적인 명제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온 듯 싶다. 그러나 로크는 그의 시대와 그가 알고 있던 독자들을 상대로 글을 썼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그의 문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할 수는 있을지라도, 한 세기 이상 영향력을 유지한 형이상학의 베스트셀러인 이 비범한 성취의 문체만을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지금은 읽기 어려운 저작일 수 있지만 『인간 오성론』의 명성은 되살아나고 있다. 철학자들은 이 책이 어떻게 유럽 사상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는지에 대해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고, 낡고 문제투성이라 해도 이 책 속에서 우리 자신에게 여전히 적절한 교훈들을 찾기 시작했다.

  수정되고 교정되기는 했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로크적인 비독단론적 실재론이, 비록 변형되고 갱신되었다 해도, 넓게 볼 때 칸트적인 관념론보다 나은가 하는 것은 여전히 살아있는 철학적 문제이며, 우리 시대의 가장 중심적인 형이상학적 문제일 것이다. 이 책은 경험과 이론의 관계에 대한 로크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독단적 과학철학에 반대하는 로크의 여러 주장들 중 몇 가지 요소들만을 해설하고 설명할 것이다. 앞으로 논의될 것은 근대 유럽 문화 속에서 무엇을 철학으로 간주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기여했던 한 갈래를 형성했으되 체계적이며 광범한 주제를 다뤘던 로크의 철학으로부터 간추려낸 것이다.



옮 기 고 나 서

  이 책은 피닉스출판사에서 출간된 '위대한 철학자들' 시리즈의 한 권인 『로크 : 관념과 사물』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은 로크의 생애와 사상 전반을 조망한 책이 아니라 — 분량만 놓고 보아도 이 책에서 그런 범위까지 소화해낸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 그의 인식이론의 핵심을 설명하고, 근대 철학 사상에서 차지하는 그것의 위치, 그리고 현대의 철학적 함의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본문을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저자의 설명과 로크의 원문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포함되어 있어 사실상 초심자가 읽어 나가기에는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을 읽으면서 로크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된 이는 이미 출간된 철학사 등을 참조하거나 로크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서를 읽으면 좋을 것이며, 여기서는 다음 두 권의 책을 추천해둔다.

1. 『로크』 (한길사), 우도 틸 지음, 이남석 옮김
로크의 생애와 사상을 전반적으로 알게 해주는 책으로 입문서로 읽기에는 손색이 없다.

2. 『유럽 근현대 지성사』(현대지성사), 프랭클린 보머 지음, 조호연 옮김
로크의 사상이 외따로 떨어져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니 그의 사상의 전후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는 직접적으로는 철학사가 좋을 것이나, 철학사적 지식 역시 더 넓은 범위의 사상사 속에서 파악될 때 더욱 탄탄한 힘을 가지게 될 터이므로 근대 지성사에 대한 독서도 병행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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