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버뱅크, 프레더릭 쿠퍼: 세계제국사

 

세계제국사 - 10점
제인 버뱅크.프레더릭 쿠퍼 지음, 이재만 옮김/책과함께

서문
CHAPTER 1 제국의 궤도
CHAPTER 2 로마와 중국의 제국 통치
CHAPTER 3 로마 이후 : 제국, 기독교, 이슬람
CHAPTER 4 유라시아의 연계 : 몽골 제국들
CHAPTER 5 지중해 너머 : 오스만 제국과 에스파냐 제국
CHAPTER 6 대양 경제와 식민 사회 :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CHAPTER 7 스텝 지대 너머 : 러시아와 중국의 제국 건설
CHAPTER 8 혁명 시대의 제국, 민족, 시민권
CHAPTER 9 대륙을 가로지른 제국 : 미합중국과 러시아
CHAPTER 10 제국의 레퍼토리와 근대 식민주의의 신화
CHAPTER 11 주권과 제국 : 19세기 유럽과 가까운 외국
CHAPTER 12 제국 세계의 전쟁과 혁명 : 1914년부터 1945년까지
CHAPTER 13 제국의 종언?
CHAPTER 14 제국들, 국가들, 그리고 정치적 상상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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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국의 궤도

13 우리는 200여 개 국가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살고 있다. 각국은 저마다 주권의 상징들—국가, 유엔 의석—을 과시하고, 저마다 한 민족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이 국가들은 크건 작건 지구 공동체의 동등한 일원으로 국제법에 의해 긴밀히 얽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민족국가들의 세계는 겨우 60년 전에야 출현했다. 역사를 통틀어 대다수 사람들은 단일한 민족을 대표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정치 단위에서 살아왔다. 국가와 민족을 합치시키는 것은 최근에 나타난 현상으로, 완결된 현상도 아니고 어디서나 원하는 현상도 아니다, 1990년대에 국가를 '자신의' 민족성의 표현으로 바꾸려 시도한 정치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14 이처럼 전 세계에서 주권을 둘러싸고 나타난 분쟁과 모호함은 역사의 궤도들이 민족국가를 향한 단일한 전진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제국─정복하고 통합한 사람들의 다양성을 자각적으로 유지하는 정치체―들은 인류 역시에서 오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지난 2000년의 대부분 기간동안 제국들과 그 경쟁자들은 지역에서든 전 세계에서든 사람들이 연계를 맺는 맥락, 즉 이주민, 정착민, 노예, 상업 대리인의 관계망 안에서 종족 공동체나 종교 공동체 들이 연계를 맺는 맥락을 창출했다. 

15 이 책은 제국에서 시작하여 여지없이 민족국가로 귀결되는 관습적인 서사를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고대 로마와 중국부터 오늘날까지 장구한 세월 동안 상이한 제국들이 출현하고 경쟁하며 통치 전략과 정치 이념, 소속감을 빚어온 방식들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제국의 권력 레퍼토리들을 살펴본다. 다시 말해 제국들이 다양한 공동체들을 정치체에 통합하는 한편, 그들 간의 구별을 유지하거나 그들을 서로 구별하기 위해 선택한 상이한 전략들을 살펴본다. 

16 민족국가는 역사의 지평선 위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론 보이며, 근래 들들 제국들의 하늘 아래에서 등장한 국가 형태로서 훗날 세계의 정치적 상상을 일부만 또는 한시적으로만 사로잡았던 것으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17 우리의 주장은 중요한 모든 국가가 제국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간동안 제국들 자체와 제국들의 상호작용이라는 맥락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가능성을 판단하고, 잔신들의 야망을 추구하고, 자신들의 사회를 구상했다는 것이다. 국가가 크건 작건, 반역자이건 국왕 지지자이건 또는 정치에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건, 모두 제국들의 통치 방식과 그들의 경쟁을 고려해야만 했다. 

24 제국이란 팽칭주의적이거나 한때 공간을 가로질러 팽창했던 기억을 간직한 커다란 정치 단위, 새로운 사람들을 통합하면서 구별과 위계를 유지하는 정치체다. 그에 반해 민족국가는 단일한 민족이 단일한 영토 안에서 자신들만의 정치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둔다. 민족국가는 구성원들의 공통성─설령 실상은 더 복잡할지라도─을 선언하는 반면 제국국가는 다양한 주민 집단들의 비동등성을 선언한다. 두 종류의 국가 모두 통합적이지만─둘 다 사람들이 자국 제도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고 고집한다―민족국가는 국경 안쪽사람들을 동질화하고 바깥쪽 사람들을 배제하는 반면, 제국은 공동체들에 접근하여 보통 강압적으로 지배하고 통치받는 공동체들 간의 차이를 명백히 드러낸다. 제국 개념은 정치체 내부의 서로 다른 공동체들이 다르게 통치될 것을 전제한다. 

28 18세기 이래 여러 지역의 정치적 상상에서 민족이 두각을 나타냈다 할지라도, 민족국가는 18세기와 그 후에도 제국의 유일한 대안이 아니었다. 연방(federation)도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었다. 연방은 스위스의 경우처럼 일부 권력은 개별 정치 단위들이 보유하고 다른 일부 권력은 중앙이 보유하는 주권의 중층적 형태다. 국가연합(confederation)은 이 생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연합 단위 각각의 인격을 인정한다. 
 

29 민족국가와 마찬가지로 부족, 왕국, 도시국가, 연방 국가연합은 정치적 친연성이나 행위의 '자연스러운' 단위라는 주장을 변호하지 못한다. 이 단위들은 나타났다 사라졌고, 때로는 직접 제국으로 변모했으며, 때로는 제국들이 서로 싸우는 동안 어느 제국에 흡수되어 점차 사라지거나 부상했다. 국가 유형 가운데 통치 원리로서의 민주정과 고정된 관계를 맺는 유형은 없다. 기원전 3세기의 로마 공화정부터 20세기의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황제가 없었고 각기 다르게 통치되었고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렸던 제국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제국들을 통치해온 것은 독재자, 군주, 대통령, 의회, 중앙위원회였다. 참주정은 제국에서만이 아니라 민족적으로 동질한 정치체에서도 하나의 가능성이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29 제국아 국가 형태로서 줄곧 존속해왔다 할지라도, 제국의 통치 방식이 균질했던 것은 아니다. 이 연구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제국들이 정복을 통치로 전환한 상이한 방식들 그리고 제국들이 사람들을 정치체에 통들의 교차로, 그리고 다른 공동체들과 다른 국가들에 원거리 권력을 행사하려는 제국들의 노력은 정치와 지식, 삶을 변형해왔다. 

37 우리가 강조하는 것은 유형론이 아닌 제국 권력의 레퍼토리다. 제국은 변경 가능한 정치 형태였으며, 우리는 제국이 통합과 차이를 활용한 다양한 방식들을 강조하고자 한다. 제국의 내구성은 전략들을 결합하고 변경하는 능력에 크게 의존했다. 그런 전략들은 영토 통합부터 고립 영토 건설까지, 중개인의 느슨한 감독부터 엄격한 하향식 통제까지, 제국의 권위를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입장부터 제국처럼 행위하는 것을 부인하는 입장까지 다양했다. 단일 왕국, 도시국가, 부족, 민족국가는 변화하는 세계에 제국만큼 유연하게 대응하지못했다. 

38 주권 체제의 종류와 특정한 권력 구조는 국가가 식민 제국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알제리에 비해 모로코와 튀니지가 프랑스 제국에서 이탈한 과정은 폭력을 덜 수반했다. 알제리의 경우 처음에는 프랑스 공화국의 보호령이었고 나중에는 필수적인 일부였던 이 나라의 위상과 독립 과정의 폭력 사이에 큰 관련이 있었다. 중층적 주권은 가능성으로서, 때로는 현실로서 유럽 제국들 안에서 오랫동안 존속했다. 

44 신식이든 구식이든,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19세기 유럽의 식민주의는 단명했다. 예컨대 아프리카에서 유럽의 식민 통치는 대략 70년 동안 지속된 데 반해 오스만 제국의 수명은 600년이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의 단호한 제국주의는 유럽 민족과 비유럽인을 구별하는 이념에 입각하여 세계 질서를 공고히 하기는 커녕, 식민주의의 정당성과 생존력에 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고, 신구 제국들 사이에서 더 많은 분쟁을 조장했다. 

46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관한 물음들이 아직 남아있다. 제국의 정상성은 종언을 고했는가? 동질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민족국가만이 유일한 대안인가? 아니면 균질성이나 위계질서를 고집하지 않고 정치적 결사의 다양한유형을 인정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있는가? 제국들의 역사를 주의 깊게 읽는 가운데 우리는 폭력과 오만의 극단을 미주하기도 하지만, 주권의 공유, 중층적 주권, 주권의 변형이 가능하다는 것을 상기하기도 한다. 과거는 예정된 미래로 이어지는 단일한 경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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