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오스터함멜: 대변혁 3 : 19세기의 역사풍경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6. 10.
대변혁 3 : 19세기의 역사풍경 - 위르겐 오스터함멜 지음, 박종일 옮김/한길사 |
제11장 국가 최소정부, 통치자의 업적, 미래의 철창·267
제3부 주제
제12장 에너지와 공업
제13장 노동 문화의 물질적 기초·267
제14장 네트워크 범위, 밀도, 틈·267
제15장 등급제도 사회적 공간의 수직적 배열·267
제16장 지식 증가, 농축, 분포·267
제17장 문명화와 배제·267
제18장 종교·267
맺는 말 19세기의 역사적 지위·267
역자 후기·533
2095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진보 가운데 하나는 문해력의 대규모 확산이었다. 대중적인 문해력의 보급은 하나의 과정이었다. 여러 사회에서 이 과정의 시작은 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역 또는 국가에 따라 발전 속도에 큰 차이를 보였는데, 그 원인을 손쉽게 다른 기본적인 과정─국가의 형성, 사회의 종교화 또는 지식사회의 성장, 심지어 공업화─에 돌려서는 안 된다.
'읽고 쓰는 능력의 교육'과 그 성과─사람들은 일반적으로 literacy(문해력)란 영어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데 다른 언어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이다─를 정확히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두고 여러 설이 있다. 이 개념이 묘사하는 것은 절대적인 상황이 아니라 상대적인 상황이다. 읽고 쓰는 능력은 혼인신고서에 서명하는 정도의 문자 운용능력에서부터, 정기적으로. 종교 경전을 읽는 습관, 개인적인 편지쓰기, 공개적이고 적극적인 문학 활동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나 핵심적인 뜻은 분명하다. 그것은 읽기로서의 문화적 기능(과 부차적으로 쓰는 기능)을 가리키며, 그런 기능을 가졌을 때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하여 말하고 듣는 범위를 넘어서 더 넓은 소통의 공간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지역을 뛰어넘는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조종할 수 있는 기회와 조종당할 수 있는 처지를 동시에 갖게 된다. 1914년의 유럽 남성 인구의 문해력 보급정도는 교전 쌍방 병사들이 문기 사용설명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 전쟁 선전물의 내용을 이해하고 전선에서 집으로 자신의 상황을 글로 알릴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2096 19 기에 문해력의 보급은 무엇보다도 '유럽'의 문화사적 과정이었다. 대규모 도서 인쇄 능력을 갖춘 유럽대륙─유사한 능력을 갖춘 나라는 중국뿐이었지만 상호 영향은 없었다─의 일부 지역에서 문해력 보급의 시발점은 종교개혁 시대 또는 실용적인 교육을 중시한 18세기 '대중 계몽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19 세기에 이런 추세가 이어지다가 어느 정도 종점에 이르렀다. 대중교육의 역사가─근대 초기에 이미 등장한 '지식사회'가 아니라─우리 시대의 기초를 놓았다.
문해력은 경쟁력 제고라는 기능적 측면을 넘어 새로운 상징적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문해력은 상호 교류할 수 있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인도하는 가상의 공동체를 창조함으로써, 문명, 민족적 단결의 표지가 되었다.
1920년 무렵이 되자 유럽 주요 국가의 남성인구와 부분적인 여성 인구가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그러나 문명의 유럽과 무지몽매한 비유럽이란 대척적인 인상을 갖지 않으려면 반드시 유럽 내부의 편차를 살펴보아야 한다. 1910년 무렵 오직 영국, 네덜란드, 독일만 문자 해독율이 100 퍼센트에 도달했고 프랑스는 87퍼센트, 유럽의 '발달된' 국가 가운데서 문해력 보급률이 가장 낮다는 벨기에는 85퍼센트였다. 남부 유럽의 문자 해독율은 이보다 훨씬 낮아 이탈리아는 62퍼센트, 스페인은 50퍼센트, 포르투갈은 25퍼센트에 불과했다. 동부 유럽과 동남부 외곽지역의 상황은 이보다 못했다.
2097 이러한 보편적 발전 추세가 전체 유럽에서 전환점을 맞은 때가 1860년 무렵이었다. 그전까지는 프로이센만 문맹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목표에 근접해 있었다. 1860년 이후 발전이 가속화되었다. 그런 양상은 통계수치로 드러났을 뿐 아니라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에서도 나타났다. 세기가 바뀔 무렵, 발칸지역과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전체에서 문맹은 더 이상 당연한 현상이 아니었다. 읽고 쓰는 능력은 어디서나 정상적인 상태이자 보편적으로 추구할 가치가 있는 정치적 목표로 인식되었다. 읽고 쓰는 능력은 귀족과 도시 중산계급에서부터 장인계층, 숙련노동자,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에게로 확산되었다.
그렇다고 지역차이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유럽대륙각 제국내부에는 여전히 큰 지역적 차이가 존재했다. 1900년의 총인구조사는 오스트리아 퍼어아를베르크주의 문맹율은 1 퍼센트이지만 같은 시기 합스부르크제국에 속한 달마치아의 문맹율은 73퍼센트였음울 보여준다.) 러시아, 세르비야, 시칠리아, 펠로폰네소스의 시골 마을에 읽고 쓰기 교육이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지난 뒤였다. 읽고 쓰기의 교육은 하룻밤 사이에 완성되지 않았다. 그것은 긴 과정이었으며 한순간에 나라전체를 대상으도 하는 교육이 아니었다. 그것은 먼저 작은 집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 가족 안에서 젊은 세대는 읽고 쓰기를 배웠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있다. 이것이 부모의 권위에 영향을 주었다. 마을, 이웃, 교구에서 문화적 기능의 구성이 점차로 바뀌어갔다. 뭉뚱그려서 구어에서 문어로 전환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분석이다. 문어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문화적 권위의 기초가 되었다.
2099 문해력 보급운동은 주로 정부가 주도했다. 초등학교는 운동을 실행할 때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그러나 유럽의 많은 정부가 여전히 이 도구를 잠정적으로 교회에 맡겨놓고 있었다. 정부의 실력이 약하면 (소리 나지 않게 주일학교 하나만 장악하고 있어도) 종교기관이 교육을 장악하는 힘이 강해졌다.
시각을 바꾸어서 본다면 국가, 교회, 민간부문이 성장하고 있던 교육시장에서 경쟁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유럽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영국의 교육제도는 같은 시기의 이슬람 국가의 교육제도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기초교육은 모두 종교기관의 수중에 고도로 집중되어 있었고 교육목표도 대동소이했다. 읽기, 쓰기, 도덕적 가치의 내면화, 아이들을 일상생활의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 교육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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