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퍼드 기어츠: 극장국가 느가라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22. 12. 12.
극장국가 느가라 - 클리퍼드 기어츠 지음, 김용진 옮김/눌민 |
머리말 · 7
서론 발리와 역사적 방법 · 13
제1장 정치적 정의定義: 질서의 원천들
제2장 정치적 해부: 지배계급의 내부 조직
제3장 정치적 해부: 마을과 국가
제4장 정치적 언명: 스펙터클과 의식儀式
결론 발리와 정치 이론·219
미주·251
용어 해설·473
참고 문헌·495
옮긴이의 말·527
저역자 소개·534
30 알려져 있는 발리의 전체 역사를 볼 때, 발리 국가가 표현적 특성을 지녔다는 점은 명백하다. 발리 국가가 지향했던 바는 전제정도 아니고 심지어 질서정연한 통치체제도 아니었다. 발리 국가는 전제정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권력을 체계적으로 집중화 할 능력이 부족했으며, 설사 발리 국가가 실제로 질서정연한 통치체제를 향해 나아갔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단지 무심하고 머뭇거리면서 어쩔 수 없이 나아갔을 뿐이었다. 오히려 발리 국가가 언제나 지향했던 것은 스펙터클과 의식, 그리고 발리 문화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집착인 사회적 불평등과 지위 자긍심을 공적으로 극화하는 일이었다. 발리는 왕과 군주들이 흥행주, 사제들이 감독, 농민들이 조연 배우이자 무대 담당이자 관객이었던 극장국가였다. 거대한 화장의례, 삭치의례, 사원에 드리는 봉헌, 순례, 그리고 피의 희생의례에는 수백 심지어 수천 명에 이르는 인력과 막대한 부가 동원되었는데, 이것들은 어떤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 목적이었으며, 국가는 오히려 그런 것들을 위해 존재했다. 궁정의 의례주의는 궁정정치의 원동력이었다. 대규모 군중이 동원되는 의례는 단순히 국가에 버팀목을 대는 장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국가가 군중의례를 실행하기 위한 장치였으며, 이는 심지어 국가가 그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도 그랬다. 권력이 웅장한 제의를 위해 봉사했지, 웅장한 제의가 권력을 위해 봉사한 것이 아니었다.
221 국가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하여 16세기 이래 서구에서 발전되어 온 개념들이 있다. 영토 내에서 폭력을 독점하는 존재, 지배계급의 집행위원회, 인민 의지를 대표하는 대리인,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실용적 도구 등이 바로 그런 개념들이다. 그런데 이런 개념들은 앞서 언급된 종류의 힘, 즉 질서화하는 힘이 존재한다는 점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국가를 이해하기 위한 서구의 선도적인 개념들 중 그 어떤 것도 국가권력이 가진 상징적 측면의 특징을 충분히 설명해내지 못했다. 정치적 삶에서 명령과 복종이라는 개념으로 쉽게 환원될 수 없는 권위의 차원들은 고작해야 비정상적인 생성물 신비, 허구 장식물 등으로 이루어진 막연한 세계로 표류해 가도록 방치되었을 뿐이었다. 또한 월터 배젓이 정부의 고결한 부문과 효율적인 부문이라고 명명한 것 사이의 연계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오해가 있어왔다.
240 그러나 왕은 정치적 행위자이기도 했으며, 기호 중의 기호였던 만큼 권력 중의 권력이기도 했다. 물론 왕을 만들어내고 그를 영주에서 도상으로 성장시킨 것은 바로 왕의 의례였다. 왜냐하면 평온한 신성성이라는 이미지는 극장국가의 드라마 없이는 심지어 형태를 취할 수도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드라마의 상연 빈도, 화려함의 정도, 규모, 그리고 그에 따라 그 드라마가 세계에 각인시키는 인상의 범위는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그 드라마를 상연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 충성의 범위가 얼마나 포괄적이냐에 달려 있었다. 이 현상의 전체적 그림을 완결하기 위해 추가로 한 가지 사실을 더 지적해야겠다. 그 사실이란 바로 인력, 기술, 물자; 지식을 동원하는 일이 국가통치술의 가장 기초적인 업무이자 가장 중요한 기예에 해당했으며, 물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패권은 바로 그런 능력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요하게 앉아 있는 행위, 심지어 열정적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 행위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권력에 대한 최고의 재현이 되기 위해서는 권력 내부에서 교통하는 것도 필수적이었다.
242 이는 아마도 모든 복합적 정치 체계의 특징이자 확실히 모든 독재 정치 체계의 특징이라고 일컬어지는 "최고 자리에서의 고독"만은 아니었다. 여기서 문제는 관리들이 두려움 혹은 신중함 때문에 왕이 물정을 잘 모르도록 현실을 은폐했다는 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발리의 국가 체계 안에는 직원이 사실상 거의 없었고 마찬가지로 관리직도 전혀 없다시피 했다. 한편 왕이 공표한 정책들이 너무나 일반적인 용어로 표현되어야 했기 때문에 왕이 구체적인 현실로부터 유리되었다는 식의 문제도 아니었다. 실질적으로 행정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정책이라 할 만한 것도 거의 없었다. 문제는 느가라가 자기 영향력이 미치는 지점 중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면 그 특성도 변화한다는 데 있었다. 낮° 亡지점에서 느가라는 서로 교차하는 수백 개의 마을 정치체들과 맞물려 있었으며, 일군의 뻐르버끌, 스다한, 수반다르를 통해서 마을로부터 궁정 오페라를 상연할 인력과 자원을 뽑아냈다. 그보다 더 높은 지점에서 느가라는 마을 정치체와의 접촉을 피했고 마을 정치체로부터 연상되는 조야함으로부터 점진적으로 자신을 분리했으며, 모범적인 모방이라는 중심 과제, 즉 궁정 오페라 상연 업무로 방향을 틀었다. 기저부로 갈수록 느가라는 기능적이 되었고, 혹은 발리인들이 말하듯 "조야"해졌고, 정점으로 올라갈수록 느가라는 미학적이고 "세련"되어졌다. 느가라는 위계의 본성에 대한 모델 자체였던 것이다.
243 그 결과, 위계의 어느 지점에서나 지위를 증명해야 할 필요성과 그런 증명이 가능하도록 지지를 결집해야 할 필요성이 충돌했다. 특히 정상 가까이, 즉 "멀리까지 비추는 장엄한 광휘"가 그렇게도 많은 연료를 소비했던 정상 가까이에서는 그 충돌이 가장 강력하고 불가피했다. 특히 왕의 최측근인 주요 뿡가와들, 예컨대 시샘하는 친척들, 마지못해 일을 하는 부관들, 왕과 거의 동등한 위치에 있는 귀족들 왕의 잠재적인 경쟁자들은 왕이 의례를 통해 문자 그대로 비활성화되는지, 그리고 왕이 지배의 의례에 너무나 깊이 침잠되어서 자신들에 대한 실질적인 의존성이 극대화되고 그에 따라 자신들이 과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고되는지 여부에 관심을 가졌다. 경쟁적으로 큰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정치는 만성적으로 불안했다. 왜냐하면 한 영주의 성공이 다른 영주에게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는 기본적으로 안정적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 기회라고 하는 것이 다시 내재적으로 자기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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