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사회지리학 4-2

 

2024.09.11 🎤 사회지리학 4-2

4강 인종

• 일시: 2024. 9. 11.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704


책을 펴보자. 150페이지의 인종.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인종", 중요한 말이라는 느낌이 올 것이다. 사회지리학 책에서 여러분들이 딱 하나 얻어가야 되는 개념이 있은 사회적 구성이다. 극단적인 지점이 있지만 문화적 구성물,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하나의 종에 속하며, 인종은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미신"인데, "인종 분류의 기준이 되는 피부색의 차이가 실질적인 유전학적 차이와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인종이라는 말을 사실 쓰면 안 되는데 사람들이 워낙 습관이 되어 있으니까 인종이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쓴다. 그다음에 151페이지 보면 "피부색과 관련된 유전자는 지능, 일에 대한 능력 또는 전반적인 행태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흑인과 백인의 범주 속에 어떤 사람이 포함되느냐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고정되어 있지 않다. 가령, 19세기에 미국으로 이주했던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경우 언제나 백인으로 간주된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경우 언제나 백인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미국 사회의 주류는 화이트,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이다. 이 네 가지가 충족이 되어야 화이트라고 얘기를 한다.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s)라고 하는데, 피부 색깔만이 아니다. 피부가 하얗고 앵글로 색슨족이고 그다음에 프로테스탄트, 이것이 19세기 미국 사회에서 백인이라고 말할 때 가리킨 말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피부는 화이트이다. 지금 현재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이 아일랜드계이다. 그 사람들은 앵글로 색슨이 아니라 켈트족이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가 아니라 가톨릭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존 F. 케네디 이후로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대통령이다. 미국는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가톨릭 신자가 대통령이 되기 굉장히 어려운 나라이다. 그러니까 아일랜드 사람들은 앵글로-색슨과 프로테스탄트에 걸려서 백인으로 간주가 안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예전에는 소방대원하고 경찰 중에 아일랜드 출신이 많았는데 하층 직업이기 때문이다. Whiteness라고 하는 것을 규정하는 게 그만큼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미국에 초창기에 도착한 아일랜드인들은 수년 동안 인종적으로 앵글로계 이민자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아일랜드의 종교가 가톨릭으로서 북아메리카의 주요 종교인 프로테스탄트와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창기 아일랜드인들은 사회적으로 유색인(non-White)으로 분류되었다." 번역이 유색인이라고 되어 있는데 non-White이다. 중요한 지점이다. White의 반대말은 non-White인데 유색인이 아니라 백인 빼고 전부이다. 우리 말로 비-백인이다. 백인 빼고 전부, 백인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WASP 안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은 다 non-White이겠다. 미국 사회의 역사를 보면 non-White 안에 포함되는 것 또는 non-White 안에 포함되어 있던 인간 집단을 빼내서 White 안으로 집어넣는 과정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미국사》를 봐도 그런 얘기가 나온다.  한국 사회는 상대적으로 이민자들로 구성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것이 별로 없다. 사실은 한국 사람들은 백인이냐 흑인이냐 보다는 한국 사람이냐 아니냐를 따진다.  

152페이지에 인종화racialization이라는 말이 있다. "인종이 문화적, 정치적 과정을 통해서 존재하도록 만들어지는 과정", 자기가 어떤 특정한 인종 집단에 속하도록 스스로를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을 racialization이라고 한다. 좋은 의미도 있고 나쁜 의미도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인종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걸 알 수 있다. 152페이지 맨 밑 부분을 보면 "인종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지만 늘 신체에 체화되어 있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색깔로 드러나기 때문에 그렇다. 신체에 체화되어 있다 라고 하는 것에 포인트가 있다. 그리고 그 신체에 체화되어 있는 모습은 이를테면 단순화한다. 뜻밖에도 미국에서는 성공회Anglican Church가 미국 사회의 주류였다. 조지 부시 집안이 성공회 집안이다. 로마 카톨릭보다도 의외로 이 사람들이 백인으로 간주된 세월이 길다. 이 사람들은 무엇이 Whiteness인지를 규정하기 위해서, 기득권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의 경계를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화이트가 이 지점에 가면 괴로운 것이다. 《백인의 취약성》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꼭 읽어야 하는 건 아닌데 참조해볼 만한 책이다. 백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굉장히 당당하고 대단한 권력인 것 같지만 백인으로 규정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사회적으로 민감하고, 시대가 바뀜에 따라서 백인으로 산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규정하고 강요하기가 어렵다. 152페이지 오른쪽 편에 보면 "인종의 사회적 구성은 백인과 피부색이 밝은 사람들을 유리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로 뒷받침된다. 가령, 인종 범주는 사회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한다."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것은 사회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하는데,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서 그것을 사회에다가 유포하고 정당성을 확보하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네트워크가 발전한 세상에서는 그것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흔히 하는 말로 백인의 민낯이 까발려지면 금방 유포가 될 것이다. Whiteness의 신성함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지키기가 참 어려울 것이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인종주의자들은 자기가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해서 끊임없이 궁리를 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순수함을 증명하는 것이 더러움을 증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백인과 피부색이 밝은 사람들을 유리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지키기가 어렵다.  

"인종차별주의란 백인성(Whiteness)과 같은 인종·민족 집단적 범주를 사회적 위계의 근거로 사용하는 이데올로기적 입장이다."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유엔에서도 그렇고 인종이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과학적 개념이 아니다 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인종주의가 예전에는 피부색을 가지고 차별을 했다면 이제는 신인종차별주의가 등장했는데, "서양의 문화가 나머지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신인종차별주의가 새롭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은 최근에 등장한 것은 아니고, 계몽주의의 신화이다. 계몽주의 신화는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에서 기원을 해서 식민주의를 통해 전파되었다. 18세기 계몽주의 그다음에 19세기 식민주의를 거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이것이 뿌리가 놓여 있다가, 그때는 피부색을 가지고 인종주의가 성행을 하다가, 피부색에 의한 차별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자 문화를 가지고 이렇게 하는 것이 표면으로 올라오기 시작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원래 있었으나 확 드러나고 있지 않았는데 이것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을 했다. 오늘날에는 신인종주의가 가장 강력한 의미에서 인종차별이다. 

156페이지 인종과 민족성 연구하기:의 용어의 의미에 대하여를 보면 박스 안에 있는 둘째 문단을  외우고 공책에 정리해야 한다. "인종은 피부색의 차이와 피부색과 인간의 행태 및 정신 능력을 비과학적 상관관계를 근거로 하는 사회적 구성물이다." 비과학적인데 관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민족성은 문화, 언어, 종교가 유사하고, 공통의 기원에 대한 사실이나 인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서로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집단 범주의다." 한국 사람들은 인종보다는 민족성 개념을 가지고 동류를 따진다. 오히려 인종보다는 건전한 개념일 수 있다. "민족성은 이런 특성을 포함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공통의 기원이나 문화에 대한 공유된 믿음을 근거로 개인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집단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혼혈인도 많아졌고 이주 결혼한 사람들도 많아져서 단군의 자손 얘기를 안 한다. 그 자리에 한국 사람들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말하자면 호감 또는 능숙한 정도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한국인의 심성 구조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야 된다.  

인종은 방금 전에 읽은 것처럼 비과학적 상관관계를 근거로 하는 사회적 구성물이다. 오히려 민족성이라고 하는 것을 집단 전체성을 만들 때 굉장히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오늘날의 인종 차별을 피부색에 근거해서 하는 것은 공식적으로 어디서든 지탄의 대상이다. 그러니까 문화적인 차별을 많이 한다. 그걸 극복하는 방법은 문화적으로 우월한 집단인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문화적인 수준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이 굉장히 중요하다. 흔히 그것을 두 글자로 국격이라고 한다.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굉장히 네트워크 밀도가 조밀한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 교류가 잘 일어나는 반면에, 그러니까 예전에는 중심 지역이라고 하는 곳에서 주변부 지역으로 일방적으로 네트워크가 퍼졌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주변부에서도 중심부로 네트워크가 간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동등한 위력을 갖고 있다. 중심부라고 하는 것과 주변부라고 하는 것의 차이가 줄어들었다. 그러므로 문화적으로 어떤 우월성과 열등성들은 예전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생각을 해서 문화적으로 교양 있는 어떤 사람들, 집단 전체적으로 교양 있는 집단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