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팟캐스트 '라티오의 책들'을 듣고 정리한다. 라티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에 관한 강유원 선생님의 해설녹음이다.
팟캐스트 주소: https://ratiopress.podbean.com/
2024.02.03 문학 고전 강의 — 86 제35강(4) 괴테 《파우스트》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35강(4)
《문학 고전 강의》 제35강 괴테 《파우스트》를 읽기에 앞서서 도이치 신헬레니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인 페트라르카의 고전주의 이런 것에 대해서 그리고 도이치 로만틱Romantik, 낭만주의에 대해서 자잘한 얘기들을 했다. 그런 자잘한 얘기들을 바탕으로 해서 《파우스트》를 읽어보면 《파우스트》에는 딱 하나의 어떤 사조로 규정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작품을 읽을 때, 예를 들어서 발자크의 작품을 읽는다, 디킨스의 작품을 읽는다 하면 그런 것들은 사실주의realism 문학으로 분류를 하는데,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내용은 전반적으로는 사실주의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실주의 문학을 추동해가는 어떤 그런 힘은, 찰스 디킨스의 작품에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라고 하는 그런 충동이 바탕이 되어 있다. 더 나은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본 적은 없다. real space에서 구현된 적은 없지만 머릿속에는 있는 것이니까 ideal한 영역에서, 이상주의적인 그런 충동들이 디킨스라든가 발자크라든가 이런 사람들에게 놓여 있는 것이다. 항상 그런 관념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 현실적인 것 이것들 사이에는 항상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런 긴장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제기된다. 그럴 때 그 노력을 어떤 방향으로 좀 더 많이 하느냐에 따라서, 현실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쪽으로 간다고 하면 사실주의일테고, 이상적인 것들에 대해서 ideal한 것들에 대해서 좀 많이 얘기한다고 하면 관념론인 것이다. 그게 완전히 대립되는 사조라기보다는 관념적인 것을 현실에다가 실현하려고 하는 그런 강한 힘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하면 그것이 낭만주의인 것이고, 완전히 서로 완전히 다른 영역 속에 있어서 서로 척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어떤 때는 관념적인 것에 매몰되어 있다가도 정신 바짝 차리고 또 현실 세계에 눈을 돌려서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또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가 라고 하는 그런 아득한 생각이 들었을 때 다시 한 번 애초에 자기 자신을 움직였던 그런 이상들을 또 돌이켜보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낭만주의라든가 또는 사실주의라든가 이런 것들이 서로 대립되고 전혀 다른 권역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을 해본다. 낭만주의는 그런 이상적인 것을 현실적인 것으로 실현하려는 충동이겠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그런 모든 것들을 다 담고 있다고 생각을 해서 《파우스트》를 낭만주의적 작품이다라고만 하기도 어렵고 고전주의 작품이다 라고 하기도 어렵고, 또 여기서는 신도 등장하니까 신학적 작품이다 라고도 할 수 있지만, 오로지 그것만은 또 아닌 그런 묘한 복합적인 작품이다. 인생이 복합적이니까 인생의 전반을 다루려고 하는 텍스트 자체도 복합적인 것이다 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파우스트》의 구조를 보면 352페이지 1부와 2부로 되어 있는데, 작품이 창작된 그 과정을 쭉 살펴보면 Urfaust라 불리는 것이 있는데 1772년에서 1775년 사이에 완성했다. 그리고 괴테 사후 1887년에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또 ‘파우스트. 단편' Faust. Ein Fragment라고 불리는 게 1788년에 완성되었고 1790년에 출간되었다. 그리고 '파우스트, 하나의 비극' Faust. Eine Tragödie 또는 '파우스트, 비극 제1부' Faust. Der Tragödie erster Teil이 1808년에 출간되었고, '파우스트. 비극 제2부' Faust. Der Tragödie zweiter Teil이 1832년에 출간되었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대조해서 파우스트 단편과 파우스트 비극, 제1부와의 차이점 이런 것들을 따져 묻는 게 문학 연구자들이 하는 것이겠다. 그리고 또 문헌학자들도 거기에 개입되어서 하는 것이겠다.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최근에 이상인 교수가 번역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첫머리에 써놓은 것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문학이라고 하는 장르를 만들었다 라고 했다. 문학이란 시에 대한 이론적 탐구다. 시에 대한 이론적 탐구, 시라고 하는 것은 창작 예술을 가리키는 것이겠다.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좁은 의미에서의 시, 소설 이런 것들을 다 이야기이고, 이야기에 대한 원리적 탐구가 문학인데 그러면 이야기로 만들어진 것들을 원리적으로 따져 묻는 것, 《파우스트》라고 하는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구조는 어떠하고 그런 것들을 알아내는 것 이제 문학이겠다. 그런데 또 그렇다. 문학을 탐구해서 문학 이론을 알아내고, 이 작품이 이러이러한 원리를 가지고 쓰여졌구나를 알아낸다고 해서 창작을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창작의 원리를 알아낸다고 해서 창작을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과학의 방법론을 잘 알아내는 것이 과학 철학인데 과학의 방법론을 알아낸다고 해서 과학 탐구자가 되는 건 또 아니다. 그건 또 다른 영역인 것 같다.
《파우스트》는 '천상의 서곡'에 이어 제1부, 그리고 제5막으로 이루어진 제2부로 구성되어 있다. '천상의 서곡'Prolog im Himmel이 중요하다. 천상의 서곡은 제목 그대로 천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욥기〉의 서사에서 땅에서 일어난 일과 하늘에서 일어난 일이 번갈아 나타났다. 〈욥기〉에서는 욥기에서는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의 일이고 땅에서 일어나는 욥의 일이니까 전혀 일치되지 않는다. 그런데 괴테가 얘기하는 건 좀 다르다. 괴테는 천상의 서곡을 쓰고 나서 천상의 것을 지상에 실현하고자 하는 그런 것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사람들은 ideal한 것을 real한 것에 다 실현하려는 그런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바로 도이치 관념주의자들인 것이다. 관념주의자들이 관념이 중요하다 라고 말한 점에서 관념주의자이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독일 관념론이라고 했는데 저는 요즘은 관념론이라고 말하지 않고 -ism이니까 관념주의자라고 말한다, 그 사람들은 관념이 중요하다 라고 말하기만 한 게 아니라 그것을 우리 인간이 알 수 있고 그것을 현실 세계에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실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는 피히테나 셸링이나 헤겔이나 또는 괴테나 이런 사람들은 절대적 관념주의자들이다. 절대적이라고 하는 것은 현실에다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ideal한 것들을 real space로 가져오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것을 절대적이라고 이해를 하면 된다. 이것은 이른바 '독일관념론'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이해해야 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 점에서는 《파우스트》의 천상의 서곡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다. 《파우스트》 서곡은 천상에서 신과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욥기〉의 구조이다. 천상에서 신과 메피스토펠레스라고 할 때 〈욥기〉가 떠올라야 한다. 그러니까 문학 고전은 나중 것부터 읽으면 안 된다. 예전에 만들어진 작품부터 읽어야 한다. 왜 그러는가. 문학 고전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시대 순으로 읽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된다. 《파우스트》부터 읽기 시작하면 이 부분이 굉장히 낯설다. 그런데 〈욥기〉를 읽은 사람은 이것이 욥의 모티브를 가져왔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욥기〉에서 야훼와 사탄이 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똑같은 구조이다.
천상의 서곡 안에는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실마리들이 모두 다 들어 있다. 그리고 귀결까지도 암시되어 있다. 천사 라파엘이 노래하는 부분 "태양은 옛날 그대로 굉굉히 울리며 / 형제지간의 별들과 노랫소리 겨루고, / 미리 정해진 그의 여정을 / 우레 같은 걸음으로 다하는도다. / 그 모습 천사들에게 힘을 주나니, / 누구 하나 그 오묘한 이치를 알 수 없으나, / 헤아릴 수 없이 지고한 창조의 업적 / 천지창조의 그날 그대로 장엄하도다." 가만히 보면 세계는 신이 창조한 작품이고 그런데 누구 하나 그 오묘한 이치를 알 수 없다. 이 부분에 이제 인간이, '왜 인간이 그걸 알 수 없어. 인간이 노력하면 알 수 있지. 우주를 파악할 수 있어 하는 그런 오묘한 위치를 알 수 있겠다'고 덤벼드는 사람이 바로 파우스트이다. 이 우주를 자신의 지성으로서 파악하고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인간이 바로 파우스트이다. 신적인 입장으로 올라서는 인간, 그것이 낭만주의적 충동을 가진 인간이다. 그런 충동이 있는데 그것을 인간은 도대체 할 수 없다 라고 해버리면 그 사람은 칸트이다. 칸트는 물자체는 알 수 없다는 것, 물자체라고 하는 말을 칸트가 썼는데 이 물자체라고 하는 말은 형상edios의 다른 표현이다. 칸트는 그냥 인간이 선험적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버린다. 그게 쉬운 것이다. 그것도 사실은 오늘날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논박이 되어버렸지만 그렇게 출발하고 가는 게 편한 것이다. 그래서 저는 속 편한 해결책이다 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 시대가 ideal한 것과 real한 것들, 이 대립 구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또는 이 대립 구도를 그냥 무시하고 갈 것인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많이 생각하던 시대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독일 낭만주의라고 하는 것은, 어쨌든 낭만주의적 인간은 파우스트적 인간인데, 이 파우스트적 인간이 낭만주의적인데,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 그가 알고자 하는 것은 ideal한 것이다. 그러니까 관념주의자이기도 한 것이다.
《파우스트》 243~250행
태양은 옛날 그대로 굉굉히 울리며
형제지간의 별들과 노랫소리 겨루고,
미리 정해진 그의 여정을
우레 같은 걸음으로 다하는도다.
그 모습 천사들에게 힘을 주나니,
누구 하나 그 오묘한 이치를 알 수 없으나,
헤아릴 수 없이 지고한 창조의 업적
천지창조의 그날 그대로 장엄하도다.
신과 메피스토펠레스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메피스토펠레스: 나는 인간들이 괴로워하는 꼴만 보고 있지요. / 지상의 작은 신이라 자처하는 놈들은 언제나 판에 박은 듯." 이제 인간아 스스로를 지상의 작은 신으로 자처한다고 하는 것까지 얘기했다. 그러니까 "주님: 그대 파우스트를 아는가? / 메피스토펠레스: 그 박사 말이오? / 주님: 나의 종이로다! / 메피스토펠레스: 진정! 그 자는 독특하게 당신을 섬기고 있지요." 나의 종이로다라는 말은 〈욥기〉에 나온다.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이런 것을 읽어야 된다. 〈욥기〉에서 야훼가 사탄에게 얘기한다. 야훼께서 사탄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디 갔다 오느냐?" 사탄이 대답하였다. "땅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왔습니다." / 야훼께서 사탄에게, "그래,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만큼 온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하고 말씀하시자, / 사탄이 야훼께 아뢰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겠습니까? " 이렇게 얘기했다. 〈욥기〉 1장 6절에서 12절까지의 대화가 사탄과 야훼의 대화인데 욥에 대해서 얘기한다. 여기서는 "독특하게 당신을 섬기고 있지요."라고 얘기했다. 괴테가 조금 비튼 것이다. 욥과 야훼의 관계와 파우스트와 신의 관계는 다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그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독특하게 당신을 섬기고 있지요"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 독특하게 라고 하는 것이 욥과 파우스트는 다르다는 것이고 "그 자는 독특하게 당신을 섬기고 있지요. / 그 바보가 마시고 먹는 것은 지상의 것이 아닌가 싶소이다."라고 얘기했다. 그러니까 독특하게 섬긴다 라고 하는 것에 욥이라고 하는 사람과 파우스트라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괴테가 제시하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이 신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지금부터 우리가 주목해야 되는 건 파우스트가 가지고 있는 독특함이다. 그것은 욥과 철저하게 대비되는 파우스트의 독특함, 그것을 생각을 해봐야 되지 않겠나 한다. 우리는 이 독특함이라고 하는 것을 그냥 뭉뚱그려서 동경憧憬 Sehnsucht, 낭만주의적 충동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데, 그건 문학 사조에서 편의상 얘기하는 것이고, 사람은 누구나 다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파우스트》 280~281행
메피스토펠레스: 나는 인간들이 괴로워하는 꼴만 보고 있지요. / 지상의 작은 신이라 자처하는 놈들은 언제나 판에 박은 듯.
《파우스트》 297~300행
주님: 그대 파우스트를 아는가?
메피스토펠레스: 그 박사 말이오?
주님: 나의 종이로다!
메피스토펠레스: 진정! 그 자는 독특하게 당신을 섬기고 있지요.
〈욥기〉 1.7-11 야훼께서 사탄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디 갔다 오느냐?" 사탄이 대답하였다. "땅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왔습니다." / 야훼께서 사탄에게, "그래,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만큼 온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하고 말씀하시자, / 사탄이 야훼께 아뢰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겠습니까? / 당신께서 친히 그와 그의 집과 그의 소유를 울타리로 감싸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주셨고 그의 가축을 땅 위에 번성하게 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 이제 손을 들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보십시오. 그는 반드시 당신께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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