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라인하르트: 하버드-C.H.베크 세계사 : 1350~1750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3. 10. 30.
하버드-C.H.베크 세계사 : 1350~1750 - 볼프강 라인하르트 지음, 이진모 외 옮김/민음사 |
한국어판을 출간하며
서문 _ 볼프강 라인하르트
1부 유라시아 대륙의 제국과 미개척지들 _ 피터 C. 퍼듀
2부 오스만 제국과 이슬람 세계 _ 수라이야 파로키
3부 남아시아와 인도양 _ 슈테판 코네르만
4부 동남아시아와 대양 _ 라인하르트 벤트, 위르겐 G. 나겔
5부 유럽과 대서양 세계 _ 볼프강 라인하르트
미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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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3 중국이든 고대 서양이든 혹은 유럽 기독교든 모든 역사 문화들은 언제나 '그들의' 세계를 역사로 서술했다. 반면에 오늘의 역사 문화들은 세계가 아닌 '민족국가'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므로, 각기 다른 민족적 '세계상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즉 시대적으로 낡고 연구사에서도 비판받는 민족 개념을 여전히 새롭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민족적 '기억의 터'를 의미하는 역사적 조형물들이 유행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사실 오래전부터 학자들 사이에는 이러한 민족적 역사 문화에 맞서 넓은 세계를 역사 서술에 포함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야 비로소 탄탄한 사실적 토대를 갖춘 넓은 세계가, 다시 말해 전 지구의 인류가 서로 폭넓은 연관성을 가지면서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통일성을 이루어 가는 넓은 세계가 형성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사는 기꺼이 '지구사global history'로 불린다. 다양한 역사를 가진 역사 속 '세계들'의 영역과 범위는 어디까지였을까? 이는 극단적으로는 선사 시대 근거지와 그 주변 환경에서부터 오늘날 전 지구를 포괄하는 세계에 이르기까지 아주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이런 배경을 살펴볼 때 과거에 인식되던 세계사는 단지 오늘날의 지구사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서술해야 적절할 듯하다. 1350년에서 1750년 사이에 인류의 통일성이 존재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당시에는 이미 통일된 인류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결정들이 내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세계로 인식하던 '구세계' 유럽은 바다 건너에 있는 그들의 서쪽 지역에서 당시로서는 고립된 채 존재해 오던 신세계를 '발견'했으며, 극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들의 세계인 서쪽 끝 유럽에서 동쪽 끝인 남아시아와 동아시아로 가는 정기적인 항로를 개척했다. 이 책에서 다룰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세계'는 아직 아무런 교류 없이 서로 분리된 채였다. 심지어 '대서양 세계'는 이 시기에야 비로소 형태를 갖추었다. 그러나 대서양의 동쪽 세계와 서쪽 세계는 서로 역동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상호작용은 계속 증가해 점차 오늘날과 같은 '하나의 세계'를 이루었다. 다시 말해 이 책에서 다루려는 다섯 세계의 역사는 전 지구적인 오늘날 세계의 '전사前史'다. 그리고 이 다섯 세계의 역사에 관한 서술은 모든 다른 역사와 마찬가지로 각각 그 지역들의 현재적(정치적 경제적) 관심사의 영향을 받게 된다. 물론 어떤 시대의 역사를 그다음에 이어진 시대의 '전사'로만 파악한다면 이는 항상 실제 역사를 절반으로 축소할 뿐이다. 지나간 세계는 그들의 독자적 원칙에 따라 독자적 정당성을 가진 채 존재했던 것이지, 그 세계가 오늘날 우리 세계의 전사가 되어야 했다는 사실은 전혀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역사가들은 오늘의 시각에서 지난 역사를 일방적으로 축소해 버리는 시각을 멈추어야 하며, 그 대신에 그들이 당시에 처했던 고유한 조건을 고려해 각각의 과거를 재구성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오늘의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그들의 역사를 마치 우리의 오늘날 역사를 향해 나아간 것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착시 현상에 사로잡히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역사는 원래부터 정해진 목표를 향해 목적론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우연한 사건이 누적되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면 더는 돌이킬 수 없는 뚜렷한 결과를 초래하는 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연한 사건들은 일직선을 형성하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부딪혀 밀치는 방식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언제든 과거로 역행하는 경우도 일어날 수 있다. 여러 제국이 건설되고, 팽창한 후에는 대부분 패배와 분열을 겪었으며, 세계적 규모로 확대되어 가던 국가 간 상호작용도 어느 시기 이후에는 이에 대한 반작용이 이어졌다. 모로코와 동아시아 사이의 12만 킬로미터를 여행한 마르코 폴로와 이븐 바투타 같은 이들의 세계 여행은 전 세계에서 위기가 쌓여 가던 14세기 후반 이후에는 더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런데도 팽창에 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당연히 유럽의 팽창을 생각하며,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오늘날 세계사의 핵심 문제인 유럽 중심주의적 편견에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이 유럽 중심주의는 여러 차원에서 중첩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화라는 명분하에 '서구 세계'를 유럽과 동일시하며, 아메리카 또는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새로운 유럽들'을 별생각 없이 역사 서술상의 유럽에 포함한다.) 첫째 우리는 이미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과거의 세계사가 단지 오늘날 하나로 된 세계의 전사라는 시각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 전사를 다음 세계로 이어지게 한 결정적인 촉진제가 유럽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며, 이러한 사실은 역사가들이 어떠한 시각을 갖는지와 무관하게 그 자체가 유럽 중심적이다. 물론 이 사실을 솔직히 밝힌 이후부터 유럽 중심주의는 자기를 스스로 비판적으로 해체하고 분석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두 번째 단계에서 이러한 '계몽된 유럽 중심주의'는 유럽의 발전이 유대 세계와 이슬람 세계에 얼마나 많이 빚졌는지, 비유럽적인 다른 문화들도 시기적으로 늦기는 하지만 근대 세계의 발전에 얼마나 많이 독자적으로 기여했는지를 밝혀낸다. 오늘날 우리는 서구식 근대화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것이 아니라 세계에는 '여러 방식의 근대들'이 존재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서 '계몽된 유럽 중심주의'는 서구의 자기도취적 역사의 관점을 떠나, 유럽이 관련된 타자들의 역사라는 관점으로 넘어가려고 함으로써 자기를 스스로 극복하고자 시도한다. 물론 '계몽된 유럽 중심주의'는 이미 '타자들'이라는 용어 자체가 비유럽 세계 전체를 우리가 아닌 그들, 즉 '타자'로 분리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유럽 중심주의적 담론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지만 말이다.
둘째 얼핏 볼 때 여전히 남아 있는 유럽 중심주의적 시각은, 우리가 다룰 시대에 아직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여러 지역의 역사를 유럽인이 아닌 그 지역민이 스스로 저술한다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는 추가적인 노력 없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관련된 지역 문화들을 오랜 세월에 걸쳐 심층으로 연구하고, 마치 토착민처럼 지역 언어에 통달한 집필자들을 얻는 데 성공했다. 사실 그런데도 셋째 자기비판이나 시각의 전환도 우리의 언어와 사고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유럽 중심주의를 완전히 벗어나게 해 주지 못한다. 다시 말해 많은 세계사적 사건은 유럽 중심주의적 시각이 아니면 달리 표현되기 어렵다. 이 문제는 이미 언급된 '타자들' 또는 '비유럽인'뿐만 아니라 '신세계'와 '발견', '서인도', '인디언', 그리고 특히 '아메리카'라는 개념에도 적용된다. 주지하듯이 '아메리카America'라는 명칭은 '신세계'를 처음으로 언어적으로 상업화한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의 이름을 영구적으로 새겨 넣은 것이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뉴질랜드 등은 유럽인이 만든 명칭인데 반해, 인도와 아시아, 아프리카 같은 옛 개념들도 본래 더 좁게 파악되었던 고대의 지리적 명칭이 유럽에서 확산되면서 굳어진 개념이다. 또한 옛 세계의 지역 이름을 신세계에서 재사용할 때 '니우(뉴)'암스테르담이나 '뉴'욕(요크)처럼 구체적으로 구분해 표현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사례도 많다. 유럽의 정치적 맥락을 언어적으로 보존한 경우도 적지 않다.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의 지명에는 빅토리아 같은 왕의 이름이나 웰링턴 같은 장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물론 훗날에 후기 식민주의 시대의 지명인 실론은 스리랑카로, 마드라스는 첸나이로 변했지만, 이런 방식으로 정치적 포장을 바꾸는 것은 사실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 밖에도 이러한 언어상의 기본 개념을 넘어, 역사학온 그 방법론뿐 아니라 핵심적인 인식 단위에서도 서구적 기원을 지닌다. 옛 식민지들이 서구 교육제도를 수용함으로써 서구 역사학의 방법론과 개념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전 세계적으로 비유럽인의 사고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탈식민화가 어느 정도 종식되고 경제적 탈식민화가 진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신적·문화적 탈식민화는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했다는 것이 포스트 식민주의 이론가들의 주장이다. 사실 어떤 유럽 또는 미국의 역사가는 최근까지만 해도 나머지 세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의 역사를 저술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비서구의 역사가는 그가 저술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연구 단위로서 유럽적 기원을 가진 근대 국민국가라는 개념을 피할 길이 없다. 근대 국민국가라는 개념의 사례는 앞서 언급했듯이 식민지 이후의 시대에조차 근대 서양식의 교육제도와 역사 서술을 통해 유럽 중심주의적 개념들이 비서구 세계에 여전히 관철되며 늘 새롭게 정당화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비서구의 역사가는 서방의 그레고리력, AD(기원전)와 BC(기원후)같이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의 탄생 전후로 구분되는 연도 표기 방식, 서구 역사의 시대구분법에 여전히 묶여 있다.
학문적 이유에서 실용주의적으로 선택한 이 책의 시기적 경계(1350~1750)도 우선은 유럽 역사 서술의 시대구분을 따르고 있다. 1350년에서 1750년까지라는 시대구분은 좁은 의미의 '옛 유럽' 개념을 사용한다. 극단적인 경우 이는 중세 전성기의 마을 형성과 도시 건설에서 산업화까지 이르는 시기를 가리킨다. 이에 대한 대안은 아마도 '근대 초기'(1500~1800)라는 시대구분이겠지만, 이 또한 1500년보다 더 오랜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럽과 대서양 세계의 장기적 발전 과정을 포괄하는 데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 물론 1350년과 1750년이라는 두 개의 연도는 대부분의 시대구분처럼 단지 편의상 안내의 기능을 지닐 뿐이며, 이 책의 여러 부에서 다소 앞뒤의 시점으로 움직여질 것이다. 그렇게 해야 이 시기 안에 다른 지역들에서도 '시대를 특징지을 만한' 성격을 가진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런 성격을 지닌 주요 사건으로 한편에는 오스만 제국의 유럽 진출, 모스크바와 몽골족의 불화 중앙아시아에서 티무르의 세력이 성장한 것, 중국에서 명 왕조가 원 왕조를 몰락시킨 것, 14세기의 동남아시아에서 아유타야 왕조가 수립된 것 등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오스만 제국의 몰락 시작, 이란 사파비 왕조의 몰락, 무굴 제국의 몰락 시작, 청조의 통치하에서 중국의 팽창이 절정에 달한 것, 18 세기의 버마에서 팽창적인 제국이 수립된 것 같은 사건들이 언급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원한다고 해도 우리는 이미 서구의 영향을 받은 자기의 언어와 시대감각을 벗어나기 어렵다. 또한 어떻게 보면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대구분이 유럽 중심주의적 기원을 갖는다는 사실에 관해 계몽할 경우, 이른바 '타자들'은 그 문제들을 소화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이를 융통성 있게 활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계몽이 유럽적 기원을 갖는다는 사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진행되는 이러한 전유 과정은 우리가 유럽 중심주의적이라는 비난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 그 좋은 예로서 영어는 영국과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기술적 헤게모니 때문에 광범위하게 사용된 덕분에 전 세계에 확산된 유럽 언어였다. 그런데 이 영어는 그동안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수많은 민족의 소유물이 되어서, 이제는 세계의 소통 수단으로서 전 인류의 소유물이라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근대 국민국가는 1350년과 1750년 사이의 유럽에조차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폭넓게 파악된 앵글로·색슨적 의미에서 국가state라는 개념이 이 책의 몇몇 부에서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 국가는 엄밀하게 말하면 크고 작은 '제국empire'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이는 전前 국가적인 정치 단위를 지칭한다. 그런데 그들이 보이는 다양성 때문에 이러한 분류 단위는 매우 혼란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문화 지리적인 다섯 개의 거대 지역으로 분류하고 배치했다. 물론 이런 우회적 명칭은 실용성 때문에 자의적으로 붙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러한 분류 방식이 현재의 연구 수준에 비추어 볼 때 특별히 설득력을 갖는다고 간주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지만, 동시에 이런 분류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될 수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고,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여기서 핵심은 이제까지 그 타당성을 인정받아 줄곧 사용되어 온 공간 질서가, 우리가 이 책에서 시도한 가상의 공간 분류에 토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구상한 다섯 개의 공간 분류는 역동적인 문화 개념을 상호 관계사적 문제의식과 연결하려는 시도다. 한편 우리는 문화라는 개념을 사실적·공간적·시간적으로 폐쇄된 단위여서 기본적으로 외부의 낯선 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단위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타 문화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한 결과로서 지속적인 변화 속에 있는 개방적인 단위로 간주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주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렇듯 문화사적·관계사적 측면에서 볼 때 이주는 역사적으로 더는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통상적인 과정으로 파악된다. 그러므로 전통적으로 '침략'이나 '외적의 지배' 등으로 혹평되었던 현상들은 (이슬람의 인도 침입이나 중국 역사에서 나타난 북방 초원 지대 부족(야만인)들의 역할뿐 아니라 무굴 제국이나 만주 왕조 같은 경우에도) 이제 새롭게 평가되어야 한다. 사실 인도나 중국조차 마치 폐쇄된 문화 단위 같은 인상을 주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모든 역동적 변화와 다양화에도 불구하고 1350년과 1750년의 사이에 중국 문화와 기독교 서양 문화, 동아프리카 스와힐리 문화 등이 당시 세계의 여러 현상을 표현하는 공통분모이자 집단 정체성의 총괄 개념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특정 원칙code 들을 결정하고 이를 따르는 경향이 있는 인간들의 행태는 이러한 상대적 통일성의 한 측면이다. 상대적 통일성의 또 다른 한 측면은 유학의 고전서나 파고다 또는 『신약성경』이나 대성당처럼 그 형체가 명확하게 인식될 수 있는 형상화된 문화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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