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동: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 책 밑줄긋기/책 2023-24
- 2023. 8. 28.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 김호동 지음/사계절 |
004 저자 서문
010 프롤로그
중앙유라시아 : 용어와 개념
초원과 사막
유목과 가축
유목민의 사회와 국가
오아시스와 정주민
01) 고대 유목 국가
2) 투르크 민족의 활동
3) 정복왕조와 몽골 제국
4) 계승국가의 시대
5) 유목국가의 쇠퇴
222 에필로그
소비에트 혁명과 중앙아시아
몽골 사회주의 혁명의 전개
중국 공산당의 신강 편입
티베트의 운명
오늘의 중앙유라시아
232 도판 출처
238 참고문헌
250 찾아보기
프롤로그
중앙유라시아 : 용어와 개념
이 책에서 말하는 '중앙유라시아Central Eurasia'가 구체적으로 어떤 지역을 포함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먼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지리적으로 서쪽으로는 흑해 북방의 초원에서 동쪽으로 싱안링 산맥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시베리아 남부의 삼림지대에서 남쪽으로 힌두쿠시 산맥과 티베트 고원에 이르는 지역을 포괄한다. 현재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중국, 몽골과 같은 국가들의 전부 혹은 일부가 이에 속한다.
물론 이제까지 위의 지역들을 총칭하는 다양한 용어들이 사용되어왔다. 먼저 '중앙아시아Central Asia'라는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 '아시아의 중앙'을 뜻하지만 그 범위는 학자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보통은 파미르 고원의 양쪽, 즉 동 · 서투르키스탄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그 서쪽 즉 '고려인'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등지를 가리키는 용어로 주로 쓰이고 있다. 학계에서는 '내륙아시아Inner Asia'라는 용어도 즐겨 사용하는데, 보통 동 · 서투르키스탄 이외에 티베트와 몽골 초원도 포괄하는 좀 더 넓은 지역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지역은 앞에서 열거한 지명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 일부 지역도 포함하기 때문에 유라시아의 중앙부라는 의미에서 '중앙유라시아'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중앙유라시아'는 이처럼 일차적으로 지리적 개념이지만 동시에 역사적 · 문화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와 서아시아가 지리적인 개념이면서 동시에 하나는 한자 · 유교 문화권, 다른 하나는 이슬람 문화권으로서 각기 독자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중앙유라시아에 속하는 지역들도 지난 수천 년 동안 많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유사한 문화적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즉 외적으로는 다른 문화권과 구별되는 독자성을 지니면서, 내적으로는 유사한 문화적 요소들을 공유하는 공통성을 갖는 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중앙유라시아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유목-오아시스 문화권’이라고 하겠다. 이 지역에는 생태적으로 초원과 사막이라는 두 가지 상이한 지역이 존재하고, 초원에는 유목민이, 사막의 오아시스에는 정주민이 살았다. 초원은 역사적으로 거대하고 강력한 유목제국의 고향이었다. 반면 오아시스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존재했기 때문에 분산적이었고, 주민들의 숫자도 제한되어 있었으며, 그들이 건설한 국가는 지역적으로 협소하거나 미약하였다. 그렇기에 이들은 유목민들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거대한 유목제국 안에 편입되기 일쑤였다. 한편 실크로드가 이 오아시스들을 통과했기 때문에 그 주민들은 원거리 교역을 주도하는 상인으로서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그들은 유목민들의 제국 건설을 도왔고 정주지역의 발달한 문화와 기술을 유목민들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물론 실크로드 교역도 유목민들의 보호와 협력이 없다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 지역은 초원과 오아시스라는 상이한 생태환경에서 살았던 유목민과 정주민이 정치적으로는 지배와 종속을 통해, 그러나 경제 · 문화적으로는 교류와 호혜를 통해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곳이다. 중앙유라시아는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가장 중심적인 지역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유목제국의 고향으로서 주변 문명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친, 세계사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문화권이다.
초원과 사막
중앙유라시아의 생태 환경은 타이가, 스텝, 사막으로 구분된다. 이 세 지역에 차이가 생긴 가장 중요한 원인은 동식물의 생육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강우량 정확히 말하면 강우량과 증발량의 상대적 관계이다. 강우량의 많고 적음은 인도양의 몬순 바람, 내륙지역에 분포한 거대한 산맥들의 구조, 북빙양의 존재 등에 의해 결정된다. 죽 인도양에서 많은 습기를 갖고 올라오는 바람이 티베트 고원, 쿤룬 산맥, 히말라야 산맥, 파미르 고원 힌두쿠시 산맥, 자그로스 산맥 등에 가로막혀 비를 모두 쏟아버리기 때문에 그 북방에는 건조한 기후대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반면에 대륙의 북방으로 더 올라가면 날씨가 추워져 증발량은 적은 대신에 북빙야에서 내려오는 습기는 더 많아지기 때문에 타이가의 삼림지대가 생겨난다. 그리고 이 사막과 타이가 사이에 초원, 즉 스텝이 형성된다.
스텝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로 길게 띠를 이루며 펼쳐져 있다. 동쪽의 싱안링 산맥 동록에서 시작하여 몽골 초원, 카자흐스탄 흑해 북안을 거쳐 헝가리까지 이르는 소텝은 역사상 수많은 유목민족들의 고향이었다. 동서 70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거리이지만 거의 끊임없이 초원이 이어지며, 유목민의 이동을 저해할 만한 심각한 자연적 장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스텝의 연속성 덕분에 고대의 월지와 흉노, 그리고 홋날의 투르크와 몽골계 민족들은 동서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유목제국의 영토가 남북으로는 짧고 동서로는 길게 뻗은 모습인 까닭도, 생태 환경이 다른 지역으로 팽창하기보다는 동일한 환경을 갖는 지역을 병합하는 것이 훨씬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목민들이 스텝에만 거주했던 것은 아니다. 내몽골, 준가리아, 서투르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지에 있는 반사막 지역도 초원들이 산재하여 유목민들의 활동 무대가 되었다. 다만 같은 초원이라 하더라도 스텝과 반사막의 초원은 구별될 필요가 있다. 즉 몽골 초원은 농경지역에 서 멀리 떨어진 하나의 독자적인 공간이지만, 투르키스탄이나 이란, 아프가니스탄의 초원은 도시나 촌락 주변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농경지역과 독립된 공간이 아니다. 전자를 격절형 초원, 후자를 교착형 초원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는 두 지역 유목민 사회의 정치 ·경제적 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편 사막지대는 동쪽의 고비 사막에서 시작해서 타클라마칸 사막, 키질 쿰 사막을 거쳐 이란의 다쉬테 카비르에 이르는데, 초원과는 달리 연평균 강우량이 150밀리미터도 되지 않는 극도의 건조지대일 뿐 아니라 그 중앙부에 파미르 고원이 자리 잡고 있어서 동서 간의 교통이 용이하지 않았다. 다만 과거 수많은 사신, 상인, 승려들이 주어진 목표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사막지대를 통과하는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았을 뿐이다. 특히 실크로드의 무대로서 중요한 지역은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양쪽에 자리하며 주민 대다수가 투르크인으로 이루어진 투르키스탄이다. 동투르키스탄은 현재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남부, 즉 타림 분지로 다시 서쪽의 카쉬가리아와 동쪽의 위구리스탄으로 구분된다. 서투르키스탄은 아랄 해로 유입되는 아무다리야(옥수스)와 시르다리야(약사르테스) 두 강 사이에 위치한 지역을 가리킨다. 옥수스 강 너머의 지역이라는 의미로 '트란스옥시아나Transoxiana'라고 부르기도 하며, 아랍어로 두 강 사이의 지역이라는 뜻으로 '마와란나흐르Mawara an-Nahr'라고도 일컫는다.
···
유목민의 사회와 국가
유목민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조직은 단독가족으로, 천막과 그 안에 거주하는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유목민은 이동과 방목 등에서 협력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친족들이 모여서 또 다른 사회단위를 구성했다. 몽골인들은 이를 '아일ayil'이라 부르고 카자흐인들은 '아울aul'이라 부르는데, 1930년대 몽골에서는 5~6가구 규모의 아일이 가장 보편적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유사한 규모의 다른 집단들과 결합하여 이차적 공동체를 구성하며, 이 공동체는 상호부조 형식으로 맺어져 연중 특정 시기에 목지나 수자원을 공동으로 이용했다. 물론 유목민들은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사회조직을 구성하며 그러한 집단은 단순히 목축 생산에 필요한 상호부조의 단계를 넘어서, 적대세력에 대한 공동의 방위와 공격 등 군사 행동을 조직하기도 했다.
이처럼 개별 가호에서 거대한 공수동맹체에 이르기까지 유목민의 다양한 사회조직은 대체로 친족적 원리에 기초해 결합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그래서 직계가족에서 종족으로, 거기서 다시 씨족과 부족으로 확대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집단의 규모가 확대될수록 친족이 아닌 이족이 포함될 가능성이 많아지고, 결국 우리가 부족이라고 부르는 단계가 되면 그것이 과연 순수한 친족집단인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근 일부 인류학자들은 유목사회를 분석할 때 '부족' 이나 '친족조직'과 같은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사실 흉노, 선비, 거란, 몽골과 같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목민들을 하나의 부족 · 민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오해이다. 물론 이들이 원래 조그만 씨족이나 부족의 이름에서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초원의 유목민들을 통합하여 거대한 국가를 세운 뒤에는 거기에 편입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그 이름을 칭했다. 즉 정치적 명칭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흉노가 선비에 의해 멸망한 뒤 고토에 남아있던 대부분의 흉노인들이 스스로를 '선비’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좋은 예이다. 따라서 흉노족이나 '선비족'이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은 '신라족'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렇다면 유목국가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건설되었을까? 여러 학설들이 있지만 간략하게 정리하면 외부적 대응설과 내재적 발생설로 나뉜다.
프리처드는 일찍이 유목사회가 외부세력의 강한 압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종래 분산적이던 사회구조를 극복하고 좀 더 집권적인 정치체제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바필드 역시 유목경제는 기본적으로 자급 자족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 농경사회로부터 물자를 확보해야만 하는데, 정주지대에 강력한 국가가 존재하면 유목민도 그에 대응하는 강력한 국가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라들로프나 바르톨드와 같은 학자들은 유목집단들 사이에 일어난 분쟁을 조정할 때 혹은 다른 집단의 약탈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수단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권력을 탈취하는 지도자가 출현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계급관계를 토대로 국가의 형성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최근 디 코스모는 흉노 국가의 출현을 설명하면서, 진 제국이 오르도스로 세력을 넓힘에 따라 흉노 사회에 위기 상황이 발생했고, 뒤이어 유목민의 군사화 및 중앙집권화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가 탄생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외인론과 내인론을 절충한 입장이다.
오아시스와 정주민
'오아시스'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전들은 '사막 가운데 샘이나 우물이 있어 풀과 나무가 자라는 곳'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 샘이 있고 거기에 야자수 몇 그루가 자라는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오아시스는 '건조한 사막지대에서 자연적인 강우가 아니라 지하수나 하천으로 인하여 형성된 촌락과 도시'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따라서 인구 수백만 명이 거주하는 타쉬켄트나 카쉬가르 같은 대도시도 오아시스인 셈이다.
중앙유라시아의 사막지대를 흐르는 하천은 대부분 바다로 흘러나가지 않는 내륙 하천이다. 이들은 천연 강우가 아니라 파미르, 쿤룬, 톈산, 알타이와 같은 산맥의 만년설이 녹아서 흘러내린 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아시아 현지에서는 이러한 하천을 '다리야darya'라고 부르고, 거기서 만든 큰 수로를 ‘외스탱', 작은 수로를 '아릭'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지상 수로 이외에 강렬한 태양광에 의해 물이 증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한 지하 수로인 '카레즈karez'도 있다. 서아시아에서는 이미 기원전 1000년경 혹은 그 이전부터 '카나트qanat'라 불리는 지하 수로가 나타났다. 중국의 투르판 지역에 보이는 카레즈의 출현 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 한 대에 중원의 영향으로 생긴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18세기 중후반 청 대에 생겨났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오아시스 주민들의 주된 생산 활동은 농경이었다. 밀, 옥수수, 기장, 보리 등의 농작물을 재배하고, 사과, 배, 수박, 참외, 포도와 같은 과일을 가꾸기도 했다. 동시에 목축을 하기도 했지만 염소, 양, 말 둥을 가까운 풀밭으로 데리고 가서 방목을 하고 돌아오는 형태이지 계절적 이동을 하는 유목은 아니었다. 주민들은 피혁, 야철, 금속, 목공예, 직물, 카펫, 옥 등을 다루는 수공업에도 능했다. 더구나 실크로드가 거쳐가는 지역에 위치한 도시의 주민들은 교역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여 역사적으로 카라반 국제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6~9세기 중국에서 '호상'으로 알려진 소그드 상인, 10~14 세기 위구르 상인, 18~19세기 부하라 상인 등은 모두 국제상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이러한 국제교역에 힘입어 상당한 재화를 집적할 수 있었고, 그것은 물질적 풍요와 문화적 발전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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