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H. 해스킨스: 12세기 르네상스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22. 4. 18.
12세기 르네상스 - C. H. 해스킨스 지음, 이희만 옮김/혜안 |
서문
한국어판 서문
옮긴이의 글
제1장 역사적 배경
제2장 지적 중심지
제3장 서적과 도서관
제4장 라틴 고전의 부활
제5장 라틴어
제6장 라틴어 시
제7장 법학의 부활
제8장 역사서술
제9장 그리스 및 아랍 저술의 라틴어로의 번역
제10장 과학의 부활
제11장 철학의 부활
제12장 대학의 형성
서문
12세기 르네상스라는 제목은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다. 12세기 르네상스라니! 무지와 정체, 어둠의 시대였던 중세는 그 뒤를 잇는 르네상스기의 빛, 진보, 자유와 날카롭게 대비되지 않는가? 덧없는 이 현세에서의 기쁨과 아름다움, 지식에 대해서는 안목도 없고 관심이라곤 줄곧 내세에 대한 공포에만 맞추어져 있던 중세에 어떻게 르네상스가 가능하였단 말인가? 노새를 타고 가면서 깊은 상념에 젖어 레만 호수의 아름다운 풍광에는 눈도 돌리지 않았던 성 베르나르에 대한 사이먼의 묘사 같은 것이 중세 전 시기를 대변하고 있지 않은가? 즉 "잘 닦인 도로를 따라가면서 죄와 죽음, 심판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시대의 한 사려깊은 순례자 베르나르는 레만 호수의 멋진 장관이 감상할 가치가 있음을 무시하거나 거의 인식하지 못하던" 시대의 전형이었다는 것이다. 아니면 그 같은 삶이 축복이었던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필자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역사의 연속성은 연이은 시대들 간의 날카롭고 강렬한 대비를 거부하고, 오늘날의 연구에 따르면 이전 사람들이 알고 있던 것에 비해 중세는 덜 어둡고 덜 정적이며,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덜 밝고 덜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였다는 것이다. 생명, 화려한 색채 및 변화를 보여주는 중세는 지식과 아름다움을 강렬하게 추구하였을 뿐 아니라 예술과 문학, 제도 분야에서도 매우 창조적인 업적을 이룩하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유사한 운동들이, 비록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덜 했어도, 이탈리아 르네상스보다 앞서 나타났다. 사실상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중세로부터 점진적으로 유래된 것이었다. 르네상스가 언제 시작되었는가를 둘러싸고 역사가들의 견해는 일치하지 않으며, 일부 역사가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라는 용어 자체를 폐기하려고 하였다. 심지어는 15세기에 르네상스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폐기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이 책은 초기의 부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활이자 종종 중세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12세기 르네상스'를 다루었다. 성 베르나르가 노새를 타고 활동한 12세기는 많은 점에서 신선함과 활력이 넘친 시대였다. 이 시기 서유럽에서는 십자군 운동이 일어났고, 도시와 초기 관료제적 국가가 태동하였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이 절정에 달하였을 뿐 아니라 고딕 양식도 출현하였다. 또한 12세기에는 속어 문학이 나타나고, 라틴 고전 및 라틴어 시 그리고 로마법이 부활하였다. 아랍의 과학지식이 가미된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이 다수 부활하였을 뿐 아니라, 최초의 유럽 대학들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12세기는 고등교육, 스콜라 철학, 유럽의 법률체계, 건축과 조각, 종교극, 라틴어 시와 속어 시 같은 분야에서 의미있는 흔적을 남겼다. 이러한 주제들은 책 한 권이나 학자 한 사람이 다루기에는 너무 광범위하다. 12세기의 예술과 속어 문학 분야는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필자 12세기 르네상스의 라틴적 양상, 즉 넓은 의미의 지식의 부활을 주제로 삼고자 한다. 다시 말하자면 라틴 고전과 그 영향, 새로운 법학, 매우 다양한 역사서술, 그리스 및 아랍의 새로운 지식과 서양의 과학과 철학에 대한 그리스 및 아랍 지식의 영향, 그리고 새로운 교육제도 등 이 모든 것을 당대의 지적 중심지와 문화적 배경하에서 조망해 보고자 한다. 이들 전반적인 주제와 관련하여 달리 연구성과가 없을 경우, 필자는 불가피하게 주로 이차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바란다.
옮긴이의 글
해스킨스의 이 책이 간행되기 이전에는 라틴 고전의 부활에 기초한 개성과 자아의 발견, 예술 작품으로서의 국가의 태동, 자연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 등을 특징으로 하는 부르크 하르트류의 르네상스 개념이 지배적이었다. 부르크하르트류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중세와 이탈리아 르네상스기 간의 역사적 문화적 단절을 전제하고 있었다. 해스킨스는 중세 유럽 사회가 고유의 역동성과 문화적 창조성에 의해 12세기 르네상스를 성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12세기 르네상스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포함한 근대 유럽의 문화와 제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하였다. 르네상스라는 개념을 중세로까지 소급하여 확대 적용함으로써 역사의 연속성과 변화를 강조하고 있는 이 책은 12세기 르네상스를 포함한 중세 르네상스는 물론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지적 담론도 재공하고 있다.
해스킨스는 12세기 르네상스를 협의의 의미의 고대 라틴 고전의 부활로 한정하지 않고, 광의의 의미의 지적 문화적 운동으로 이해하였다. 그에 따르면, 12세기 르네상스는 단지 라틴 고전의 단순한 모방 내지 부활에 그친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라틴 문학은 물론 속어 문학도 태동시켰으며, 새로운 학문인 법학도 탄생시켰다. 역사서술 분야에서도 라틴어로 된 연대기, 연보 및 성인전 등의 전통적인 역사서술 이외에 속어로 작성된 역사서, 도시 연대기 등의 역사서술도 출현하게 되었다. 또한 12세기 유럽인들은 과학 분야에서 중세 초기의 백과사전적 지식에서 벗어나 아랍 및 그리스 학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함으로써 수학과 천문학 등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룩하였다. 지적 제도적 측면에서도 12세기에 형성된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 중세 유럽의 역사적 유산이다.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이전에도 이미 12세기 르네상스가 있었으며, 12세기 르네상스와 15세기 르네상스 간에는 역사적 문화적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해스킨스의 주된 논지였다.
제1장 역사적 배경
유럽의 중세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시대였을 뿐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도 꽤 많은 기간을 차지한다. 천년에 이르는 중세 유럽에는 매우 다양한 민족, 제도 및 문화가 대두하였으며, 중세 유럽은 역사적 발전의 많은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근대 문명을 형성한 여러 요소들이 중세 유럽에서 기원하였다. 동유럽과 서유럽 북유럽과 지중해, 유서깊은 것과 새로운 것,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 이상과 실재 간의 대비는 12세기에 생명, 색채 및 활력을 제공하며, 중세와 고대 세계 및 근대 세계와의 밀접한 연관성은 인류 역사의 지속적인 발전에서 중세가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다. 모든 위대한 역사 시대가 실제로 그러하듯, 중세를 특징짓는 두 가지 요소는 연속성과 변화다.
필자의 이러한 생각은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대중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식자층 사이에 폭넓게 자리 잡고 있는 견해와도 상충된다. 대중과 지식인들에게 있어 중세란 획일적이고 정적이며 퇴행적인 모든 것과 동의어다. 말하자면 버나드 쇼가 우리에게 환기시켜주고 있듯이, 이전 세대에 유행한 최신 의상에조차 '중세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처럼 '중세적'이라는 용어는 부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는 고트족과 반달족의 야만성이 뒤 이은 세기들로 확산되었으며, 심지어 인류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건축의 하나로 간주되는 '고딕 건축'에까지 적용되었다. 중세의 무지와 미신은 르네상스기의 계몽과 대비되었으며, 중세를 뒤 이은 시대에도 줄곧 성행하였던 연금술과 악마론은 기이하게도 중세에는 무시되었다. 또한 '암흑기'는 476년부터 1453년에 이르는 모든 시기를 포괄하여 확대 적용되었다. 심지어 중세가 암흑기가 아님을 알고 있던 지식인들조차 중세 성기盛期 즉 약 800년부터 약 1300년에 이르는 시기를 종종 '암흑기'로 간주한다. 중세 성기는 봉건제, 교회제도 및 스콜라주의라는 중세의 위대한 제도 내지 역사적 산물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이 시기를 전후하여 보다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중세가 암흑기라는 사고는 중세 성기 유럽의 다양한 지역에서 일어난 상이한 발전, 중요한 경제적 변화, 동방의 새로운 지식의 전래, 중세인의 생활과 사유에서 보이는 새로운 흐름을 무시한다. 특히 중세의 지적 분야에서의 라틴 고전과 법학의 부활, 고대 지식의 수용과 관찰을 통한 지식의 확대, 그리고 중세 성기의 시와 예술 분야에서 이룩된 창조적 업적을 간과하고 있다. 800년의 유럽과 1300년의 유럽은 많은 점에서 비슷하기보다는 차이가 더 크다. [...] 인문주의자들이나 근대의 그 추종지들이 이해했던 것만큼 전세와 르네상스기의 문화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지적 부활들은 중세에도 있었고, 중세 이후의 시대에도 영향력을 잃지 않았으며, 널리 알려진 15세기의 지적 운동과 동일한 성격을 띠었다. 필자가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지적 부활들 중 하나인 12세기 르네상스로서, 이것은 중세 르네상스라고도 알려져 있다. [...] 12세기 르네상스는, 후대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처럼, 백년간 내지 11세기 말엽부터 1204년 유럽의 콘스탄티노플 약탈과 13세기의 도래를 알리는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백년 이상에 걸친 유럽의 모든 변화를 포괄할 정도로 매우 광범하게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이 시기의 일반적인 역사를 제외한 특정 분야에 적용하기에는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모호하다. 12세기 르네상스라는 용어를 이 시기의 문화사로 한정시키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즉, 이 용어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절정, 고딕 양식의 대두, 서정시와 서사시라라는 두 양식으로 이어진 속어 시의 만개, 라틴어로 된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문학 등을 특징으로 한다. 전성기를 맞이한 주교좌성당 학교들과 더불어 개막된 12세기는 살레르노, 볼로냐, 파리, 몽펠리에 및 옥스퍼드 등에서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은 초기 대학들과 함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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