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샤마: 파워 오브 아트

 

파워 오브 아트 - 10점
사이먼 샤마 지음, 김진실 옮김/아트북스

한국어판 서문 예술작품의 삶과 죽음을 좇는 여행으로 초대합니다
머리말 위험한 그림들, 그 무시무시한 힘에 대하여

카라바조 교황이 사랑한 타락천사
베르니니 대리석에 온기를 불어넣은 조각가
렘브란트 ‘망가진 것’이 가진 비극적인 힘
다비드 혁명보다 잔인한 아름다움
터너 폭풍을 일으키는 그림
반 고흐 뜨끈하고 땀에 젖은, 화가의 다정한 악수
피카소 예술보다 큰, 정치보다 힘센
로스코 말 없이 그저 절절한 색채와 감정의 드라마

옮긴이의 말 예술가들의 치열한 삶과 작품, 그 숨 가쁜 드라마 끝에서
도판 카피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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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

 


머리말: 위험한 그림들, 그 무시무시한 힘에 대하여

위대한 예술은 두렵고 끔찍하다. 갤러리는 엄숙하고 조용해서 거장들의 위대한 작품들이 본래 점잖고 차분하며 편안한 그러니까 점잖은 신사인 듯한 착각을 하게 하지만 사실 그들은 흉한인 경우가 많다. 그 흉한들은 무자비하고 교묘하게 당신을 사로잡아 평정심을 흩트리며 사실적인 감각을 혼란에 빠트린다. 

하지만 이런 그림을 보자고 세찬 빗속을 뚫고 갤러리까지 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요일 오후에 당신이 갤러리를 찾았다면, 황금률로 빛은 아름다움과 평면이 입체로 변모하는 신비로움을 맛보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림을 보며 은쟁반에 놓인 딸기를 맛보고 프로방스 구릉 위의 솔잎 향을 맡거나, 술 취한 이의 트림 소릴 듣고 물결무늬 실크와 윤기 나는 수말의 옆구리를 만져볼 수 있을 듯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그런 감각적 경험들을 상상하거나 그런 환상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당신은 갤러리에서 제공하는 헤드폰을 통해 작품 설명을 들으며 그림의 색채와 디자인을 따라 몇 걸음을 옮긴 다. 그리고 어떤 작품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헤드폰의 음성을 듣고 또 다른 작품으로 이동한다. 헤드폰에서는 비싼 양복을 입은 매우 교양 있는 중년 남성을 연상케 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당신을 잘 달래어 갤러리 숍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헤드폰에서 설명하는 그림들 곁 구석진 곳에서 당신은 괴상한 그림들과 마주칠 수도 있다. 세잔의 사과 바구니는 불안정하게 탁자 위에 놓여 있고, 그 탁자는 심하게 앞으로 기울어져 그 위의 모든 것이 미끄러져 내릴 듯한데, 그 미끄러짐의 시작과 끝은 도저히 점칠 수 없다. 도대체 갤러리의 이런 구석들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쭈글쭈글한 얼굴로 무표정하게 관람자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렘브란트의 시선은 또 어떤가? 그건 '보이는 자의 바라봄'이라는 상투적이고 감상적인 유희에 불과하지만, 동시에 관람자는 그것에 사로잡혀 계속 그와 시선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당신의 시야에서 주변 사람들이 사라지고, 갤러리의 벽들이 사라지며 싸구려 최면술사의 손아귀에 쥐인 듯한 착각에 빠져들 수도 있다. 그러고는 곧 아무렇지도 않게 깨어나서 그 옆의 흥분한 듯 부풀어오른 언덕을 배경으로 복숭앗빛 나신을 드러낸 티치아노의 여인을 보고 나름의 상상을 할지도 모르겠다. 또는 어떤 의무감에 입체파 화가의 콜라주 앞에 서서 그것이 뭘 말하는지 정확히 잡아내지는 못하면서도 그것을 해석하는 데 골몰할 수도 있다. 당신이 뭔가 알아냈다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전에 뇌의 어떤 부분이 그림의 기타 연주에 맞춰 부드럽게 춤을 추기 시작하면, 그 옆의 신문 조각과 반쯤 감춰진 파이프, 모서리와 평면 들이 어느새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다양한 초점에 따라 입체적으로 운동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부지불식간에 당신은 그 재미에 푹 빠져 입체파 그림에 몰두하게 되고, 그러다가 분해된 조각들에서 하나의 형태, 하나의 생명을 발견하고 경탄을 내지르게 될 것이다. 

예술의 힘이란 결국 경탄의 힘이다. 마치 세상을 베껴낸 듯한 작품이라도 예술은 결코 익숙한 세상을 복제하여 제시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움의 구현을 넘어 예술은 익숙함을 파괴하려 한다. 물론 예술의 이미지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망막의 원리가 동원될 수밖에 없지만, 예술은 망막의 사실적인 이미지를 넘어선 극화된 이미지, 즉 제2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우리가 보고 기억하는 일몰과 해바라기는, 터너와 반 고흐가 그려낸 일몰과 해바라기와 병존하는 두 세계에 각기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둘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생생하고 어느 것이 더 진실한가를 말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작품을 대할 때 우리의 감각은 그에 맞게 재정비된다. 그리하여 재정비를 위해 전력이 들어올 때 종종 감전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이는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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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나는 그러한 투쟁이 빚어내는 긴장의 순간들, 즉 모진 긴장과 갈등 속에 탄생한 걸작의 이야기를 그려내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극적인 순간에 얽힌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이 비극적인 화가들에 대한 낭만적 환상이나 창작에 영감을 제공한 연인들에 대한 진부한 이야기, 또는 이전 화가들은 꿈도 꾸지 못했던 근대 화가들의 기벽을 들춰내는 미술사가들의 고질적인 직업병일 수도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물론 빈센트 반 고흐가 있었던 반면 침착하고 평상심을 잃지 않았던 폴 세잔이 있고, 잭슨 폴록의 반대편에 앙리 마티스가 있으며, 격정에 휘말렸던 화가들이 있는 반면 제도권 안에서 평범한 삶을 누리다 간 화가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관습에 저항하고 자신에게 신적인 능력이 있다고 믿으며 감상에 쉬 빠지는 다혈질 화가, 무식하고 허영심만 가득한 후원자와 걸핏하면 싸우고, 재주도 없으면서 적개심만 불태우는 경쟁자들과 사사건건 부딪쳤던 불행한 화가들의 이야기는 단지 19세기 낭만주의의 소산만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는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기록되던 시절부터 발견된, 실로 전형적인 창조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금세공에 조각, 자서전 집필까지 아우른 벤베누토 첼리니의 이야기나 조르조 바사리가 쓴 미켈란젤로의 이야기가 모두 그러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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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피워 오브 아트』의 모든 이야기가 첼리니와 같은 과대망상적인 자기 기만을 얘깃거리로 삼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는 카라바조에서 마크 로스코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공고한 신념이라도 바꿔놓을 수 있는 막강한 예술의 힘을 지녔다고 자부하는 화가들의 이야기이다. 또한 작가들이 작품 한 점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큰 갈등과 고통을 겪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갈등과 고통은 때로는 후원자의 주문(렘브란트)에서, 때로는 정치적 상황(다비드, 터너, 피카소)에서, 또는 자기변호의 욕구(카라바조, 베르니니)에서, 또는 예술의 사명에 대한 뚜렷한 소신(반고흐, 로스코)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이 고통의 순간들은 의뢰받은 작품을 성공적으로 완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기꺼이 화가돌이 감내했던 순간들이다. 

이 화가들에게 닥친 순간들은 모두 전례 없는 업적을 남긴 순간들로 예술사의 획을 그은 일대 사건들이었다. 렘브란트와 터너 그리고 피카소의 경우에는 역사적인 순간을 담은 작품을 남김으로써 도전의 상황에서 완벽한 해답을 제시했다. 이는 화가 자신조차 두 번 다시 반복할 수 없는 순간들이며, 범상한 작가들은 도저히 흉내도 내지 못할 일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드라마들은 미술사이기 이전에 역사이다(사실 나는 이 둘을 구별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화가들의 성공과 실패의 순간에 우리는 개인으로서, 또한 그들과 같은 인간으로서 가슴을 울리는 뭔가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구원, 자유 죽음 죄의식, 영혼 또는 물질 중 어느 것일 수도 있고 그 모든 것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작품들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서 거기에는 어떤 추악함이나 천박함도 끼어들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작품들이 단순히 미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창작된 것은 아니다. 추상화가인 로스코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적 효과를 조금도 혐오하지 않았던 피카소도 "그림은 아파트를 위한 장식물이 아니라 전쟁의 무기"라고 천명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카소가 「게르니카」 이후 제작한 작품들이 장식적인 소품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피카소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쟁의 무기'를 만드는 극적인 순간이 예술가에게 얼마나 드문 기회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그러한 극적인 순간이 펼쳐질 때 걸작은 세상에 대해, 그리고 그 세상이 우리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에 대해, 어떤 지혜로도 설명할 수 없는 진실들을 역설할 수 있다. 그리고 축구 경기 결과나 백화점 세일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미술관에 끌려온 사람들이 던지는, "그래서 대체 예술이 뭘 위한 건데?"라는 질문에 대해서, 예술은 쉽사리 반박하지 못할 위엄 있는 답변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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