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 O. 허시먼: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22. 5. 3.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강명구 옮김/나무연필 |
옮긴이의 글 | 허시먼이 인도하는 ‘화이부동’의 정치경제학
머리말
1장 서론과 이론적 배경
2장 이탈
3장 항의
4장 이탈과 항의를 결합할 때 겪는 특별한 어려움
5장 게으른 독점은 어떻게 경쟁을 악용하는가
6장 공간적 복점과 양당체제의 역학 관계에 대하여
7장 충성심의 이론
8장 미국의 이데올로기와 관행을 통해 살펴본 이탈과 항의
9장 이탈과 항의의 최적 조합은 왜 어려운가
부록
A. 단순 도형으로 살펴본 이탈과 항의
B. 이탈과 항의 사이의 선택
C. 반전 현상
D. 몇몇 전문가적 재화의 가격 상승과 품질 하락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
E. 가입 조건의 엄격성이 집단 활동에 미치는 효과: 실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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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도덕주의자들이나 정치학자들이 비도덕적 행동으로부터 개인을, 부패로부터 사회를, 쇠락으로부터 정부를 구하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던 반면 경제학자들은 경제 행위자들의 회복 가능한 일탈 행위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무관심의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경제학에서는 경제 행위자들이 완전하고 일탈 없는 합리적 행위를 하거나 적어도 변함없는 수준의 합리성을 유지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한 기업의 성과 하락은 이윤(혹은 성장률이나 그에 상응하는 목표)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의지나 능력은 그대로이지만 공급이나 수요 상황이 나빠지면서 발생한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공급이나 수요는 변함없는데 '능력 혹은 에너지 극대화 원칙’이 사라지면서 벌어진 일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전자(객관적 조건의 변화)로 보지만 만약에 후자(기업의 내부적 조건의 변화)라면, 어떻게 기업이 에너지를 극대화해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전자의 해석을 따를 경우 수요-공급의 변화를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객관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바꿔 말하면, 전형적인 경제학자들은 기업의 흥망성쇠에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가정했다.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간혹 벌어지거나 그리 어렵지 않게 '회복할 수 있는 일탈'의 문제는 전형적인 경제학자들의 논리로 보면 매우 생소한 것이다.
42 경영진은 두 가지 우회로를 통해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1) 고객이 더 이상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거나 회원이 조직을 탈퇴한다. 이것이 이탈exit 방식이다. 그 결과 이윤이 하락하고 회원 수가 줄어든다. 경영진은 이런 사태의 원인을 알아내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2) 기업의 고객이나 조직의 회원은 경영진 혹은 상부 기관에 직접 불만을 알리거나 여러 방식을 통해 이를 관심 계층에 전달한다. 이것이 항의voice 방식이다. 그 결과 경영진은 다시 한 번 사태의 원인을 찾아내 고객이나 회원의 불만을 잠재 우려한다.
60 실제로 정치의 영역에서 이탈은 경제학의 영역에서 항의보다 훨씬 푸대접을 받아왔다. 이탈 방식은 단순하게 비효율적이거나 '성가시다'기보다 탈퇴, 변절, 반역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범죄적 행위로 종종 낙인 찍혀왔다. 분명 양측 모두 열정과 선입견을 줄임으로써 전형적인 시장 메커니즘과 전형적인 비非시장 메커니즘인 정치적 메커니즘이 함께 작동하는 이점을 누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들 사이의 조화와 협력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서로의 장점을 뛰어넘을 만큼의 교차도 가능해질 것이다.
71 경쟁(즉 이탈 방식)이 하락한 성과를 회복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예민한 고객과 둔감한 고객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가장 좋다. 예민한 고객은 기업이 원상회복하도록 피드백 메커니즘을 제공하며, 둔감한 고객은 기업이 원상회복하도록 시간과 돈을 제공해준다.
84 민주적 정치체제가 이와 같은 정치적 무관심에도 비교적 잘 버텨왔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시민과 안정적 민주주의 간의 관계는 우리가 흔히 믿어왔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이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시민과 무심한 시민이 섞여 있는 것이, 혹은 정치적 참여와 그로부터의 후퇴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총체적이고 영구적인 정치활동이나 정치적 무관심보다는 민주주의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120 어떤 사회든 권위적인 구조가 있기 때문에 조직은 (고객이나 구성원의) 요구에 반응해야 하고 개인이나 집단은 자신의 이익을 주장할 준비가 잘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약간의 이탈이 가능할 때보다는 고객이나 구성원이 선택의 여지없이 묶여 있을 때 항의 방식이 좀더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다.
124 무능한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게으른 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즉 독점에 대한 야심은 없지만 동시에 독점으로부터의 탈출이 가능한 까닭에 더욱 견고하고 억압적이다. 이 유형은 그동안 불공평하게 많은 관심을 받았던 전체주의적이고 확장주의적인 독점 형태 혹은 이윤 극대화와 축적 지향적인 독점 형태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166 보이콧은 이탈의 위협과 마찬가지로 이탈과 항의 방식의 경계에 위치한 또 다른 현상이다. 보이콧을 통해 이탈은 위협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완결된다. 그러나 보이콧은 보이콧 당하는 조직의 정책 변화라는 특별하고 명시적인 목적을 추구하므로 이탈과 항의라는 두 메커니즘의 진정한 혼합물이라고 할 수 있다.
186 이러한 행동을 합리적으로 설명해주는 유일한 상황은 조직의 산출 혹은 질이 구성원들이 떠나간 후에도 문제가 되는 경우다. 다시 말해 완전한 이탈이 불가능한 경우다. 더 이상 어떤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결정했음에도 그 물건의 소비자로 남아 있거나 공식적으로는 탈퇴했지만 아직도 조직의 구성원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그렇다.
187 공공재는 특정 공동체, 국가, 지리적 영역의 구성원인 모든 사람이 소비하는 재화로서 한 구성원이 이 재화를 사용했다고 해서 다른 구성원들이 이 재화를 사용 혹은 소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전형적인 예로 범죄 예방, 국가 방위뿐만 아니라 높은 국제적 위상, 높은 문자 해독률, 공중 보건 등 모두가 이용하거나 이용해야만 하는 공공 정책의 목표 달성까지 포함된다.
188 공공재의 개념을 이해하면 어떤 상황에서는 조직이나 재화로부터의 진정한 이탈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부분적으로나마 이탈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그 재화가 궁극적으로 더욱 악화되는 상황을 고려해야만 한다. 일단 이렇게 공공재의 개념을 소개했지만, 실제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어떻게 공공재로부터 부분적으로나마 이탈하느냐라는 것이다.
210 톰슨이 명명한 반대자의 순치란 베트남 정책에 회의적인 행정부 관료들에게 '공식적인 반대자' 혹은 '선의의 비판자'라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회의주의자들은 이런 역할을 부여받으면 양심의 위로를 받지만 동시에 그의 입장은 명확하고 예측 가능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되면 회의주의자의 권력은 심각하게 손상되어 그의 입장은 무시된다. 반대자들은 '팀의 일원으로서' '역할분담'에 참여하고 있다는 조건하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반대자는 그의 강력한 무기, 즉 반대 의견을 제시하며 사퇴하겠다고 위협하는 행동을 사전에 포기하게 된다.
225 이 책의 접근법은 어떤 이탈 혹은 항의의 혼합이 최적이라는 확고한 처방을 내리지는 않는다. 더구나 각각의 제도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그것에 고유한 혼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도 동조할 생각이 없다. 어떤 특정 시점에서 두 가지 방식 중 하나가 모자란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어떤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 혼합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각각의 회복 메커니즘은 그 자체로 이 책에서 계속 제기했던 퇴보의 세력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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