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ε. Vindication of Tradition, Ch. 4

 

2024.09.22 ε. Vindication of Tradition, Ch. 4

• 야로슬라프 펠리칸Jaroslav Pelikan, ⟪전통을 옹호하다 - 전통의 의미와 재발견, 회복에 관하여⟫ (The Vindication of Tradition: The 1983 Jefferson Lecture in the Humanities,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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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로슬라프 펠리칸의 《전통을 옹호하다Vindication of Tradition》를 오늘 읽음으로써 이 책 읽기를 마무리하겠다. 이 책은 첫 번째 챕터가 전통의 재발견이고, 두 번째가 전통의 회복, 세 번째가 역사로서의 전통 그리고 오늘 읽을 챕터 4는 유산으로서의 전통인데, 사실 전통이라고 하는 것을 발견하고 회복하고 그리고 그것의 역사적 연원을 추적해서 오늘날에 회복하자,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heritage라고 하는 것은 서로 딱 잘라서 구별해서 얘기하기가 어렵다. 이 책은 4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지만 4개의 챕터 이야기가 사실상 겹치고 있다 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Schumacher가 쓴 "야로슬라프 펠리칸에 관하여" 부터 읽기 시작을 했다. 이 글에 있는 내용이 이 전체 책에 있는 내용을 잘 요약 정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요약만 읽어가지고는 구체적인 사례라든가 이런 걸 알 수 없으니까 우리가 본문을 읽어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보면 챕터 4의 유산으로서의 전통 안에 앞서 나온 얘기들이 다 겹쳐져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전체적으로 봐서 140페이지 정도 되는 얇은 책이지만 이 얇은 책의 핵심 내용을 알고 싶다고 하면 Schumacher의 글을 읽거나 아니면 챕터 4를 읽거나 그렇게 하면 될 것 같다. 

첫째 문장이 "전통은 죽은 이들의 살아있는 신앙이고, 전통주의는 살아있는 이들의 죽은 신앙입니다. 전통의 오명을 쓰게 된 것은 전통주의 탓이지요."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펠리칸의 다섯 권으로 된 저작인 《The Christian Tradition: A History of the Development of Doctrine》의 제1번 9페이지에 나오는 얘기이다. 그 문장이 들어가 있는 문단을 읽어 보겠다. 이 5권의 책을 가지고는 있는데 전부 다 읽지는 않았고, 이렇게 필요할 때 참조해 보려고 그리고 기독교의 역사에 관한 한 이 책은 참고서이면서 교과서이면서, 또 이런 얘기들은 성서의 전거가 무엇인가, 왜 이런 합의에 이르는가 이런 것들을 알아보는데 난외의 각주가 아주 잘 되어 있다. 그래서 교리의 역사 그리고 기독교와 그 주변 사상들의 관계 문제를 따져보고자 한다고 하면 이 책을 참조하는 게 아주 좋다. 그리고 지난번에 얘기했던 《기독교와 고전문화Christianity and Classical Culture》에서도 기독교와 헬레니즘의 대조를 통해서 기독교 교리가 무엇이고 그것에 상응하는 헬레니즘 자연신학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있다. 즉 3세기부터, 3~5세기의 사상사는 기독교와 헬레니즘의 교류, 펠리칸의 용어로 말하자면 encounter, 우연한 만남이다. 우연한 만남이라는 게, 그 지역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필연적인, 우연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했었어야만 하는 그런 만남, 그런 만남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 책도 참고서이면서 교과서이기도 한, 펠리칸의 생각이 강하게 드러나 있기는 하지만, 사실 펠리칸은 자신의 생각,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이것이다 라는 것을 면밀하게 읽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렵게 글을 쓰는 스타일이다. 왜 그렇게 쓰는지는 챕터 4에 그 이유가 나와 있기도 하다. 

"전통은 죽은 이들의 살아있는 신앙이고, 전통주의는 살아있는 이들의 죽은 신앙입니다." 이 문장이 들어가 있는 원문의 문단을 한번 보겠다.  

《The Christian Tradition》 I, p.9
Tradition without history has homogenized all the stages of development into one statically defined truth; history without tradition has produced a historicism that relativized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 in such a way as to make the distinction between authentic growth and cancerous aberration seem completely arbitrary. In this history we are attempting to avoid the pitfalls of both these methods. The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 is the most effective means available of exposing the artificial theories of continuity that have often assumed normative status in the churches, and at the same time it is an avenue into the authentic continuity of Christian believing, teaching, and confessing. Tradition is the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the dead faith of the living. 

Tradition without history, 역사가 없는 전통, 다시 말하면 역사를 고려하지 않고 전통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을 역사가 없는 전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게 바로 전통주의이다. 지금 현재 내가 전통으로서 인지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렇게 전통으로서 인지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 전통이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상태로 그냥 전통이니까 받아들인다 하는 그런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역사가 없는 전통이다. 우리가 살다 보면 그런 게 많다. 그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왜 그게 생겨났는지는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이런 것까지 지켜야 하나, 반드시 지켜야 될 만한 어떤 규범적인 이유라든가 또는 적어도 실용적인 이유마저도 없는 그런 전통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이제 전통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Tradition without history has homogenized, 동질화한다는 것은 그냥 다 묶어서 하나인 것처럼, 전혀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차별성이라든가 맥락이라든가 이런 걸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all the stages of development, 모든 발전 단계들을, into one statically defined truth, 정적으로는 고정적이라는 말로 변동하지 않는, 고정적으로 규정된 진리로 밀어넣어버리는 것이다. 이게 바로 역사가 없는 전통, 그러니까 전통주의의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다음에 history without tradition, 전통이 없는 역사는, 역사주의historicism, 모든 것을 상대화해서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가치적으로 우월한 것과 우월하지 않은 것과 이런 것들의 구별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로, 다 그때그때 생겨난 것에 불과하니까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어떤 권위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라는 태도이겠다. has produced a historicism, 역사주의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그 역사주의라는 것은 relativized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 기독교 교리 발전을 상대화한다. 역사적 상대주의라고 하는 것은 냉소주의하고 가깝다. 역사적 상대주의라고 하는 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in such a way as to, 이런 방식으로 기독교 교류의 발전을 상대화한다. make the distinction, 구별을 만들어버린다. between authentic growth and cancerous aberration, 진정한 성장과 암적인 일탈, 여기서 일탈은 상당히 상식과 도덕을 벗어난, 그러니까 정당한 또는 올바른 권위 있는 성장과 암적인 일탈, 이건 극단적인 이단이겠다, 그 사이의 구별을, seem completely arbitrary, 전적으로 자의적인 것, 제멋대로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방식으로, completely arbitrary라고 하는 것은 authentic growth와 cancerous aberration을 그냥 제멋대로 일어난 것들로, 아무런 질적인 차이를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식으로 역사적 상대주의가 등장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모두 안 된다. 역사적인 상황 맥락도 고려하면서 어떤 것이 더 질적으로 탁월한 것인가 또는 진정한 성장은 무엇인가를 살펴봐야 한다. In this history, this는 펠리칸의 책을 말한다, we are attempting to avoid the pitfalls of both these methods. 이 두 가지 방법의 함정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면 tradition without history는 without이라고 하는 것이 함정들이겠다. 역사가 없는 전통에서는 역사가 없다는 것을 피해야 하겠고, history without tradition은 전통이 없는 역사를 피해야 되겠다. 그러면 두 가지 함정을 피하면 뭐가 되는가. tradition with history, 또는 역사를 고려하는 전통, 그 방법을 쓰겠다는 것이다. historical tradition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그렇게 해버리면 연원이 오래된 전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tradition with history,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통 또는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는 전통,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성장해온 전통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 이 두 가지 방법론의 함정을 피하려고 한다. The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 기독교 교리의 역사는, is the most effective means, 가장 효과적인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가령 창조 교리가 있는데, 창조 교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말이겠다. 이를테면 창조 교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most effective means available of exposing, 제거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the artificial theories, 인위적 이론 또는 제멋대로인 이론, 제멋대로인 이론을 제거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continuity that have often assumed, 아주 자주 빈번하게 가정되는 인위적인 연속성 이론을, normative status in the churches, 교회에서 규범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and at the same time it is an avenue, 그리고 동시에 기독교 교리의 역사는 곧은 길이다.  뻗은 길, 올바른 길, 도덕적으로 올바른 길이라기보다는 곧은 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into the authentic continuity, 진정한 연속성으로 가는, 우리가 꼭 이렇게 받아들여서 어떻게든 보존했으면 하는 연속성으로 가는 길이다. of Christian believing, teaching, and confessing. 기독교의 믿음, 가르침, 고백. 기독교의 믿음과 가르침과 고백이라고 진정한 연속성으로 가는 곧은 길이다. 그리고 나서 그 문단을 마무리하면서 Tradition is the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the dead faith of the living이라는 문장을 쓴다. 그러니까 펠리칸의 《전통을 옹호하다》는 이 문단의 마지막 문장만 인용이 되어 있는데, 이 문장을 보기에 앞서서 이 부분을 쭉 보면 한마디로 tradition with history라고 하는 것, 이 사람이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제가 주장하는 학문 방법론이 사실 이것이다. 역사적인 연원을 검토해야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할 때 공화국이란 무엇인지 물어보면 공화국이라는 것은 우리가 발명한 개념은 아니다. 임시정부부터 민주공화국 얘기를 했는데 우리가 발명한 개념은 아니다. 그것을 따져 물어가면 미국에서 온 것인데 사실 미국 사람들이 발명한 것도 아니다. 연원을 따지다 보면 콰트로첸토 시기에 피렌체가 드러난다. 그런데 피렌체 시기에서 그 사람들이 발명한 것도 아니고 리비우스의 《로마사》, 로마 공화정까지 갈 수 있다. 그러면 한국 사람들이 공화정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한다면 리비우스 《로마사》부터 한번 따져봐야 되는 것이다. 지금 펠리칸이 하고 있는 게 바로 사상사의 연구이다. 사상사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거기까지 따져 들어가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최근에 로마 제국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글을 읽어봤다. 국제관계론의 맥락에서 로마 제국을 볼 때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로마 제국이 성공하게 된 요인에 대해 가질 이유가 사실 우리는 별로 없다. 우리가 로마 제국처럼 될 것도 아니고 로마 제국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롤 모델인 것도 아니다. 물론 유연한 의미의 시민권이라든가 로마 제국의 성공 요인에서 받아들일 점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건 로마 제국 시기에서도 우리가 충분히 살펴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까지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나 싶다. 로마 제국의 성공 요인이 서구 여러 나라에서 그게 유독 부각된 것은 일단 대표적인 저작을 들어보면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가 있다. 왜 에드워드 기번이 쇠망사를 썼을까. 기번의 관심사가 그렇게 아주 뚜렷하게 학문적인 것이었을까. great britain 또는 영국 극우파들이 내세우는 것이기도 한데 greater britain과 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당대의 요구에 따라서 에드워드 기번은 충분히 그럴 만한 약간의 chauvinism, 즉 국수주의적인 부분이 있다. 그러니까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가 나치 독일에서 굉장히 읽혔다. 《게르마니아》는 그런 식으로 쓴 것도 아니고 그런 내용도 없으며, 《게르마니아》에 등장하는 게르만족과 히틀러가 좋아하던 게르만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 제국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건 정말 Imperialism 시기의 britain이라고 하는 나라의 어떤 시대적인 관심사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서 국제관계론적인 관점에서 제국의 흥망성쇠를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2024년의 지금 한국에서 제국의 흥망성쇠를 연구하는 것은 지적 호기심으로는 가능할지는 몰라도 그리 썩 권장할 만한 그런 건 아니다. 그리고 우리 전통도 아니다. 우리는 제국을 이루어 본 적도 없고 제국을 이루어야 훌륭한 나라가 된다는 생각을 펼친 조상도 없다.  

전통 배척의 사례들을 보겠다. 전통 배척의 역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앞에서 전통의 회복 사례 연구에서 나온 얘기들이 또 나온 것이다. 이를테면 콰트로첸토 시기의 인문주의자들은 당연히 중세를 혐오했다. 자기네들이 새로운 시대이고, 중세Middle age라는 게 사실 특정한 어떤 고유명사가 아니라 중간 시대라는 보통 명사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스콜라 철학자들의 야만적인 라틴어투를 버리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완벽한 모범은 키케로뿐이다. ··· 마침내 키케로가 사용하지 않은 단어는 그 무엇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서약을 했다. 부르크하르트 《르네상스의 문화》에 나오는 얘기이다. 스콜라 철학의 전통을 버리기 위해서 키케로 전통을 취했다. 더 오래된 것이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이때는 Greco-Roman 문명에 대한 동경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전통을 배척하겠다 해놓고 또 다른 전통을 취하는 그런 역설적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펠리칸도 지적하고 있듯이 "새로운 가설과 싸울 때는 (격렬하게 싸웠던) 이전 가설과 화해를 한다." 또 신학자들은 건전한 교리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철학적 사변이 그것을 위험에 빠뜨린다 라고 경고를 한다. 사실은 그들이 말하는 건전한 교리라고 하는 것을 곰곰이 따져보면 그 교리 역시 건전한 교리라고 하는 것 역시 철학적 사변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신학자들이 건전한 교리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철학적 사변을 멀리한다. 철학자들 또한 교회의 교리주의에 필적할 만한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118 새로운 가설에 맞서 싸울 때, 이들은 그 가설이 대체하고 있는 그 이전의 가설과도 전통을 내세워 논쟁을 벌이고 배척했으며, 막상 새로운 가설과 싸울 때는 (격렬하게 싸웠던) 이전 가설과 화해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학자들은 '건전한 교리'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철학적 사변이 건전한 교리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끊임없이 경고하지만, 이 '건전한 교리' 역시 철학적 사변의 산물이고 다른 여러 철학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펠리칸이 거론하고 있는 사례는 19세기 덴마크의 헤겔주의자들이다. 헤겔주의자들이 쇠얀 키에르케고어를 어떻게 핍박했는가. 키에르케고어가 헤겔과 딱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다. 칼 뢰비트가 쓴 책 중 《헤겔에서 니체로》가 있는데, 그 부제가 마르크스와 키아케고어, 19세기 사상의 혁명적 결렬이다. 그러니까 헤겔과 니체의 형이상학적인 전환을 가리키고, 마르크스와 키에르케고어의 혁명적 결렬은 마르크스와 키에르케고어가 헤겔적 세계관을 끝장을 냈다는 얘기이다. 사실 니체는 헤겔에 그렇게 대놓고 반기를 든 사람은 아닌데, 니체, 마르크스, 키에르케고어 이 세 사람은 헤겔적 세계를 완전히 박살내버린 작정하고 나선 사람들이다. 그러니 19세기 덴마크의 헤겔주의자들이 키에르케고어가 얼마나 미웠겠는가.  19세기 덴마크 해결주의에 대해서 한번 조금 살펴보면 조선시대 주자학자들 같은 그런 느낌이 있다. 그다음에 또 사례를 보면 법학의 역사에서 법학과 신학도 만만치 않다. 교회법의 역사, 중세 교회법, 중세 법학 그러니까 중세 대학에서는 예비학으로서 7 자유학예가 있고, 그 7 자유학예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나면 본과를 가서 법을 다루는 법학과 그다음에 의학, 그러니까 법도 하나의 corpus, 신체이다. 인간이라고 하는 개개인의 신체를 다루는 의학과 사회라고 하는 신체body를 다루는 법학과 그리고 그 위에 신학, 맨 밑에 7 자유학예Artes Liberales 있고, 중간에 법학과 의학이 있고 상위에 신학이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시민법과 교회법의 연결고리들을 가지고, 당연히 시민법이라고 하는 것도 교회법에 근거를 두고 만들어야 하는 것이고, 그런데 교회법보다는 시민법이라는 게 훨씬 유연하다. 그러니까 파도바의 마르실리우스와 같은 사람들이 그런 과정에서 시민법 우선주의, 교회법의 족쇄를 깨뜨려야 한다 라고 하면서 등장하게 된다. 그럴 때 이제 개입되는 것은 교부들의 시대에 교부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시민법 학자들은 왜 그 따위냐 라는 얘기들을 교회법 학자들이 했을 것이다. 그것에 관한 논의들이 펠리칸의 《The Christian Tradition》 3권에 있다. 216페이지에서 229페이지 사이에 있다고 되어 있는데, the problem of patristic consensus, 교부들의 합의 또는 신조이다. 교부들의 합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서 중세의 교회법과 시민법의 관계가 어떻게 성립되는가 하는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면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는 뭘 알 수 있는가. "사상사 일반을 연구하듯 교리사를 연구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당연히 제가 좋아하는 문장이다. 사상사 연구자로서 누가 저에게 왜 그렇게 펠리칸의 《The Christian Tradition》, 《전통을 옹호하다》 또는 프랜시스 영의 《신경의 형성》을 공부하는가 묻는다면,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읽고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를 읽고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를 읽고 하는 것과 주제만 다르지 다 사상사이다. 그래서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상사 일반을 연구하듯이 교리사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펠리칸은 교리사 학자이겠지만 넓은 범위로는 사상사 학자로 분류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면 "교리사Dogmengeschichte가 정신사Geistesgeschichte의 일부라면", 도이치어 Geist라고 하는 말은 영어로 말하면 spirit이고, 우리가 '제 정신이 아니다'라고 할 때는 마음mind이다.  '혼이 쏙 빠졌어' 할 때의 혼Seele도 정신이라기보다는 마음이다. 우리 말에서는 정신이라는 것과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좀 구별해서 쓰지 않는데, 서양어에서는 그렇지 않다. Geist와 Seele를 구별해서 쓰고, spirit와 mind를 구별해서 쓴다. 여기 지금 "교리사가 정신사의 일부라면"에서의 정신사는 사상사와 같은 말이다. 그러니까 펠리칸은 "저도 이 가정을 바탕으로 평생 연구하고 가르쳐왔습니다"라고 말한다. "저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 역도 성립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신사는 교리사의 일부다. 그러면 교리사 공부하면 정신사 공부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교리에서 전통 개념의 역사를 연구하면, 즉 교리사를 연구하면서 교리의 전통, 이를테면 사도 신경이 교리이다, 그 전통을 연구하면 전통 자체에 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되겠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밑에 각주가 되어 있는데,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가 tradere라는 단어와 그 파생어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여기가 있다. tradere는 to hand down, 전통tradio에서 나온 말이다.

120 우리가 사상사 일반을 연구하듯 교리사를 연구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가정이 옳다면, 즉 교리사Dogmengeschichte가 정신사Geistesgeschichte의 일부라면 (저도 이 가정을 바탕으로 평생 연구하고 가르쳐왔습니다), (저들의 생각과 달리) 그 역도 성립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리에서 전통 개념의 역사를 연구하면 전통 개념 자체에 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지요. 

 

그러면 지금까지 얘기가 다 여기에 나왔으니 전통을 연구하는 방법이 있어야 된다. 전통을 연구하는 방법은 간단히 말하면 사상사 연구 방법이다. 그러니까 사상사 연구 방법이 여기에 들어있다. 그런데 조금 아쉽게도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을 안 해놓았다. 그래서 마지막에 프랜시스 영의 《신경의 형성》에 나와 있는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3장 6절의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문장이다. 그러면 성서를 안 읽어야 되는가, 그거 아니고 가장 심오한 기독교 사상가들인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루터, 이것에 대해서 이의를 달 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3세기의 오리게네스와 5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 16세기의 루터는 바울의 이 말이 오로지 영에 집중하기 위해 문자를 버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데 모두 동의했습니다." 문자주의는 문자만 읽으면 끝이다 라는 것이 아니라 오리게네스 시대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대에, 아퀴나스의 시대에, 루터의 시대의 문자주의라고 하는 것은, 좋은 의미의 문자 읽기라고 하는 것은 그 문자가 생겨난 맥락을 충분히 고려해서 문자를 이해해야 된다 라는 얘기이다. 스콜라 철학의 방법론이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니까 전통이라는 문자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라는 태도는 결코 아니다. 어쨌든 전통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한다는 것이 전통을 연구하는 것인데, 이런 재검토는 우리가 물려받은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검토를 할 필요가 없다 라고 하는 사람들을 일단 배제하고, 검토하지 않은 전제에 의문을 제기한다.  

125 3세기의 오리게네스와 5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 16세기의 루터에 이르기까지 문자와 영의 차이를 설명한 가장 심오한 사상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바울의 이 말이 오로지 영에 집중하기 위해 문자를 버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데 모두 동의했습니다. 

우선 전통에서 얻은 재료를 나열하고 재배치를 해본다는 것이다. 펠리칸이 여기서 몇 가지 방법론을 거론하는데 그중에 가장 유명한 방법론은 플로릴레기움florilegium이라고 하는 것인데, 비잔티움 문학 장르로 사실 오늘날에는 거의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말씀의 성육신에 관한 교부들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문서가 있다. 동방교회에서 나온 문헌이어서 당연히 그리스어로 되어 있다. 그 그리스어 문헌을 서방에서 받아들인 다음에 Doctrina patrum de incarnatione Verbi라는 라티움어 제목을 붙인 것이다. Verbi가 말씀이고 incarnatione이 성육신, patrum은 교부, doctrina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이것을 펠리칸이 40년 전에 읽었다고 한다. 유명한 로마 가톨릭 교부학자 프란츠 디캄프가 펴낸 현대적 판본을 읽었는데, 도대체 프란츠 디캄프의 말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냥 옛날에 florilegium을 그냥 편집한 것에 불과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러 문헌의 인용문들이 계속 나열되고, 인용 횟수가 있고, 배열 순서 들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학자들과 사상가들이 한 얘기를 그냥 배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다 교묘하게 창조적으로 제시하는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저는 이것이 낯설지 않고 굉장히 익숙한데, 이것은 어떤 식으로 하는가 하면, 여기 지금 펠리칸이 예를 들어 말한 유괴범이 보낸 편지와 비슷하다. 유괴범이 각각의 단어와 글자를 어느 신문에서 잘라냈는지 식별해 낸다면 그 편지가 만들어진 날짜나 유괴범의 행방이나 습관들을 추리할 수 있겠지만 원자료가 어느 신문이었든 편지의 의미를 알려면 결국 단어의 배열에 주목해야 한다. 

127 그리스도교 전통의 역사는 전통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의 역사이고, 이는 전통 자체의 내적 역학이기보다는, 전통 안에서 검토하지 않은 전체에 의문을 제기한 외부자들이 추동한 것입니다. 
127 역사를 들여다보면 많은 경우 통찰은 전통에서 얻은 재료를 나열하고 재배치하면서 생겨났습니다. 
128 40년전 '플로릴레기움'florilegium(꽃다발이라는 뜻의 라틴어)이라는 비잔티움 문학 장르의 문헌을 처음으로 공부했던 때가 기억나네요. 
130 플로릴레기움을 연구하려면 이 장르에 속한 문헌 여러 개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서, 앞선 자료의 구절 중 둘 이상의 문헌에 나타나는 구절은 무엇인지 밝히고, 이 인용문들이 정확히는 않아도 똑같이 인용되었는지 대조하고, 하나의 문헌에만 나타나는 구절은 무엇인지 밝히고, 마지막으로 배열의 순서를 검토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131 어떤 면에서는 플로릴레기움은 유괴범이 보낸 편지와 비슷해 보입니다. 유괴범이 각각의 단어와 글자를 어느 신문에서 잘랐는지 식별해 낸다면 그 편지가 만들어진 날짜나 유괴범의 행방이나 습관 등을 추리할 수 있겠지만, 원자료가 어느 신문이었든 편지의 의미를 알려면 결국 단어의 배열에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132 전통을 다루는 방법의 핵심은 원자료가 말하지 않지만 전제하는 것, 명시하지 않았지만 암시하는 것을 분별해 내는 데 있습니다. 

화이트헤드의 문장을 보면, "그 시대에 속한 다양한 학설의 지지자들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상정한 근본 전제들"이 있고, "이러한 전제 위에서 철학 체계의 몇 가지 유형이 성립되며, 이러한 체계들이 그 시대의 철학을 형성한다." 정말로 새겨들어야 되는 표현이다. 특히 무의식적으로 상정한 전제들, 예를 들면 성당에서 미사드릴 때 사도신경을 읊는다.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라고 하면 처음에는 덜커덕 한다. 요즘에 어떤 세상인데 누가 이걸 믿는가, 이런 건 좀 고쳐야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451년 칼케돈에서 최종 확정되었다. 그러면 5세기 중반에는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 당시에 기독교도들은 성사를 통해서 불멸의 약을 얻는다 라고 생각했다. 간단히 말하면 영원히 사는 신선이 될 수 있다 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굳이 '여러분 영원히 사는 것을 원하시죠'라고 사람들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다 그걸 원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무의식적으로 상정한 근본 전제들이다. 우리가 어떤 텍스트를 읽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되는 게 그것이다. 이 텍스트가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그 시대가 자연스럽게 무의식 중에 상정하고 있는 근본전제들이, 학자들 또는 교리 신경을 만들어내는 사제들에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화이트헤드의 얘기에 나오는 것이다. 

133 한 시대의 철학을 비판할 때(혹은 해석할 때) 그 철학의 대표자들이 명백히 옹호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지적인 입장에만 지나치게 주의를 집중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그 시대에 속한 다양한 학설의 지지자들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상정한 근본 전제들이 있다. 이 전제들은 그들에게 너무나 분명해서 그들은 자신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그들에게 현실을 이해하는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철학 체계의 몇 가지 유형이 성립되며, 이러한 체계들이 그 시대의 철학을 형성한다. 


그다음에 그것과 연장선상에서 보면 전통이 제공하는 주제와 은유들이 있다. "어떤 은유가 선택되고 이 은유가 어떤 전통에서 나왔는가에 따라 세계의 이해는 크게 달라진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면 과학에서 쓰이는 은유들은 "그리스도교 정통신학과 연금술 전통인 마술의 경계에서 나왔다." 야마모토 요시타가의 《과학의 탄생》에 이런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아이작 뉴턴이 연금술 했는데 그게 이상한 데 빠져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당시에는 화학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예를 들어보면 우리가 돈줄이 막혔다 라는 얘기를 하는데, 경제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이 상당 부분 생물학의 은유를 사용한다. 돈줄이 막혔다라든가 돈줄이 흐른다라든가, 초창기 정치경제학은 생물학의 영역에서 나온 것들이 좀 있다. 이런 것들이 과학사 또는 해석학, 지식사회학 이런 데서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건데 이 세계관, 그러니까 로마 가톨릭교도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던 모차르트와 정통 루터파 교회 궁정의 음악가였던 바흐와 신자였는지 불신자였는지 알 수 없었던 베토벤, 이 세 사람 모두 다 장엄미사곡이 있다. 거기서 로마 가톨릭과 루터파 교회, 그다음에 냉담자인지 아니면 반역자인지 알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장엄미사곡에서 찾아낼 수는 없다. 그들은 christian tradition 안에 있는 것이다. christian tradition을 가장 뚜렷하게 체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모차르트와 바흐와 그다음에 베토벤, 이 세 사람의 세 사람의 장엄 미사곡을 들어보는 것이다. 개신교 신학의 가장 유명한 칼 바르트가 엄청난 모차르트 연구자이다. 칼 바르트가 쓴 모차르트에 관한 책이 있는데, 읽어보면 거의 미친 듯한 경외심을 보여주는 그런 것이다. 그런데 칼 바르트는 개신교 신학자인데, 로마 가톨릭교도 프리메이슨 단원인 모차르트를 들을 까닭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진정한 기독교도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138 과학사학자들과 과학철학자들은 세계상Weltbild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뿌리 은유와 해석들이 얼마나 커다란 역할을 하는지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은유가 선택되고 이 은유가 어떤 전통에서 나왔는가에 따라 세계의 이해는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과학분야에서 쓰이는 은유 중 상당수는 서방 그리스도교 정통신학과 이른바 연금술 전통인 마술의 경계에서 생겨났습니다. 

마무리를 하면서 괴테 《파우스트》 682~683행에 있는 문장을 인용한다. "내 조상들에게서 상속받은 것, 그것을 가지려거든 그것을 다시 얻어야 할지니Was du ererbt von deinen Vätern hast, Erwirb es, um es zu besitzen." 얻는다라고 하는 게 바로 공부해라 라는 말이겠다. 고난을 통해서 획득을 해야 된다는 얘기이다. 여기까지 하게 되면 펠리칸의 책은 다 읽은 셈인데, 제가 조금 안타까운 게 마지막의 전통 연구 방법이 지나치게 간소하다. 그래서 프렌시스 영의 《신경의 형성》의 〈들어가며〉를 보면 아주 간단한 연구사 방법론이 살짝 적혀 있다. 그래서 간단하게 좀 설명을 좀 덧붙여보려고 한다. 


19세기에 성서의 '역사성'historicity이 제기되었고, "역사적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선언하였다. 여기서 역사적 종교라는 것은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는 종교 그리고 그 교리가 역사 속에서 성립되었다는 말이다. 한국 무교는 역사적 종교는 아니다. 그때그때 신내림을 받기 때문에 새로운 무당이 역사를 항상 새로 쓴다. 그 개인의 역사가 이렇게 모여지는 것일 뿐이지 선대 무당이 이러했고 내가 그것을 이어받아서 이렇게 수정했고 그런 건 아니다. 그때 그때 계속해서 새로운 신내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무당이 탄생하는 것이고, 새로운 무당이 탄생함으로써 그 무당은 그 이전 어떤 무당과도 관계없는 무당이다. 유동식 교수님의 《한국 무교의 역사와 구조》를 보면 기본 신조는 있는데, 역사적 종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항상 새로운 종교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에게 잘 맞는 것 같다. 역사적이지 않다. 어쨌든 19세기의 성서의 역사성 문제가 제기되었고, 역사적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선언된 다음에 곧바로 역사적 비판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사실fact을 찾아봐야 된다. 그리고 이 사실에 대한 경험 그리고 그 경험에 대한 신앙, 이런 것들로 해서 신경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신경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그런데 그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새로운 철학들new philosophies의 영향에 다른 연구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철학들은 무엇인가. 헤겔 이후의 역사주의, 철학에서도 역사주의가 있으니까, 그건 역사적 상대주의는 아니다. 철학에서 말하는 역사주의는 역사적 연원, 맥락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딜타이에 해당한다. 해석과는 별개로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뭔가 사실을 얘기하려면 그것이 어떤 해석에서 만들어지는가, 즉 "역사기술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원인과 결과를 식별하며, 해석을 통해 일정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게 바로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흘러나온 흐름이다. 그래서 딜타이가 중요하다고 보는데, 어떤 역사이든 각 세대, 각 집단의 관심사에 따라서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관심사, 관심사가 이야기의 구성을 만드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까 신경의 형성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해석학의 발전에 따라서 우리가 다르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해석학은 열심히 해야 되는 학문 중에 하나이다. 펠리칸이 《전통을 옹호하다》에서는 해석학을 얘기를 좀 안 했다. 그러니까 해석학이라고 하는 게 좀 필요한데, 앤서니 티슬턴의 《성경해석학 개론》 이런 책이 있다. 화이트헤드 얘기처럼 무의식적으로 상정한 근본 전제들이라는 게 앞에 있었다. 초기 기독교도들의 세계관이 어떠했는가. 상징, 신화, 은유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구별하는 게 어렵다. 당시 교회가 창조 교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특정한 방식으로 구원을 이해한 것이고, 이 창조 교리라고 하는 것은 사실 구원론하고 연결이 되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당시에 무의식적으로 상징한 근본 전제들은 무엇인가. 유대 문화와 그리스 문화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없다. 이것은 마르틴 헹엘의 《유대교와 헬레니즘》에 아주 잘 나와 있는 것이다. 

《신경의 형성》
18 19세기에 성서의 '역사성'historicity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를 '역사적 종교'historical religion리 선언하고 이에 걸맞게 신학을 하려 노력했지요. 그들은 '사실'fact에 집착했습니다. 
18 리처드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사실'과 이 사실에 대한 '경험', 그리고 이에 대한 신앙이라는 종교적 반응이었습니다. 
19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중은 예수, 신앙, 신경의 관계를 이렇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새로운 철학들'new philosophies의 영향아래 최근 신학 연구의 방향은 커다란 변화를 겪었지요. 
19 역사기술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원인과 결과를 식별하며, 해석을 통해 일정한 흐름을 형성하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19 각 세대, 혹은 집단이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이야기를 '재구성'reconstruct하기 때문이지요.
21 이러한 맥락에서 과거 학자들이 주장했듯 '신화', '상징', '은유'와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구별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22 창조교리는 물질로 이루어진 피조물이 영적 존재를 매개할 수 있다고 확언했고 그 결과 성사sacrament는 참된 의미의 성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22 저는 당시 교회가 창조 교리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특정한 방식으로 구원을 이해했다고 보며, 이러한 관점으로 신경 형성의 과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23 학자들은 '그리스 문화'와 '유대 문화'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지나친 단순화임을 압니다. 

일단 이렇게 해서 펠릭간 책을 마무리를 했다. 지금 한스 큉 신부님과 발터 옌스의 《문학과 종교》를 거론은 했는데 아직 말을 못했다. 기회를 찾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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