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밀턴: 실낙원 1

 

실낙원 1 (무선) - 10점
존 밀턴 지음, 조신권 옮김/문학동네

시형에 관하여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
제6편

주(註)
해설 - 밀턴의 불후의 대서사시 『실낙원』
존 밀턴 연보

 


제1편

12 인간이 한처음太初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죽음에 이르는
금단의 나무 열매를 맛봄으로써
죽음과 온갖 재앙이 세상에 들어왔고
에덴까지 잃게 되었으나, 이윽고 한 위대한분이
우리를 회복시켜 복된 자리를 도로 얻게 하셨으니,
노래하라 이것을, 하늘의 뮤즈여. 호렙이나 시나이의
외진 산꼭대기에서 저 목자에게 영감을 부어주어
한처음에 하늘과 땅이 어떻게 혼돈으로부터 생겼는가를
처음으로 선민에게 가르치셨던 그대여,
혹시 시온산과 성전 바로 곁을
흐르는 실로아의 냇물이 더욱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면 그 때문에 내 청하노니,
부디 나의 모험적인 노래를 도우시라.
이는 중층천에만 머물지 않고 아오니아 산보다
더 높이 날아올라, 일찍이 산문에서도 시에서도
시도된 바 없는 그런 주제를 추구하려는 것이니.
더욱이 그대, 어떤 성전보다도 바르고 깨끗한 마음을
좋아하시는 성령이시여,
나를 가르치시라, 그대 아시나니. 그대는
한처음부터 계셨고, 그 힘센 날개를 펼쳐
비둘기처럼 대심연을 품고 앉아
이를 잉태케 하셨나니, 내 속의 어두운 것을
비추시고 낮은 것을 높여 떠받쳐주시라.
이 높고 위대한 주제에 어긋남이 없이
영원한 섭리를 역설하여,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옳음을 밝힐 수 있도록.
말하시라 먼저, 하늘도 지옥의 깊은 땅도
그대의 눈엔 무엇도 숨기지 못하나니, 말하시라 먼저,
도대체 우리의 조상은 무슨 이유로, 그 행복하고
그 깊은 하늘의 은총 입은 자리에서, 창조주를
저버리고 오직 단 한 가지 금제에 대한 그의 뜻을
어겼던가를 그러지 않았더라면 세상의 군주였을 것을.
애당초 그 흉악한 배반으로 그들을 핀 것은 누군가?
그것은 지옥의 뱀, 그놈이 교만하여
그의 모든 반역천사의 무리들과 함께
하늘에서 쫓겨났을 때, 질투와 복수심에 불타,
인류의 어머니를 속인 것이다. 그는
천사들의 도움 받아
반역하기만 하면, 동료들 이상의 영광을 얻을 수 있고,
지고하신 분과 동등해지리라고
믿고서, 대망을 품고
하나님의 보좌와 그 주권에 맞서
불경스러운 전쟁, 오만불손한 싸움을 하늘에서
헛되이 일으켰더니라.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감히 전능자에게 도전한 그를
무서운 추락과 파멸로써 쳐서 꺾고
정화천에서 불붙여 바닥없는 지옥으로
거꾸로 내던졌나니, 결국 그는 거기서
영원한 사슬에 묶여 영벌의 불길 속에 살게 되었다.
인간세계에서 말하는 낮과 밤을 아홉 번 세는 동안
그는 그 진저리나는 무리들과 함께
불못에서 됭굴며, 불사의 몸이지만
패배당해 녹초가 된 채 누워 있었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더 큰 하나님의 분노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기에, 그는
이제는 잃어버린 행복과 영원한 고통을 생각하고
괴로워한다.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비통한 눈에는
한없는 고통과 낭패의 기색이 엿보이고
완고한 교만과 굳은 중오심이 어려 있다.
그의 눈길이 닿는 한 보이는 것은
황량하고 거친 처참한 지경뿐
끔찍한 지하 감옥이라고나 할까, 크디큰 용광로처럼
사면에 불길이 솟고 있다. 그러나 이 화염에는
빛이 없고, 가까스로 보일 정도의 암광에
드러나 보이는 것은 다만 비참한 광경뿐이다.
슬픔의 지역, 비탄의 그림자, 평화와 
휴식은 없고, 사람이면 모두가 갖는
희망마저 없고, 다만 끝없는 고통과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타오르는 유황에 붙은
불 홍수에 언제까지나 휘몰리는 곳이다.
영원한 정의의 하나님이 이러한 곳을 마련했으리라,
배신의 무리를 위해 여기 하늘 밖 어둠 속에
그들의 감옥을 두시고, 그들의 몫으로 정했으리라,
하나님과 하늘의 빛에서 떨어진 그 거리가 우주의
한 극점에서 중심에 이르는 거리의 세 배 되는 이곳을
아, 그들이 떨어져 온 곳과는 너무도 다르구나!
저만큼에서는 타락한 그의 동료들이
흉포한 불길의 홍수와 선풍에 휘말려 있고,
그의 옆에는 힘으로나 죄악으로나 그에 다음가는,
아득한 후세에 팔레스타인에서 바알세불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자가 됭굴고 있는 것을 본다. 그를
향해 하늘에서 사탄이라 불렸던 자, 적장은
대담한 말투로 무서운 침묵을 깨고 이렇게 말한다.
"만일 그대가 그라면, 아, 너무나 타락했도다!
이렇게 변할 수가 있으랴! 행복한 빛의 나라에서
더할 수 없는 광휘에 싸여 찬란한 뭇별들보다도
찬란하게 빛났었는데, 만일 그대가 그라면,
한때는 서로 동맹을 맺고 생각과 뜻을 합쳐
영광스러운 대업을 위해
우리 희망과 모험을 함께 했었거늘 이젠
같은 파멸 속에 함께 불행을 나누게 되었구나.
그대는 알리라, 얼마나 높은 데서 얼마나 낮은
구렁텅이로 떨어졌는가를. 그만큼 그는 벼락으로써
그의 더 큰 위력을 보였도다. 그때까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 가공할 무기의 힘을. 그러나 그것이 두려워,
또는 그 힘센 승리자가 분노하여 달리
가할 벌 있을까 하여 후회하거나 변하지 않는다. 비록
표면의 빛은 달라졌으나, 이 굳은 마음과 자존심
짓밟히고 느끼는 그 모멸감은 변치 않았도다. 내 그것
때문에 감히 전능자와 겨뤘고, 내 그것 때문에
무수한 무장 천사군을 이끌어
치열한 싸움에 내보냈던 것이다. 
그들은 그의 통치를 싫어하고 나를 좋아해서
그 더할나위 없는 힘에 적대적인 힘으로써 항거하여,
하늘의 벌판에서 승부 나지 않는 싸움으로 
그의 보좌를 뒤흔들었던 것 그러니 패전인들 어떠랴?
패한다고 모든 것 다 잃는 것은 아니다. 불굴의 투지,
불타는 복수심, 불멸의 증오심, 
굴할 줄 모르는 항복도 모르는 그 용기, 
이 밖에 정복될 수 없는 것이 또 무엇이겠는가?
이런 영광은 그의 분노와 힘으로도 내게서
결단코 빼앗지 못하리라. 애원의 무릎 꿇고
허리 굽혀 자비를 빌며, 방금까지 이 팔이 두려워
그의 주권을 믿지 않던 자가
그의 힘을 숭배한다니, 참으로 비굴한 일이로다.
이는 이 타락보다 못한 불명예요 치욕이다.
운명적으로 우리의 힘과 영체의 본질은
쇠망되지 않는 것이니,
그리고 이 대사건의 경험을 통해
무력도 전만 못지않고 선견지명도 훨씬 나아졌으니,
이젠보다 더 확실한 희망을 갖고,
무력으로든 또는 간계로든, 우리의 대적과
화해할 수 없는 영원한 싸움을 걸 만도 하지 않는가,
지금 승전한 기쁨에 넘쳐서
독재로써 하늘의 폭정을 펴고 있는 그에게."
타락한 천사, 고통 참으며 이와 같이 
호언장담은 하지만, 깊은 절망에 애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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