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문학 고전 강의 — 89 제36강(2) 괴테 《파우스트》

 

2024.02.17 문학 고전 강의 — 89 제36강(2) 괴테 《파우스트》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36강(2)

 

 

《문학 고전 강의》 제36강 오늘 두 번째이다. 오늘 얘기해서 36강을 마치려고 한다. 지난번에 "이론이란 모두 회색빛이고, / 푸르른 것은 오직 인생의 황금나무뿐이라네."라는 구절까지 읽었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이 이야기를 듣고 결심을 굳힌다. 그래가지고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묻는다. 

그러니까 메피스토펠레스가 "우선 조그마한 세계를, 다음에 큰 세계를 보도록 하지요." 이렇게 얘기를 하고 이제 파우스트의 겪음, 경험Erfahrung이 시작이 된다. 366페이지에 적어두었듯이 메피스토텔레스의 이 말은 제1부에 나오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다음부터 파우스트 제1부, 2부가 시작이 된다. 그리고 메피스토텔레스가 여기서 말하는 "조그마한 세계"는 제1부에서 묘사되는 세계이고, 그다음에 제2부는 "큰 세계"를 가리킨다. 큰 세계가 2부에서 묘사되는데 이 부분은 좀 혼동이 될 수가 있다. 잘 보면 제1부는 1막, 2막의 구별 없이 쭉 관능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레첸과의 사랑을 통해서 자연과 합의를 이루는 관능과 쾌락의 추구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제2부는 대지에 대한 찬사에서 시작을 하고 그다음에 1막부터 3막까지는 환상세계 그리고 4막에서 5막은 현실 세계를 묘사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마리아의 영원한 여성성에 대한 찬미로써 마무리가 된다. 《파우스트》가 비극 제1부, 2부로 되어 있는데 제1부는 아주 전적으로 파우스트의 개인적인, 정말 말 그대로 사적인 감각의 세계만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제2부에 들어가게 되면 초감각적인 것을 다룬다. 그것이 왜 초감각적인가. 환상세계가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다. 현실적으로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고 제2부 1막부터 3막까지는 환상세계를 다루고 그다음에 또 갑자기 현실로 내려와서 4막부터 5막까지는 현실세계를 묘사한다. 제2부에서 다루는 건 제37강에서 다시 설명을 하겠지만 이게 좀 묘하게 되어 있다. 제1부는 개인의 삶, 지극히 사적인 파우스트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능성 또는 쾌락에 대한 추구가 있고, 제2부는 형식이 다르다. 제2부는 1 막, 2막, 3막, 3막, 4막, 5막 이렇게 되어 있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단번에 이렇게 쭉 썼다고 알려져 있지는 않다. 《파우스트》는 여러 번에 걸쳐서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썼다 저렇게 썼다 한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괴테가 제1부에서는 말그대로 작은 세계, 개인의 관능을 다루고, 제2부에 들어있는 내용은 형이상학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 초감각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이것을 달리 생각을 좀 해보면 일단 제1부는 그냥 인간의 얘기이고 제2부는 인간의 세계를 벗어나서, 인간의 얘기를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인간의 세계를 벗어난 사람의 이야기라고 보는 게 적당하다.  

《파우스트》 2052~2052행
메피스토펠레스: 우선 조그마한 세계를, 다음에 큰 세계를 보도록 하지요.

이 당시 괴태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그 차례가 아주 이상하게 매겨져 있는 책이 하나 있다. 바로 헤겔의 《정신현상학》이다. 《정신현상학》을 이렇게 펼쳐보면 처음 책 표지에는 정신 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라고 쓰여져 있다. 그런데 책 표지를 넘기고 아래 속표지를 보면 처음에 학의 체계의 제1부 정신의 현상학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책 전체가 학의 체계 중에 제1부로서 쓰여진 것이다 라는 말이 그게 바로 《정신현상학》이다. 그런데 제목을 넘기고 나면 서문Vorrede이 있고, 서론Einleitung이 있다. 그런데 서론 들어가기 전에 의식의 경험의 학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도대체 이 책의 제목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학의 제1부 정신현상학인지 아니면 의식의 경험의 학인지 어떤 것을 제목으로 해야 될 것인지가 묘하게 혼동된다. 이것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논의들이 있고 심지어 정신현상학의 구조를 철학적인 내용이 아니라 문헌학적으로 고찰해서 쓴 논문들도 굉장히 많이 있다. 헤겔이 이것을 어떤 경과를 통해서 썼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면 괴테의 《파우스트》의 기묘한 이 구성을 이해하는 데 서로 도움이 된다. 헤겔은 처음에 인간의 의식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 나가는가, 세상을 겪어가는데 어떻게 경험하는가를 자기가 한번 쭉 추적해서 써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학문으로서 성립시키려고 했다. 그게 바로 의식의 경험의 학이다. 그러니까 서론을 쓰고 그다음에 의식의 경험의 학을 쭉 써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의식의 경험의 학이라고 하면 인간의 의식이 무엇을 경험하는가에 대한 학문적인 논의라고 해서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게 괴테의 《파우스트》 제1부처럼 쓴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얘기를 쓰다 보니까 의식을 쓰고, 자기 의식을 쓰고 그러고 나서 세 번째 부분을 쓰면, 《정신현상학》은 구체적으로 안쪽으로 들어가도 a가 있고 aa가 있고 bb가 있고 목차가 아주 복잡하다. 그렇게 쭉 쓰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인간의 의식을 넘어선 얘기. 즉 공동체적 의식 이런 것들에 대한 논의가 전개가 된다. 그러니까 헤겔이 그렇게 쓰고 나서 좀 굉장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와 비교를 해보면 제2부에 있는 얘기들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다 쓰고 나서 쭉 살펴보니까 처음에는 의식의 경험에 관한 학문이라고 해서 서론 등도 쓰고 했는데 자신이 이렇게 검토를 해보니까 이것이 개인의 의식이 경험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학문적인 탐구를 넘어서버렸더라 라는 말이다. 《파우스트》로 비교를 하자면 제1부에서 끝내야 되는데 쓰다 보니까 제2부까지 쭉 넘어간 것이다. 그래서 헤겔이 서문을 쓰고 이것에 이어서 제2부, 제3부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이를테면 제1부는 정신현상학 그다음에 제2부는 무엇무엇, 제3부는 무엇무엇 이런 식으로 해야겠다 라고 구상을 한 다음에 학의 체계라는 큰 제목을 붙인 다음 제1부 정신의 현상학 이렇게 제목을 붙였던 것이다. 그때의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좁은 의미에서 인간의 의식을 포괄하면서 우주적 정신까지도 얘기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얘기를 한 이유가 《파우스트》의 구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파우스트》를 괴테가 어떤 식으로 썼는지 우리가 구체적으로 추적해서 알아볼 필요는 있겠지만 지금 여기서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파우스트》를 읽을 때 제1부는 아주 명백하게 인간 개개인의 삶의 궤적에 대한 추적이다. 특히 관능에 관한 얘기이다. 그렇게 쓰다 보면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거기에서 머물러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러면서 제2부로 가게 되면 이제 대지에 대한 찬사부터 시작을 해서 환상세계 그다음에 환상세계를 겪은 다음에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오면 현실세계가, 초감각적 세계를 겪은 다음에 되돌아와서 이렇게 들여다보는 현실세계라고 하는 것은. 질적으로 달리 보이는 세계이다. 그래서 4막부터 5막까지는 현실 세계를 다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질적으로 다른 현실세계이다. 초감각을 경험한 다음에 보는 현실세계이다. 어찌 보면 이제 신의 입장에 서서 이렇게 현실세계를 보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이제 《파우스트》의 제1부는 헤겔이 애초에 쓰려고 했던 의식의 경험의 학과 같은 것이고, 그런데 괴테가 이걸 쭉 쓰다 보니까 초감각적인 것까지 쓰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것을 제2부에 담고, 전체적으로 볼 때는 《파우스트》라고 하는 텍스트가 인간의 감각적 세계와 초감각적 세계, 이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는 그런 서사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괴테의 《파우스트》라고 하는 작품은 아주 단순하게 헬라스 고전주의 정신을 밑바닥에 깔고 있는 텍스트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또 낭만주의적 작품이라고만 말하기도 어렵고 굉장히 거대한, 인간 개개인의 의식과 관능과 자연과의 합일뿐만 아니라 초감각적 세계 그런 것들까지도 다 다루는, 그리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마리아의 영원한 여성성에 대한 찬미 이런 것을 보면 우리가 《신곡》의 모티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것까지도 담고 있는 아주 독창적인 독창적인 종합의 면모를 가지고 있는 그런 서사시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당시에는 괴테나 헤겔이나 모두 하나의 거대한 의미에서 넓은 의미에서의 사상을 다루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들 모두에게는 헬라스 고전주의 그리고 도이치 로마틱 이런 것들이 다 어우러져 있으면서 인간이 왜소한 개인으로 머무르지 않고 거대한 우주적 그런 사유를 펼치는 그런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나 한다. 비록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는 특정한 사람 이름이 나오지는 않지만 거기서 헤겔이 의식의 경험학, 그 의식의 경험을 해나가는 의식에다가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마음속으로는 톰이라든가 폴이라든가 이런 식의 이름을 붙여놓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신현상학》이라는 텍스트와 《파우스트》라는 텍스트, 이 두 개가 같은 시대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텍스트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제36강을 마치는 걸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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