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ε. Vindication of Tradition」를 듣고 정리한다.
2024.09.16 ε. Vindication of Tradition, Ch. 3
• 야로슬라프 펠리칸Jaroslav Pelikan, ⟪전통을 옹호하다 - 전통의 의미와 재발견, 회복에 관하여⟫ (The Vindication of Tradition: The 1983 Jefferson Lecture in the Humanities, 1984)
• 텍스트: buymeacoffee.com/booklistalk/vindication-tradition-ch-3
야로슬라프 펠리칸의 《전통을 옹호하다Vindication of Tradition》, 오늘은 챕터 3을 읽겠다. 지난번 챕터 2 얘기를 조금 더 해보면 전통을 회복한 사례가 있다. 그러면 전통을 회복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회복했으니까 그것을 하나도 틀리지 않게 그대로 지켜야 한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고, 회복했으니 되었고 우리는 오늘을 살자 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역사로 간주한다 라고 하는 것도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가령 신라의 삼국통일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인가. 사실 끄집어낼 게 없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과거의 문헌을 따져 묻는 사람들에 대해서 쓸데없는 짓 한다 라고 얘기를 할 수도 있다. 지금 눈앞에 놓여 있는, 제 방 창문 밑에 3단 책꽂이가 있는데, 중국 고고학, 중국 지식인들과 정체성, 중국의 예치 시스템, 송학의 형성과 전개, 송나라의 슬픔, 그다음에 중종의 시대, 논쟁으로 보는 중국 철학 그다음에 청나라 황제 때의 사고전서, 성리학에서 고증학으로, 텍스트의 제국 그다음에 영남 사림파의 형성, 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 불씨잡변, 조선왕조의 기원,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런 책들이 있다. 제 앞에 있는 책들 중 오늘날을 다룬 책들은 없다. 그리고 모두 역사 책들이다. 그러면 이런 책을 읽어서 뭐 하는가, 그냥 알아냈으니까 되었다. 그냥 알아내는 일 자체를 업 삼아서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는가.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과거를 알려준다는, 어찌 보면 참으로 쓸데없어 보이는 그런 일을 하면서 먹고 사는 거 아닌가. 그것도 하나의 직업이니까 인정을 하겠다 하는 태도가 있을 수 있다. 토마스 제퍼슨 같은 경우에는 그런 것을 할 필요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이다. 전통을 경시하고 심지어 더 나아가서 그것을 파괴할 것을 주장하는 태도들도 있다. 여기서 펠리칸이 얘기하는 대표적인 것이 토마스 제퍼슨인데, "그에게 과거란 부패하고 죽은 것이었다. The past was for him corrupt and dead." 그리고 루터는 아주 명료하게도 인간이 만든 전통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있는 규약, 루터의 표현을 보자면 사람들 사이에 있는 규약Menschensatzung,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본래의 순수한 내용과 대립되는 것인데, 이것을 강조했던 사람이다. 루터 얘기는 좀 어이가 없는 게 성서도 인간이 기록했다는 걸 꼭 놓치기 쉽다. 루터로 돌아가면 큰일 난다. 정말 극단적인 태도가 생긴다.
84 마르틴 루터 역시 '전통을 옹호하다'라는 강연 제목을 마음에 들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의 전통들', '사람들 사이에 있는 규약'Menschensatzung이라고 불리는 것을 경멸했으니 말이지요.
그러면 전통은 상대적이고 역사에 좌우되지만, 진리는 절대적이고 역사라는 변질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전통을 경시하고 심지어 파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16세기 종교개혁에서 나타난 전통 파괴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비판적 방법론과 성서 문헌학을 익힌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 그런 사람들이 과거를 살펴보니까 우리가 불변의 것이라고 알고 있던 것들이 역사 속에서 생겨난 일시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전통을 비판하는 사람들이라 해도, 비판이라는 말에 주목을 해보면, 무엇을 기준으로 비판하는가 라고 얘기할 때의 그 규범이 있다. 불변의 규범이라고 그 사람들이 제시한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자연법과 자연을 창조한 신의 법the laws of nature and of nature's God, 이런 것을 기준으로 해서 영원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자연법 사상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신플라톤주의 무렵부터 생겨난 것이다. 그것이 스토아주의로 전개되었다. 그때는 종교와 철학이 안심입명,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는 데 기여하는, 다양한 paganism의 계보라는 것은 사상의 혼합 시대이기 때문에 어렵다. 그 계보를 찾아내는 게 어렵다 하더라도 자연법과 자연을 창조한 신의 법이라고 하는 것, 토마스 제퍼슨이 근거를 가지고 했던 얘기인데, 그것 역시 역사적인 산물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집약한 것이 바로 19세기의 역사비평 방법론이다.
84 전통은 상대적이고 역사에 좌우되지만, 진리는 절대적이고 역사라는 변질과 무관하다고 생각했지요.
86 "자연법과 자연을 창조한 신의 법"the laws of nature and of nature's God은 변함없고 자명하다고 여겼지만, 이제 이조차 역사라는 변화의 산물임이 드러났습니다.
사상사에서는 19세기를 전반적으로 역사주의의 시대라고 말하는데, 19세기를 사상사에서 역사주의 시대로 만들었던 가장 중요한 원천이 바로 역사비평 방법론이 확립된 것이다. 역사 비평 연구method of historical-critical study는 19세기에 등장했던 것이다. 그래서 19세기는 위대한 역사가들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 사람들이 무엇을 남겼는가에 대해서는 굉장히 논란의 여지가 많다.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바르톨트 게오르크 니부어Barthold Georg Niebuhr,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hr와 혼동하면 안 된다, 이 사람은 로마사 연구자이다. 그리고 아우구스트 뵈크August Boeckh, 아테나이 국가 경제Die Staatshaushaltung der Athener,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라 제가 여기에 얘기했고 그다음에 테오도어 몸젠Theodor Mommsen, 랑케Leopold von Ranke,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사비니Friedrich Carl von Savigny, 이어서 막스 베버Max Weber나 에른스트 트뢸치Ernst Troeltsch, 에른스트 트뢸치는 여기서 여러 번 얘기가 되는데, 유명한 책으로느 역사주의와 그것의 극복Der Historismus und seine Überwindung과 정치윤리와 기독교Politische Ethik und Christentum가 있다. 그리고 기독교의 절대성Die Absolutheit des Christentums und die Religionsgeschichte이라는 신학 책도 있다. 역사주의에 관한 한 틀이 트뢸치의 책을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것은 기회를 좀 보겠다.
막스 베버가 널리 알려진 것에 비하면 트뢸치는 조금 덜 알려져 있는데 신학자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런데 방법론의 엄격함이라든가 철저함이라든가 이런 것을 따지면 베버보다 더 탁월하다. 베버는 역사학자는 아니다. 역사적 방법을 가지고 사회 연구를 했고 사회사의 한 장르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베버의 연구 업적이, 이를테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같은 경우도 정신사적 또는 정신학적인 어떤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방법론 자체를 정립한 건 아니다. 베버는 몇 가지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개념을 내놓은 건 있어도 역사학적 방법론, 역사주의의 방법론에 기여한 사람은 아니다. 베버의 학문 방법론이라고 하는 것이 가치 중립적인 것 또는 생애기회와 같은 사회학의 방법, 개념들을 주로 내놓았을 뿐 치밀하게 역사를 어떤 식으로 탐구를 해야 되는가 또는 역사 서술 방법의 변화를 만들어낸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트뢸치가 굉장히 탁월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 비평 연구method of historical-critical study라고 하는 방법론, 역사적 비판적 또는 비평적 연구라고 하는 방법론이 성립했다.
그러다 보니 철학 사상에서도 철학 체계의 발전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하는 것들을 반드시 서술해야만 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19세기의 헤겔적 역사학 이후로는, 헤겔적 철학사란 자기 멋대로 쓰는 철학사를 말하는 것으로, 나는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해라고 쓰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 같은 경우는 헤겔을 철학자도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사실 그렇게 보면 나는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라고 정한 것을 기준으로 해서 다른 것들은 다 틀렸고 신경도 쓰지 않겠어, 관심도 갖지 않겠어 라고 하는 것이 헤겔적인 철학사 서술 방법이라면, 굉장히 우직하게 단순화해 보면, 그런 식으로 치면 버트런드 러셀도 헤겔주의자이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철학이라고 여겨지는 것들만 기준으로 해서 쓰다 보니까 헤겔은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런 태도 자체가 헤겔적인 것이다.
19세기를 지나면서 역사주의historicism라고 하는 것이, 역사주의의 방법론이 성립하게 되었다. 펠리칸은 역사주의를 "전통을 상대화하기 위해 역사를 활용하는 입장"이라고 써놓았다. 왜 이렇게 보충해서 써놓는가. 칼 포퍼가 《역사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에서 비판하는 역사주의라고 하는 것은 역사에 어떤 목적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 목적을 향해 역사가 진전해 가고 있다 라는 형이상학적인 태도를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일반적으로 역사주의historicism라고 하는 말은 전통을 상대화하기 위해 역사를 활용하는 입장을 가리킨다. 그래서 펠리칸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로 그 말을 괄호 안에다가 써놓았다. 칼 포퍼가 사용하는 의미는 굉장히 특이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것은 사실 우리가 잘 알지 못해도 된다. 전통이 전개된 과정을 역사에 활용하는 입장, 전통이 전개된 과정을 역사라는 무대 위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역사주의이다. 바로 이런 태도 위에서 사상을 공부하면 사상사이다. 사상사 전통이 있다 라고 하면 그것을 반드시 역사라는 무대 위에서 일단 살펴보고, 그것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살펴보고 그렇게 공부를 해야 된다. 이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반면 헤겔 역사 철학은 그런 것은 아니다. 헤겔의 역사철학은 칼 포퍼가 지적하고 있듯이 아주 강력한 역사 목적론을 가지고 있다. 헤겔 역사철학이 그런 목적론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헤겔의 방법론이 이런 역사주의에, 즉 전통이 전개된 과정을 역사라는 무대에서 이해해야 한다 라는 강력한 요구를 갖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고 그게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예술철학 강의이다. 헤겔은 예술을 그런 식으로 본다. 헤겔의 종교 철학 강의는 헤겔이 생각한 삼위일체론이 있고, 그 삼위일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본다. 강의마다 조금 다른데, 역사철학 강의는 역사 목적론을 얘기하고 있고, 예술철학 강의는 역사주의의 방법이 적용된 예술, 종교 철학 강의는 삼위일체론을 구축하기 위해서 삼위일체의 역사를 검토하는, 그러니까 자신이 내놓은 테제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과거의 교리들을 소재로 삼는 그런 못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89 자신들이 소중히 간직해 온 신념의 권위를 역사주의historicism(이 말은 이제 전통을 상대화하기 위해 역사를 활용하는 입장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가 위협한다고 생각한 이들은 그리스도교 신학자와 성직자뿐만이 아니었습니다.
93 전통이 전개된 과정을 역사라는 무대 위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에 고무되어 역사가들이 수많은 비평판과 연구 논문들을 내놓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연구자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을까요?
19세기 이후로는 역사주의라고 하는 것, 즉 역사 비평 연구라고 하는 건 피할 수가 없다. 이제는 무작정 할 수가 없고 누구도 이것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역사 비평 연구 이후에는, pos method of historical-critical study 이후에는 전통을 어떻게 탐구할 것인가가 심각한 문제로 제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펠리칸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3번을 말한다. "폐허가 된 성가대"가 들어가 있는 bare ruined choirs는 챕터 3에 대한 설명을 다 하고 난 후 읽어보겠다. 전통이 지닌 인간적 속성을 인정하면서도, 너무나 인간적인 속성, 소멸할 운명에 놓인 것이다. 전통이라고 하는 것도, 우리가 철석같이 지키고 있는 전통이라고 하는 것도 가만히 보면 역사 속에서 소멸할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바로 그러한 속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적이기 때문에 지금 당대에는 특정한 규범으로 기능하고 또 구속력도 가지고, 또 심지어 전통을 성스러운 것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그러려면 전통을 어떻게 연구해야 할 것인가, 그런 것을 생각을 해볼 때가 되었다는 얘기이다.
96 '성스러운 전통'에 대한 역사 비평 연구가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은 이제 그 누구도 세우지 못할 것입니다. 사상사, 과학사, 신앙의 역사는 이미 "폐허가 된 성가대석"으로 가득합니다.
97 우리의 지적 · 도덕적 · 정치적 · 영적 유산인 전통이 지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속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럼엗 (어쩌면 그런 이유로) 이 전통이 규범으로 가능할 수 있으며 구속력 있음을 긍정하려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 나아가 이를 성스러운 전통이라 부를 수 있다면 어떠한 의미에서 그럴 수 있을까요?
그다음에 책 97페이지에 보면 거의 한 페이지에 걸쳐서 긴 문장이 있다. 테리 이글턴은 지나치게 멋을 부린다는 느낌이 있는데, 펠리칸이 사실 굉장히 멋진 레토릭이 많다. 1960년대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했듯 미국 헌법을 백인 남성 노예주들이 만들었다. 버나드 베일린의 《미국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 찰스 비어드의 《미국 헌법의 경제적 해석》와 같은 책에서 다 다왔다. 지금은 찰스 비어드의 태제 역시 무너졌지만 미국 헌법의 경제적 기원이라고 할 때, 아니 경제적 기원이 어디있어 정치적인 것이지 라고 했던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던 연구들이 있다. "1960년대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했듯 미국 헌법을 '백인 남성 노예주들'이 만들었다고 한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인류사에서 가장 압도적인 깨달음을 얻은 계기가 쉐마, 즉 "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하느님이시오,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라는 기도에서 표현하듯 불타는 떨기나무 사건이 아니라, 부족신 관념에서 시작해 수 세기에 걸친 진화 과정을 거쳐 유일신교에 이른 것이고, 그다음에 불타는 떨기나무와 신나이 산이라는 전통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저는 이렇게 읽는다. 신명기 6장 4절의 "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하느님이시오,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라는 그 표현을 엄청난 깨달음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이 신명기의 구절이 만들어졌을까를 생각한다. 부족신을 거쳐서 유일신교에 이르렀고 그다음에 신화의 전통이 만들어졌다. 시나이 내러티브라고 하는 perikope가 있는 것이다. 그 시나이 perikope 안에서 서사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다음에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교회가 종말에 대한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출발했으며 이 기대가 꺾인 데 대한 보상으로 전통과 전례와 교리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이게 역사주의에 의해서 또는 역사비평 연구에 의해서 밝혀진 사실들이다. 그러니까 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교회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그릇된 기대가 꺾였던 것, 종말이 오지 않았다는데 어떻게 할까. 사람들에게 인지부조화가 일어났다. 그다음 "이렇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비판적 전통사의 가설 중 일부 또는 전부가 사실이며 이 가운데 하나 이상을 우리의 전통으로 긍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역사가 만든 전통의 공동묘지 곁을 지나면서 애써 의연한 척하는 일 없이," 그동안 철석같이 믿었던 전통들이 죽어버린 것을 의연한 척하면서, 계속 신조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부를 수 없다. 신명기에 나와 있는 그 말이 어떻게 성립되었는가, 모세와 시나이 내러티브에 대해서 사상사적으로 연구를 해서, 역사 비평 연구를 통해서 이제 알았다. 그러면 그다음에 과연 신앙심을 가지고 신명기를 읽을 수 있겠는가. 나의 신조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삼위일체에 관한 칼케돈 신조가 성립이 되었는데, 그것은 고도의 정치적인 타협이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 믿나이다 하고 고백할 수 있겠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것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제 펠리칸은 생각한다. 첫째, 특정 전통을 연구하고 그 전통의 역사적 전개를 파악한 다음에 전통 개념을 규정을 해야 된다. 여기서 트뢸치의 《역사와 윤리》로 번역된 역사주의와 그것의 극복Der Historismus und seine Überwindung 얘기가 있다. 그러니까 18세기와 19세기 역사주의는, 트뢸치가 속해 있는 그 역사주의는,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상대적인 것들을 발견함에 따라 가장 풍부한 증거를 얻었고, 그리고 에른스트 트뢸치를 통해 가장 도발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서술되었다. 역사주의라고 하는 방법론을 통해서 기독교 전통에서 우리가 철석같이 틀림없다고 여겨왔던 신조들이 사실은 역사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걸 알았다. 그러면 이제 신앙은 깨뜨려질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극복할 것인가. 트뢸치의 책 제목인 역사주의와 그것의 극복, 역사주의에 의해서 정말 폐허가 된 성가대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역사주의에 의해서 전통적인 신조는 다 깨졌다. 그러면 어떻게 이것을 극복해낼 것인가 하는 것이 사실 심각한 문제였다. 그리고 전통 안에 있는 기원에 대한 이해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가. 즉 그것을 회복할 것인가 폐기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선택해야 되는 문제가 있다.
98 우선 특정 전통을 깊이 연구해서 그 전통의 역사적 전개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알기 전에는, 전통 개념 자체를 규정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99 18세기와 19세기 역사주의는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상대적인 것들을 발견함에 따라 가장 풍부한 증거를 얻었고, 에른스트 트뢸치를 통해 가장 도발적이고 체계적으로 서술되었습니다.
그다음에 나온 것이 전통 너머의 길에 대한 탐구이다. 증표token와 우상idol, 성상icon. 증표token라는 것은 증표 너머의 존재를 보게 하지만, 이 존재를 구현하지는 않고, 그 증표 너머의 존재가 우연히 드러난 표상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을 보면 삼위일체의 흔적이라는 게 있는데 그것이게 징표인 것 같기도 하다. 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우주론적 신존재 증명을 보면 그렇다. 그리고 우상이 있다. 자신이 표상하는 존재를 구현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집중하게 한다.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본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표상하는 존재를 구현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icon이라고 하는데, 전통이 과거 보존과 반복을 목표로 하면 우상이 된다. 이게 바로 완고한 구조주의 또는 전통주의이다. 전통 그 자체를 위한 전통, 전통이 과거의 보존과 반복을 목표로 하면 우상이 되고, 그러니까 우리는 전통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해도, 널리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과 적절한 수준의 특수한 형식을 취한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102 우상은 자신이 표상하는 존재를 구현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너머의 존재를 보게 하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듭니다.
103 반면 증표는 증표 너머의 존재를 보게 하지만, 이 존재를 구현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존재의 우연한 표상일 따름이지요.
103 '이콘'icon이라 불리게 된 성상은 자신이 표상하는 존재를 구현합니다.
103 어떤 전통이 과거를 보존하고 반복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는다면 이는 우상이 됩니다.
이제 구체적인 방법론으로는 전통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요소들을 요약하고 재서술하고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정은 의사결정 과정의 다수결인데, 민주공화국에서 공화국은 무엇인가. 공화주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공화주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장 먼저 표현해 놓은 문서는 리비우스의 《로마사》에 있다. 가령 키케로의 공화주의라는 개념을 받아들여서 뭔가를 한 피렌체 공화주의자는 별로 없다. 오히려 마키아벨리가 강력하다. 그러니까 전통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요소들을 요약하고 재서술하고 회복하는 것, 리비우스의 《로마사》에 있는 내용을 받아들여서 《로마사 논고》를 쓰고 이런 것들이다. 그것이 구체적인 방법이다. 우리와 마키아벨리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러니까 관계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은 《로마사 논고》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발견해서 읽어야 할 필요성을 얘기하는 것, 그것이 사상사 연구자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각 전통의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서는 이 전통을 구성하는 이 문헌에 충성해야 되는데, 펠리칸이 여기서 예를 드는 것은 미국 헌법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사람들, 대한민국의 전통이라고 하는 것, 그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충성해야 한다. 일단 공직을 맡으려면 충성 서약을 해야 하고 바꾸고 싶으면 그 안에서 변화를 인식하되 연속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좀 더 공리를 해보기로 하고, 그렇다면 이것은 역사적 상대주의와 완고한 구조주의, 완고한 구조주의는 챕터 4에서 나온다. "전통은 죽은 이들의 살아있는 신앙이고, 전통주의는 살아있는 이들의 죽은 신앙입니다." 여기까지 오면 이제 챕터 4를 읽을 때 무슨 내용이든지 이해하기가 수월해질 것이다.
106 역사로서의 전통을 위한 변론, 적어도 우리가 이어받은 전통의 역사를 위한 이런 변론은 붕괴 직후에 급조한 조잡한 변명이 아닙니다. 이건 전통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요소들을 요약하고, 재서술하고, 회복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108 각 전통의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서는 이 전통을 구성하는 이 문헌에 충성해야 하고, 공직을 맡으려면 특별한 충성 서약을 해야 합니다.
109 헌법 개정, 교리 정의 같은 절차보다 훨씬 더 복잡한, 깊이 있는 차원에서의 발전이 있어야 한다고, 변화를 인식하되 연속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여기지요.
앞서 폐허가 된 성가대, 셰익스피어 소네트 73번으로 유명한 소네트이다. 셰익스피어가 대단한 것이 서양에서는 의외로 인생의 허무함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노래한 시가 없다. 셰익스피어 때쯤만 와도 대단한 시기인 것이다. 서양을 한번 생각해 보자. 가령 이태백은 당나라 때 사람이니까 700년대 사람이다. 700년대에 유럽이라고 한번 생각해 보자.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500년에서 700년 사이이다. 그러니까 서양은 어찌 보면 후퇴했다고 할 수 있다. 그 무렵에 인생의 허망함을 노래한 시가 없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이니까 이게 서양 사람들에게는 멋있게 느껴지겠지만 사실 당시삼백수를 읽은 사람은 셰익스피어를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소네트 73번은 인생의 가을, 그러니까 중세의 가을처럼, 가을을 맞이한 사람이 이제 나는 거의 다 살았고, 내가 거의 다 살았다는 것을 그대가 깨닫게 되면 그대의 사랑이 더 강해질 것이고 오히려 우리가 얼마 안 있으면 떠나야 될 것을 생각하게 되면 더 사랑이 강해질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That time of year thou mayst in me behold, 한 해의 그 시간, 그대 내 안에서 이런 계절을 보리라.
When yellow leaves, or none, or few, do hang, 하나도 걸려 있지 않거나 아예 없거나 또는 몇 잎만 걸려 있는 노란 잎들이
Upon those boughs which shake against the cold,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는 그 가지 위에, 그러니까 그대 내 안에서 이런 계절을 버리라. 저는 이런 계절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그리고 나서 Bare ruined choirs, 이게 바로 이제 폐허가 된 성가대이다.
Bare ruined choirs, where late the sweet birds sang. 달콤한 새들이 노래하던 폐허가 된 성가대, 흔들리는 가지를 성가대로 표현했다. 여기까지가 한 문장이다. 이를 평서문으로 만들어보면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 위에 노란 잎들이 하나도 없거나 아니면 몇 개만 걸려 있는데, 예전에는 달콤한 새들 노래하던 그런 가지, 폐허가 된 성가대처럼 보이는 그런 가지, 그런 가지를 그런 계절을 내 안에서 그대는 볼 것이다. 내가 이제 그런 계절에 도달했음을 보게 될 것이다.
In me thou seest the twilight of such day, 내게서 이미 그대는 그런 날에 어둑한 빛을 보리라.
As after sunset fadeth in the west, 석양이 서쪽으로 사라진 뒤
Which by and by black night doth take away, 점점 검은 밤이 그 석양을 앗아가고
Death’s second self, that seals up all in rest. 여기까지가 이제 둘째 문장이다. 죽음이라는 둘째 자아, 이 표현이 절묘하다. 인간의 첫째 자아는 탄생이고, 둘째 자아는 죽음이다. self라는 말을 자아라고 번역을 했는데 혼자 있는 것, 단독자, 인생을 살면서 단독자인 때가 두 번이다. 태어났을 때와 죽을 때. 죽음이라는 두 번째 단독자의 시기, 안식 속에 잠들게 하는 봉인하는.
In me thou seest the glowing of such fire, 내게서 그대는 그런 불꽃의 빛남을 보리라. 그 불꽃은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다.
That on the ashes of his youth doth lie, 청춘이 타고난 제 위의 불꽃,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사람엑 불꽃이 있긴 있다. 그런데 그 불꽃이라는 게 청춘을 다 태우고 태운 불꽃이다.
As the deathbed whereon it must expire, 그 죽음의 침대 위에서 소멸될 불빛을 보리라.
Consumed with that which it was nourished by. 불을 붙게 한 것에 의해서 소진된, 청춘 때문에 불이 붙었는데 그 청춘에 의해서 소진이 된다. 똑같은 행위가 하나는 불을 붙게 했지만 사실 불을 붙게 한 것이 사람을 소진하게 된다.
This thou perceiv’st, which makes thy love more strong, 그대가 이것을 지각한다면 그대의 사랑 더 강해져,
To love that well which thou must leave ere long. 얼마 안 있어 떠나야만 할 것을 더 사랑하게 되리니. 이게 인생의 가을이다, 더 사랑해야지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말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소네트 73, 《셰익스피어 전집》, 이상섭 (옮긴이), 문학과지성사
누런 잎 하나둘 나무에 달려 있는
늦가을 풍경을 내게서 보시겠죠.
찬바람에 떨고 있는 앙상한 가지들,
예쁜 새 노래하던 헐벗은 찬양대를 내게서 보시겠죠. 석양과 더불어
서펀으로 사라지는 그날의 황혼,
이윽고 죽음의 다른 모습, 암흑한 밤이
황혼마저 끌어가 만물을 가둬요.
내게서 보실게요, 젊음의 재에 묻힌
죽어가는 불씨를. ─ 한때는 먹여주던
불이었지만 지금은 도리어 먹혀서
임종할 자리에 누워 있어요.
당신은 이를 알고 나를 더욱 사랑하고
잠시 후 헤어질 걸 정말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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