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사통史通(7) ─ 史通, 內篇 - 論贊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5
- 2025. 1. 10.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사통史通」을 듣고 정리한다.
2025.01.08 δ. 사통史通(7)
지난번에 《사통史通》의 내편內篇에서 육가六家, 이체二體, 그리고 재언載言 그다음에 잡술雜述까지 읽었다. 외편外篇에는 역사서의 연원과 종류에 해당하는 내용이 외편外篇 1장인 사관건치史官建置와 2장인 고금정사古今正史이다. 사관건치史官建置와 고금정사古今正史 부분을 보면, 사관건치史官建置는 역사를 편찬하는 관청을 설치하고 그것을 어떻게 운용해 왔는가, 말하자면은 역사 관청사이다. 물론 처음에는 관청이 없었을 것이지만 직책은 있었다. 예를 들어 사마천司馬遷에게 태사령太史令과 같은 직책이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외편外篇의 제2장 고금정사古今正史는 역사 책들의 역사이다. 역사 책들이 연대기를 적어 둔 것으로 그 부분은 분량이 많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중국의 역사 책들이 어떤 종류가 있고 각각의 특색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지금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니고, 유지기의 《사통史通》을 읽으면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하는 것, 기본적으로 역사는 어떻게 편찬되어야 하는가, 그런 것에 관심을 갖되 어떤 서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 사실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편內篇의 4장, 5장, 6장, 7장, 8장을 보면 사마천의 사기史記의 기전체紀傳體의 구조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마천에서 사기史記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우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연구해서 그것을 본 떠 가지고 무언가를 해보겠다 하는 것은 아니니 그것 역시 관심사애는 조금 비켜나 있다.
유지기의 《사통史通》에서 중심적으로 읽어야 되는 것은, 일단 역사서의 연원과 종류는 기본적으로 introduction처럼 읽어야 되겠고, 앞서 읽었다, 그다음에는 역사서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그리고 32장, 그다음에 서술의 기준과 원칙에 해당하는 부분이 사실 유지기가 상당한 정도로 공을 들여 쓴 부분이다. 학學에 해당하는 부분 그다음에 식識에 해당하는 부분, 재주는 타고나는 것이겠지만 그 타고나는 것을 어떻게 식별해 낼 수 있겠는가. 저 사람이 역사가로서의 재주를 타고났다 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 역시 학學을 하다 보면 아는 것이지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있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그런 건 분명히 아니겠다. 학學이라고 하는 것을 하다 보면 내가 역사에 관심이 좀 있나 그다음에 역사에 좀 재주가 있는가 이런 것까지도 학學을 하다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면 이제 식識에 관한 얘기인데 전목 교수는 유지기는 식識이 없다고 얘기했는데, 처음에 introduction 부분에서 여러 차례 얘기했듯이, 어쨌든 유지기는 식識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그런데 뜻이 있는데도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훌륭한 사람이 어떤 건지는 알고 있어도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 아는 것과 되는 것의 차이는 크다.
오늘은 역사서의 양식style에 해당하는 논찬論贊부터 이제 서전序傳까지를 읽겠다. 논찬論贊은 역사가가 덧붙이는 코멘트이다. 어떤 사건과 인물에 대해서 역사가가 한마디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포폄褒貶을 하는 것이다. 포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식으로 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것은 일종의 critic이다. 그리고 10장과 11장은 다음번에 묶어서 할 건데, 역사서의 체례화에 대한 설명이고 그다음에 12장, 13장은 시기 구분 그다음에 32장은 자서의 유래와 변천인데, 자서自敍라고 하는 건 서문preface이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유지기는 우리가 보기에 엄청나게 탁월한 어떤 지침을 알려주는 것은 아닌데, 이것은 역사서만이 아니라 글쓰기에 관한 아주 좋은 안내가 되기도 한다. 제가 읽어보고 생각해 본 바에 따르면 우리가 글쓰기를 할 때 글쓰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중요한 좋은 안내서이기도 하다고 생각된다.
오늘은 논찬論贊을 한다. 번역자는 "사평이나 사론으로 알려진 역사가의 사실 해석과 평가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의혹을 변별해 주고, 막힌 곳을 풀어주기 위한 것", 사론史論, 사평史評을 묶으면 평론인데, 논論이라고 하는 것은 소이변의혹所以辯疑惑 석응체釋凝滯, 소이所以, 무엇 무엇을 하기 위한 것, 그것으로 쓰여 있는 바, 그러니까 변의혹辯疑惑, 의문나는 것과 미심적인 것을 변별해 주고 그다음에 석응체釋凝滯, 응어리지고 뭉친 것을 푸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게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런 인과관계를 밝혀 보인다든가 아니면 투퀴디데스에서처럼 깊은 원인, 원인遠因, 그다음에 가까운 원인, 그다음에 표면적인 원인, 인과적으로 따져 물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밝혀 보이는 것이 평론이겠다. 평론이라고 하는 것은 깊이 있게 읽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그런 것이겠다. 일반적으로는 사론史論이라고 하고 사평史評이라고도 하는데 유지기는 여러 사람이 이것을 가리킨 명칭을 쭉 얘기한다.
반고는 찬贊이라고 했고 그다음에 순열은 논論이라고 했고 그다음에 동관한기에서는 서序라고 했고 그다음에 후한서에서 사승은 전詮이라고 했고,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평이라고 했고, 그다음에 왕은은 의議라고 했고, 하법성은 술述이라고 했고 그다음에 양웅은 선譔이라고 했고 유병은 주奏라고 했다. 주奏라고 하는 것이 적당한 표현이겠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논論이나 평評이나 사평史評 또는 사론史論 이렇게 쓰는 게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기존에 나와 있는 이런 사론史論들은 어떠한가, 그러니까 우리가 뭔가를 코멘트를 할 때는 이렇게 해야 된다 라는 어떤 지침이 될 수 있겠다.
그렇게 보면 첫째는 사마천의 사론史論는 담박유미淡泊有味, "담백함에 의미가 깊다"고 했다. 단어 하나에다가 아주 많은, 밋밋해 보이는 또는 평범해 보이는 단어를 하나 썼는데, 그 안에 여러 가지 의미를 중첩시켜 놓은 것이 담박유미淡泊有味가 아닐까 그렇게 짐작을 해 본다. 담박유미淡泊有味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진수의 사론은 유완불절儒緩不切, "여유로우며 각박하지 않다"고 했다. 유儒자가 선비 유儒자이기도 하지만 여유롭다는 말이다. 여유롭다 흐를 유자로 이렇게 뜻이 전이되어서 쓰기도 하는데, 불절不切은 너무 매정하게 끊어내는 그런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다음에 반고의 사론는 사유온아辭惟溫雅 이다협당理多惬當, "글이 온화하고 의미도 타당하다"고 했다.
여기서 생각을 해볼 만한 것은, 이건 전목 교수의 책에서 읽은 것인데,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 대해서 설명한 챕터가 있는데, 거기에 보면 반고에 대한 아주 좋지 못한 얘기들을 쭉 적어놓은 부분이 있다. 반고는 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범엽范曄이 후한서後漢書를 쓰면서 반표班彪, 반고班固 열전列傳을 썼는데, 반표는 반고의 아버지이다, 거기에 사마천과 반고를 평가했는데, 사마천의 문장은 "솔직하고 사실에 대해서는 분석이 뛰어나다"고 했다. 그러니까 직直하고, 핵覈하다, 솔직하고, 확실하다는 말이다. 그다음에 반고는 "풍부하고 사실기록이 상세하다", 섬贍하다는 것은 풍부하다는 말이고, 상詳하는 것은 상세하다는 말이다. 이런 말들은 한자 단어 한 개에 들어 있는 함축을 굉장히 많이 생각을 해봐야 되기 때문에, 더군다나 이 범엽이 후한서를 쓰면서 이 한자어를 썼을 때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솔직이라는 것, 직直이라는 글자가 곧다 라는 것인데, 과연 그 의미 연관이 그럴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서 영어에 어떤 단어가 있을 때 그 단어를 우리말로 옮겼을 때, 현대어임에도 불구하고 그 영어의 단어가 가지고 있는 뉘앙스를 온전히 옮겨내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다. 그와 꼭 마찬가지로 더군다나 반고의 후한서 시절의 그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 의미가 과연 직直이라는 게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직直하고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그런 것인가, 분석이 뛰어나다 라고 옮길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항상 있다. 거기까지는 우리가 미루어 짐작할 수 없고 추사유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버리는데, 반고에 대해서는 안 좋은 평판이 있다. 그러니까 반고에 대한 논평들이 있는 것이다.
범엽은 또 말하기를 “반고는 항상 사절死節을 배격하고", 그러니까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킨다는 것이다, 그다음에 "정직함을 부정否定하고 살신성인의 미덕을 기록하지 않았고" 그다음에 "수절守節를 가볍게 여기고 천하게 여겼다"고 했다. 그러니까 유지기는 반고의 사론이 "글이 온화하고 의미도 타당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범엽은 후한서 반표, 방고 열전에서 아니라고 얘기를 했던 것이다. 전목 교수는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 몇 구절의 평가는 매우 엄한 것이었다." 이 같은 병폐는, 그러니까 범엽이 사절死節을 배격하고 정직을 부정否定하고 살신성인의 미덕을 가볍게 여기고 수절守節을 천하게 여겼다고 하는 것은 사실 고대 중국의 역사 책들이 논論과 평評을 통해서 전해주고자 하는 핵심적인 콘텐츠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이야기를, 언言과 사事를 전하는 것도 역사의 목적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실 이게 논論과 평評이다. 사론史論과 사평史評이라고 하는 것은 식견識見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제 그러면 그 사례가 있다. 한서漢書에 보면 공승전龔勝傳이 있는데, 공승이라고 하는 사람은 사실 한나라 말기에 절개를 지키다 죽은 선비이다. 절개를 지키다 죽었으면 안타깝다라든가 또는 절개를 지키다 죽었다 라고 말하면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반고는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요절했다"고 썼다. 당연히 더 살아야 할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으로, 사자死者를 비난한 것이다. 반고를 꼭 비난하기는 그렇지만 약간 패륜적 서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다음에 사기史記에 나오는 왕능王陵 같은 사람들을 반고는 "당박戇朴하다", 어리석을 당戇으로, 어리석었다라고 얘기한다. 이 사람들은 모두 다 살신성인한 사람들인데 "경중을 따지지 않고 죽음을 당하였다"고 했다. 목숨 걸 것에 걸어야지 아무 데나 목숨 걸었다는 말이다. 경중을 따지지 않다 보니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살신성인을 했는데 속된 말로 말하면 개죽음이라고 말한다. 반고의 사론史論 중에 가장 심한 말이 있는데 사마천에 대해서 한 말이다. 사마천에 대해 "사물에 밝고 견문이 넓었지만 극형을 면하는 지혜는 없었다"고 했다. 사마천이 받은 극형은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궁형이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알 만한 사람이, 또 같은 동종업계 종사자인데, 거기다 대고 그렇게 말해버리면 선을 넘어간 것이다. 그냥 극형을 면하지 못하였다 하면 되는 것을 극형을 면하는 지혜는 없었다고 말했는데, 정작 반고 역시 옥사했다. 그래서 반고가 이렇게 사론史論들을 이렇게 써놓은 것을 보고 나서 반고에 대해서 제가 말하자면 한마디 한다면 그도 별 수 없었다. 수많은 사절死節과 수많은 살신성인들에 대해 선 넘는 말들을 하더니 그도 별 수 없었다 라고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유지기는 사론史論이 있는 까닭을 "사안이 중복되어 나오지 않게 하고 문장을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내용을 알 수 있게 하고자 한다"고 했다. 사안을 중복하지 않게 한다는 말은 "본문에 없는 말을 별도로 추가해서 보충"한다는 말이다. 대표적인 케이스를 들어보면 사마천이 사기를 쓰면서 본기에다가 있는 그대로의 어떤 사건들을 기록을 하되 그 사람들에 대해서 뭔가 좀 꺼림칙하거나 또는 좀 널리 선양해서 알릴 만한 것들이 있을 때는 열전에다 슬쩍 썼다. 유지기는 사마천이 항우본기項羽本紀를 썼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데 항우본기는 이름이 항우, 사람 이름을 가지고 본기를 쓰는데, 고조 유방은 고조본기高祖本紀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뜻이 있는데 그런 것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여러 차례 말한 것처럼 사마천이 하나의 사건을 다면적으로 또는 다차원적으로 볼 수 있게끔 이렇게 한 것이다. 그런 것이 사론史論을 통해서 했던 것이다. 본문에 없는 말을 다른 데에 추가해서 이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것이 사론史論이 있는 첫 번째 이유가 되겠다. 그러니까 우리가 책에 각주를 다는 것처럼, 일종의 각주라고 할 수 있다. 저는 책을 쓸 때 각주를 어떻게 만들어 놓을 것인가에 대해서 궁리를 하는데 《소크라테스, 민주주의를 캐묻다》의 절반 정도는 본문이고 또 절반 정도는 주해로 되어 있다. 앞에 본문을 읽다가 주해 번호가 있으면 뒤로 읽는 게 아니라 그냥 본문은 본문대로 쭉 읽고 주해는 주해대로 쭉 읽을 수 있도록 만든다든가 하는 식으로 궁리를 해본다. 그러니까 사론도 마찬가지로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본문에 없는 말을 별도로 추가해서 보충한다. 사안이 중복되기는 하더라도 사태의 다른 측면들 보충하고 사태의 다른 측면에 주목하도록 시선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말하자면 사론의 역할 중에 하나이겠다.
그다음에 "한마디로 줄여 말했음에도 여러 의미가 깊이 갖춰져 있으니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내용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줄여 말했음에도 여러 의미가 갖춰져 있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경지이다. 앞에서 사마천은 담박유미淡泊有味, 유미有味라고 하는 건 의미가 있다는 것인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주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 한마디로 줄여 말했으면서도 여러 의미가 깊이 갖춰져 있다. 유지기의 말을 가지고 얘기를 해보면 문생가지文省可知, 문장은 생략되어 있으나 능히 알 수 있다.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내용을 알 수 있다. 문생가지文省可知를 글쓰기의 요체라고, 앞서 글쓰기의 요체 중에 하나가 언사상겸言事相兼이었다. 말과 사태를 서로 다 얘기해야 된다. 예를 들어 말해보면 이 지구상에 뭐 이런 물건도 있고 저런 물건도 있고 라고 말하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눈에 보이는 어떤 유형의 사물이 떠오른다. 그러면 그 유형의 사물은 사事이고 그것에 대한 설명은 언言이고 그 두 가지를 겸하면 설명이 훨씬 더 풍부해지고 뚜렷해지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런 것처럼 언사상겸言事相兼에서 상겸相兼, 둘을 겸한다는 것이 글쓰기의 요체 중에 하나라면 문장론의 요체는 이런 것이겠다. 그것은 소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관한 얘기라면, 문장론의 요체는 문생가지文省可知, 한마디로 줄여 말했음에도 여러 가지 의미가 갖춰져 있다. 즉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내용을 알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서 "양왕손이 간소하게 자신의 장례를 치르게 한 것은 그의 인격이 진시황보다 훨씬 뛰어남을 말해준다." 이런 것들은 좋은 평가이다. 왜 진시황에다 가져다 말하는가, 진시황의 무덤은 유명하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 왕손인데도 장례를 간소하게 치렀다. 그러면 거기다가 저 사람은 왕손인데 장례를 간소하게 치렀다 라고 하기보다는 이는 그의 인격이 진시황보다 훨씬 뛰어남을 말해준다 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양왕손은 자신의 병이 위독해지자 자식에게 나를 맨몸으로 묻어달라. 내 진심에 반해 절대 내 뜻을 저버리지 말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서』 「양왕손전」의 논찬에 옛날에 공자가 중도中道의 학자를 얻지 못하면 진취적이나 지킬 것을 지키는 사람을 생각한다고 했다. 양왕손의 심지를 보면 진시황보다 훨씬 어질다"고 되어 있다. 진시황보다도 어질다는 이런 코멘트, 현우진시황원의賢于秦始皇遠矣라고 되어 있다. 양왕손은 간소하게 장례를 치렀다는 건은 맨몸으로 묻으라는, 나장裸葬이라는 말이다. 진시황은 거창한 장례의 대명사이다. 업적도 많은데 무덤 하나가 그의 모든 업적을 무덤으로 가지고 가버리고 말았다.
사평史評이나 사론史論은 분량은 적은데 탁월한 식견識見이 필요한 부분이다. 식견을 길러야 한다. 논論이나 평評은 하되 너무 길게 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칭찬은 짧게 욕은 더 짧게 그렇게 해야 되지 않는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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