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ε. Vindication of Tradition, Ch. 2

 

2024.09.08 ε. Vindication of Tradition, Ch. 2

• 야로슬라프 펠리칸Jaroslav Pelikan, ⟪전통을 옹호하다 - 전통의 의미와 재발견, 회복에 관하여⟫ (The Vindication of Tradition: The 1983 Jefferson Lecture in the Humanities,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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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로슬라프 펠리칸의 《전통을 옹호하다Vindication of Tradition》, 오늘은 제2장을 읽겠다. 제2장은 제1장과 마찬가지로 사례 연구들이기 때문에 한 번 읽고 정리를 하기로 하겠다. 제1장이 전통의 발견이고 제2장이 전통의 회복이다. rediscovery가 발견이고, recovery가 회복인데, 제2장에서 펠리칸은 회복과 발견이 분명히 다르다 라는 것을 앞에서도 얘기했는데, 과연 그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명시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 텍스트가 강연이니까 그랬을 것이다. 펠리칸이 그걸 몰랐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이것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발견 자체는 그냥 가만히 있을 때 내 앞에 떠오르는 게 아니다. 발견이라고 하는 것 자체는 어떤 선 이해를 가지고 무엇을 발견해야겠다 라는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다.  

예를 들어서 마키아벨리가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읽고 《로마사 논고》를 썼다. 읽을 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었겠는가, 마키아벨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읽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로부터 뭔가를 발견이 아닌 다시 발견해서, 마키아벨리 이전에도 그 텍스트를 읽은 사람은 많았을 테니까, 그러면 rediscovery해서 뭔가를 썼다. 그런데 《로마사 논고》라고 하는 텍스트를 썼을 때 어떤 의도가,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읽을 때 그 의도가 결합이 되어서 《로마사 논고》를 썼는데, 그러면서 《로마사 논고》는 이러이러한 것들을 내가 리비우스의 《로마사》에서 발견했는데 이렇게 발견한 것을 이탈리아, 지금 피렌체에서 회복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사 논고》는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통해서 로마공화정으로부터 이러이러한 것들을 찾아냈는데, 그것을 찾아낸 이유는 그것을 회복해서 오늘날 되살리자는 뜻으로 그것을 썼다. 그러니까 《로마사 논고》는 회복의 텍스트이다. 그런데 재발견rediscovery과 구별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게 잘 구별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마 제가 짐작하기로 펠리칸도 회복과 발견은 다르다 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상 그 둘을 구별해내는 것 자체가 어렵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을 해본다. 그것을 구별할 수 있으려면, 멍하게 있는 상태에서 내 눈앞에 나타난다 해서 발견이라고 하진 않는다. 멍하게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을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것에 개입해 들어갈 때야 비로소 그것이 발견되는 것이고, 그렇게 발견한 것은 전통을 회복하기 위해서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저는 전통의 발견과 전통의 회복이라고 하는 것 이 두 가지를 그렇게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사상사 공부라는 게 그렇다. 플라톤의 《국가》를 왜 읽겠는가. 그냥 시간이 남아돌아서, 딱히 할 일도 없으니까 읽는 것은 아니다. 뭔가를 그 텍스트로부터 끄집어내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의 정치 공동체에게,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지만, 한번 한마디 해보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그것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전통은 우리의 전통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도 분명히 민주정 국가니까 플라톤이 말하는 민주정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와 무관하진 않다. 우리도 70년 정도 되는 민주정의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동안 민주정이라고 하는 시간을 지내오면서 우리의 관행과 민주정에 관한 이러이러한 어떤 습속들을 형성했다. 그런 습속들 중에서도 우리도 되살려야 할 지점이 있고, 플라톤을 읽으면서 그것을 일깨워야 하는 지점도 있을 테니까, 우리도 분명히 회복해야 될 것들이 있다. 87년 6월 항쟁으로부터 그 과정들을 회복해야 될 것들도 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내야 되는 게 아니라 회복해야 될 것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 걸 생각해보면 발견과 회복이라고 하는 것을 어느 선에서 딱 잘라서 구별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제가 이 펠리칸의 이 텍스트를 여러분들과 함께 읽으면서 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얘기 중에 하나이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저 과거의 일로서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발견하고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되살려내는 것, 회복이라는 게 되살린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필리칸이 사례로 드는 것은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이다. 존 헨리 뉴먼이라고 하는 사람을 처음 들어본 분도 있겠지만, 당연히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1945년 성공회 사제였던 사람이 로마 가톨릭 교회로 개종을 한다. 아니 개종이라고 표현하기는 그렇고, 기독교도가 기독교도가 되는 것이 무슨 개종인가. 무슬림이었다가 로마 카톨릭 신자가 되는 것도 아닌, 어쨌든 그래서 로마 가톨릭 교회로 '갔다'고 표현하는 게 가장 적절할 것 같다. 펠리칸은 그리스 정교회로 갔다. 존 헨리 뉴먼은 영국 성공회Anglican Church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고 또 19세기 인문주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인문주의 운동이라든가 이런 데서 아주 자주 인용이 되는 사람이다. 존 헨리 뉴먼이 쓴 책은 《그리스도교 교리의 발전에 관한 논고Essay on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 1845》이 중요한 텍스트인데, 여기서 한 중요한 단어는 development이다. 그리스도 교리의 발전, development를 흔히 발전이라고 번역하는데, 역자가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라, 발전이라는 말보다는 '전개'이다. 전개, 이행해 가는 것, development라는 말은 꼭 가치적으로 어이없는 곳에서 좋은 곳으로 갔다 라고 얘기하기보다는 변화해 간 것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change에 해당하는 것이다. 

펠리칸이 여기서 검토하는 텍스트는 《4세기 아리우스파》라고 하는 텍스트이다. 정말 무시무시한 주제이다. 기독교 신학이나 기독교 역사나 사상사에서나 4세기 아리우스파를 한 번쯤은 거론을 해야 된다. 저도 그래서 사상사 연구자로서 4세기 아리우스파는 굉장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본다. 신학 연구에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이른바 기독교에서 삼위일체론trinitas의 성립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리우스파 논쟁이다. 아레이오스Areios라고 하는 히랍어로 불리는데, 아리우우스와 아타나시우스의 논쟁은 신학적으로만 중요한 게 아니라 삼위일체에 대한 논의를 어떤 측면에서 보느냐 할 때, 하나의 사상사 즉 그때 시대의 맥락과 교회의 권력, 주교 그다음에 콘스탄티누스가 처음으로 소집했던 니카이아Nikaia 공의회(니케아Nicaea 공의회), 그런 것들을 전반적으로 볼 때 정치 권력과 교회 권력, 이데올로기 이런 것들이 어떻게 연결되었는가, 유기적으로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ad-hoc 연결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삼위일체 교리가 성립되는 과정은 신학적으로만이 아니라 사상의 역사에서 하나의 사상이 정치 권력과 결합하여 정치 신학을 탄생시키는 아주 거대한 장관이다. 그래서 후지타 쇼조도 그런 얘기를 한다. 후지타 쇼조의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못지않게 《이단은 어떻게 정통에 맞서왔는가》도 굉장히 중요한 그 텍스트이다. 

《4세기 아리우스파 - 기원 후 325년~381년 교회 공의회를 통해 살펴본 그들의 교리, 기질과 활동 The Arians of the Fourth Century: Their Doctrine, Temper, and Conduct, Chiefly as Exhibited in the Councils of the Church Between A.D. 325 and A.D. 381》 제목을 보면 "기원 후 325년~381년 교회 공의회를 통해 살펴본 그들의 교리, 기질과 활동"으로 되어 있다. 325년이 최초의 제1차 니카이아 공의회(니케아 공의회)이고, 381년이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이다. 325년에서 381년, 50년 정도에 걸친 이 시기에 일단 기본적으로 1차적으로 삼위일체 교리가 성립한다. 삼위일체 교리는 칼케돈에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칼케돈에서 완성되기 전에 이때 성립한다. 오늘날 '니케아 신경'이라고 불리는 것은 제1자 니카이아 공의회부터 시작해서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까지, 그러니까 325년에서 381년, 이 사이에도 또 공의회들이 좀 몇 개 있는데, 삼위일체 교리의 역사에서는 중요하지 않고, 이 두 번의 공의회에 걸쳐서 성립한 신경이 '니카이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오늘날 '니케아 신경'이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제1차 니카이아 공의회에서 성립된 것은 신경이라고 불리지 않고 '니케아 신조'라고 불린다. 신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 역사적 사실 중에 하나이다. 뉴만의 책에서 기원 후 325년에서 381년 교회 공의회는 이 두 번의 공의회를 얘기하는 것이고, 그들의 교리Doctrine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 교리는 말 그대로 교리, 이론적인 것이고, 그다음에 기질temper과 활동conduct이라고 되어 있다. temper와 conduct가 중요하다. 여기 이 기질과 활동을 통해서 전통, 전승을 만든 것이다. 그러면 이것을 다시 묶어서 보면 제1차 니카이아 공의회와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통해서 살펴본 아리우스파의 교리 그리고 전통 이렇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 제목 자체가 전통과 교리의 상호작용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첫째는 삼위일체 교리와 관련된 것인데, 삼위일체 교리라고 하는 것은 미리 말해두지만, 삼위일체라고 하는 말 자체가 성서에 없다. 그런데 왜 이게 교리가 되었는가,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정통 교리의 아버지인 아타나시오스Athanasios가 삼위일체 교리를 성립시키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많이 있는데, 펠리칸에 따르면 사실 뉴만에서는 초판에서는 그렇게 했었다고 한다.  1833년에 나온 초판을 펠리칸이 검토했다고 하는데, 1871년에 3판에서는주석을 부기했다고 한다. 삼위일체 교리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카파도키아 교부들이나 또는 아타나시오스라든가 이런 사람들은 특히 "전통이라는 토대를 바탕으로 삼았는데, 이 점을 이 책[초판]에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삼위일체 교리라고 하는 것은 신약성서에 근거한 논리적인 추론의 결과로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성서와 같은 줄기로 발전해 있던 사도들의 전통을 바탕으로 해서 성립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들의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당대 사람들의 믿음, 즉 신앙의 관행과 기질과 행동 이런 것들 위에서 성립한 것이다. 그러니까 삼위일체 교리가 정통 교리다라고 말할 때는 여러분들이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그것은 성서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이다. 그래서 아타나시오스는 오히려 정통이냐 이단이냐라고 하는 것은 '전통을 충실히 존중하는가'에 따라 나뉜다고 얘기를 했다.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달리 말하면 전례, 당대 사람들의 관행 그리고 기질과 활동 이런 것들의 묶음을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4세기 교회에서는 전통이 바로 정통의 토대였다, 조금 극단적이지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늘날에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성서에 없는 말을 저 사람이 떠드니까 이단이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정통 교리를 신봉하고 있다고 하는 로마 카톨릭 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정통이라고 내세우는 것, 이러이러한 것들을 정통이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정통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성서에 있는 것들만은 아니다. 지금 삼위일체 교리, 다시 말해서 칼케돈 공의회에서 최종 공표된 칼케돈 신경의 내용, 칼케돈 신경을 받아들이는 교회들은 모두 다 칼케돈 교회라고 불린다. 아르마니아 교회라든가 콥트 교회라든가 또는 네스토리오스파 교회라든가 이런 것을 빼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독교라고 불리는 그 종파들, 교파들, 로마 가톨릭 교회, 모든 프로테스탄트, 그리스 정교회는 모두 다 칼케돈 교회에 속한다. 칼케돈 신경이라고 하는 것은 삼위일체 교리, 니카이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발전해서 전개되어서 성립한 것이다. 그런데 니카이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 성립된 삼위일체 교리라고 하는 것은 성서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전통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로마 가톨릭 교회는 분명히 칼케돈 교회에 속하는데, 로마 가톨릭 교회라고 하는 그 교회에서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두 다 성서에 있는 얘기만은 아닌 셈이 된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무엇이 이단인가 라고 말할 때는 그 이단을 '성서에 없는 얘기하니까 쟤네들이 이단이야'라고 말하면 세상의 모든 기독교는 이단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신천지를 이단으로 만들까, 이런 것들을 한번 생각해 볼 기회가 이번에 되는 것이다. 

52 그래서 1871년 출간된 제판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을 추가했지요. 교부들은 특별히 전통이라는 바탕을 토대로 삼았는데, 이점을 이 책에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어쨌든 펠리칸은 뉴먼은 회복의 과정과 그 귀결을 이런 식으로 전개했다고 본다. 아레이오스 논쟁이 양쪽에서 충돌하는 원리들이 있다. 그 원리들은 오리게네스라든가 테르툴리아누스라든가 이런 사람들의 사상적 자원들이 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케이아 학파 사이의 대립 이런 것들이 있다. 여기서 펠리칸은 그것을 상세하게 얘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도 상세하게 여기다 적지는 않았다. 그 얘기는 삼위일체론이나 아레이오스(아리우스) 논쟁 이런 것을 할 때 다뤄야 되겠다. 어쨌든 양쪽이 아타나시오스와 아레이오스로 대표되긴 하지만 꼭 그 두 사람만이 대표자는 아니다. 양쪽이 충돌하는 원리들이 있고 이 원리들을 묶어주면서도 초월하는 전통이 있다. 이 원리들을 묶으면서도 초월하는 전통을 찾았고, 발견했다. 그런데 왜 찾았겠는가, 옳다고 옹호하려고 찾았지 않았겠는가.  그것을 완강하게 거부하기 위해서 찾아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옹호하는 행위가 전통을 회복하는 행위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찾아서 그다음에 옹호하고 그리고 옹호하면 그것이 곧바로 회복이다. 찾고 옹호하면 것이 회복이다. 그렇게 되면 충돌하는 원리들 둘 다, 이것 아니면 저것 이런 식으로 양자 택일이 아니라, 두 쪽 모두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회복이다. 그렇다면 발견과 회복은 어떤 관계인가. 회복의 의도를 가지고 발견을 시도하는 것이다. 회복의 의도를 갖는다 라고 하는 것은 옹호하겠다 라는 것이다. 처음에 얘기할 때 펠리칸의 이 책 제목이 전통의 옹호인데, 옹호라고 하는 것은 바로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편들어주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전통을 발견해서 정당한 근거를 들어서 편을 들어줌으로써 회복하는 것이 바로 옹호이다. 그러니 회복이라고 하는 것과 발견이라고 하는 과정은 여기까지는 회복 여기까지는 발견,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러면 이 원리들을 묶으면서도 초월하는 전통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사도 전통이다. 사도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성서에 없는 것이다. 성서에 없는 사도 전통 안에 무엇이 속하는가를 찾아내는 것이 사실은 기독교 사상사가 하는 일이겠다. 가르침의 주요 원천이고 전통이 경전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가르침이라는 것은 설교 그다음에 관행, 성스러운 전례 행위 이런 것들이겠다. 성서와 일치하지만 또는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성서와는 다른 종류의 신학 체계, 다시 말해서 믿음의 관행들이겠다. 

55 뉴먼은 교회가 막 등장하던 시기에는 "사도전통"이 "사실상 가르침의 주요 원천"이었음을 확인했고, 전통이 경전보다 우위에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56 뉴먼에 따르면, 니케아 공의회는 이 교리를 발명했다기보다는 공식화했을 뿐이지요.

예를 들어서 부처님의 초기 설법을 담고 있는 아함경이라는 경전이 있다. 아함경이라는 경전에 '여러분 나를 금부처로 만들어서 나무아미탑불 관세음보살을 그 앞에 하세요, 108배를 하세요'라고 써 있지 않다. 그런데 절에 가면 그것을 한다. 그것은 불교 승단의 전통이다. 그러니까 그것도 당연히 정통의 어떤 방식으로 대승불교의 전통이 된 것이다.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하는데 그렇게 치면 그러면 기독교는 우상숭배 안하는가. 로마 가톨릭교회에 가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것을 형상으로 만들어서 걸어 놓았다. 또 그것도 우상숭배라고 해서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예수가 그 위에 없는 십자가를 건다. 그러면 그것은 성서에 있는가, 없다. 그런 식으로 따져 들어가서 문자주의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종교라는 건 성립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성서를 읽으라는 얘기도 없다. 이것을 성서로 해라, 이것을 경전으로 삼아라 라고 얘기한 것도 없다.  오히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믿음의 관행들이다. 저는 사도 전통, 전례 이런 것들을 믿음의 관행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러한 많은 믿음의 관행들에 근거해서 삼위일체 교리라고 하는 것이 성립해 있었는데, 점차로 서로 대립되는 종파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사람들이 이제 말을 안 듣기 시작할 때 신경의 형태로 공식화함으로써, 즉 교리라는 검증 체계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교리로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전통을 새롭게 교리화했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교리라고 하는 것은 신경과 신앙의 조항이다. 그러면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것은 권위 있는 교리라고 나는 믿을 수 없어. 그런 식으로 뭉뚱그리지 말고 가능한 한 그런 것 모든 것을 명확하게 표현을 해야 한다. 성서에 없는 것을 가지고 이렇게 얘기하지 말자 라는 얘기를 하게 된다. 적대감과 지나친 문자주의 이 두 가지가 그것에 대해서는 반항하는 태도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고, 그다음에 이제 기도의 법이라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제 전승 전례이다. 전승과 전례가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또 반항하는 태도가 나왔겠다. "성서의 진술을 해석하고 조화시키는 방법", 그다음에 3세기와 4세기 보편 교회가 성서에서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를 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이해하는 방식 이런 것들이 기도의 법으로서 제시되었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면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은밀하게 암묵적으로 내려오던 전통은 시간이 흐르면서 공공연하고 명시적인 것이 되었으며", 그러니까 신경의 형태로 집약이 된 것이다, 신경은 "논쟁의 경험과 전통의 목소리가 합쳐진 결과물"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삼위일체 교리이다. 삼위일체라고 하는 거 성서에 없다. 여러 차례 말하지만 homoousios, 同一本質이라고 하는 희랍어 단어는 성서에 없다. 그러니까 아레이오스는 이것을 거부하고 논리적으로 따져보자, 하느님이 있는데 성부다, 성자는 아들 아니냐, 아들이라는 것은 당연히 논리적으로는 하느님과 다른 존재 아니냐, 그러니까 교회는 그래 네 말은 논리적으로 맞는데 하느님과 아들은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 라고 선포를 한다. 이 선포의 내용은 지금 펠리칸이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저도 여기서 설명을 자세하게 하지는 않겠다. 왜 325년 신조에 왜 이것을 선포했는가. 하느님에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은 성서에 없는 내용이지만 분명히 사도 전통으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라고 뉴먼은 이야기하는 것이다. 

56 "사도 전통의 힘"이 약해져 "교리라는 검증 체계를 도입"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 것이지요.
56 뉴먼이 보기에 "권위있는 신경을 도입한 일"은 "새롭지만 필수적인 조치"였습니다.
58 권위있는 교리를 향한 적대감과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려는 열망은 모두 전통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61 참된 전통은 연구자들과 신학자들이 지적으로 정식화한 "신앙의 법"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수천명의 말없는 신자들"이 만든 "기도의 법"을 따랐습니다. 
62 "전통으로부터 얻은 지침"은 3세기와 4세기 보편 교회가 성서에서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를 때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63 뉴먼에 따르면 은밀하게, 암묵적으로 내려오던 전통은 시간이 흐르면서 공공연하고 명시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64 신경은 "논쟁의 경험과 전통의 목소리"가 합쳐진 결과물이라 할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계시신학과 자연신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계시신학은 하느님이 이 세계를 창조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창조가 미치지 않는 것은 없다 라고 하는 것이고, 자연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우주론적 신존재증명, 즉 에티엔 질송에서 나왔던 것이다, 우주론적 신존재증명에 따르면 자연 만물은 다 하느님의 창조의 증표들이다. 사실 자연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칼바르트 같은 사람은 그것이 아니라고 본다. 하느님에 대한 신학을 자연과학과 일치시키려고 하는, 약간의 좋지 않은 신학적 태도로 본다. 그런데 계시신학과 자연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존 헨리 뉴먼은 하느님에 관한 자연적 지식은 이교의 경륜Dispensation of paganism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고, 전통 종교에 담겨 있는 신성, 그런 플라톤주의의 언어들 이런 것들도 얼마든지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복음과 자연 종교를 연결시켜서 도덕률에 순종하라고 하는 그런 의미로서 받아들이면 된다 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우리가 자연종교라고 하는 것, 자연스럽게 생겨난 종교이 있는데, 하늘이 무섭지도 않으냐 이런 것들이 자연종교이다. 그런 종교와 기독교와 같이 신의 계시를 명시적으로 규정해서 얘기하는 계시종교가 어떤 지점에서 서로 상통하는 지점이 있는가, 그것은 바로 계시종교라고 하는 것도 그 안에 자연적 전통이라고 하는 것 원래 있었다, 자연 세계를 신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하는 그런 전통이 있었다는 것, 그렇게 해서 서로를 상통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67 본래 그리스도교 계시가 신약 본문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도 전통의 형태로, 신약과 나란히 존재했다고 본 그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67 2세기와 3세기 알렉산드리아 신학에 기대어 뉴먼은 하느님에 관한 이러한 자연적 지식을 "이교의 경륜"이라고 불렀습니다. 
69 "매우 이른 시기부터, 어떤 의미로는 삼위일체라는 관념을 제1원인과 연결하는 전통들이 있엇고, 곳곳에 퍼져 나갔다"고 그는 생각했으며 플라톤주의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71 자연 종교와 계시 종교가 맞닿는 지점은 자연적 '이성'이 아니라 계시 전통을 머금은 자연적 '전통'이었습니다.
73 아타나시우스의 시대인 4세기에 "로마는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사이의 자연스러운 중재자"였고, 로마가 아타나시우스를 "지지"한 사실은 매우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또 다른 하나를 보면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 즉 기독교 종파들은 각 지역의 고유한 어떤 신학 이론들을 만들어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안티오케이아라든가 알렉산드레이아라든가 이런 지역에서 만들어냈다. 그 두 학파의 대립이 아레이오스와 아타나시오스와의 대립, 나중에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 논쟁, 네스토리우스파 이런 데서도 계속 나타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서로 다 모아서 중재하려고 하는 이런 태도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통의 태도이다 라고 하는 것이 뉴먼의 얘기이고, 이 니케아 신조는 "보편 교회의 증거, 성서에서 유리한 논증, 각 지역의 기독교 공동체가 이미 갖고 있던 지역 전통들을 결합해서" 신경을 수립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니케아 공의회가 내놓은 325년에 니케아 신조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성서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는 그 당시 기독교도들이 또는 교부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여러 가지 전통들을 모두 다 결합해서 만들어낸 일종의 묶음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통을 발견하고 회복하고 이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역사적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 역사 연구를 통해서 전통을 회복해야 가능하다. 그게 바로 성서적 신학 사상, 이런 것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그런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74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보편 교회의 증가, 성서에서 유래한 논증, 각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미 갖고 있던 지역 전통을 결합해 신경을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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