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가르침과 배움(51) #Steiner 74쪽

 

2022.07.06 가르침과 배움(51) #Steiner

74 만델슈탐이 『신곡』에 대한 참신한 주해에서 말하듯이, 단테는 수비학을 깊이 활용했다.
♧ 가르침에 관한 한 『신곡』이라는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위력은, 아우구스티누스도 이에 비할 바 없다.
♧ 『신곡』을 읽을 때에는 숫자를 세어봐야 한다.

74 이렇게 정밀하게 계산된 디미누엔도는 스승에 대한 제자의 의존, 『아이네아스』에 대한 『신곡』의 의존이 점점 사그라드는 것을 보여준다. (이 두가지 감퇴는 상호 보충적이다.)
♧ diminuendo: 점점 여리게
♧ recession: 감퇴보다는 물러섬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74 이교도 스승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50 Pagan mastery is no longer welcome. 
♧ 베르길리우스는 명백하게 이교도이기 때문에 더 이상 환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

74 베르길리우스가 영원히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50 Virgil's irreparable exile from salvation is made manifest.

74 이 사실은 신뢰의 기쁨으로 흐려져도 번복되지는 않는다.
♧ 아무리 서사시에서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신뢰한다고 하더라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은 이교도이기 때문에 뚜렷하다는 것이다.

74 두려움과 무지에 싸인 순례자는 아이처럼 악착 같이 스승에게 의존한다 ━ "나는 모든 지혜의 바다를 향해 돌아섰다io mi volsi al mar di tutto 'l senno."
♧ 『신곡』, 지옥편 8권 7행
 나는 모든 지성의 바다이신 스승님께
 말했다. 「저건 무슨 뜻입니까? 저 불은 
  무엇에 응답하고, 또 누가 저렇게 합니까?」
 (열린책들, 김운찬 옮김)
♧ 모든 지성의 바다는 베르길리우스를 뜻한다. 다시말해서 "나는 모든 지혜의 바다를 향해 돌아섰다"가 아니라 베르길리우스를 향해 돌아서 물었다는 뜻이다. 번역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

74 단테는 루카누스의 『파르살리아Pharsalia』에 담긴 주술과 기괴성을 환기하면서 베르길리우스의 영토를 예리하게 경계 짓는다.
♧ 베르길리우스의 이야기는 결국 구원의 메세지는 아니다라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이다.

74 그리스도는 역사와 시간을 "파열"시켰다.
50 Christ has "broken" history and time.
♠ 그리스도는 역사와 시간을 "단절"시켰다.
♧ 역사와 시간을 새롭게 시작했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다. 파열이라는 단어에서 그런 뜻을 떠올리기 쉽지 않아서 보충 설명.

74 아무리 특별한 일이라도 해도, 베르길리우스가 『아이네아스』에서 저승에 내려간 일도 또 신곡에서 단테를 인도한 일도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는 아니다. 

74 단테는 편안히 직진만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50 Dante rarely lets us relax in the straightforward.
♧ 단테는 우리가 편안한 길을 가게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단테'가 아닌 '우리'를 마음 졸이게 한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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