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알레기에리: 단테 제정론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3. 12. 18.
단테 제정론 - 단테 알레기에리 지음, 성염 옮김/경세원 |
제1권
제2권
제3권
부록
Ⅰ. 교황 보니파치우스 8세의 칙서
Ⅱ. 토마스 아퀴나스 『제후통치론』 제1권
해제
1.1 지고한 자연이 진리에 대한 사랑을 심어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일에 지대하게 마음을 쓸 것이다. 즉 자기네가 옛사람들의 수고로 부유해진 이상, 자신들도 후손을 위하여 수고함으로써 후손도 자기 덕분에 부유해질 만한 것을 남기는 일이다.
사회 문제에 관한 이론을 습득한 사람으로서 국가에 어떤 이바지를 하고자 고심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자기 본분을 멀리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 그런 사람은 마치 "시냇가에 심겨져 제때 열매 맺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며, 위험스러운 수렁 마냥 무엇이건 삼키기만 하고 삼킨 것을 되돌려주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을 스스로 숙고하는 가운데, 먼 훗날 나의 재능을 땅에 묻어두었다는 질책을 받을까 두렵기도 하여 공공의 이익에 어떤 형태로든 이바지하고 싶고, 내 나름대로 열매를 맺으며, 다른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은 진리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누군가 유클리드의 공리를 다시 한 번 입증해 보이려 한다고 해서 무슨 신통한 결실을 보겠는가? 또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바 있는 행복의 길을 다시 지적해 보이려 한다고 해서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키케로가 이미 옹호한 바 있는 노년기를 다시 옹호하려 나선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런 소득이 없을 것이다. 그처럼 피상적이고 권태로운 작업은 틀림없이 사람들을 싫증나게 만들 것이다.
그러면 인간에게 감추어진 진리들 가운데 현세 군주제에 관한 지식이야말로 지극히 유익하면서도 유용할 것이다.
1.2 먼저 현세 군주제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봄으로써 그 전형과 목적에 관하여 말하기로 한다.
현세 군주제,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제권은 단일한 주권으로서 시간 속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 위에, 혹은 시간으로 측정되는 모든 사물 안과 그 사물 위에 군림하는 주권이다.
이 주제는 특히 다음 세 가지 의문점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첫째, 군주제가 세계의 선익에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연구할 것이다. 둘째, 로마 국민은 합법적으로 군주의 직위를 획득하였는가 하는 것이요, 셋째, 군주의 권한이 하느님에게 직접 의존하는가, 아니면 다른 인물 즉 하느님의 사제나 대리지에게 의존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릇 그 자체가 원리가 아닌 모든 진리는 어떤 원리가 되는 진리에 힘입어서 드러나는 것이므로, 어떤 탐구를 할 때는 원리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무릇 모든 탐구는 그 원리에 대한 분석에로 소급하고, 그 밑에 나오는 모든 명제가 바로 그 원리에서 확실성을 얻는 법이다.
1.3 우리의 연구 대상을 분명히 밝히는 뜻에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자연이 엄지를 만든 목적은 손 전체를 만든 목적과 다를 것이고, 엄지와 손을 만든 목적은 팔 전체를 만든 목적과 다를 것이며, 그 모든 목적은 사람 전체를 만든 목적과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한 개인이 만들어진 목적 다르고, 가정 공동체가 지향하는 목적 다르며, 마을이 지향하는 목적 다르고, 한 도시가 지향하는 목적 다르고, 한 왕국이 지향하는 목적이 다르고, 따라서 영원한 하느님이 당신의 예술(곧 자연)에 의거하여 그것들 안에다 보편적으로 인류를 생성해낸 목적이 의당 다르다. 우리는 이것을 연구의 기본 원리로 삼아서 탐구할 것이다.
우선 알아야 할 것은, 하느님과 자연은 그 무엇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며, 사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떤 작용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창조한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창조자의 의도에서 본다면, 창조된 여하한 본질도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본질의 고유한 작용이 목적이 된다. 그렇다면 작용이 본질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본질이 작용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리하여 보편 인류의 어떤 고유한 작용 또는 활동이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 인간 전체가 그토록 다수를 이루면서도 하나로서 정향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한 인간도, 한 집도, 한 마을도, 한 도시도, 특정한 어떤 왕국도 그 고유한 활동을 다 성취할 수는 없다. 사실이 그렇다면 인류전체 능력이 그 종국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그 활동이 무엇인지 드러날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 가지 종에는 여타의 다수가 나누어 가진 어떤 기능도 그것들 중의 한 개체의 능력으로 종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종결되는 그것은 한 종의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단 하나의 본질이 다수 종에게 종차화 되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단순히 말하는 존재가 종결 기능이 되지 못한다. 그렇게 말한 존재는 모든 원소에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합성 존재도 종결 기능이 되지는 못하는데 그것은 광물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생명 존재도 종결 기능이 되지 못하는데 그것은 식물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각 존재도 안 되는데 동물들도 이것을 나누어 가진 까닭이다. 오직 가능 지성에 의한 지각 존재라는 점이 인간을 인간이라는 종으로 종결시킨다. 이것은 인간 이외의 어떤 존재도, 인간 위나 아래의 어떤 존재도 갖지 못한 것이다.
지성을 나누어 가지는 다른 본질이 존재하지만 그 지성은 인간이 지닌 지성처럼 가능 지성이 아니다. 그런 본질은 어떤 오성적 종 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그들의 존재는 곧 인식이요, 그들에게는 인식이 곧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존재와 인식 사이에 아무런 중단이 없으니,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영원한 존재가 아닐 것이다. 여기서 인류 능력의 종국을 이루는 것은 오성적 능력 혹은 기능임이 분명하다.
3.8 또 나는 말하기를 베드로의 후계자는, 베드로에게 위임된 직책의 필요에 따라서, 풀고 맺을 수 있을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그 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제권의 교령과 법률까지 풀고 맺을 수 있다는 결론은 따라오지 않는다. 그 일이 열쇠의 직책에 해당한다고 확증되지 않는 한 그렇게 되지 않으며, 제권의 법률과 교령을 풀고 맺는 것이 그 직책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래에서 입증하겠다.
3.9 여기서 그리스도의 의도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칼을 두 자루 사서 가지고 가거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더군다나 그 자리에 열두 사도가 있었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중이었으므로, "칼이 없는 사람은 칼을 사거라."고 하심으로써 누구나 칼을 한 자루씩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또 이 말씀을 하선 것은 제자들이 장차 받을 박해와 그들에게 닥칠 천대를 예고하시기 위함이었고 따라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은 말씀이었다. "네가 너희와 함께 있을 동안에는 너희가 대접을 받았다. 이제는 너희가 쫓겨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여태까지 너희에게 금한 것도 앞으로 소용이 될 터이니 이제는 준비해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베드로가 한 대답은 나름대로 의도를 품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의도에 맞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가 이치에 맞지 않는 대답을 할 때마다 여러 번 그를 꾸짖으신 것처럼 그 대답도 꾸중하실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에게 "그만하면 되었다."라고 그의 말에 수긍하셨다. "필요해서 한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없다면야 둘로도 충분하다."는 말씀이나 마찬가지였다.
3.16 앞 장에서는 제국의 권한이 교황의 권한에서 기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부조리 논증에 의거하여 입증하였거니와, 그렇다고 해서 제권이 직접 하느님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전혀 입증되지 않았고 단지 논리적 귀결로만 따라 나왔다. 그 귀결이란 만일 황제권이 하느님의 대리자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에게 의존하리라는 것이다.
나의 명제를 완전하게 확정하려면 황제 혹은 세계 군주가 직접 우주의 주공, 즉 하느님께 근거한다는 것을 논증적으로 입증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명제를 이해하려면 존재자 가운데 인간만 유일하게 부패하여 사멸하는 존재와 불후하는 존재 사이의 중간점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바로 이런 사유로 철학자들은 인간을 일종의 지평으로, 두 반구의 중간점으로 비유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을 양편의 본질적 부분, 즉 영혼과 육체에 의거하여 고찰한다면, 인간은 부패할 존재다. 만일 다른 한 부분, 즉 영혼에만 의거하여 고찰한다면 인간은 불후의 존재다. 그래서 철학자가 영혼을 두고 불후하다고 하여, 『영혼론』 제2권에서 "이것만이 영원한 것으로서 부패하는 것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라고 한 말은 잘 한 말이다.
만약 인간이 부패하여 사멸하는 존재와 불후하는 존재사이의 중간점에 존재한다면, 모든 중간점이 양극단의 자연본성과 연관된 이상, 인간 역시 양편 자연본성에 다 참여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 온갖 자연본성이 어떤 최종 목적에로 정향되어 있는 이상, 인간의 이중 목적이 존재한다는 결론이 따른다. 인간은 존재자 가운데서 유일하게 불후성과 사멸성에 다 관여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존재자 가운데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두 가지 최종 목적으로 정향되어 있다는 결론이 따른다. 한 가지는 사멸하는 자로서의 목적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불후의 존재로서의 목적이다.
저 형언할 수 없는 섭리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것으로 두 목적을 인간에게 부과하였다. 다시 말해서, 현세 생활의 행복, 인간에게 고유한 덕성을 실천하는데서 성립하고 지상낙원으로 표상되는 행복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영원한 생명의 행복인데 이 행복은 신적 직관의 향유로 성립하며 신적 조명이 돕지 않으면 자기 덕만으로는 그 경지에 오르지 못할 뿐더러, 천상 낙원을 통해서 표상되고 이해하도록 되어 있다.
I. 교황 보니파치우스 8세의 칙서
(Bonifacius VIII, Unam sanctam [1302.11.18])
1. 하나요, 거룩한(Unam sanctam) 교회, 공번되고 또한 사도적인 교회를 우리는 절절한 믿음으로 신앙하고 견지하지 않을 수 없으며 본인도 이러한 교회를 굳게 믿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교회 밖에는 구원도 없고 죄의 사함도 없을 뿐더러, 『아가』에서 신랑이 "나의 비둘기, 나의 티 없는 여인은 오직 하나, 그 어머니의 오직 하나뿐인 딸, 그 생모가 아끼는 딸"(아가 6, 9)이라고 외치듯이, 이 여인은 단일한 신비체를 표상하며, 그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느님이시다. 교회 안에는 주님이 하나요, 믿음이 하나요 세례도 하나이다. 대홍수 시대에 하나인 교회를 예형하는 노아의 방주가 하나였고, 방주는 한 사람 즉 노아만을 키잡이요, 선장으로 모셨으며, 그리고 우리가 읽기로는 방주 밖에서는 모든 산 것들이 멸망하였다.
3. 사도들이 "여기 칼이 두 자루 있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여기라는 것은) 교회 안을 말하며, 사도들이 하는 말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너무 많다고 대답하시지 않고 그만하면 되었다고 하시었다. 현세적 검이 베드로의 권한에 속함을 부정하는 자들은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마태오 복음서 26, 52)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들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두 검, 즉 영적인 검과 현세적인 검 둘 다 교회의 권한에 속한다. 그러나 후자는 교회를 위하여 행사되고 전자는 교회에 의해서 행사되어야 한다. 전자는 사제의 검이요, 후자는 비록 국왕들과 군인들의 손에 있지만 사제의 묵인과 용인 속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검이 검밑에 놓여야 하고 현세적 권한은 영적인 권한에 종속되어야 한다. 사도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지 않는 권위란 있을 수 없고, 현재의 권위들도 하느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로마 13, 1)라고 말할 때에, 낮은 자가 어떤 자를 통해서 가장 높은 자 밑에 귀속되듯이, 검이 검 밑에 놓이지 않으면 배열이 되지 않은 셈이다.
6. 따라서 누구든지 하느님에 의해서 설정된 이 권한에 "맞서는 자는 하느님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다."'(로마 13, 2). 그가 마니처럼 두 개의 원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에 맞서지 못할 것이니), 우리는 모세의 증언대로 태초들에가 아니라 태초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만드셨다고 알기 때문에, 이 주장을 거짓이요, 이단으로 판단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 제도는 로마 교황에게 종속되어야 함을 선언하고 고지하며 구원에 필요한 (교리로) 정의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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