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변증법(2) / 특강 철학·인문학

 

2024.01.25 🎤 변증법(2) / 특강 철학·인문학

[1강: 1.24(수)변증법(dialectic)이란 무엇인가?]

일시: 2024. 1. 24. 19시 30분-21시 30분
장소: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602
강의 자료: https://www.buymeacoffee.com/booklistalk/dofimagibe

 


두 번째 "❧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론⟫"에 나온 것을 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론에 나온 이 얘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대화를 하거나 또는 어떤 사유 실험을 하거나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 있는 내용들이 가장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학문의 방법에 해당한다. "개연적 전제들을 바탕으로 제시된 문제를 논증"하고 "자신의 생각을 검토할 때 자기 모순에 빠지지 않는 방법", "개연적 전제들에서 출발하므로 학문이 갖는 최상의 가치를 가지지 못하지만", 개연적이라고 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의 반대말이니까 언제든지 틀릴 가능성이 있는 것을 말한다. 아까 설명했던 것처럼 우연한 것들에 의해서 좌우될 수 있는 것. 그러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론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어떤 학문 영역에서 적당한가, 역사적 학문들에 적당하겠다. 그러니까 역사책을 읽으면 끝이 없다. 해결이 안 나는 것. 그렇지만 그런 것들을 계속 읽음으로써 우리는 "지적 훈련에 유용하며, 논증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다음 "❧ 플라톤". 플라톤에서 변증법이라고 하는 단어가 사용되는 경우는 굉장히 많다. 지금 여기에 제가 몇몇 사례들만 가져다가 얘기를 해놓았는데 일단 플라톤에서는 건설적이고 공조적인, 서로 돕는 대화를 변증술이라 그러고 소피스트들처럼 그냥 말을 다투기 경쟁 그다음에 논박을 위한 논박, 반대를 위한 반대 이런 것만 하는 것을 쟁논술이라고 한다. 그래서 플라톤의 텍스트에서 "대화적으로(dialektikōteron)"라고 하는 말이 나오면 서로 건설적이고 공조적인 뭔가를 해보자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친숙한 것에서 알려진 것으로, 알려진 것에서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라고 되어 있는데 친숙하다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알려진 것"은 학문적인 것 그런 얘기인데, 학문적인 것이 참다운 앎이다. 그다음에 "알려지지 않은 건"은 몰랐던 것이라는 말이다. 자신이 잘 몰랐던 것, 그러니까 진리 탐구의 과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플라톤에서 변증술이라고 하면 일단 대화, 건설적이고 공조적인 대화를 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모르는 것에서 또는 지나치게 익숙한 것에서 진정으로 진정한 앎으로 가는 과정 이걸 가리킬 수도 있다. 《크라튈로스》편에서 보면 "이름을 정하는 자의 일을 판정하는 법, 단어형태를 부여하는 자"라고 되어 있다. 《크라튈로스》라고 하는 대학편 자체가 우리가 말하는 어떤 명칭, 이름 이런 것들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언어의 기원 이런 것들을 따져 묻는 대화편이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언어의 기원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즉 우리가 올바름이라고 하는 것, 올바름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봤을 때 여기에 있는 사람 모두 다 '올바름이란 이런 것이지'라고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일종의 definition이 있다. 그게 전혀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경우 단어의 뜻이 공유되지 않기 때문에 대화할 수가 없다. 《크라튈로스》 편에서 이름을 정한다 라고 하는 게 바로 그것을 가리킨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가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 어떤 특정한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가운데서 그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르러야 우리는 그 공동체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이번 특강의 다음 시간이 정치인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올바름의 기준을 정하고 올바름의 내용을 합의하는 과정을 정치라고 하는 것이다. 

그다음에 《에우튀데모스》에서는 "기하학자들과 천문학자들과 산술가들, 이들도 사냥꾼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찾은 것들을 dialektikoi가 사용하도록 그들에게 넘겨준다." 여기서 dialektikoi는 변증법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면 기하학자들과 천문학자들과 산술가들, 이 사람들은 오늘날의 학문 분류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현상을 수집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이해하면 된다. 그런 현상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사냥꾼이다. 사냥꾼이라는 은유가 어떤 표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상을 수집해서 그 사람들이 시스템을 만들려고 변증법 연구자에게 넘겨준다는 말이다. 그다음 《파르메니데스》 편에 보면 변증술 훈련 5년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이 변증 철학적 정치관은 변증술 훈련을 5년 해야 된다고 얘기를 하는데 이 내용이 뭐냐 하면 "하나와 여럿, 운동과 정지, 생성과 소멸, 존재와 비존재 등을 배우는 ‘젊은’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이다. 하나와 여럿, 운동과 정지, 생성과 소멸, 존재와 비존재는 서로 모순되는 것들이다. 동시에 있을 수 없는 것들이다. 서로 자신의 입론을 정확하게 세우는 것이 대화의 출발점이다. 대화를 잘하는 사람들은 규정적인 사람들이라고 말을 하는데, 규정적으로 말을 한다는 것은 define으로 하는 것이다. 특정한 국면에서 상세하게 규정을 해야 그 규정에 대한 대립 논리를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다. definitive하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 사람 전체가 100명이면 적어도 30명 정도는 definitive하게 말을 해야 한다. 그래야 문명이 유지가 된다. 그것이 안 되면 일본처럼 되는 것이다.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속마음과 겉으로 드러난 것이 차이가 나면 영원히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일본의 언어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 책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사전은 잘 만드는데 독창적인 이론이 없다. 

"각각의 사물에 대해 일정한 형상(eidos)을 구별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는 자신의 사유가 향할 곳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네." 형상을 구별한다는 것이 바로 상세하게 규정한다는 것이다. 형상이라고 하는 건 본이다. 어느 종류에 속하는지를 분명하게 하는 것을 형상을 구별한다는 것이다. 변증법이라고 하는 건 머릿속에서 사유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재조직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유를 하는 방법과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을 가져다가 재정리를 하면 인간관계가 바뀐다. 그다음에 "‘나눔’(dihairesis)과 ‘함께 봄’(synopsis)"이 중요하다.  다른 얘기는 다 잊어버려도 플라톤에서 dihairesis와 synopsis가 변증법이다라는 것은 기억해야 한다. 나눌 줄도 알아야 되고 함께 볼 줄도 알아야 된다. 나눔과 함께 봄을 동시에 하는 것 이것이 플라톤에선 변증법이다. "각 사물을 규정(horizomenos)함으로써 무엇에 대해 알고자 하는지를 분명하게 하도록, 여러 방식으로 흩어져 있는 사물들을 한 형상으로 데려갈 줄 알아야 한다." 규정한다는 것은 나누는 것이고 이렇게 흩어져 있는 사물들을 한 형상으로 데려간다는 것은 모은다는 것이다. 이건 《정치가》 편에 많이 나오는 건데 나눔과 모음 이 두 가지를 할 줄 안다는 것을 말한다. 


"❧ 헤겔", 헤겔은 무지하게 어려운데 쉽게 얘기하겠다. 우리가 뭔가 추상적인 얘기가 있다, 구체적인 얘기가 있다 이렇게 말하는데, 이 추상이라는 단어와 구체라고 하는 단어가 헤겔에서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구체라는 것부터 얘기하면 이질적인 것이 함께 있는 것을 헤겔은 구체적이다 라고 말한다. 약간 억지로 비유를 해서 예를 들어 말해보면 H2O는 수소와 산소가 있으니까 구체적인 물건이다.  O만이 있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추상화한다 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물에서 본질적인 것을 비본질적인 것에서 떼어내는 것을 추상화한다 라고 얘기한다. this man이라고 하는 말이 있으면 그건 추상적인 말이다. 그런데 concept of man, 인간이라고 하는 개념에는 우리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굉장히 많다. 생물학적인 것도 떠오르고 인간에 대해서는 온갖 게 덧붙여져 있다. 그런 것들을 헤겔은 구체라고 말한다. 해결 변증법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데, 이 사람이 기존에 사용하고 있던 개념들을 조금 그 말의 개념 정의를 달리해서 써서 어려운 느낌이 있다. 오늘은 즉자존재Ansichsein와 대타존재Sein-für-Anderes에 대해서만 설명을 하겠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정반합을 변증법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을 A라고 해보자. 그런데 내가 그것이 아니Not A라고 말했다.  Not A라고 하는 것은 A가 아닌 것이니까 우리가 이것을 타자라고 한다. 알고 있는 것에 반대되는 것 또는 알고 있는 것과 어긋나는 것이어서 타자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어떠한 타자도 만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오지 않는다. 진리도 아닌데 진리라고 붙들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것이 진리가 아니고 Not A가 진리야 라고 말했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거짓이 깨뜨려진다. 순수한 상태가 깨지면서 이질적인 것이 들어오게 되는데, 순수한 상태라고 하는 것은 자기 안에 빠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비진리성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다 자기 안에 있다. 그래서 이것을 즉자적 존재Ansichsein, 관계 속에 있지 않은 존재, 관계맥락의 외부에 있는 존재라고 한다. 그러면 이 상황을 겪은 사람은 지금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는 참으로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점검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니까 즉자적 상태에 있는 사람이, 즉 A가 진리라고 여기고 있는 사람이 Not A를 만났을 때 자기의 A의 비진리성이 폭로된다. 그러면 절망을 하게 된다. 옳음을 자기가 실천하지 못했을 때 절망스러운 것이고 인간에 대한 회의가 생겨나게 된다. 절망과 의심, 변증법의 논의를 헤겔에서 얘기할 때는 항상 개인의 실존 차원에서까지 건드려 준다. 그리고 이것을 역사적인 사회적인 공동체 속에서 생각을 해보면 굉장히 거대한 사회적 절망들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지적 부조화 상태에 빠져들면 합리화를 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깨뜨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동안 변증법에 대해서 이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제 헛된 것을 진리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지면 A와 Not A가 공존하고 있는 상태가 된다. 즉 모순의 공존 상태가 된다.  첫 번째 순수한 상태인데 타자를 만났고 대타 존재의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A와 Not A가 동시에 있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이런 상황을 우리는 모순의 공존이라고 한다. 이 상태에서 정신력이 약한 사람은 그냥 옛날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뭔가 권위 있어 보이는 사람이 Not A를 말할 때 그걸 받아들이기는 한다. 옛날로 돌아가든 Not A를 받아들이든 정신 상태는 무기력한 것임은 틀림없다. 왜냐하면 모순의 공존을 못 참는 것이다.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고, 서로 대립되는 대답이 진리 값을 주장하면서 내 머릿속에서 다투고 있는 상황을 못 견디는 것이다. 못 견디면 남에게 판단을 의뢰한다. 하청 준다고 할 수 있다. 이성은 모순을 견디는 힘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편견을 갖고 있다. 언제든지 검증되어야 되는 그 편견에 그냥 눌러앉아서 그대로 지키고 살아도 되는 기득권자가 되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성이 계속 살아있다는 건 반대의 증거를 계속 받아들일 수 있고 타자에 직면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평생 동안 그렇게 하려면 계속 공부를 해야 된다. 

변증법이라고 하는 것은 끝없이 학습을 계속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자존재가 범주화의 운동으로 들어가면 헤겔은 이것을 범주화의 운동이라고 부르는데 관계, 구별, 매개라고 하는 말을 쓸 수 있다. 어떤 낯선 것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면 대타존재가 되고 대타존재는 다른 존재에 대해있는 존재, 관계긍정적 개념이다. 즉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수정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존재가 대타존재이다. 오늘 변증법 공부를 하는 것에서 여러분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되는 것은 이성은 모순을 견디는 힘이라는 말이다. 모순을 견딘다고 하는 것은 대타존재가 되는 것을 말한다. 대타존재가 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앎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의미한다. 거기까지 생각을 해야 된다. 그게 안 되면 이성이 쇠퇴한 것이다. 


그 다음에 "❧ 마르크스". 마르크스의 책을 봐도 변증법적 유물론 이런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책에서 변증법이라고 하는 얘기가 나오면 헤겔과 같은 의미에서의 변증법이라기보다는 그냥 현재에 놓여 있는 기득권 또는 기성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필요한 반대 명제들과 뜻으로 이해를 하면 된다. 엄밀한 논리적인 어떤 정식이 있는 게 아니다. 마르크스는 변증법에 대해서 굉장히 진지하게 연구하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다. 엥겔스가 오히려 연구를 많이 했는데 마르크스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실용적인 지식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자기가 좀 유식해졌으면 하는 생각이 있지만 마르크스는 엄청 철학적으로 유식한 사람은 아니다. 그 사람의 인생 자체가 그런 것을 착실하게 연마할 수 있을 만한 그런 시간이 별로 없던 사람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열정이 너무 강해서 그 열정을 공부로까지 전개시키는 데 좀 어려운 점이 있었다. 여기에 마르크스 얘기를 끼워넣은 이유는 마르크스라든가 마르크스주의자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책에서 변증법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그냥 못마땅하니까 들어엎자를 세 글자로 말한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르크스 관련된 책에서 변증법 얘기가 나오면 '열받네' 비슷한 말이라고 보면 된다. "유물론적 역사파악에 대한 《도이치 이데올로기》의 설명"은 《도이치 이데올로기》라 하는 책 자체가 마르크스가 파악한 인류 역사를 경제의 측면에서보니까 이러더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직접적인 물질적 생산에서 출발하여, 현실적인 생산과정을 전개하고, 이러한 생산양식과 연관되고 그것으로부터 산출된 교환형태... 시민사회를 전체 역사의 기초로서 파악하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물질적 생산이 강조된다는 것이고, 이것이 학문의 영역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다음에 "그것으로부터 산출된 교환 형태", 교환 형태라는 것은 생산관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써 이루어진 "시민사회"는 인간의 삶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의식, 종교, 철학, 도덕 등의 다양한 이론적 산물과 형식들이 어떻게 시민사회로부터 생겨났는지를 해명한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보는 방법이다. 이게 이른바 유물론적 역사 파악 또는 유물론적 사회 분석의 기본 원리이다.  

강의자료에 5개의 항목이 있다.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쓴 책이나 변증법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일단 그들은 "서부 유럽에서 자본주의를 발생사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제시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인과적으로 확실한 ‘부정’들을 파악할 수 있는 조작적 지침이 없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항상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한다. 그런데 세상사를 우리가 들여다보면 변화의 과정에 있는 대립되는 항목이 2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개가 동시에 작동할 수도 있다. 그다음에 공산주의 사회라고 하는 것이 막연히 좋은 것인데 그 사회가 실현되지 않으면 어떤 사회가 되는지에 대해서 대립적으로 확실하게 얘기를 않는다. 그리고 과학적 이론은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이론이어야 되는데 자기네가 과학이론이라고 말하면서도 검증가능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마디로 말해서 마르크스주의에서의 변증법이라고 하는 건 부정의 불명확성을 제기할 수 있다.  

변증법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오늘 이런저런 얘기를 자잘하게 했는데, 부정negation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 무엇을 반대한다, 우리는 부정이라는 말에 대해서 굉장히 안 좋게 생각한다. 그런데 진지하게 부정을 학문적으로 이야기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조금씩 조금씩 수정해 나가고, 시행착오trial and error를 통해서 이렇게 고쳐 나갈 수 있는 것이 이성적이고 이상적인 대화 국면이다. 다시 말해서 긍정적affirmative이고 적극적positive 인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negative한 것도 많다. 자기 개선이 일어날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이다. 변증법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의 논리이기도 하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제를 부정해서 오늘을 refresh 시켜서 또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실존적 개선의, 역동성의 논리이기도 하다. 옛날보다 유식해진 것의 증거는 궁금한 게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변증법이라는 게 어려운 학문적인 논리로 들어가면 끝이 없다. 끝이 없는데 이것이 모순을 견디는 힘을 갖춘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변증법에 의해서 오늘 강의는 거기까지 하고 다음번에는 정치에 대해서 2월달에 진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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