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로슬라프 펠리칸: 전통을 옹호하다

 

전통을 옹호하다 - 10점
야로슬라프 펠리칸 지음, 강성윤 옮김/비아

1. 전통의 재발견 - 경과보고
2. 전통의 회복 - 사례 연구
3. 역사로서의 전통 - 변론
4. 유산으로서의 전통 - 옹호

부록: 야로슬라프 펠리칸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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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오늘날 학계에서 이루어진 전통의 재발견은 우리가 물려 받은 줄도 몰랐던 것들의 기원을 조금이나마 인식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과거 세대가 자신들의 과거를 이용한 사례를 민감하게 알아볼 수 있게 되었지요. 지성사를 연구하다 보면, 명시적으로는 과거의 요소를 거부하면서도 암묵적으로는 과거의 가치를 계속해서 받아들인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마침 토머스 제퍼슨의 이름을 딴 강연을 진행하고 있으니 제퍼슨과 관련해서 말해 볼까요.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창조, 평등,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권리 갈은 것들을 자명한 진리로 여겼지요. 창조, 평등, 천부인권을 자명한 진리로 여기게 된 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아테네와 예루살렘 양쪽에 뿌리를 둔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교리, 즉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교리의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42 아우구스티누스의 재발견은 제가 앞에서 언급한 중세 '르네상스들'의 중요한 축을 이루었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페트라르카 방투 산 꼭대기에서, 그리고 『나의 비밀』을 쓰며 『고백록』을 거듭 읽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지요.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도 자신들이 스콜라 철학 체계, 아리스토텔레스주의라는 구름에 가려졌던 진짜 아우구스티누스를 재발견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칼뱅은 "아우구스티누스는 완전히 우리 편"이라고 자랑했지요. 종교개혁 지도자들이 자신들은 그리스도교의 과거를 전부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할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주장의 근거가 된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전통의 요소들을 물려받아 오늘날 역사가들이 중세 전통이라고 부르는 다종다양한 관행과 믿음으로 변형시킨 진짜 주인공은 중세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기 독주자들이 아니라, 그 땅에서 침묵하던 사람들, 읽고 쓸 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84 루터를 비롯한 16세기의 인물들, 그리고 제퍼슨을 비롯한 18세기의 인물들이 논쟁을 할 때 역사적 논증을 폭넓게 사용한 이유는, 이처럼 역사에 변질되지 않는 진짜 진리와 역사적이고도 상대적인 전통 사이의 대립을 입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루터와 그의 동료들에게 '교황 제도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세워졌으므로 초자연적 권위를 가진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었습니다. 역사에 비추어 볼 떄 교회의 제도, 관행, 심지어 교리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했기 때문이지요.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한 것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말씀뿐이고, 줄곧 변화하는 교회 전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비판적 방법론과 성서 문헌학을 익힌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은 교부들이 활동하던 시기, 중세로부터 간직해 온 전통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역사적으로 규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탐구를 바탕으로 그들은 전통의 권위에 기반을 둔, '수 세기 동안 이루어진 합의'라는 가정을 깨뜨렸습니다. 

100 물론, 그렇다 해도 우리는 몇 가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우선 첫 번째 강연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해 설명했듯 우리 전통 안에 있는 우리의 기원을 이해할 것인지, 아니면 이해하지 못한 채 전통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내버려 둘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전통을 의식하고 거기에 참여자가 될 것인지, 의식하지 못한 채 희생자가 될 것인지를 택해야 합니다. 이해의 길을 택한다면, (생물학적 DNA의 경우와는 다르게) 우리는 두 번째 강연에서 논의한 또 다른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회복과 패기 사이에서, 혹은 부분적 회복과 부분적 패기가 결합된 수많은 가능성 기운데에 택하는 것이지요. 이 역시 진짜 선택입니다. 이전의 몇몇 세대가 그랬듯 무지와 맹신 위에서 전통을 회복하는 것, 혹은 우리 세대 많은 이가 그러하듯 무지와 편견 위에서 전통을 폐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102 참되고 살아 있는 전통은 자기 너머의 길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이것이야말로 그 전통이 참되고 살아 있다는 표식입니다. 전통의 이런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동방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유래한 한 가지 구별법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8-9세기 동방교회에서는 그림이나 조각 등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오늘날 성상파괴 논쟁이라고 불리는 논쟁의 결과 증표와 우상과 참된 모상 혹은 성상icon의 구별법이 생기게 되었지요. 우상은 자신이 표상하는 존재를 구현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너머의 존재를 보게 하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상 숭배는 표상 너머에 있는 초월적 실재를 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증표는 증표 너머의 존재를 보게 하지만, 이 존재를 구현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존재의 우연한 표상일 따름이지요. 참된 모상, 즉 그리스어를 비롯한 언어들에서 '이콘icon'이라 불리게 된 성상은 자신이 표상하는 존재를 구현합니다.  

106 역사로서의 전통을 위한 변론, 적어도 우리가 이어받은 전통의 역사를 위한 이런 변론은 전통의 붕괴 직후에 급조한 조잡한 변명이 아닙니다. 이건 전통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요소들을 요약하고, 재서술하고, 회복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모세, 소크라테스, 예수가 자신의 특별한 제자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었든 간에, 전통의 역사에서 이들은 너무나 자주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대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통에 대한 비판의 주요 원천이자 주된 영감 역시 이들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는 우상 숭배에 반대해 신성한 율법이 적힌 석판을 깨뜨렸습니다. 

121 전통은 죽은 이들의 살아 있는 신앙이고, 전통주의는 살아있는 이들의 죽은 신앙입니다. 전통이 오명을 쓰게 된 것은 전통주의 탓이지요. 정치 분야에서든 종교 분야에서든 아니면 문학에서든, 모든 시대의 개혁자들은 죽은 이들의 전제정치에 항거했고 이 과정에서 전통을 대신할 혁신과 통찰을 요청했습니다. 

132 전통을 다루는 방법의 핵심은 원자료가 말하지 않았지만 전제하는 것, 명시하지 않았지만 암시하는 것을 분별해는 데 있습니다. 전제하는 것과 암시하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때 그 사람들이 그러했듯 권위있는 진술들을 상세히 살피고, 끝없이 입으로 되뇌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원자료가 말하지 않은, 무언가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143 전통과 통찰이라는 이분법은 역사의 무개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진보라는 도약'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출발하는 제자리멀리뛰기 같은 것이 아니라 전에 서 있던 곳들을 거쳐 다음에 서 있을 곳으로 나아가는 멀리뛰기입니다. 과학이든, 예술이든 철학과 신학이든, 죽은 과거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면 가장 순수하고 심오한 통찰을 얻을 수 있기라도 할 것처럼 전통을 계속해서 내버리는 방식으로는 통찰이 자라나지 않습니다. 역사에서 통찰은 그렇게 생겨나지 않았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이들을 담론의 장에 불러들일 때 우리의 대화는 질적으로 풍요로워집니다. 이는 우리가 죽은 이들에게만 귀 기울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전통을 반복 재생하는 녹음기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건 죽은 이들의 살아있는 신앙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들의 죽은 신앙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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