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사회지리학 3-2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4
- 2024. 9. 8.
📚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사회지리학」을 듣고 정리한다.
2024.09.04 🎤 사회지리학 3-2
3강 도시와 촌락, 감정
• 일시: 2024. 9. 4.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704
그렇다면 어떤 것을 우리가 도시라고 부르는가. 즉 인구잠재력이라고 하는 말을 쓰면 촌락이라 해도 시골이 아닌 것이고, 거기에 주민등록을 두고 사는 사람이 많다 해도, 거주자의 수가 많다 해도 각 지점들로부터의 거리에 따른 인구 분포, 거리가 있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접근가능성이다. 접근 가능성이 떨어지면 그 도시는 죽은 도시가 된다. 도시를 활성화한다고 할 때 이런 것들을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방 소멸시대 이런 프로그램들을 볼 때 항상 조심해서 봐야 되는 이유는 지방이 소멸된다고 하는 것이 그 지방의 인구잠재력이 떨어진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 지역을 생각할 때 항상 접근 가능성을 가지고 생각을 해야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의 숫자를 가지고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도시라는 것과 촌락이라고 하는 것을 전통적인 의미에서 자연인적인 태도로 보면 안 된다 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그다음에 책 132페이지 보면, "많은 연구는 도시와 촌락에 대한 이분법적 관점이 무익하다고 지적한다.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도시와 촌락이 고도로 상호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에 요약을 한번 보자. 원래 도시라고 하는 것은 서양에서도 그렇고 한반도에서도 그렇고 도시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인간이 살아있는 아주 중요한 지역이 아니었다. 도시화가 50% 이상 진전되었을 때 산업사회학에서는 그 사회가 산업화되었다 라고 말하는데, 우리나라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도시화가 50%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60년 정도에 걸쳐서 도시와 촌락의 이분법이 작동을 해왔는데, 이제 2천년대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는 도시와 촌락의 이분법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촌락의 상호관계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구잠재력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파악을 해야 된다. 그러니까 화성시에 산다 해도 직장은 오산에 있고 수원으로 뭔가를 활동을 하고 한다면, 결국 범 수원권 또는 경기 남부 지역의 인구잠재력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야지 화성시 인구가 늘어나네, 오산시에 사람이 많아지네 하는 것은 무의미한 개념이 된다. 이제 요약을 보면 "산업혁명은 원형적 사회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다. 서유럽에서는 촌락 전원성이라는 개념이 출현하면서, 촌락은 도시와 대비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촌락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산업혁명 때문이다. 산업혁명 때문에 이 개념이 등장했다. 지금은 산업혁명의 시대는 아니다. 예전에는 농공 단지라는 게 있다. 그러니까 농촌 지역의 유휴 노동력을 이용해서 그 노동력들로 하여금 단순한 제조업에 종사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농공단지가 작동하는 데가 아무 데도 없다. 농공단지라는 곳이 있다 해도 항상 무엇을 볼 때는, 우리가 사태를 볼 때는 이것과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무엇인가를 생각을 해야 된다. 그러니까 자기가 사는 동네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도시사회학이나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 강의를 하는 이유는 수원시가 가지고 있는 인구잠재력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의를 해서 내가 뭔가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강남구 논현동보다 많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서울 사람이다 수원 사람이다 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네트워크가 되어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 연결고리들을 생각을 해야 된다.
책 141페이지의 감정을 보자. 지리학 책에서 무슨 감정인가 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개념이 있다. 사회적 변화와 도시와 촌락 이런 것은 기본 개념 몇 가지만 알면 되는데 감정은 잘 봐야 된다. "장소가 달라지면 느낌도 달라진다." 왜 그러는가. "이런 느낌의 차이는 물리적 환경, 사회적 관계, 일상적인 사물과 활동, 뿌리 깊은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장소가 가지고 있는 정서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소이다. 행복지수를 조사할 때 한국 사람들은 행복지수가 굉장히 낮은데, 전 세계 50위권이다. 행복지수가 낮은 나라들의 특징은 친족 관계가 돈독한 나라들이다. 친척 관계의 돈독함과 행복지수는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얘기이다. 간단히 말해서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가족이라든가 친척으로부터 얻어지는 게 아니라, 행복지수를 측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개인, 개인성individuality이다. 그러니까 남 눈치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성individuality 또는 주체성subjectivity부터 생긴다. "물리적 환경, 사회적 관계, 일상적인 사물과 활동, 뿌리 깊은 정체성"을 꼭 기억해 놔야 된다. 물리적인 시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물리적인 환경도 중요하다. 그런데 거기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 일상적인 사물과 활동, 뿌리 깊은 정체성 그런 것들이 어떤 특정한 장소의 정서적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 장소에 대한 정서적 차이는 그것을 채우는 물리적 환경은 똑같다 해도 사회적 관계와 거기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사물과 활동 그런 것들이 차이가 있다는 걸 꼭 기억을 해야 된다.
"감정은 일정한 정치를 내포한다." 특정한 장소가 있을 때 그 장소에 대해서 사람들마다 가지는 정서적인 차이가 있다. 아래 단락을 보면 다이나믹스dynamics라는 단어가 있다. 그 단어 앞에다 emotional이라는 단어를 쓰면, 책에는 감정적 동태라고 되어 있는데, 정서적 역동성이라고 번역을 고쳐 놓자. 사회지리학에서는 이렇게 번역할지 모르는데 철학이나 또는 감정학에서는 정서적 역동성이라고 번역한다. 정서적 역동성emotional dynamics를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요소는, 물리적 환경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벌어지는 사회적 관계와 일상적인 사물과 활동 이 두 가지이다. 백종원 씨가 여기 저기 지역 축제 다니면서 상권 활성화하러 다니는데, 거기에서 하는 게 사회적 관계와 일상적인 사물과 활동을 재구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흔히 지역 차원에서 활성화라고 하는 것이 일어나는데, 그런 말은 상권을 활성화한다는 것은 emotional dynamics를 재구성한다는 것을 말한다. 거기까지 가야 상권이 활성화된다. 정책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어떤 장소가 있을 때 그 장소의 emotional dynamics, 간단히 말하면 어떻게 느끼는가에 해당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자기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개념들 또는 주변에서 그냥 관습적으로 들었던 개념들을 가지고 분석하고 있던 것들을 emotional dynamics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분석을 하는 것은 다르다. 감정과 장소의 연계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 그리고 그 특정한 장소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하는 것에 있다. 또는 내가 거기서 소외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142페이지 왼쪽 부분에 보면 "감정은 장소가 지닌 정동역량(affective capacities)을 통해 부상하며", affective capacities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어려운 단어인 것 같긴 하지만 그냥 넘어가도 괜찮다. 오른쪽 아래에 보면은 "지각(perception)은 뜨겁다는 느낌이다." perception, sensation, conscious, cognition 이런 단어들이 있다. 그 부분의 개념 설명은 조금 이따 하기로 하고, 147페이지 요약 부분을 먼저 설명하겠다.
핵심은 특정한 장소에는 어떤 특정한 장소에 대한 emotional dynamics가 있다 라고 하는 것이다.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면 안 된다. 영어 단어는 도서관에서 외워도 되고 학습관에 가서 외워도 되고 전철 타고 가면서 외워도 된다. 절차적 지식들, 단순 암기하는 것, 그러니까 시간 순으로 정리해두는 것들은 아무 데서나 해도 된다. 그런데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던 explicit knowledge, 즉 명시적 지식들은 여러분들 머리로 재구성하라는 것이다. explicit knowledge, 즉 반성적 학습, 자기가 재구성하는 학습은 딱 정해진 자리에서 해야 된다. 아무에게서도 방해받지 않고 자기가 온전히 주인인 공간에서 애착을 가진 공간에서 해야 확실하게 나의 explicit knowledge가 된다. individuality와 subjectivity가 보장되는, 즉 emotional dynamics가 작동하는 그 place이기 때문에 학습이 아주 극단적으로 효과적으로 일어난다. 굉장히 애착이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 같은 사람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그 참호에 앉아서 읽었다고 한다. 그 참호라는 데서 어떻게 공부를 했을 것인가. 뤼시앵 페브르가 2차 세계대전 때 참전했는데 거기서 책을 한 권 썼다고 한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애착 공간이 딱 있었기 때문에, 그 장소에서는 고도의 회고적 활동이 가능한 것이다. 머릿속에 있는 이 지식들을 동원해서 자기가 그것을 인출해서 쓸 수 있는 것이다. 공간 설계를 잘해야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공간을 내가 온전히 나라고 하는 individual이 주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야 된다. 시청 앞 광장, 광화문 광장 이런 곳은 데는 emotional dynamics를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촛불 집회가 일어나는 것이다. 거기서 사람들이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이 생긴다. 그런 공간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회일수록 정치적으로 민주화된 사회, 시민의 주권이 있는 것이고, 거기서 individual로서 존중받고 주권자subject로서 존중받은 경험이 있는 공간들, 그런 공간들이 사람들에게 emotional dynamics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말하자면 정치적인 민주주의democratism의 자산이 된다. 그 훈련이 집에서부터 안 되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없다.
147페이지 "이성을 감정보다 무비판적으로 특권화하면 사회의 이원론적 위계를 재생산하게 된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이성의 우월성을 문제시하고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규범적, 배타적 구조와 담론에 도전하는 진보적 접근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성의 우월성을 문제 삼고 감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다. 지난번에 얘기한 것처럼 생각과 감정과 행동 이 세 개가 연결되서 움직인다. 그 세 개가 연결되어서 움직인다고 할 때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철학이 실수한 지점이 그것이다. 이성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성적인 지식을 확보하면 이성적인 사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근대 계몽주의의 프로젝트이다. 그게 아니라는 것이 20세기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것이고, 이성이라고 하는 것은 감정이 부스팅을 해야 움직인다. 그래야 행동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아니면 행동을 하면 그것이 감정과 이성을 형성해 낼 수도 있다. 항상 감정과 행동과 이성 이 세 가지가 같이 움직인다고 생각해야 된다. 이성 또는 생각과 감정 그다음에 행동이 같이 움직인다고 여겨야 된다. 그다음에 "감정적 형태의 앎은 신체, 정신, 환경이 합쳐진 현존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현존이라는 말은 단어가 어렵기는 한데 지금 현재의 모습,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생각하면 된다.
다시 앞 부분 142페이지에 있는 개념을 설명하겠다. 감각sensation은 바깥에서 온다. 우리 인간의 신체와 외부의 접점이 감각이다. 감각이 들어왔을 때 반응response, 그다음에 인상impression 그다음에 기억memory,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지속력이 있는 것이다. 앗 뜨거 하는 것은 response, 이렇게 좋은 게 있네 하는 것은 impression, 이것은 이렇게 주문하면 되는구나 하는 것은 memory이다. 감각은 response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impression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memory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 세 가지는 어떤 차원에서 만들어지는가.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한 response인데 어떤 사람에게 이게 memory일 수도 있다. 이것은 감각의 선입견이라고 하는 것인데, 관심도에 따라서 이 감각을 response로 보느냐 impression으로 보느냐 memory로 보느냐의 차이가 생긴다. 사람들마다 감각sensation이 들어올 때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서 다르다. 여기다가 이것을 비교를 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지각perception이라고 한다. 이 책은 사회지리학이라서 개념 설명이 정확하지 않아서 다시 명료하게 설명한다. perception은 의미 부여이다. 의미 부여라고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지각perception 단계에 들어서면서부터 의식적 재구성이 일어난다. 범죄심리학이나 이런 데서 같은 사태를 봤을 때에도 증인들의 기억은 모두 다르다고 얘기한다. 그것을 인식론적으로 얘기할 때는 기억이 다르다고 얘기하지 않고 그들이 가진perception이 다르다고 얘기한다. 인식론에서는 이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형사들은 사람들마다 기억이 제각각이더라고 얘기할 때 왜 기억이 제각각인가. 그들이 비교해서 의미를 부여해서 의식적으로 재구성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때린 놈은 기억 못한다고 하는 것은 맞은 놈에겐 굉장한 의미인데 때린 놈은 늘 하던 짓이라 기억을 못하는 것이고, 맞은 사람은 심하게 맞았기 때문에 의미를 부여해서 기억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적 인식론에서는 기억이 다른 게 아니라 지각이 다른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여기서부터 의식적 재구성을 하고 나서 이 지각들을 모아 서사를 구축한다. 이렇게 구축된 서사를 가지고 우리는 사태를 이해했다 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네가 이해한 것을 나한테 한번 얘기해 보라고 말 할 때, 무엇을 얘기하라는 것인가. 너의 기억을 얘기하라 또는 너의 인상을 얘기하라는 게 아니라 네가 이해한 대로 재구성해서 얘기해 보라는 것이다. 노트 정리를 하라고 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들이 이해한 대로 재구성해서 쓰라는 것이다. 이해했다 라고 하는 것은 재구성해서 나의 언어로 나의 관점perspective으로 말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그 프로세스가 이렇게 생긴 기는 것이다. 낱낱이 기억은 잘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호르헤 보르헤스이 쓴 소설 중에 「기억의 왕 푸네스」(《픽션들》)라고 있다. 온갖 걸 다 기억한다는 것이다. 기억의 왕 푸네스는 아주 하찮은 놈인데,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이해Verstehen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특정한 시공간 속에 또는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이해한 바가 비슷할 수 있다. 그 역사적인 국면에서 이해한 게 비슷하다 라는 걸 전제해서 사람들이 그 이해를 따져보려는 학문이 해석학이다. 빌헬름 딜타이, 해석학이라고 하는 게 있다. 예를 들어서 성서에서 마르크 복음에서의 메시지와 마태오 복음에서의 메시지와 루카 복음에서의 메시지가 조금씩 다르다. 왜 다른가. 마르코가 속해 있던 공동체와 루카가 속해 있던 공동체와 마테오가 속해 있던 공동체는 예수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달랐다. 예수에 대한 response과 impression과 memory가 있을 것인데, 이것들이 모여서 예수에게 어떤 인상을 강하게 받은 사람이 예수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코 공동체가 부여한 의미가 있고 마태오 공동체가 부여한 의미가 있고 루카 공동체가 부여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에 따라서 그들이 예수의 일대기를 쓰는데 나는 이 지점에다가 강조점을 두고 써야겠다 라고 생각한 서사의 구축 방식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면 예수에 대한 이해가 다른 것이다. 역추적을 하면 그 공동체에서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그것을 역추적해가는 학문이 해석학이다. 성서 해석학이라고 하는 게 그렇게 성립되었고, 그것이 철학의 방법론으로 들어왔고, 20세기 들어서 역사학에서 하나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특정한 시대의 어떤 서사를 가지고 그 시대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방법론으로 나왔다. 이 부분까지는 아직은 몰라도 된다. 그래도 앞서 말한 부분까지는 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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