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핸킨스: 과학과 계몽주의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10. 8.
과학과 계몽주의 - 토머스 핸킨스 지음, 양유성 옮김/글항아리 |
서문
제1장 계몽주의의 성격
제2장 수학과 정밀과학
제3장 실험물리학
제4장 화학
제5장 자연사와 생리학
제6장 도덕과학
주/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9 나는 이 책에서 근대의 과학이 취한 방향에 주목하면서 18 세기 과학 발전기에 일어난 큰 사건들의 개요를 설명하려 했으며, 이를 근대의 학문이 취했던 방향을 가리키는 시각에서 바라보려 했다. 특히 나는 근대과학의 여러 영역들이 등장하는 궤적을 더듬어보려 했다. 몇몇 경우(제4장에서처럼) 근대적 해석을 분명히 하기 위해 실제로 수행된 실험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으나 이 책에는 상세한 기술적 내용까지 포함시키는 않았다. 근대과학에서 수행된 실험을 좀 더 명확하게 알리기 위해 화학과 관련된 몇몇 실험법을 제외하고는 기술적인 부분은 크게 다루지 않았다.
9 이 책에서 18 세기 과학사는 계몽주의의 일부로 나타나는데, 이는 이 책의 관점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몇몇 사람들은 그 관점을 취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할 것이다. 당시 프랑스가 계몽주의의 중심지였으므로 나의 설명은 프랑스의 계몽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미리 알려두며, 물론 다른 관점들도 마찬가지로 타당하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다.
15 18세기 철학자들은 과학혁명이 자연과학의 영역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위 전반에 명백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믿었다. '이성'은 올바른 방법의 핵심이었고 이성의 기본모형은 수학이었다. 물론 '이성'은 다른 것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거세게 저항하는 자연에 부과된 질서를 의미할 수도 있었고, '분별력'이라는 말에서처럼 상식을 뜻하기도 했으며, 수학에서 쓰이는 것처럼 논리적으로 타당한 논증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 '이성'은 지식과 삶의 소중한 안내자였고,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그 개념을 엄밀하게 정의해야 한다는 부담없이 자기 편을 불러 모으는 구호로 사용하였다.
15 18세기 프랑스 사람들은 이성을 지식의 통로로 중시했기 때문에 그 세기를 '빛의 세기'라고 일컬었다. 잉글랜드에서는 통상적으로 ‘계몽주의' 시대라고 불렀다. '계몽주의'는 프랑스 수학자가 아니라 독일의 형이상학자인 임마누엘 칸트(1724-1804)가 사용한 개념인데, 1785년에 누군가가 그에게 계몽된 시대에 살고 있는지 물었을 때, 그는 '난 계몽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대답한 데서 유래하였다. 1759년의 달랑베르와 마찬가지로 1785년의 칸트도 과학혁명은 여전히 진행중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이 유명한 언급이 있은 지 5년 뒤에 근대의 첫 번째 위대한 정치혁명이 프랑스의 지적 혁명
의 뒤를 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형이상학자는 형이상학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가져온 이 시기에 이와 같은 이름을 붙여준 셈이 되었다. 그렇지만 계몽주의는 고정된 믿음이 아니며 건설적인 사고와 행위를 향한 길을 열어주는 사유방식이자 비판적 접근이라 본다면 이 역설은 해소된다. 이성을 통해 지나간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계몽주의를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었다.
17 이성의 의미변화를 이끈 원동력은 대개 종교적인 것이었으나 과학에서 이성의 의미는 대단한 것이었다. 이성은 형식논리의 방법론에서 자연과학의 방법론까지 변화시켰고, 이성의 법칙은 자연의 법칙과 동일한 것이 되었다. 이성의 의미변화는 우리가 자연세계에 대해 배우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신은 자신의 창조를 위해 자연법칙을 자유롭게 선택했기 때문에, 그 법칙은 실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어떤 논리적 논증도 신의 자유로운 선택을 입증할 수 없었다. 이로써 17세기에 실험은 자연에 대한 '이성적' 접근방법의 일부가 되었다.
20 대체로 계몽주의는 이성을 완전한 지성의 개념에서 자연의 법칙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신을 과학의 영역 바깥에 두는 일은 적어도 좀 더 객관적인 과학방법론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우리의 관점을 더욱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었다.
28 우리는 계몽주의 시대에 이루어진 과학적 사고의 적절한 범주를 탐구할 때 근대의 과학분과들이 제시한 분리기준을 띠를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지만, 사실상 18세기 과학은 현대적인 분과 구분에 따라 조직되지 않았다. 현대물리학에서 다루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 18 세기의 한 분야에서도 다루어졌고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은 시간이 흘러 의미가 바뀌었을 뿐이라는 이유로 18세기에서 현대물리학의 '기원'을 찾는 것은 잘못된 일일 것이다. '물리학'은 "계몽주의 시대 초기에는 자연이 만들어놓은 모든 결과물에 대한 원인과 이유를 설명하는 과학"이었고, 나아가 생명현상과 비생명현상 모두를 설명하려 했다. 의학과 생리학은 열과 자성에 대한 연구와 마찬가지로 물리학의 일부였다. 17세기에는 내과의사와 물리학자가 동일인물이었다.
29 18세기에 이러한 모든 범주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익숙한 배열 방식으로 전환되었지만 그 과정은 점진적이었다. 새로운 과학분과를 만든 일은 계몽주의가 과학의 근대화에 기여한 가장 큰 공적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간과하기 쉽다. 계몽주의는 그러한 분과를 만들어냄으로써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긴장이 생겨나는 시기를 상징하게 된 것이다.
31 일반적으로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17세기의 선행자들에게서 기계론 철학을 받아들였다. 이전 사람들은 자연철학에서 최종원인이라는 개념과, 중세사상을 지배했던 형상, 실체, 우연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개념을 없앴다. 기계론 철학은 자연세계에서 관찰된 변화를 물질의 운동과 재배치라는 관점에서 설명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런 기본가정을 공유했을 뿐, 기계론 철학자들은 물체의 운동과 변화의 원인에 대한 이론에서는 견해차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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