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 자기해석학의 기원

 

자기해석학의 기원 - 10점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외 옮김/동녘

푸코 작품 약어
머리말
들어가며

미셸 푸코가 다트머스대학에서 행한 두 강연
주체성과 진실(1980년 11월 17일)
그리스도교와 고백(1980년 11월 24일)

‘진실과 주체성’에 관한 토론(1980년 10월 23일)
미셸 푸코와의 대담(1980년 11월 3일)
옮긴이 해제
찾아보기

 


주체성과 진실(1980년 11월 17일)
59 이러한 고백과 조언의 실천은 그리스인들이 오랫동안 gnome라 불러왔던 것의 범주내에 존속하고 있습니다. 그노메는 의지와 인식의 일치를 지시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또한 진실이 강력한 힘 속에서 출현해 사람들의 영혼에 각인되도록 만드는 격언을 지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 혹은 헬레니즘과 로마 철학 내에서 모델로 제시된 이런 유형의 주체는 기원후 1세기와 같이 늦은 시기에 이르기까지 격언적 자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격언적 자기 내에서 진실의 힘과 의지의 형태가 일체를 이룹니다.

59 이 격언적 자기 모델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을 말해야 할 필요성, 스승의 역할과 스승의 담론의 역할 자기의 출현으로 최종적으로 귀착되는긴 도정 등과 같은 몇 가지 구성요소들을 발견했습니다. 이 모든요소들은 그리스도교의 자기 테크놀로지에서도 발견되지만 대단히 다른조직 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고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헬레니즘 로마철학에서 자기 점검과 고백을 검토해본 결과, 보시다시피 자기는, 발견하거나 지극히 모호한 텍스트처럼 해독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작업은 자기 자신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기는 발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힘을 빌어 구축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진실의 힘은 스승의 담론의 수사학적 자질에 있고 또 이 수사학적 자질은 제자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진정한 원리들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이 사는 방식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제자의 설명에 부분적으로 의존합니다. 이렇게 자기를 목표로 구성하는 것, 제가 격언적 자기라 명명한 자기를 자기 점검과 고백이 지향하는 표적과 목표로 구성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자기 데크놀로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의 자기 테크놀로지에서 문제는 자기 자신 안에 은폐된 것을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자기는 우리가 해독해야 할 텍스트나 책과 같은 것이지, 의지와 진실의 중첩과 중과를 통해 구성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고대 이교 문명의 자기 구성과는 아주 다른 그리스도교도의 자기 구성은 현대 자기의 계보에 대단히 결정적인 어떤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와 고백(1980년 11월 24일)
94 먼저 보시다시피 새로운 유형의 자기가 등장합니다. 혹은 적어도 자기 자신과 맺는 새로운 유형의 관계가 등장하죠. 지난 주에 말씀드렸던 것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의 자기 테크놀로지, 혹은 철학적 자기 테크놀로지가 목표로 삼았던 바는 기억의 형태로 인식의 주체와 의지의 주체를 항상적으로 중첩시킬 수 있고 또 중첩시켜야 하는 자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그리스도교 내에서 우리는 훨씬 더 복잡한 자기 테크놀로지의 전개를 보게 됩니다. 이 자기 테크놀로지는 존재의 인식―세계의 인식 혹은 자연의 인식―과 자기 인식 간의 차이를 유지하고 있고, 이 자기 인식은 해석되어야 할 객관적 소여의 장으로서 사유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구체화됩니다. 그리고 해석자의 역할은 사유의 가장 미세한 움직임들을 꾸준히 구두로 표현하는 작업을 통해 수행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테크닉과 결부된 그리스도교적 자기를 인식형이상학적 자기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94 제가 보기에 중요한 두 번째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엑소몰로게시스와 엑사고레우시스 사이에서의 어떤 동요가 있다는 데 주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죄인의 현시, 그 죄인으로서의 존재의 현시를 지향하는 자기에 대한 진실의 테크놀로지를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존재론적 경향이라 부를 수 있고 이것은 엑소몰로게시스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데크놀로지, 즉 사유에 대한 항상적인 담론적 분석을 지향하는 진실의 테크놀로지는 엑사고레우시스이며 여기서는 그리스도교의 인식론적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수많은 갈등과 동요들을 거친 후, 두 번째 형태의 테크놀로지, 이 인식론적 자기 테크놀로지, 혹은 자기의 가장 미세한 운동들의 발견과 그것의 항상적 구두 표현 행위를 지향하는 이 자기 테크놀로지, 바로 이 형태가 수세기 이후 승리를 거두었고 오늘날에도 지배적입니다.

94 심지어 엑사고레우시스에서 파생된 이 해석학적 기술들 내에서조차도 진실 생산은, 기억하시겠지만, 매우 엄격한 조건 없이는 달성될 수 없었습니다. 그 엄격한 조건이란 자기희생을 내포하는 자기해석학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이건 심층적인 모순이거나, 아니면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자기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데크놀로지의 어마어마한 풍부함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희생 없이는 진실도 없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서구 문화의 큰 문제들 중 하나는,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기해석학 창설의 가능성을 자기희생에서 발견하지 않고, 반대로 실정적 자기의 출현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자기의 출현에서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법 제도들의 목표였고, 또한 의학적 실천과 정신의 학적 실천의 목표이 기도 했으며, 정치 이론과 철학 이론의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명확한 자기의 뿌리로서의 주체성의 토대를 구성하는 것으로, 서구 사유의 항구적 인간중심 주의라 부를 수 있는 그것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이 인간중심주의는, 그리스도교에서는, 무한한 해석의 장으로서 자기를 여는 조건이었던 희생을 인간이라는 실정적 형상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심층적 욕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최근의 두 세기 동안 이 문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리가 수 세기 동안 발전시켜 온 자기 테크놀로지의 실정적 토대는 어떤 것일 수 있을까? 하지만 아마도 정말 우리에게 이 자기해석학이 필요하냐고 자문해야 할 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자기의 문제는 실정성 내에서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아닌 것 같고, 실정적 자기나 자기의 실정적 토대를 발견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아마도, 자기라는 것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구성된 테크놀로지의 역사적 상관물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마도 이 문제는 이 테크놀로지들을 변화시키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 오늘날 정치의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정치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진실과 주체성’에 관한 토론(1980년 10월 23일)
101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선생님의 도식 내에서 어떻게 검토되고 있습니까? 세 번째 유형의 고백이 문제인가요?
네,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저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관한 상당히 긴 설명을 준비했었는데요, 하지만 물론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보시다시피 만약 제가,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관해서보다도, 희랍 교부들이 엑소몰로게시스와 엑사고레우시스라 불렀던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엑소몰로게시스와 엑사고레우시스가 제도화된 고백의 양식이었기 때문이고, 또 그것들이 제도들의 모든 특성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그 둘은 사람들에게 강요되었고 또 모든 제도들이 그렇듯 교회의 역사와 그리스도교의 역사 속에서 변화되이왔습니다. 중세에 죄의 고해는 엑사고레우시스와 엑소몰로게시스의 기묘한 혼합물과 같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는 우선 이 두 주제들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저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 말할 생각이었고, 희랍 교부들이 엑소몰로게시스라고 불렀던 것과 합치되는 측면이 《고백록》에서 발견된다고 말해야 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서 현시하기를 원했거나, 혹은 자신이 젊은 시절에 어떤 점에서 죄인이었는지 등을 현시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죄인인 상태를 이렇게 공적으로 표명하는 것 은 《고백록》 집필에서 대단히 중요한 어떤 것입니다. 물론 엑사고래우시스의 측면도 있습니다. 그는 자기 안에서, 자기의 사유 방식 속에서, 자기 삶에서, 그 밖에 자기 자신의 이곳저곳에서 일어난 일을 세심하게 검토하고 싶어했으니 말입니다. 물론 중요한 두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것이 그의 친구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라는 점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지식인 모임에 속해 있었고, 밀라노에서 그들과 함께 살았으며 또 그가 《고백록》을 썼던 히포 레기우스에도 한 무리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자기가 메타노이아를 실행한 개인적인 방법을 자기 친구들에게 설명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고전기 그리스의 특정 철학 학파, 예를 들어 에피쿠로스 학파 사람들에게서 일어났던 일과 유사합니다. 당신 안에서 일어난 일과 당신이 살아온 삶 등을 친구들에게 말하는 이러한 방법은 철학 학파들에서는 전통적인 어떤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점은 카시아누스가 대표하는 에바그리우스적 전통에서 사유들을 점검하는 것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서 대상으로 삼는 바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사유들이나 로기스모이, 코지타치오네스아유떼는 관심이 없고 다만 코르디스 아펙투스에 관심이 있습니다. 즉 사유의 움직임에는 관심이 없고 마음의 움직임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이것은 아주 다른 어떤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에는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전통이 있었고, 그 전통은 물론 아주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반종교개혁 이전까지는 결코 그 전통이 제도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7세기 초 서구 가톨릭에서 이루어진 성 아우구스티누스로의 회귀는 코르디스 아펙투스의 중요성을 잘 드러내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건 제 생각에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