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다마지오: 느끼고 아는 존재

 

느끼고 아는 존재 - 10점
안토니오 다마지오 지음, 고현석 옮김, 박문호 감수/흐름출판

이 책에 사용된 용어에 관하여
감수의 말
들어가는 말
1장 존재에 관하여
2장 마음과 표상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관하여
3장 느낌에 관하여
4장 의식과 앎에 관하여

 


이 책에 사용된 용어에 관하여

10 먼저 'emotion'이라는 용어를 살펴보자. 'emotion'은 감정, 감성, 정서 등 다양한 말로 번역된다. 이 책에서는 '정서'라는 용어로 번역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emotion' 이라는 단어는 '밖'을 뜻하는 라틴어 어근 'e(ex)'와 '움직이다'라는 뜻의 동사 'movere' 가 합쳐져 생겨난 말이다. 즉, 안에 있는 어떤 것이 밖으로 움직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다마지오의 정의는 이런 일반적인 정의와는 조금 다르다. 다마지오는 뇌 안의 뉴런들을 활성화하는 모든 외부 자극과 내부 자극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을 'emotion'(정서)라고 정의한다. 다마지오는 철저하게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정서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정서는 시각, 청각, 촉각처럼 일상생활 어디에나 전재하지만, 뇌과학이 정서에 주목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정서라는 용어가 일반인들과 학자들 모두에게 혼란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정서라는 단어에는 '특정한 행동 패턴'이라는 의미와 '그 패턴과 연관된 마음의 상태'(즉, 느낌)라는 의미가 모두 들어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정서는 느낌애 의해 촉발된 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다마지오에 따르면, 정서와 '정서에 대한 느낌'은 사물이나 상황이 특정한 행동을 유발할 때 시작되는 기능적 과정의 전혀 다른 두 가지 측면이다. 느낌이라는 절차를 정서의 원인이 되는 대상의 관념을 떠올리는 절차와 명확하게 구분한 것이다. 즉, 정서가 먼저 나타나고 그다음에 느낌이 나타난다는 것이 다마지오의 주장이다.

진화 과정을 통해 정서는 생명 조절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즉, 유기체의 항상성 명령을 따른다는 뜻이다. 정서는 유기체가 위험을 피하고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유기체의 생존과 개체와 집단의 안녕에 기여한다. 정서의 이런 역할은 인간과 동물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인간에게서 정서는 문화적인 관습규칙과 충돌하기도 한다. 이 경우 정서는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요약하면, 정서가 진화과정에서 윤리적인 행동이 형성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윤리의 영향을 받는 결정의 대체물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 'feeling'에 대해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느낌, 기분, 감정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되지만, 이 책에서는 '느낌'이라는 용어로 통일했다. 역시 이 용어에 대한 다마지오의 정의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느낌이라는 단어와는 그 의미가 좀 다르다. 다마지오는 느낌은 배고픔, 목마름, 고통 같은 원초적 상태와 공포, 분노 같은 정서적 상태 다음에 발생하거나 그와 동시에 발생하는 마음의 무의식적 상태라고 정의한다. 다마지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경과학자들조차 느낌은 사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과학의 경계 저편에 있고 영원히 신비로운 영역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빠져 있었다고 말한다. 

느낌은 적응 행동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하며, 정서의 이점을 의식적인 행동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느낌은 정서 과정이 아무 필요 없이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 다마지오는 "태초에 있었던 것은 말이 아니라 느낌"이라고 말한다. 이성도, 유전자도 생기기 이전에 느낌이 생명 활동을 촉진하는 메커니즘으로 존재했다는 주장이다. 뇌도, 세포핵도 없는 단세포동물 박테리아가 수십억 년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느낌 덕분이었다는 게 그의 논리다. 

다마지오는 의식의 출현이 세 가지 요소에 의존한다고 생각한다. '정서', '느낌', '느낌에 대한 느낌'이 그것들이다. 다마지오에 따르면 정서는 감각질에 대한 무의식적인 뉴런 반응들의 집합이다. 자극에 대한 이런 복잡한 반응들이 유기체 내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는 외부에서 관찰이 가능하다. 한편, 느낌은 유기체가 외부 자극 또는 내부 자극의 결과로 경험하는 변회들을 인식하게 될 때 발생한다. 다마지오에 따르면 느낌은 다양한 마음속 사건들이 일정한 역할을 하는 생물학적 과정의 결과로 발생하는 특정한 마음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정동'이라는 용어는 'affect'를 번역한 것이다('affect'는 '감정'이라는 용어로 번역되기도 한다). 심리학에서 정동은 느낌feeling, 정서emotion, 기분mood에 대한 잠재된 경험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외부 자극에 대하여 생리적인 수준에서부터 심리적인 수준에 이르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 반응을 뜻하지만, 다마지오는 "정동은 느낌으로 변화되는 아이디어들의 세계"라고 정의한다. 다마지오는 《스피노자의 뇌》에서도 인간의 충동drive, 동기motivation, 정서, 느낌을 스피노자가 정동으로 통칭한 것으로 보았다. 이는 정동의 신체성을 강조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유물론자인 다마지오는 정동이야말로 "인간성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다마지오에 따르면 인간은 느낌을 통해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명현상을 지각할 수 있으며, 그 지각은 정동으로 드러난다. 

이 책의 원제 일부인 '앎 knowing'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다마지오에 따르면 의석은 '느낌을 안다는 느낌'이다. 핵심 의식coreconsciousness은 유기체가 자신의 몸 상태가 자신의 경험, 즉 정서에 대한 반응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발생한다. 우리는 우리 유기체가 대상에 의해 변화되었다는 특정한 종류의 비언어적 지식을 우리 유기체가 내부적으로 구축하고 내부적으로 드러낼 때, 이런 지식이 대상을 내부적으로 두드러지게 드러내면서 나타날 때 의식을 갖게 된다. 이 지식의 가장 간단한 발생 형태가 바로 '느낌을 안다는 느낌'이라는 것이 다마지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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