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 10점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열린책들

머리말: 버지니아 울프 산문선을 엮어 내며

서재에서 보낸 시간
책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
현대 소설
베넷 씨와 브라운 부인
시, 소설, 그리고 미래
서평 쓰기
현대 에세이
전기라는 예술
솜씨
후원자와 크로커스
기우는 탑
너무 많은 책이 쓰이고 또 나오는 게 아닐까?

역자 해설: 문학이라는 공유지에 낸 새로운 길

 


머리말

6 울프는 잡지에 서평을 기고하면서 작가로서 출발했으며, 소설가로 성공한 후에도 〈일로서의 글쓰기와 예술로서의 글쓰기〉를 병행하여 전자의 글쓰기에 〈백만단어 이상〉을 쏟아부었다. 

 

책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

25 울프는 1926년 1월 켄트에 있는 헤이스코트 여학교에서 강연한 내용을 같은 해 10월에 『예일 리뷰Yale Review』에 발표했고, 이 글을 대폭 수정하여 『보통 독자』 제2권(1932)에 실었다. 

40 독서란 실로 복잡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첫 번째 과정은 작품이 주는 인상들을 고도의 이해력으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는 독서의 전반부일뿐이다. 

41 독서의 후반부인 판단하기, 비교하기, 재빨리 모여드는 무수한 인상들에 마음을 활짝 열기가 전반부만큼 단순하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46 그저 그 자체로 좋아서 하는 일들, 그 자체가 목적인 즐거움들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독서야말로 그중 하나가 아닌가?


현대 소설

47 1919년 4월 10일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러먼트』에 〈Modern Novels〉라는 제목으로 처음 발표한 후, 수정 및 보완하여 1925년 『보통 독자』에 〈Modern Fiction〉이라는 제목으로 실은 글. 

48 우리는 고전 작품들을 논쟁거리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49 우리가 뜻하는 바를 단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그 세 작가는 〈유물론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은 그들의 정신이 아니라 육체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52 지금 한창 유행하는 소설의 형식이 우리가 모색하는 바를 확보하기는커녕 자주 놓치고 있다는 견해를 감히 내보기로 하자. 우리가 그것을 삶이라 부르든 정신이라 부르든 진실 혹은 리얼리티라 부르든 간에, 이것은, 이 본질적인 것은 줄곧 달아나고 우리가 제공하는 잘 맞지 않는 옷에 더 이상 갇히기를 거부한다. 

53 작가가 노예가 아니라 지유인이라면,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다면, 관습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에 기초할 수 있다면, 플롯도 없어지고 희극도 비극도 전형적인 스타일의 사랑 이야기도 파국도 없어져서, 단추 한 개도 본드가의 양복쟁이들이 다는 방식으로는 달려 있지 않을 것이다. 삶은 규칙적으로 배열된 일련의 마차 등이 아니라 빛무리이며, 의식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반투명한 외피(外皮)이다. 

55 조이스씨는 정신적이다. 그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머릿속에서 깜빡이는 내밀한 불꽃의 명멸을 드러내려한다. 그리고 그것을 간직하기 위해 부차적이라 여겨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개연성이든 일관성이든 간에, 여러 세대에 걸쳐 독자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있도록 거드는 데 기여해 온 표지들을 과감히 무시해 버린다. 

57 작가로 하여금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게 하는 한,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소설가의 의도에 다가가게 하는 한, 어떤 방법도 옳고 모든 방법이 옳다. 

60 〈소설에 걸맞은 재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소설에 적합한 재료이다.


베넷 씨와 브라운 부인

63 울프는 1923년 11월 17일 『뉴욕 이브닝 포스트New York Evening Post』, 1923년 12월 1일 『네이션 앤드 애시니엄Nation and Athenaeum』에 게재한 「베넷 씨와 브라운 부인Mr. Bennet and Mrs. Brown」이라는 글을 확충하여 1924년 5월 〈케임브리지의 이단자들Cambridge Hereties〉이라는 모임에서 읽었고, 이를 다듬어 〈소설의 인물들Character in Fiction〉이라는 제목으로 1924년 7월 『크라이티어리언Criterion』에 실었다. 

64 그는 현재 젊은 소설가 중에 일류가 나오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리얼하고 참되고 설득력 있는 인물을 창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끌어냅니다. 

64 아널드 베넷은 1923년 3월 28일 『카셀스 위클리Cassell’s Weekly』에 발표한 「소설은 퇴보하고 있는가?Is the Novel Decaying?」라는 글에서 젊은 세대의 소설을 이렇게 비판하고, 특히 울프의 『제이컵의 방Jacob’s Room』을 예로 들어 작가가 독창성과 영리함을 추구하느라 〈기억에 남을 만한〉 인물을 창조하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울프가 처음 쓴 「베넷 씨와 브라운 부인」은 이런 평가를 반박한 글이다. 

65 에드워드 시대란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뒤이어 에드워드 7세 치세인 1901~1910년 또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4년까지를 일컫는다. 조시 시대란 하노버 왕가의 조지 1, 2, 3, 4세가 다스렸던 1714~1837년을 말하지만, 20세기에는 조지 5세 치세(1910~1936)을 비공식적으로 〈조지 시대〉라 일컬었다. 

66 그것은 좀 더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1910년 12월이나 그 즈음에 인간이라는 존재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67 『아가멤논』을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여러분의 공감이 거의 전적으로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쏠리 않는지 보십시오. 

68 인간관계가 변함과 동시에 종교와 행동거지와 문학에서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변화 중 한 가지를 1910년 즈음에 두기로 합시다. 

80 에드워드 시대 작가들은 인물 그 자체, 작품 그 자체에는 결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90 그러므로 조지 시대 작가들은 기존의 방법부터 던져 버려야 했던 것입니다.

98 끝으로 한 가지 엄청나게 대담한 예언을 하자면 ─ 우리는 영국 문학의 위대한 시대 중 하나의 언저리에 있습니다. 그곳에 도달하려면, 브라운 부인을 결코, 결코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서평 쓰기

125 존슨 박사를 위한 비평가들은 과거의 작품들 및 문학의 원리를 다루는 데 비해, 서평가들은 막 인쇄된 새로운 책들을 품평했다. 
 
127 그는 작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고, 대중을 설득하여 책을 사거나 안사게 만들수도 있었다.

128 서평은 더 신속하게 짧아졌을 뿐 아니라 수적으로 엄청나게 급증했다. 이 세가지 경향은 엄청나게 파괴적인 영향을 미쳐 서평의 쇠퇴와 몰락을 가져왔다. 

128 서평 수의 급증은 이런 효과를 거의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129 〈이것은 수백 년 동안 기억될 시이다〉, 〈실제로 구역질이 나오는 대목들이 여러 군데 있었다〉 같은 서평을 인용하고, 그 자신의 입장에서 〈직접 읽어 보십시오〉라는 권유를 달게 되는 것이다. 이 권유 자체가 오늘날의 서평이 모든 방면에서 실패했음을 말해 준다. 

142 서평은 자의식을 고조시키고 힘을 약화시키며, 쇼윈도와 거울은 사람을 가두고 주눅 들게 한다. 그 대신 토론을, 두려움 없고 사심 없는 토론을 도입함으로써 작가는 폭과 깊이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기우는 탑

242 즉시 침입합시다. 문학은 그 누구의 사유지도 아닙니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거기에는 국경도 전쟁도 없습니다.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걸어 들어가, 자기 길을 스스로 발견합시다. 그럴 때 비로소 영국 문학은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아 구렁을 건널 것입니다. 우리 같이 평민이요 아웃사이더들이 그 나라를 우리 자신의 나라로 만들 때, 책을 읽고 쓰는 법을, 어떻게 보존하고 어떻게 창조할지를 스스로 배울 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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