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오스터함멜: 대변혁 1 : 19세기의 역사풍경

 

대변혁 1 : 19세기의 역사풍경 - 10점
위르겐 오스터함멜 지음, 박종일 옮김/한길사

서론·27

제1부 근경近景
제1장 기억과 자기관찰 19세기의 영구화·45
제2장 시간 19세기는 언제인가?·167
제3장 공간 19세기는 어디인가?·267

제2부 전경全景
제4장 정주와 이주 유동성·379
제5장 생활수준 물질적 생존의 안전과 위험·513

찾아보기·695

 


서론

27 모든 역사는 세계사가 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학의 '세계사회' 이론에 따르면 세계는 '모든 환경의 환경'이며, 모든 역사적 사건과 그 서술의 궁극적인 배경이다. 역사 발전의 기나긴 과정에서 지역을 넘으려는 추세는 끊임없이 강화되어왔다. 신석기시대의 세계사에서는 원거리의 밀접한 교류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20세기의 세계사는 기본적으로 조밀하게 교직된 전 지구적 관계망이란 환경에서 출발한다. 존 맥닐과 윌리엄 맥닐은 이것을 '인간망'(human web)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관계망들의 복합체라고 할 것이다.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계사와 옛 사람의 의식을 연결시켰을 때 세계사 서술은 특별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위성통신과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지금 세상에서도 수십억의 인구가 협소하고 폐쇄적인 지역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현실적 · 정신적으로 환경의 속박을 벗어날 수 없다. 특권을 누리는 소수만이 '지구적' 시각에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다.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19 세기를 민족주의와 민족국가의 세기라고 부르는데 이는 타당하고 합리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19세기에서 각종 경계를 뛰어넘는, 초국가적 ·초대륙적 ·초문화적 행위와 관계의 요소를 처음으로 찾아낸 사람들은 '지구화'의 초기 흔적을 찾고 있는 현대 역사학자들이 아니다. 19 세기를 살아가던 많은 당대인들이 확대된 사상과 행위의 지평을 그들 시대의 특징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지라고 생각했다. 

유럽과 아시아 사회의 중하층 구성원들은 눈길을 머나먼 나라로 향하고 그곳에서 희망을 찾았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로 가는 여행에 나섰다. 정치가와 군사지도자들이 '세계정치'의 범주에서 사고할 줄 알게 되었다. 영국이 지구 전체에 영토를 가진 첫 번째의 제국으로 등장했고 다른 제국들도 이 모델에 비추어 자신의 야심을 가꾸어갔다. 무역과 금융은 근대 초기의 몇 세기보다 더 긴밀하게 통합되고 상호 연결된 관계망 속에 집중되었다. 

28 19세기를 연구하고자 할 때 세계사적 접근은 임시방편의 해법이다. 그러나 이런 임시방편의 해법이 쌓여서 역사는 하나의 학문, 그 과정을 합리적 방법론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과학으로 발전했다. 철저하고도 어쩌면 소모적일 수도 있는 자료 검증을 통해 학문이 과학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19세기에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그 시대에 세계사 저술이 다른 학문의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역사학자들은 새로운 전문 직업정신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만약 그런 상황이 지금 일어난다고 해도 모든 역사가들이 세계사를 저술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29 "역사가는 역사 현상을 해석할 때, 자료가 제공하는 개별성과 (개별성을 처음 만났을 때 해석을 가능케 해주는) 보편적 · 추상적 지식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역사가는 어떻게 검증을 통과할 수 있는, 더 큰 역사단위와 과정에 대한 서술을 만들어 낼 것인가?" 

역사의 전문화는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다. 그 결과 역사는 크게 보아 사회과학의 범주 안에 자리 잡았다. 시간의 깊이와 공간의 광대함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회학자와 정치 이론가들이 역사 연구의 주류를 떠맡았다. 역사가들에게는 훈련을 통해 습득한 직업적 특성 때문에 거친 일반화나, 단선적인 인과론적 설명이나, 모든 것을 포용하는 멋진 공식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사유의 영향을 받아 일부에서는 '거대서사'(grand narratives) 또는 장기 과정에 대한 해석은 가능하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사 서술은 전문분야의 상세한 연구를 대중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설명하는 권위와 능력을 전문가들로부터 회수해 오려는 시도이다. 

세계사는 역사 서술의 한 형태이며, 때때로 시도해야 할 기록이다. 위험은 저자의 몫이지 독자 대중의 몫은 아니다. 왜냐하면 독자 대중은 전문가들의 예리한 비판 덕분에 허위와 협잡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나의 문제는 남는다 왜 세계사는 한 사람이 써야 하는가? 왜 우리는 '학문공장'이 내놓는 여러 권으로 구성된 제품집단에 만족할 수 없는가. 답변은 간단하다. 문제와 관점, 소재와 해석이 집중화된 조직이라야 세계사 서술의 건설적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32 크리스토퍼 베일리와 나 사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 두가지는 다른 데에 있다. 첫째 나의 책은 시대의 연대기적 경계를 획정하는데 있어서 베일리의 책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다. 나는 어떤 시대의 역사를 앞선 시대와 뒤따르는 시대로부터 격리된 특정 구획 속의 시기로 다루지 않았다. 내 책의 제목에 구획을 나누는 연대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특별히 한 장을 할애하여 시대구분과 시간의 구조에 관해 다루었다. 나는 '역사 속에서의' 19세기를 다양하게 구획했다. 19세기를 말하면서 앞으로는 1800년 이전, 심지어 1780년 이전까지의 시기로부터 뒤로는 현대 세계까지 관찰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19세기의 중요성은 좀더 긴 시간의 축 속에서 입체적으로 부각될 수 있다. 

19세기는 때로는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때로는 매우 가까운 시간이다. 대부분의 경우 19세기는 현대의 선사시대이지만 어떤 경우에 19세기는 바다 속에 가라앉은 아틀란티스처럼 흔적을 찾기도 힘들다. 결론은 사안에 따라 내려져야 한다. 나는 19세기를 시간적 경계가 분명한 역사적 대사건을 통해 관찰하지 않고 19 세기 안의 중점 연대를 통해 관찰했다. 여기서 말하는 중점 연대는 대략 19세기 60년대에서 80년대 사이를 가리키는데, 이 시기에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혁신과 발명이 나타났고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진행되던 역사과정이 수렴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제1차세계대전은 베일리의 해석과는 달리 역사무대에서 예상 밖의 우연한 장면은 아니게 된다. 

35 나는 '거시서사의 정당성을 좀더 확실하게 설득하려고 시도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이 거시서사가 시대착오적인 서사체계임을 증명하지도 못했고 오히려 이 서사체계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강화시켜주었다. 당연히 거시서사는 여러 단계에서 전개될 수 있다. 19세기의 세계적 공업화 또는 도시화의 역사도 충분히 '거시적'이라 불릴 수 있다. 인류 집단생활의 질서 가운데서 이런 측면은 극단적으로 보편적이라 할 수 있으나 거의 파악할 수 없는 전체 가운데 한 부분으로서의 윤곽이 오히려 더 분명하게 식별되는 것이 이 책의 기본구조이다. 

36 모든 세기 가운데서 특히 19세기는 유럽중심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서술할 수 없다. 19세기만큼 유럽의 세기였던 세기는 없었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카를 아캄이 적절히 표현했듯이, 19세기는 "유럽의 주도권이 압도적이었고 그 압도성이 더욱 압도적으로 강화되어가던 시대였다." 유라시아의 서쪽 반도가 자신보다 훨씬 넓은 지구의 나머지 지역을 지배하고 착취한 적은 이전에는 없었다. 유럽에서 시작된 변화가 나머지 세계에 그처럼 충격을 준 적도 이전에는 없었다. 유럽의 문화가 유럽 식민지를 훨씬 벗어난 지역에서까지 열정적으로 받아들여진 적은 이전에는 없었다. 19세기는 나머지 대륙이 유럽을 자신들의 척도로 삼았다는 점에서도 유럽의 세기였다. 

38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 '근경'은 후속 내용의 전제와 기본 매개변수―자기관찰, 시간, 공간一를 논한다. 시간과 공간의 대등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세계사 서술은 탈(脫) 시간분화 / '공간전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제2부의 여덟 개 장에서는 각 장마다 하나씩의 역사적 사실을 독자들에게 '전경도'로 보여줄 것이다. 여덟 폭으로 이루어진 '전경도'는 세계의 모든 부분을 균등하게 보여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을 빠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는 말할 수 있다. 

제3부 '주제'의 일곱 개 장에서는 전경도 방식의 서술을 피하고 초점을 좁혀 구체적인 문제에 관해서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언급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적지 않은 내용, 특히 보편적 결론을 입증할 사례들을 의도적으로 제외시켰다. 만약 끝까지 전경도 방식으로 서술하고자 했더라면 나의 능력은 물론이고 독자들의 인내심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니 모두에게 괴로운 일이 되었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전경도에서 '주제'로 옮겨옴으로써 이 책의 무게중심이 종합에서 분석으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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