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팟캐스트 '라티오의 책들'을 듣고 정리한다. 라티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에 관한 강유원 선생님의 해설녹음이다.
팟캐스트 주소: https://ratiopress.podbean.com/
2024.01.27 문학 고전 강의 — 84 제35강(2) 괴테 《파우스트》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35강(2)
《문학 고전 강의》 제35강 괴테의 《파우스트》에 관한 것을 읽기 위해서 지난번에 고대와 근대, 빈켈만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를 했었다. 낭만주의 또는 신헬레니즘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어서 사전에 페트라르카부터 시작해서 얘기를 했었다. 오늘은 그것에 이어서 두 번째로 얘기를 좀 더 해보겠다.
페트라르카가 참조했던 고대의 전통은 로마이다. 즉 키케로라든가 또는 베르길리우스, 베르길리우스는 사실 단테가 먼저 발견을 했지만, 타키투스까지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그렇게 참조를 했다. 도이칠란트 지역에서, 이때는 프로이센이다, 자기네들도 뭔가 굉장히 멋진, 고전적인 그런 걸 좀 해보고 싶다 할 때, 이건 저의 심증적인 어떤 그런 생각인데, 뭔가 독창적인 것을 해보고 싶다 할 때 고전에 의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빈켈만은 로마가 아니라 헬라스에 소급을 해서 들어가게 된다. 헬라스라는 게 로마보다 더 먼저이고 로마는 헬라스를 모방한 것이니까 더 원조를 모방함으로써 우리는 더 멋진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지점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기억을 해둬야 된다. 즉 빈켈만이 고대 그리스 《모방론》이라고 하는 책을 쓰는 것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후마니타스의 전통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고전주의라고 말을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그들의 의도를 밝혀서 보인다면 신헬레니즘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겠다. 그리고 빈켈만이 신헬레니즘 시대를 열면서 그 빈켈만에 대한 굉장한 찬양을 보낸 사람이 바로 괴테이다. 그러니까 괴테가 빈켈만에 대한 찬양을 하면서 괴테가 도이치 고전주의 시대를 여러 시에서 완성해 가려고 했던 것이다. 괴테는 도이치에서의 신헬레니즘을 시의 영역에서 완성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괴테의 시대에 들어오면서부터 낭만이라고 하는 것이 등장하게 된다.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 팟캐스트에서 《에로스를 찾아서》를 교재로 하여 강의한 것을 한 번 다시 상기를 해보면 프로이센 지역에서는 고전 대 낭만의 대립이라고 하는 것이 형성된다. 즉 클래식Klassik과 로만틱Romantik의 대립 구도가 형성된다. 예술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고전이라고 하는 하나의 틀이 있고 낭만이라고 하는 틀이 있다. 즉 낭만주의라고 하는 것은 독일 낭만주의도 있고 영국 낭만주의도 있고 프랑스 낭만주의도 있고 이탈리아 낭만주의도 있다. 음악에도 있다. 낭만주의 음악이 있고 고전주의 음악이 있다. 독일 낭만주의 음악, 독일 고전주의 음악 그다음에 바로크 음악이 있다. 그런 것처럼 고전과 낭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고전은 그것 자체로 완성된 것이고 낭만은 고전이 아닌 것들이다. 클래식의 반대말은 클래식이 아닌 것, 로만틱이라고 부른다. 고전은 비례로 완성되어 있는 것이고 그것 자체로 완전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고, 낭만은 역동적이고 혁신적이고 뭔가 결여된 것이고 생성의 과정에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미완성인 것이고 진행형의 과정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 고전 강의》349페이지를 보면 "60여 년에 걸쳐 완성된 그의 작품 《파우스트》에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독일 신비주의, 독일 낭만주의 경향도 아주 짙게 깔려 있습니다."라고 써놓았다. "그는 독일의 질풍노도,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 여러 이념의 시기를 거쳐간 작가이고 그에 맞는 대표작들이 있지만 흔히들 괴테하면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괴테가 고전주의적 예술관을 선호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파우스트》를 고전주의 작품으로 읽을 수도 있고 낭만주의 작품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저는 《파우스트》를 독일 낭만주의 작품으로 읽는다는 말이다. 《파우스트》라고 하는 것이 작품 형식으로는 고전주의적인 것을 갖고 있을 수는 있지만 내용을 보면 낭만주의가 있다는 얘기이다. 육감적인 욕망이나 사랑의 영역 이런 것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결여된 것이고 뭔가 역동적인 것이고 생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 낭만주의 작품이다 라고 말을 해도 된다.
제35강 349 독일 문학뿐만 아니라 근대 독일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친 괴테는 반드시 읽어야 할 작가로 거론되곤 합니다. 그는 독일의 질풍노도,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 여러 이념의 시기를 거쳐간 작가이고 그에 맞는 대표작들이 있지만 흔히들 괴테하면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괴테가 고전주의적 예술관을 선호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제35강 349 60여 년에 걸쳐 완성된 그의 작품 《파우스트》에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독일 신비주의, 독일 낭만주의 경향도 아주 짙게 깔려 있습니다.
다시 정리를 하자면 로만틱Romantik은 고전이 아닌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도이치 낭만주의 운동은 미완성과 역동적인 것, 진행적인 것, 생성하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니콜라이 하르트만이 《독일 관념론 철학》에서 낭만주의에 대해서 "반성을 통해 형성되는 사상”, 이건 고전적 사상을 말한다, "그리고 반성되지 않는 감정의 세계 사이에 놓인 일종의 고유한 방식의 삶의 정서"라고 표현을 한다. 도이치 낭만주의 운동의 문제 상황을 한마디로 얘기해 보면 분열Entzweiung이다. 완성되지 않은 것이니까 그렇다. 그리고 낯선 것들을 받아들이려는 태도이다. 낯선 것은 Entzweiung을 가리키는 것이다. 주체의 분열, 주체와 타자의 분열, 주체와 자연의 분열 이런 것들, 어떤 분열의 양상 전체를 낭만주의자들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이제 광범위한 문예 철학 운동으로까지 전개되는데 그 광범위한 문예 철학 운동의 가담자들이 보면 슐레겔 형제(프리드리히, 빌헬름), 청년기의 헤겔도 여기에 가담이 되어 있다. 그리고 《종교론》을 쓴 슐라이어마흐, 셸링, 횔덜린, 슐라이어마흐는 경건주의 신학자인데 경건주의라고 하는 게 아주 고요하게 사유 속에 침잠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감성을 일깨우는 그런 경건함이다. 그래서 도이치 경건주의는 낭만주의에 부속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 중에서 슐레겔이 쓴 《그리스 시문학 연구에 관하여》(헬라스 시 연구에 관하여Über das Studium der griechischen Poesie, 195)가 최근에 번역되어 나왔다. 벌써 제목이 로마가 아니라 헬라스이다. 그러니까 낭만주의 시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아름다움 대신에 흥미로움을 표현하고 독창성이라든가 특이한 것이라든가 개별성 이런 것들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슐레겔이 쓴 《헬라스 시 연구에 관하여》와 같은 해에 프리드리 실러가 쓴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가 출간되는데 여기서 실러는 미적 인간이라고 하는 낭만주의적 인간형을 하나 창시하게 된다. 그리고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이 횔덜린이다. 횔더린이 결핍과 갈망 이런 것들을 표현하게 된다. 특히 갈망Sehnsucht이라고 하는 것은 동경이라고 하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는데, 횔더린의 대표적인 시 《휘페리온》이 바로 낭만주의 시의 가장 절정에 올라갔다고 할 수 있다.
고전 대 낭만이라고 하는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낭만주의자들은 이쪽으로 이제 확 밀고 들어가게 된다. 위르겐 오스트함멜의 《대변혁》 제3장에 보면 낭만주의자들이 생각한 유럽이라고 하는 게 있다. 유럽에는 여러 버전이 있는데 Europa Christiana, 즉 반혁명적 낭만적 유럽을 구상했는데 그 대표자가 노발리스라고 표현이 되어 있다. 노발리스가 쓴 책으로 《기독교적인 세계 또는 유럽 Christenheit oder Europa》이 있다. 1799년에 나온 책이다. 노발리스는 중세 문화의 신비롭고 경이로운 요소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강조하고 기독교에 의한 통일 그러니까 가톨릭 교도가 된 것이다. 프로테스탄트는 거칠고 계몽주의자들은 지나치게 이성적인 신앙을 강조했다는 것을 비판하면서 분열되고 파편화된 정신이라든가 그런 세계를 만들어 놨다고 비판을 한다. 그렇게 하면서 중세 문화의 신비롭고 경이로운 요소들의 매력을 어필하게 된다.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는 혼돈 속에서 진행되는 무한한 생산 과정이고 사물의 객관적 구조라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 세계의 통일을 추구해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의 신앙으로 귀의해야 하고, 세계의 질서와 의미 이런 것들은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와 신적인 영감, 이런 것이 신비주의이다, 그런 것들을 받아들여서 창조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괴테의 《파우스트》에 바로 이런 것들이 강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
다음번에는 350페이지부터 괴테의 《파우스트》와 관련된 내용들을 다시 또 정리해서 말할 예정이다. 르네상스적인 자유로운 활력이 세계를 분열과 고통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사실상 르네상스적인 인간이 진정으로 고대를 회복한 것이 아니라 도이치 사람들이 진정한 헬라스의 계승자로서 진정한 인문주의자다. 그렇게 해서 자기네들도 하나의 도야Bildung의 과정을 생각하는데, 헬라스 세계의 고전을 전범으로 삼아서 고전적 도야을 해나가겠다고 선언한다. 그렇게 해서 도이치 낭만주의자들은 루터 이후의 진정한 신앙이다 하는 것은 경건주의 목사들에서 발견되는 그런 삶의 태도, 내면의 절제와 경건을 위해서 경건한 도야를 요구하고, 이러한 도야는 인간에 대한 감성적 태도, 즉 부족한 상태에서 경건하고 절제된 상태로 나아가는 그런 것들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경건한 도야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바로 로만틱 감성주의 문학의 소재가 되어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같은 작품들을 만들어 내놓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아주 온갖 것이 다 엉켜 있는, 낭만주의적 감수성도 고려하지만 그 기준은 헬라스적인 고전에 두고, 그 과정에 접근하는 도야를 시도하되 또한 천재들이 자유로운 활동의 산물로서의 예술 작품을 찬양하는, 정말 말 그대로 온갖 좋은 것들의 혼합이라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것이 바로 실러가 얘기하는 미적 인간의 모습이다. 그런 미적 인간은 자유로운 유희Spiel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생동적 형태로 만들 줄 아는 인간인데, 여기다가 약간의 광기를 섞으면 그게 바로 천재가 된다. 그래서 낭만주의는 궁극적으로 천재를 찬양하는 미학을 강조하게 된다. 사실 예술 작품이라고 하는 것을 천재의 소단으로 파악하는 미학, 즉 우리 현상 세계 속에서 자유, 자율성 이런 것들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애초에 헬라스 고전을 연구했던 의미가 아무것도 없어지게 된다. 사실 헬라스 고전은 완전한 비례 이런 것들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낭만주의는 이렇게 하다 보면 결국 자기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천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그런 미묘한 단계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정리를 해보면 15세기나 18세기까지 인문주의에서는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페트라르카도 아우구스티누스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런데 18세기나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빈켈만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빈켈만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알렉산더 훔볼트 이 두 사람은 기독교에 무관심하다. 기독교에 관심이 없고 고대 헬라스에 아주 깊게 심취한다. 그건 바로 이교도적 취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또다시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이나 괴테 그리고 헤겔, 피히테, 쉘링 이런 도이치 관념주의자들은 기독교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니까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다가 또 이교도pagan적인 취향이 드러났다가 다시 또 기독교에 심취하고 노발리스는 이제 중세 신비주의까지도 끌어당긴다. 그러니까 19세기 도이치의 어떤 사상, 기조 또는 정서 이런 것을 이해하고자 한다 하면 이 시기가 기독교적인 것, 고대 헬라스의 이교도적인 것, 헬레니즘적인 것, 르네상스 후마니타스 이런 것들이 아주 복합적으로 유통되던 온갖 것들이 잡탕으로 모여 있고, 거기다가 아주 낭만주의적 천재까지도 나타나는 그냥 온갖 것들이 혼용되어 있는 그런 시대라는 것을 고려해야 되고, 또 그들이 종교적인 논변들, 즉 기독교적인 얘기를 한다 해도 반드시 그것이 교리학에 나타나는 정통적 기독교의 교설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도 주의를 해야 된다. 그게 바로 이제 괴테시대Goethezeit, 1770년에서 1830년까지 약 50년 정도에 걸쳐 있는 이 시기를 흔히 괴테시대라고 부르는데, 이 괴테시대라고 하는 것을 한마디로 어떤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가, 상스러운 표현을 빌면 온갖 것들의 혼합과 잡탕의 시대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겠다. 이 얘기는 다시 《문학 고전 강의》 350페이지부터 괴테를 얘기하면서, 지금 한 얘기가 책에 또 있으니까 그걸 하면서 다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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