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역사주의의 빈곤(5) ─ 서언, 서론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4
- 2024. 2. 2.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역사주의의 빈곤》을 듣고 정리한다.
2024.02.01 📖 역사주의의 빈곤(5) ─ 서언, 서론
📖 역사주의의 빈곤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1902-1994), ⟪역사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 1969)
❧ 서언
- 역사주의에 대한 논박
- 인간의 역사 과정은 인간의 지식의 성장에 영향을 입는다.
- 우리는 합리적 또는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우리의 과학적 지식이 미래에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를 예측할 수가 없다.
-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역사의 미래 과정을 예측할 수가 없다.
- 이것은 우리가 이론역사학(theoretical history)의 가능, 다시 말하면 이론물리학(theoretical physics)에 대응하는 역사적 사회과학의 가능을 부인해야만 함을 의미한다. 역사적 예측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역사의 발전에 관한 과학적 이론이란 있을 수 없다.
- 그러므로 역사주의적 방법들(이 책 11절에서 16절까지 참조)의 기본적 목표는 오해에 기인한 것이요, 역사주의는 와해한다.
- 어떠한 과학적 예측자도 과학적 방법에 의하여 그 자신의 미래의 성과를 예측할 수는 없다.
- 이러한 논증은 예측자들의 ‘사회’를 포함한 어떠한 복잡한 과학적 예측자들에게도 적용된다.
“本書를 論評한 가장 총명한 몇몇 분은 本書의 標題에 어리둥절하였다. 이 標題는 ⟪哲學의 貧困⟫(The Poverty of Philosophy)이라는 마르크스의 著書의 標題를 암시할 속셈이었으며, 또한 마르크스의 著書는 쁘루우동(Proudhon)의 ⟪貧困의 哲學⟫(Philosophy of Poverty)을 引喩하는 것이었다.”(1959년 7월, 버킹검州 펜에서 K. R. P.)
❧ 서론
- 사회과학의 방법론 정립
- 자연주의적(pro-naturalistic) 학파. 사회과학에 대한 물리학의 방법 적용을 지지
- 반자연주의적(anti-naturalistic) 학파. 사회과학에 대한 물리학의 방법 적용을 반대
- 어떤 태도를 지지하는가는 연구자가 고려하고 있는 (사회)과학의 성격과 그 주제의 성격에 관한 견해에 달려있으나, 더욱 중요하게는 물리학의 방법에 관한 견해에 달려있다.
- 방법론적 논의에 있어서 결정적인 과오는 물리학의 이론의 논리적 형식, 이론을 검증하는 방법, 관찰과 실험의 논리적 기능에 관한 그릇된 해석 등과 같은 방법 일반에 관한 오해에서 비롯한다.
- 역사주의
- “역사적 예측(historical prediction)이 사회과학의 주요한 목적이라고 생각하고, 또 이러한 목적은 역사의 진전의 밑바닥에 있는 ‘율동’이나 ‘유형’, ‘법칙’이나 ‘추세’를 발견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고 상정하는 사회과학에의 하나의 접근법”
- 경제이론 이외의 이론적 사회과학이 불만족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은 역사주의에 기본적인 책임이 있다.
지난주에 《역사주의의 빈곤》 역자 해설을 정리를 해서 읽었다.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보면 《역사주의의 빈곤》은 전후(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온 사회과학 방법론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저서 중의 하나다. 그리고 이 책을 쓴 칼포퍼는 《탐구의 논리》를 2차 세계대전 전인 1934년에 출간했다. Wien 대학에서 철학과 물리학과 심리학을 전공했고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과학철학자이다. 영국으로 초빙되어서 강의를 했었고,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니까 1937년에 뉴질랜드로 망명을 했다. 이 사람은 과학철학자 중에서는 아주 보기 드물게 사회과학에 관심을 갖고 또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져서 사회운동의 배경이 되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인가를 탐구해 본 결과 그것이 역사주의라고 하는 것으로 규정을 하고, 그 사회학이 이론적 역사학으로서 성립하는, 이제 밑바탕에 놓여 있는 하나의 법칙을 규명해냈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고, 이를테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과학적 사회주의 이런 걸 주장하니까, 그것이 과연 과학인가, 과학적 언명이 아니다. 역사주의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 법칙이라고 하는 것을 생물학에 있어서나 사회에 있어서나 성립시킬 수 없다는 얘기이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추세 또는 경향 이런 것만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고, 어떤 추세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존재언명이지만 그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그것이 반드시 작용한다라고 하는 보편적 언명으로서의 법칙을 이야기하게 되면 그것은 언명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비존재언명이라고 얘기를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런 비판을 사회과학 일반에 대해서 적용하는 것을 사회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점진적 사회공학piece-meal social technology을 주장을 했다. 점진적 사회공학이라고 하는 것은, 이를테면 에드워드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 거기에서 퍼포를 가리켜서 "현 정부의 정책을 집행할 권한이 있고, 또 그 정책을 더욱 잘 시행하기 위한 개선안을 제안할 권한도 있으나, 그 정책의 기본적 전제나 궁극적 목적을 문제삼을 수 있는 권한은 없는 영국의 관리의 지위와 같다"고 얘기했다. 사실 그것 때문에 포퍼는 기존 체제를 옹호하고 있는 보수주의자라고 하는 비난을 많이 받았다. 예전에 포퍼를 한참 비난하는 입장에 서서 제가 공부를 하고 그럴 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포퍼가 생각한 건 전체주의적totalitarianism이다. 전체주의적인 통제라고 하는 게 정신의 평등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고 그것에 대해서 당대의 사회에서 아주 명백하게 비판하기 위해서 그것을 얘기했다 라고 우리는 봐야 되지 않나 한다.
오늘은 포퍼의 본문으로 들어가서 서언과 서론을 읽는다. 역자해설에서 이미 나온 얘기가 서언과 서론에 다 있다. 그래도 서언과 서론을 간략하게라도 정리를 해보겠다. 서언에서 얘기하기를 "역사주의에 대한 논박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라고 얘기를 한다. 그러면서 역사주의가 가지고 있는 그 테제를 5개로 정리한다. 첫째 인간의 역사 과정은 인간의 지식의 성장에 영향을 입는다. 지식이 성장 안 하면 어떻게 하는가. 성장하지 않는 때도 있다. 어떤 시대에나 세월이 가면 다 발전할 거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도 그렇다. 인간의 역사를 얘기할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을 한번 돌이키면 나이 들어서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계속해서 지혜로워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한에서만 그렇다. 인간의 역사 과정은 인간 지식의 성장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지만 앞날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아무리 합리적이고 또는 과학적인 그런 방법이라 해도 우리의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이걸 예측할 수가 없다. 이건 지극히 상식적인데 앞날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과학적 합리적 방법을 사용한다 해도 역사의 미래 과정을 예측할 수가 없다. 1번, 2번, 3번을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의 지식은 성장할 수도 있고 성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에 따라 인간 집단이 살아가고 있는 역사적 미래도 역사의 미래도 예측할 수가 없다. 미래도 쇠퇴할 수 있고 쇠퇴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진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비존재언명인 '법칙'으로서 설정할 수는 없다. 이것이 기본 대전제이다. 그러니까 대개 정언적 3단 논법 그런 얘기를 하는데, 포퍼가 여기에 5개를 얘기를 해놓은 것은 셋으로 묶어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번 우리 인간의 지식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론역사학theoretical history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래가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더라는 것이다. 그것의 근거가 뭔지 보니까 이론물리학theoretical physics에서 보면 이러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역사도 그 방법을 가져다가, 여기서 4번이 핵심이다, 이론역사학의 가능성 다시 말해서 이론물리학에 대응하는 역사적 사회과학의 가능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앞서 말한 세 가지 전제에 의해서 부인된다는 말이다. 즉 역사적 예측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역사의 발전에 관한 과학적 이론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포퍼의 세 번째 얘기이다. 세 덩어리로 묶었을 때는 이것이 두 번째가 된다. 이론역사학과 이론물리학이 있는데 이론역사학은 이론물리학으로부터 빌려와서 앞날을 예측할 수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그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앞선 전제들에 의해서 부인되니까 그렇다. 그러므로 결론, 역사주의적 방법들의 기본적 목표는 오해이고 그에 따라 역사주의는 와해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서언에 사실 포퍼가 주장하고 싶은 내용이 다 들어있는 셈이다. 어떠한 과학적 예측자도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그 자신의 미래의 성과를 예측할 수는 없다. 너무나 당연한 건데 진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그 당시에 굉장히 열심히 주장을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참 안타까운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언이 두 개가 있는데, 첫 번째가 1957년 7월 버킹검주에서 썼는데, 1959년 7월에 판을 하나 더 찍었었다. 그때는 책의 출간 경위에 대해서 살짝 더 붙여놓은 것이 있는데, 이제 번역 해놓은 것을 그대로 옮겨놓으면 "本書를 論評한 가장 총명한 몇몇 분은 本書의 標題에 어리둥절하였다. 이 標題는 ⟪哲學의 貧困⟫(The Poverty of Philosophy)이라는 마르크스의 著書의 標題를 암시할 속셈이었으며, 또한 마르크스의 著書는 쁘루우동(Proudhon)의 ⟪貧困의 哲學⟫(Philosophy of Poverty)을 引喩하는 것이었다."
서언 5 『역사주의의 빈곤』에 있어서 나는 역사주의가 반약한 방법━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나는 역사주의를 참으로 논박하지는 못하였다. 그 후로 나는 역사주의를 논파하는데 성공하였다 : 나는 엄밀한 이론적 이유로 우리가 역사의 미래의 과정을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함을 밝힌 것이다
서언 5 그 논증은 195년에 공간한 논문 ‘고전물리학과 양자물리학에 있어서의 비결정론'(Indeterminism in Classical Physics and Quantum Physics) 속에 들어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이 논문에는 만족하지 않고 있다. 더 만족스러운 논의는 졸저 『과학적발견의 논리』(Logic of Scientific Discovery)의 『보유: 20년이 지난 뒤에』(Postscript : After Twenty Years)의 일부인 비결정론에 관한 한 장 가운데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서언 5 나는 이 자리에서 이러한 역사주의의의 논박의 개요를 간단히 언급해 두고자 한다· 그 논의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의 언명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1) 인간의 역사 과정은 인간의 지식의 성장에 영향을 입는다.
(2) 우리는 합리적 또는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우리의 과학적 지식이 미래에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를 예측할 수가 없다.
(3)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역사의 미래 과정을 예측할 수가 없다.
(4) 이것은 우리가 이론역사학(theoretical history)의 가능, 다시 말하면 이론물리학(theoretical physics)에 대응하는 역사적 사회과학의 가능을 부인해야만 함을 의미한다. 역사적 예측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역사의 발전에 관한 과학적 이론이란 있을 수 없다.
(5) 그러므로 역사주의적 방법들(이 책 11절에서 16절까지 참조)의 기본적 목표는 오해에 기인한 것이요, 역사주의는 와해한다.
서언 6 이 논증에 있어서의 결정적인 단계는 언명(2)이다. 이 언명은 그 자체로서 수긍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 즉 만일 인간의 지식이 성장해가는 것이라면, 우리는 내일에 가서야 알게 될 일을 오늘 미리 예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건전한 추리라고 생각되지만, 그러나 이것이 곧 언명(2)의 논리적 증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2)의 증명을 나는 상술한 저작들 가운데에서 해놓았거니와, 이것은 복잡한 것이지만, 그러나 더 간단한 증명이 발견될 수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증명은 어떠한 과학적 예측자도―인간인 과학자이든 또는 계산기계이든―과학적 방법에 의하여 그 자신의 미래의 성과를 예측할 수는 도저히 없다고 함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한 예측을 하려는 시도는 일이 일어난 연후에야 비로소 그 성과를 올릴 수 있는데, 그 때에는 예측을 하기에는 너무나 늦는 것이다. 즉 예측이 회고에로 바뀌고 난 뒤에야, 그러한 시도는 그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서론은 앞에 나온 서언을 되풀이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사회과학의 방법론을, 이론물리학에 대응하는 역사적 사회과학이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이론역사학인데 그런 것들이 다 사회과학의 방법론의 논쟁에 해당한다. 그러면 사회과학에 대해서 물리학의 방법을 적용하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자연주의적(pro-naturalistic) 학파라고 하고, 사회과학에 대한 물리학의 방법을 적용을 반대하는 입장을 반자연주의적(anti-naturalistic) 학파라고 한다. 그런데 물리학의 방법을 적용하거나 적용하지 않거나 하는 것은 패가 갈리는 것 같은데 근본적으로는 이들이 자연주의적 학파가 되었건 반자연주의적 학파가 되었건 물리학의 방법론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 것에 대한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물리학의 방법론에 대해서 물리학 방법론은 이러이러한 것이다 라고 판단을 하고 그것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거나 간에, 물리학 방법론에 대한 견해가 서로 대립되는 입장이라 해도, 물리학의 방법론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에 대해서 자연주의적 학파가 되었건 반자연주의적 학파가 되었건 동의한다면 그들의 입장은 크게 사실 차이가 없는 것이다. 물론 적용해도 된다 와 하면 안 된다라는 차이가 있기는 해도 포퍼가 여기서 주로 집중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물리학의 방법에 관한 견해에 더 집중적으로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그들이 사회과학에 대한 물리학 방법의 적용을 지지하건 지지하지 않건 간에, 그들은 근본적으로 물리학 이론의 논리적 형식, 이론을 검증하는 방법, 그리고 관찰과 실험의 논리적 기능에 관한 해석 이런 것들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다고 본다. 이 점을 좀 잘 봐야 될 필요가 있다. 그다음에 서론에서 역사주의란 무엇인가를 아주 근본적으로 규정을 해놓고 있는데, 역사적 예측historical prediction이 사회과학의 주요한 목적이라고 생각하고, 또 이러한 목적은 역사의 진전의 밑바닥에 있는 율동이나 유형, 법칙이나 추세를 발견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고 상정하는 하나의 사회과학적 접근법이 역사주의라고 말한다. 역사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 부분을 꼭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역자해설에서도 나왔듯이 경제 이론을 제외하고 다른 사회과학은 이 역사주의적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난다는 것이 포퍼가 서론에서 보고 있는 바이다.
서론 12 이 의문은,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과학들의 방법에 관심을 가진 사상의 학파들이란 단순하게 분류된다는 사실을 종사해 준다. 물리학의 방법의 적용가능성에 관한 그들의 견해에 따른다면, 우리는 이 학파들을 자연주의적(pro-naturalistic) 학파와 반자연주의적(anti naturalistic) 학파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회과학에 대한 물리학의 방법들의 적용을 지지하면, 그 학파는 ‘자연주의적' 또는 ‘긍정적'이라고 부르고, 이러한 방법들의 사용을 반대하면, 그 학파는 ‘반자연주의적' 또는 ‘부정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서론 12 한 방법의 연구가가 반자연주의적 이설을 지지하느냐 자연주의적 이설을 지지하느냐, 또는 양리설을 결합한 이론을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대체로 그가 고려하고 있는 과학의 성격과 그 과학의 주제의 성격에 관한 그의 견해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취하는 태도는 물리학의 방법에 관한 그의 견해에 따라서도 좌우될 것이다. 나는 후자의 점이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대부분의 방법론적론의에 있어서의 결정적인 과오들은 물리학의 방법에 관한 흔히 볼 수 있는 약간의 오해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서론 13 여기에서는, 내가 말하는 ‘역사주의’란 역사적예측(historical prediction)이 사회과학의 주요한 목적이라고 생각하고, 또 이러한 목적은 역사의 진전의 밑바닥에 있는 ‘율동’이나 ‘유형’, ‘법칙’이나 ‘추세’를 발견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고 상정하는 사회과학에의 하나의 접근법을 의미한다고 말해 두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와같은 역사주의의 방법의 이설들은 이론적 사회과학(경제이론이외의)의 불만족한 상태에 대하여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으므로, 이 이설들을 제시함에 있어서 나에게 반드시 편견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다음의 나의 비판의 진의를 살리기 위해서, 우선 역사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을 힘껏 선명하려고 노력하였다.
이제 서론을 지나서 본론으로 들어가면 자연주의적 학파와 반자유주의적 학파를 상세하게 설명을 해 나간다. 이제까지 다섯 번에 걸쳐서 설명했는데, 본론의 분량이 이것보다 훨씬 많다 해도 묶어서 예전에 레이몽 아롱의 책을 읽듯이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지금 이 책은 역사적으로 한번 볼 만한 책이지 내용을 상세하게 해제해볼 만한 그런 책까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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