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사통史通(11) ─ 史通, 內篇 - 編次

 

2025.02.01 δ. 사통史通(11)

유지기, ⟪사통⟫(劉知幾, 史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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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차編次

• 상서尙書는 당시의 말을 기록[기언記言]했고 춘추春秋는 사실을 기록[기사記事]했는데, 시대순으로 차례대로 서술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헷갈리지 않고 일목요연하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일월위원근以日月爲遠近 연세위전후年世爲前後 용사열지사用使閱之者 안행어관雁行魚貫 교연가심皎然可尋) 

그런데 사마천에 이르러 처음으로 기전체紀傳體의 방식으로 내용을 분류하여 시기가 뒤섞인 역사서를 만들었고(착종성편錯綜成篇), 반고는 사마천의 방식을 그대로 본받았다. 이것이 체제가 달라지고 제목과 내용이 어긋나는 원인이 되었다. ─ 기전체 방식은 관련 기사가 중복될 수 있다. 유지기는 이것을 마땅치 않은 것이라 판단 

• 착종성편錯綜成篇의 사례
열전列傳에는 사람만이 편재되어야 하나 "거북의 껍질이나 점치는 풀 같은 괴상한 물건들"도 열전에 속하게 되었다.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이라 하였으니 이상한 일이다. 
(지우구책이물至于龜策異物 불유초형不類肖形 이첩여검수동과而輒與黔首同科 구위지전俱謂之傳 불기괴호不其怪乎)

팔서八書. 사기史記의 지志를 분류한 것.
예서禮書, 악서樂書, 율서律書, 역서曆書, 천관서天官書, 봉선서封禪書(帝王의 제사), 하거서河渠書(수리사업), 평준서平準書 

• 반고는 한 사람에 대한 전傳을 만들고 친족 관계는 함께 기록, 특출한 인물은 따로 분리해서 다른 편에 수록(기사적우이자其事迹尤異者 즉분입타부則分入他部) 

• 왕실이 쇠락해도 천명天命이 아직 바뀌지 않은(천명미개天命未改) 경우에는 형편없는 왕도 왕조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한漢나라 유영劉嬰은 왕망전王莽傳에 기록하였다. ─ 왕조교체에 따른 시기구분에 소홀한 경우 
  

•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를 본기本紀의 첫머리에 기록한 것. ─ "당시의 권력자에게 아첨하려고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당대가 아닌 뒷 시대에 살았던 범엽范曄은 후한서後漢書를 편찬할 때 이 점을 바로잡는 것이 마땅한 도리였다. (용혹첨우당시容或諂于當時 후래소수後來所修 이당간혁자야理當刊革者也) 

유현劉玄, 경시제更始帝(22-25) ─ 유연劉縯(경시제에게 죽음을 당함), 유수劉秀(이후 세조 즉위(광무제光武帝) 형제
편찬자는 유현을 열전에 집어넣고 유수를 본기 첫머리에 기록 
후한後漢의 초대 황제는 누구인가

• 대개 왕조 말기에 한 마리 토끼를 많은 사람이 쫓고 하늘을 나는 새가 아직 둥지를 틀지 않았을 즈음에는 각지에서 세력가와 도적들이 무리지어 일어나 자기가 패권을 잡겠다면서 서로 밀어내는 형국이 펼쳐진다. 이 때문에 역사서에 기록할 때는 정통 왕조와 위조僞朝를 엄격히 구분한다. (개축토쟁첩蓋逐兔爭捷 첨조미정瞻鳥靡定 군웅참도群雄僭盜 시이사전소분是以史傳所分 진위유별眞僞有別)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 "첨조원지瞻鳥爰止 우수지옥于誰之屋"(앉는 새를 보네, 누구의 집인가)

• 당대의 권력자를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에서 결국 앞의 왕조를 업신여긴 경우, 이런 편찬 방식과 태도는 당시의 관점으로 보자면 꽤 융통성이 있다고도 하겠지만, 오랜 역사의 관점으로 본다면 교훈이 된다. 

•  사기史記는 황제黃帝와 노자老子를 앞에 기록하여 중시하고, 유가의 경전인 육경을 뒤에 기록해서 경시하며, 반고의 한서는 오랑캐를 앞에 기록하고 외척을 뒤에 기록하는 경우가 있다. 
사기史記는 노자老子와 한비자韓非子를 같은 열전에 기록하였다.

"이와 같은 오류나 착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여사천유如斯舛謬 불가승기不可勝記)
이러한 기록을 단순한 오류와 착오로 볼 것인가, 저자의 의도는 아닌가. 위치와 분량 

 


유지기劉知幾 《사통史通》에서 역사서의 서술 양식을 읽고 있다. 서례序例, 제목題目, 단한斷限를 읽었고, 오늘은 편차編次를 읽고, 다음에는 서전序傳을 읽는다. 편차編次는 지난번에 시기 구분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면서 어떻게 집어넣어야 되는가, 이 사람을 여기다 넣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런 것에 관한 얘기이다. 

"상서尙書는 당시의 말을 기록[기언記言]했고 춘추春秋는 사실을 기록[기사記事]했는데, 시대순으로 차례대로 서술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헷갈리지 않고 일목요연하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일월위원근以日月爲遠近, 날짜 일과 월로 각각 멀고 가까운 곳을 삼았다, 즉 날짜 순서대로 일어난 사태가 일어난 순서대로 서술을 했다. 연세위전후年世爲前後, 이것도 날짜 순으로 전후를 삼았다. 그러다 보니까 독자들이 헷갈리지 않고, 용사열지사用使閱之者, 읽으려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안행어관雁行魚貫, 기러기가 줄지어 날아가고 물고기를 꿰 놓듯이, 이건 비유적인 표현이다. 교연가심皎然可尋, 달빛처럼 환하게 찾을 수 있다. 번역자는 일목요연하게 라고 번역했다.  

이렇게 했는데 사마천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마천에 이르러 처음으로 기전체紀傳體의 방식으로 내용을 분류하여 시기가 뒤섞인 역사서를 만들었고, 반고는 사마천의 방식을 그대로 본받았다." 착종성편錯綜成篇, 서로 뒤엉켜서 편을 만들었고, 그것을 반고가 그대로 물려받다 보니까 체재가 달라지고 제목과 내용이 어긋나는 원인이 되었다. 제목과 내용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데, 편차編次라고 하는 그 제목이 가지고 있는 함축되고 있는 뜻이다. 기전체 방식은 관련 기사가 중복될 수 있다. 본기本紀는 사건을 쓰고 열전列傳에다가도 사건을 쓰는데, 본기에서 한 번 다룬 사람들을 뒤에 열전에서 다룰 수 있다.  그런데 유지기는 이것을 마땅치 않게 생각을 한 것이다. "시대를 담는 역사서의 방식에 대해서 경직된 생각을 가진 듯싶다"고 번역자가 각주를 달아 놓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기本紀에다가 다 써야 하는가. 마땅치 않은 건 알겠으나 대안이 있어야 할 거 아닌가 한다.  

또 한 가지 유지기가 문제 삼는 것은 열전에는 사람만을 넣어야 되는데, "거북의 껍질이나 점치는 풀 같은 괴상한 물건"도 열전에다 넣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의 「구책전龜策傳」에 “거북이의 껍질이나 점치는 풀 같은 괴상한 물건들"이 나온다. 지우구책이물至于龜策異物, 거북이의 껍질이나 이상한 물건들에 이르면, 사람이 아닌데도 뜬금없이 사람처럼 취급하여 열전이라고 했으니 이상한 일이다. 불유초형不類肖形, 같은 형태로 분류해서는 안 되는데, 이첩여검수동과而輒與黔首同科, 뜬금없이 검수와 더불어 같은 과로 넣었다는 말이다.  검수黔首는 검은 머리인데, 관직에 있지 않은 사람들 전부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구위지전俱謂之傳, 이른바 전으로 칭해서 마련했으니, 불기괴호不其怪乎, 그것은 괴이하지 않은가. 거북의 껍질이나 점치는 풀은 점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인데, 사마천이 몰라서 그랬을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사마천이 강조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한다.  

"팔서八書와 같은 반열에 놓고 서書라는 이름을 붙였더라면, 내용과 명칭이 부합하고 비슷한 부류끼리 짝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전傳에다가 넣을 게 아니고 서書에다가 넣어야 된다는 말이다. 유지기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분류의 문제를 삼는 것이다. 팔서八書라는 것은 사기史記의 지志를 분류한 것인데, 예서禮書, 악서樂書, 율서律書, 역서曆書, 천관서天官書, 천관서는 천문을 관측하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고, 그다음에 봉선서封禪書는 제왕帝王의 제사에 관한 것이고, 그다음에 하거서河渠書는 수리 사업에 관한 것이다. 평준서平準書는 경제 활동에 관한 것이다. 

그다음에 반고는 한 사람에 대한 전傳을 만들고 친족 관계는 함께 기록을 했는데, 특출한 인물은 따로 분리해서 다른 편에 수록했다. 기사적우이자其事迹尤異者, 우尤는 특출하다는 것으로, 유달리 뛰어나고 다른 자는, 즉분입타부則分入他部, 즉시 나누어서 다른 부분에 집어넣었다.  반고가 그렇게 했을 때 이 사람이 형제라 해도 특출하니까 떼어내어 다른 데다 넣어야지 라고 할 때 그 판단 기준이 뭐였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앞서 반고에 대해서 얘기할 때 반고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민감한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까 우尤, 탁월하다는 것, 특출하다는 것에 사용한 기준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겠다. 특출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쁜 짓을 특출하게 잘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 어떤 기준으로 했는가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문제이다. 

그다음에 왕실이 쇠락해도 천명天命이 아직 바뀌지 않은 경우에는, 천명미개天命未改, 형편없는 왕도 왕조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한나라의 유영劉嬰은, 전한 말기의 왕이다, 왕망전王莽傳에 기록했다.  이런 건 이제 왕조 교체에 따른 시기 구분에 소홀했다는 말이다. 왕답지 않았으니까 반고가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유영은 전한의 왕이라고는 하지만 전한의 왕이라고 부르기에는, 별도의 본기에 넣어주기에는 참으로 민망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다음에 후한 광무제 유수를 본기本紀에 기록한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나 한다. 반고는 워낙 아첨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용혹첨우당시容或諂于當時, 당시의 권력자에게 아첨하려고 했을 수는 있는데, 후래소수後來所修 이당간혁자야理當刊革者也, 나중에 와서 편찬하는 범엽은 이치에 마땅하게 고쳐서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후한의 초대 황제를 광무제光武帝로 기술한다. 광무제의 묘호는 세조世祖이다. 여기서 정확하게 보면은 왕망 시대에 유현劉玄이라는 자가 경시更始라는 연호를 세워서 경시제更始帝라고 스스로 황제를 칭했다.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보면 유현이 후한의 초대 황제이다. 왜 그러는가. 세조 광무제 유수가 저도 신하를 자처했다. 유현이 황제를 칭하고 경시更始하는 연호를 썼고 22년에서 25년까지 재위를 했다. 그런데 유현이 깽판 치는 황제였던 모양으로, 광무제 유수를 후한의 초대 황제라고 해버렸다. 말 그대로 역사적 팩트가 아니다. 어쨌든 마땅치 않은 놈이라 해도 초대 황제는 유현이라고 해야 되지 않는가 하는 얘기이다. 저는 유지기의 말이 맞다고 생각을 하는데, 《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를 광무제를 후한의 초대 황제라고 해놓았다. 우리가 전문적으로 들여다보기 전에는 이런 사정을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당시의 권력자인 유수에게는 아첨하려고 그럴 수 있는데 범엽은 그럴 필요가 없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시의 권력자에게 아첨하려던 편찬자는 유현을 열전에다 집어넣고, 유수를 본기 첫머리 기록해서 후한의 초대 황제를 그렇게 해결을 했는데 그건 아니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대개 왕조 말기에 한 마리 토끼를 많은 사람이 쫓고 하늘을 나는 새가 아직 둥지를 틀지 않았을 즈음에는 각지에서 세력가와 도적들이 무리지어 일어나 자기가 패권을 잡겠다면서 서로 밀어내는 형국이 펼쳐진다. 이 때문에 역사서에 기록할 때는 정통 왕조와 위조僞朝를 엄격히 구분한다." 개축토쟁첩蓋逐兔爭捷, 사람들이 뭔가 떡고물을 먹으려고 난리 치는 상황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첨조미정瞻鳥靡定, 새를 보고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에 보면 첨조원지瞻鳥爰止 우수지옥于誰之屋이라는 말이 있다. "앉는 새를 보네, 누구의 집인가", 새가 날갯짓을 멈췄다는 말인데, 누구의 집으로 이렇게 갈 것인가, 그러니까 둥지를 틀었다는 말이다. 군웅참도群雄僭盜, 각지에서의 세력가들과 도적들이 무리지어 참칭한다는 것으로, 패권을 잡겠다고 난리를 친다는 말이다. 위아구제爲我驅除, 서로 밀어내는 형국, 몰아내서 덜어내고 없앤다는 말이다. 시이사전소분是以史傳所分, 마땅히 역사가는 이 때문에 역사에 기록을 할 때는, 진위유별眞僞有別, 진짜 왕조와 가짜 왕조를 구별해서 역사에 기록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사실 어수선하고 그럴 때는 당대의 권력자를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에서 앞의 왕조를 업신여긴 경우가 있고,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오랜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안 되는 그런 지점이 있겠다. 앞에 나온 후한의 광무제 얘기에 해당하겠다. 

그다음에 이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인데, 사기史記에 보면 황제黃帝와 노자老子, 즉 황로黃老를 앞에다 기록하고, 유가의 경전인 육경을 뒤에 기록해서 경시했다고 했는데, 이것에 근거해서 사마천는 유가 아니었다 라는 그런 평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반고의 한서는 오랑캐를 앞에 기록하고 외척을 뒤에 기록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오류나 착오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했다. 여사천유如斯舛謬, 이러한 어그러진 것과 오류는, 불가승기不可勝記, 이루 말할 수 없다. 반고의 한서에서 오랑캐를 앞에 기록하고 외척을 뒤에 기록하는 경우는 어찌 되는지 모르겠는데, 이 사상사에서는 황로를 앞에 기록하고 육경을 뒤에 기록했다 라고 말할 때에 왜 그랬을까. 이것은 사마천의 사상 경향을 드러내 보여주는 게 있다는 것이다. 유지기는 그것이 못마땅하다고 얘기한 것은 유지기는 유가라는 얘기이다. 이것을 오류와 착오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나는 유가니까 사마천이 못마땅한 것인데, 사마천은 나는 도가니까 이렇게 했다 라고 볼 수도 있겠다. 

다음번에 서문 쓰는 것에 대해 얘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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