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칸트: 형이상학 서설

 

형이상학 서설 - 10점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아카넷

제1부 『형이상학 서설』 해제
『형이상학 서설』 해제
『형이상학 서설』관련 주요 문헌

제2부 『형이상학 서설』 역주

『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는, 모든 장래의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 역주

부록
[부록 1]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괴팅겐 서평>
[부록 2] 「칸트철학에서 ‘선험적’과 ‘초월적’의 개념 그리고 번역어 문제」

 


 

2. 『서설』의 의의


'서설’의 뜻
먄각 칸트가 먼저 『비판』을 출간하지 않은 채로 『서설』을 저술했더라도, 그 역시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읽혔을 것이다. (물론 그 경우 그 영향력은 아마도 『비판』에 비하면 미미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판』에 대한 서평에 대한 응대로 작성된 『서설』은 『비판』과의 연관성 속에서 읽힐 수밖에 없고, 또한 그와의 연관성 속에서만 그 의미를 제대로 얻는다.

  다른 한편 『비판』의 제1판(1781)과 제2판(1787) 사이에 쓰인 『서설』은 보기에 따라서는, 비록 그 서술이 간략하기는 하지만, 『비판』의 제1.5판(1783)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연간에서 단지 칸트의 서술 방식의 차이만이 아니고 다소간의 사유 방식의 변화도 인지할 수 있다.

  칸트는 '서설 (Prolegomena)'이라는 말을 "형이상학의 서설"이라는 뜻으로 『비판』 발간 전에도 사용한 적이 있는데, 『서설』에서도 이러한 말뜻에 어긋나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 "형이상학을 등장시킬 것인가 또는 단지 형이상학에 대한 아득한 희망만을 품을 것인가"를 가늠하기 위해 『비판』은 "순수한 이성능력을 그 전체 범위와 한계들 안에서 서술"하고 있는데, 그 기획이 "방대한: 탓에 "사람들이 연구 현안의 주요점들을 잘 개관할 수 없는" "불명료성"이 없지 않기 때문에, 이 『서설』은 이를 "제거"하는 한편, 인간 이성능력의 심사를 통해 형이상학의 가능 원리들을 밝혀낸 『비판』의 결실, 곧 초월철학(Transzendentalphilosophie)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아니 독자 스스로 철학자로서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을 세우기 위한 "예습"(A16=IV261) 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설의 지향점
『서설』은 철학의 초심자나 철학사 연구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철학 자체를 "이성 자체의 원천들로부터 길어내려고 애쓰는 이들"(A3=IV255)을 위해 저술된 것임을 칸트는 천명한다. 그러니까 『서설』의 발간 목적은 '철학함'의 배양이라 하겠다. 칸트는 "철학은 [...] 배울 수 없으며, 이성과 관련해서는 기껏해야 철학함만을 배울 수 있다"(KrV, A837=B86S) 고 보았다. "철학함을 배운다"함은"자기 이성을 스스로 사용함을 배운다"(V-Log : XXlV, 698)는 뜻이다. 철학함은 남의 문헌을 이해하여 소개하는 데 있지 않다. 그래서 칸트는 "사람들은 단지 문헌에 의한 작업만으로는, 한 저자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 강의할 정도로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어쩌면 저자 자신도 [...] 이해하지 못했던' 사태 자체는 투시하지 못한다"라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철학한다'는 것은 고전 문헌을 문자에 따라 연구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사태를 스스로 관조하고 사색함을 말한다.

『서설』의 제일과제
『서설』은 스스로 철학하는 자만을 독자로 삼는다. 그런데 철학의 본령은 형이상학이다. 그러니까 철학하는 자의 당면 과제는 교조주의에 붙잡혀 있음으로 해서 더 이상 '학문'으로서 위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그 토대에서부터 검토하는 일이다. 그래서 『서설』은 제일의 과제로서 " '과연 형이상학과 같은 어떤 것이 도무지 가능하기라도 한 것인가'하는 물음"(A4=IV255)을 제기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순수 이성의 전체 범위를 그 한계와 내용에 있어서 완벽하게 그리고 보편적 원리에 따라 규정하는 일"(A15=IV261), 곧 '순수 이성 비판' 작업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다. 형이상학이란 문자 그대로 '형상 너머의 것', '물리적인 것 너머의 것', 즉 영혼 · 세계 전체 · 신 등에 대한 지식 체계인 만큼, 감성적인 인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그러니까 오로지 순수한 이성에 의한 사고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서설』의 과제는 『비판』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다. 다만 『비판』이 '학문이 자기의 모든 분절들을, 하나의 전적으로 특수한 인식능력의 구성물 조직으로서, 그 자연스런 결합에서 제시되도록 하기 위해서, 전적으로 종합적 교습법에 따라 작성"한 것을 『서설』은 "분석적 방법에 따라" 재서술하여 "모든 장래의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로서"(A21=N263) 내놓고 있다.



56 초월적 이념들에 대한 일반적 주해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대상들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견지에서 불가해하다. 그리고 자연법칙이 우리를 끌고 가 이르게 되는 많은 물음들은 어느 높이까지 가면 이 법칙들에 따라서 계속 추구해가도, 전혀 해결될 수가 없다. 예컨대 무엇으로 인해 물질들은 서로 끌어당기는가 하는 물음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자연을 완전히 떠나거나, 자연의 연결을 계속해나가 모든 가능한 경험을 넘어선다면, 그러니까 순전한 이념들에 잠기게 되면, 우리는, 우리에게 대상이 불가해하다느니, 사물들의 자연본성이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내어놓는다느니 하는 말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경험을 넘어서면 우리가 다루게 되는 것은 자연이, 도대체가 주어진 객관들이 아니라, 오로지 우리의 이성 안에 그 근원을 갖는 개념들, 순전한 사유물들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에 관해서는 그것들의 개념에서 생기는 모든 과제들이 해결될 수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성은 그 자신의 수행절차에 대해 두말할 것도 없이 완벽한 변명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영혼론적, 우주론적, 신학적 이념들은 순정히, 어떠한 경험에서도 주어질 수 없는, 순수 이성 개념들이므로, 이런 것들에 관해 이성이 우리에게 내어놓는 물음들은 대상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의 순전한 준칙들에 의해 이성의 자기충족을 위해 과해지는 것으로, 모두 충분하게 대답될 수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또한, 이 개념들이 우리의 지성시용으로 하여금 전반적인 일치성, 완벽성, 종합적 통일성을 갖추게 하는 원칙들이며, 그런 한에서 순전히 경험에 대해서만, 그러나 경험의 전체에서 타당함을 사람들이 보여줌으로써 일어난다. 그러나 경험의 절대적 전체는 불가능함에도, 그렇지만 원리들 일반에 따르는 인식의 전체라는 이념은 이것만이 인식에다 특수한 종류의 통일성, 곧 체계라는 통일성을 마련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통일성이 없으면 우리의 인식은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고, 최고의 목적━이것은 언제나 오직 모든 목적들의 체계이거니와—을 위해 사용될 수가 없다. 여기서 최고의 목적이란 한낱 실천적 목적뿐만 아니라, 이성의 사변적 사용의 최고의 목적 또한 의미한다.

  그러므로 초월적 이념들은 이성 특유의 규정[직분], 곧 지성사용의 체계적 통일의 원리라는 이성 특유의 규정을 표현한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이 인식방식의 이러한 통일을 그것이 마치 인식의 객관에 부속해 있는 것인 양 본다면, 즉 본래 한낱 규제적인 이 통일을 구성적인 것으로 여기고, 사람들이 이 이념들에 의거해서 그의 지식을 모든 가능한 경험을 넘어 멀리까지, 그러니까 초험적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이 통일이라는 것은 한낱 경험을 경험 자신 중에서 가능한 한 완벽성에 가까이 이르게 하기 위해, 다시 말해 경험의 진행을 경험에 속할 수 없는 어떤 것에 의해 제한시키지 않기 위해, 쓰이는 것이므로, 이런 일은 우리 이성 고유의 규정과 그 원칙들을 판정함에 있어서 하나의 순전한 오해이고, 하나의 변증학[성] 이다. 이 변증학[성]은 한편으로는 이성의 경험사용을 혼란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이성을 자기 자신과 불화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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