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2 - 교회국가 및 시민국가의 재료와 형태 및 권력

 

리바이어던 2 - 10점
토마스 홉스 지음, 진석용 옮김/나남출판

2권
제3부 기독교 코먼웰스에 대하여
제32장 기독교 정치원리에 대하여
제33장《성경》의 권수, 저작시기, 의도, 권위 및 해석자들에 대하여
제34장《성경》에서 영, 천사 및 성령감응의 의미에 대하여
제35장《성경》에서 하느님의 나라, 거룩함, 신성함 및 성례의 의미에 대하여
제36장 하느님의 말씀과 예언자에 대하여
제37장 기적과 그 효용에 대하여
제38장《성경》에서 영생, 지옥, 구원, 내세 및 속죄의 의미에 대하여
제39장《성경》에서 교회라는 말의 의미에 대하여
제40장 하느님의 나라에서 아브라함, 모세, 대제사장들 및 유대 왕들의 권리에 대하여
제41장 우리 구주의 직무에 대하여
제42장 교권(敎權)에 대하여
제43장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하여

제4부 어둠의 나라에 대하여
제44장《성경》의 그릇된 해석에서 오는 영적 어둠에 대하여
제45장 귀신학 및 기타 이방종교의 잔재에 대하여
제46장 공허한 철학과 허구의 전설에서 생기는 어둠에 대하여
제47장 이러한 어둠에서 생기는 이익과 수익자에 대하여

재검토 및 결론

옮긴이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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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제40장 하느님의 나라에서 아브라함, 모세, 대제사장들 및 유대 왕들의 권리에 대하여

148 신자들의 아버지이자 신의계약에 의한 하느님 나라의 첫 백성은 아브라함이었다. 아브라함이 최초로 하느님과 신의계약을 체결하였으며, 이로써 그와 그의 자손은 하느님의 명령을 인정하고 따라야할 의무를 갖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자연의 빛으로, 즉 도덕법칙으로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꿈과 환상이라는 특별한 방법으로 그에게 알려주기까지 하였다. 도덕법칙의 경우, 그들은 이미 이를 준수해야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주겠다는 약속과 같은) 더 이상의 계약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의무에 어떤 것을 추가하거나, 혹은 그 의무를 강화하는 어떠한 계약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전능하신 하느님께 복종할 의무가 자연적으로 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느님과 맺은 신의계약의 내용은, 하느님이 꿈속에서 혹은 환상으로 나타나 명령한 것을 하느님의 명령으로 여기고, 이를 가족들에게 알리고 이를 준수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이 계약으로부터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통치와 관련하여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계약체결 당시 하느님은 오직 아브라함에게만 말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약이 그의 가족이나 자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계약체결 이전에 이미 그들의 의지 (이것이 모든 계약의 본질이다)가 아브라함의 의지 속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그가 체결한 계약의 내용을 그의 가족과 자손들이 이행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합법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하느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땅 위에 있는 나라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창 18:18-19)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아브라함의 가족과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이자 주이자 정치적 주권자인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듣지 못한 자들은 자신들의 주권자로부터 하느님의 실증적 명령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코먼웰스의 백성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적 행위와 신앙고백에서 그 코먼웰스의 주권자가 정한 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초자연적 계시를 받은 일이 없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상과 신앙에 대해서는 (오직 하느님만이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뿐) 인간인 통치자가 알 수는 없다. 내면의 사상과 신앙은 자유의지로 되는 것도 아니요, 법으로 강제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그것은 드러나지 않은 의지에 속하는 문제요, 하느님의 권능에 속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하여는 어떠한 의무도 부과할 수 없다.

이로부터 또 하나의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의 백성 가운데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다거나, 사적인 환상을 보았다거나, 하느님의 영이 내렸다고 주장하면서, 아브라함이 정한 교리를 어기는 자가 있을 경우, 도한 이들을 추종하거나, 혹은 옹호하는 자가 있을 경우, 아브라함은 이들을 합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자신의 사적인 영을 내세워 법을 어기는 자가 있을 경우, 주권자는 이들을 합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 왜냐하면 코먼웰스에서 주권자의 지위는 아브라함이 그의 가족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같기 때문이다.

또한 이로부터 알 수 있는 세 번째 사실은 다음과 같다. 즉 아브라함의 가족 중에서는 오직 아브라함만이, 그리고 기독교 코먼웰스에서는 오직 주권자만이 무엇이 하느님의 말씀이고 무엇이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오직 아브라함에게만 말했으므로 아브라함만이 하느님의 말씀을 알 수 있고, 또한 그의 가족에게 해석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코먼웰스에서 아브라함과 같은 지위를 가진 자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유일한 해석자인 것이다.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신의계약은 이삭과 갱신되었으며, 후에 야곱과 갱신되었다. 그 다음의 갱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인들로부터 해방되어 시나이 산기슭에 다다랐을 때 모세와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서는 제35장에서 말한 바 있다. 모세와의 신의계약을 통해, 그들은 그때부터 하느님의 특별한 왕국이 되었으며, 당시 하느님의 대리자는 모세였다. 대리자의 직무는 모세 이후 아론에게, 그리고 아론의 후계자들에게 계승되었으며, 이스라엘 왕국은 영원히 하느님에 대한 제사장 왕국이 되기로 하였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렇게 성립하였다. 그러나 모세는 아브라함의 권리를 물려받았다고 주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계승자의 자격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치할 권한은 없었다. 따라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직접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백성들이 그를 하느님의 대리자로 여겨야할 의무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의 권위는, 그들이 하느님과 맺은 신의계약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의 신성함에 대해, 그가 진정으로 하느님을 만났는지에 대해, 그가 진정으로 기적을 일으켰는지에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법을 선포했다 하더라도, 백성들이 그를 믿지 않을 경우, 모세의 말을 따라야할 의무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복종의 의무 이외에 어떤 근거에서 모세에게 복종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그들에게 직접 명령한 것이 아니라, 모세를 통해서 명령을 전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하느님의 명령이라고 믿고 따라야 할 의무는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구주는 "내가 내 자신을 위하여 증언한다면, 내 증언은 참되지 못하다" (요 5:31)고 말한 바 있는데, 모세의 경우에도 그가 자기 자신을 위해 증언할 경우, 그것도 하느님의 백성들에 대한 왕으로서의 권력을 주장할 경우, 그의 증언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을 것이다.

156 아론이 죽고, 그 후 모세도 죽자, 그 왕국은 제사장 왕국이었으므로 신의계약에 따라 아론의 아들 대제사장 엘르아살에 계승되었다. 하느님은 그를 하느님 다음가는 주권자라고 선언하고, 아울러 여호수아를 군총사령관에 임명했다. 하느님은 여호수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상의할 일이 있을 때마다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가서 설 것이며, 여호수아를 대신하여, 엘르아살이 나 주에게 여쭐 것이다. 그러면 여호수아와 그와 함께 있는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총회는 그의 말에 따라서 나가기도 하고, 그의 말에 따라서 들어오기도 할 것이다."(민 27:21) 따라서 화전을 행할 최고의 권력은 제사장에게 있었다. 최고 사법권도 대제사장에게 있었다. 왜냐하면 율법서를 대제사장이 가지고 있었으며,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민사 사건에서 종속적 재판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을 숭배하는 형식에 대해, 사울 때까지는, 대제사장이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는 점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므로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권력은 하나로 결합되어 있었으며, 대제사장에게 있었다. 신성한 권리, 즉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권위에 의해 통치할 경우에는 그럴 수밖에 없다.

여호수아 사후 사울 때까지 그 사이의 시기에는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고 <사사기>는 여러 번 언급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였다"고 덧붙인 곳도 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말은 "주권적 권력이 없었다"는 뜻으로 풀이해야 한다. 주권적 권력의 행위와 행사가 어떠한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면, 〔당시 이스라엘의 경우〕 사실이 그러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와 엘르아살이 죽은 후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는데, 그들은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스 라엘을 돌보신 일도 알지 못하였고,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행동을 일삼았으며, 바알 신들을 섬겼다" (삿 2:10~ 11)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대민족은 성 바울이 말한 대로 "징표를 요구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모세의 통치에 복종하기 전에도 그랬고, 복종의 의무가 생긴 후에도 그랬다. 징표나 기적은 사람들의 신앙심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지, 일단 신앙을 갖게 된 사람이 다시 신앙을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일단 신앙을 갖게 된 사람은 자연법을 따라야 할 의무가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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