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급진주의의 형성 2 - 엘리 알레비 지음, 박동천 옮김/한국문화사 |
▪ 옮긴이 서문
▪ 벤담과 철학적 급진주의 관련 연보
▪ 일러두기
서언
제1장 / 정치적 문제
제1절 / 공리의 원리 대 인권선언: 버크와 벤담
제2절 / 매킨토시, 페인, 고드윈
제2장 / 경제적 문제
제1절 / 도움을 받을 권리: 윌리엄 고드윈
제2절 / 인구의 원리: 로버트 맬서스
제3장 벤담, 제임스 밀, 벤담주의자
제1절 / 급진주의의 탄생
제2절 / 애덤 스미스에서 리카도까지
제3절 / 인민의 교육
제4절 / 높아지는 벤담의 평판
▪ 옮긴이 해제
▪ 언급된 저작의 목록
▪ 찾아보기
서언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 벤담은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을 막 출판한 다음이었다. 세상이 뒤집히는 판국에 그 책은 누구 눈에도 띄지 못한 채 묻히고 밀았다. 그 전 해에 그는 제네바의 뒤몽에게 『민법과 형법의 원리』의 프랑스어판 출판을 일임했었다. 이는 14년이 지나, 혁명의 시기가 마무리되던 즈음에, 『입법론』 이라는 모습으로 파리에서 빛을 보았다.
정치경제학에서 벤담은 애덤 스미스의 제자였고, 『고리대금업 변론』이라는 책으로 약간의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영국에서 그 책이 불러일으킨 논란이 여러 해 동안 이어진 다음에 애덤 스미스의 생각이 다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벤담은 하워드와 더불어 교도체계 개혁안을 제시한 칭언자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당시 공중의 미음은 다른 일들에 쏠려있었고, 벤담에게 『파놉티콘』은 단지 실망과 파산의 원인이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영국게서 "자코뱅" 파의 우두머리 중 한 사람이었던 랜즈다운 경의 집에서 식객으로 지낼 적에조차, 그리고 프랑스 제헌의회와 국민공회의 혁명파와 관계를 맺던 경우에조차, 벤담은 프랑스 혁명의 피해자 입징에서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원칙에 대해 체계적으로 적대적인 입장을 견지했다는 것이 놀랍지는 않다. 실제로, 벤담의 시상은 1789년부터 마치 한참 동안 하나의 휴지기를 겪은 듯하다.
그러나 벤담의 사상은 그랬지만 공리주의 사상은 그렇지 않았다. 벤담의 주위에서 매일매일, 그와는 별도로, 공리주의 사상이 발전하고 있었고, 그 사상은 새로운 원리들에 의해 변모하면서 끊임없이 풍부한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혁명, 그리고 그로 인해 야기된 유럽의 위기는 정치권력의 행사와 부의 향유가 공히 시민들 사이에서 더욱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공론화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발생한 사건들 때문에 촉발된 기나긴 논쟁이 시작되었다. 버크, 매킨토시, 페인, 고드윈, 그리고 맬서스가 거기에 참여하여 이제는 고전이 된 작품들을 남겼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각기 어떤 진영에 속했든지 상관없이, 공리의 원리를 지지했다. 버크에 못지않게 고드윈도 그랬고, 고드윈에 못지않게 맬서스도 그랬다. 영국에서 공리의 선조가 보편적인 철학으로 된 것이 분명했고, 개혁가들은 공중을 향해 말하면서 공중이 자신의 의견을 받어들이기는 고사하고 이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더라도 공리의 언어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분명했다.
정치 분야에서, 버크는 궁극적으로 선비주의와도 살짝 걸치게 되는 하나의 전통주의 철학을 개발할 목적에서 공리의 원리를 기반으로 삼았다. 이에 비해 벤담은 그리고 더불어 그의 제자 뒤몽은 〈인간의 권리 선언〉을 조목조목 반박하기 위해 공리의 원리를 기반으로 삼았다. 반면에, 매킨토시와 페인과 고드윈의 경우에는, 평등한 권리의 원리보다는 이익 일치의 원리가 항상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의 공리주의는 장래의 철학적 급진주의를 예시한다.
경제 분야에서, 고드윈은 개인재산이 사라짐으로써 모든 개인들이 필요한 만큼의 생계를 평등하고 풍요롭게 제공받게 될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 공리의 원리를 기반으로 삼았다. 맬서스는 애덤 스미스의 정치경제학에서 언제나 근간이었던 노동의 법칙을 역설하면서, 공리의 원리를 기반으로 심아 어두운 면을 지적했다. 인간이 본능을 억제할 줄 모르는 한, 소비자 수가 가용한 생계자원의 양보다 계속해서 빨리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행복은 이처럼 고통스러운 조건에 종속된다. 이와 같은 두 갈래의 공리주의 중에서, 정통 교리가 되는 쪽은 고드윈의 것이 아니라 맬서스의 것이었다.
그러므로 당시에, 공리의 원리가 모든 개혁 이념의 모양을 정해주는 틀이 되는 데는 단 하나의 일반적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 에스파냐에서 전쟁이 일어난 때를 기점으로, 영국인들이 나폴레옹의 독재에 대항해서 다시 한번 유럽을 위한 자유의 수호자가 되는 것으로 충분했다. 자유주의 이념들이 영국에서 재신임을 얻고 있던 시기였던 만큼, 자유주의 이념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세상 사람들 모두가 말하는 언어였던 공리의 언어를 통해서 표현되는 것이 불가피하지 않았겠는가? 다른 한편으로, 벤담이 운동의 방향타를 쥐기 위해서는 한 가지 특별한 사정이 삽입되어야만 했다. 1808년 벤담과 제임스 밀의 만남이 그것이었다. 오랫동안 휘그당 내 진보파였던 제임스 밀은 벤담을 자유주의의 명분으로 개종시켰고, 종내에는 정치적 급진주의의 명분으로 개종시켰다. 제임스 밀은 리카도에게도 이념을 주입했다. 리카도가 경제적 선조 전체를 통일하고 체계화하기 위해서 애덤 스미스의 정치경제학에다가 맬서스의 두 가지 진화법칙을 결합한 것은 밀의 지령과 감독에 따른 일이었다. 결국, 제임스 밀은 가능한 모든 출판 수단을 통해서 스스로 벤담주의의 열렬한 선전가가 된다. 오랫동안, 18세기부터, 서로 격리된 개인들이 여기저기서 선전해왔던 이념들이, 이제야 비로소 제임스 밀 덕택에 그리고 벤담의 후원 아래, 공리주의 학파로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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