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스 N. 밀러: 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의 종교』 입문

 

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의 종교』 입문 - 10점
에디스 N. 밀러 지음, 김성호 옮김/서광사

옮긴이의 말 … 5
머리말 … 11

1장 맥락 … 15
2장 주제들의 개관 … 27
3장 본문 읽기 … 33
초판과 재판의 머리말 … 33
『종교』의 1부 … 42
『종교』의 2부 … 105
『종교』의 3부 … 141
『종교』의 4부 … 185
4장 평가와 영향 … 213
5장 더 읽어볼 만한 자료들 … 225

참고문헌 … 231
찾아보기 … 239

 


15 독일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여러 저술은 사실상 철학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오늘날까지도 계속 발휘해왔는데 이런 사정은 이 책의 기본 주제인 종교철학의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칸트의 저술 『이성의 한계 안의 종교』는 계몽주의 시대에 등장한, 종교를 다룬 철학 저술 중 가장 위대한 것으로 손꼽힌다. 종교는 종교에 대한 계몽주의적 접근 방식을 칸트의 독특한 시각에서 여과한 결과로 등장한 저술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산물로서 계몽주의 시대 ─ 또는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18세기 다양한 '계몽주의들'이, 곧 영어로는 Enlightenment, 프랑스어로는 Lumières, 독일어로는 Aufklärung으로 불리는 여러 사조들이 활발하게 전개된 시대 ─ 동안 등장한, 종교에 대한 다른 저술들과 상당한 공통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계몽주의 시대 동안 등장한, 종교를 다룬 철학 저술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것을 개신교 종교개혁의 결과로 생겨난 종교적 불관용과 폭력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여기는 것이다. 16세기와 17세기에 걸친 이른바 종교전쟁은 죽음과 파괴를 전 유럽에 확산했다. 이런 폭력 사태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그것이 서로 다른 종교 사이의 폭력이 아니라 모두 기독교도임을 자처하는 집단 사이의 예를 들면 구교와 개신교 또는 개신교에 속하는 서로 다른 종파들 사이의 폭력이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렇게 서로 전쟁을 벌인 집단들은 자주 상대방 집단이 정통 기독교도임을 부정했지만 그들 모두가 하나의 동일한 경전을 사용했고, 자신들의 신앙이 하나의 동일한 성스러운 역사에 뿌리를 둔다고 생각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양한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종교에 대해 보인 태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관점 중 하나는 그들의 태도를 독단과 불관용, 분열 그리고 이들 모두의 근저에 놓인 듯이 보이는 근본적인 비이성적임에 대한 우려의 표현으로 여기는 것이다. 질병과도 같은 이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종교 전반을 계시가 아니라 이성의 눈으로 보려는 새로운 관점을 도입했다. 계시는 ─ 현재의 경우 『성서 ─ 는 정확히 동일한 구절이 서로 전혀 다른 입장을 옹호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는 듯이 보이므로 대립을 조정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지 못한다. 간단히 말해 계시는 해석을 필요로 하는데, 해석을 통제하는 어떤 근거가 없다면 화해의 희망은 거의 없는 듯하다. 

28 칸트는 자신의 세 비판서를 통해 순수하게 이성적인 (도덕적) 종교의 곧 오직 이성을 통해 인식되므로 역사상의 계시나 전통, 교리 또는 관행 등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종교의 관념을 전개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종교」에서는 역사상의 종교를 직접 다룬다. 「종교」 2판 머리말에서 칸트는 '오직 이성의 한계 안에서' 종교를 분석하는 작업은 역사적 계시의 단편들을 도덕적 개념들에 의지해 검토함으로써 역사적 계시와 이성 종교 사이에 양립 가능성과 통일성이 성립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칸트는 실제로 이성 종교와 자신이 기독교적 계시의 핵심이라고 여기는 것 사이에서 이런 양립 가능성을 발견한다. 하지만 역사상의 종교에는 단지 도덕과 무관한 요소 뿐만 아니라 명백히 도덕과 반대되는 요소도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따라서 종교의 임무에는 그저 역사적 계시와 이성 종교 사이의 통일성을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기독교의 경전과 교리, 관행을 도덕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도덕과 상반되는 요소를 상쇄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리고 칸트는 종교」 전반에 걸쳐 이렇게 기독교적 계시를 도덕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29 은총 및 속죄와 관련해 기독교 교리가 드러내는 문제점은 이런 개념들이 인간을 이들이 도덕적으로 재해석되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또 그런 재해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로 만든다는 점이다 ─ 이는 칸트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관점이다. 칸트의 종교」를 지배하는 원리는 명확하다. 곧 우리가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오직 도덕적 행위뿐이며, 우리의 행위는 오직 자유의지에 근거해 수행될 경우에만 도덕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자신을 도덕적 존재로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함으로써 능동적으로 자신의 구원을 얻어야 한다. 칸트는 거듭해서 인간은 신이 인간 도덕의 개혁 과정에 어떤 기여를 하더라도 그것에 관해 어떤 지식도 지닐 수 없다고 주장한다 ─ 신이 초자연적 존재인 한 인간에게는 그런 지식을 얻을 능력이 전혀 없다. 인간이 인식할 수 있고 또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은 단지 인간이 신의 도움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은 오직 도덕적 행위뿐이다. 하지만 인간이 도덕적 완전성의 원형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는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설령 인간이 도덕적으로 살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할지라도 인간은 과거에 저지른 악을 상쇄할 수는 없다. 이런 죗값을 치르지 않은 채로 어떻게 우리가 신을 기쁘게 할 수 있는가? 2부에서 칸트는 이를 비롯한 다른 문제들을 언급하는데 이 과정에서 속죄에 관한 기독교 교리를 도덕적 개념들에 따라 창조적으로 재해석한다. 

32 초판 서문의 첫 문장에서 칸트는 도덕이 신의 관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강조해서 말한다. 또한 인간은 오직 이성을 통해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도덕법칙을 곧 결과와 무관하게 반드시 행해져야만 할 바를 명령하는 법칙을 부과하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말한다. (무조건적인 또는 정언적인 명령으로서의 도덕법칙은 조건적인 또는 가언적인 명령과 대비되는데, 후자는 오직 우리가 어떤 특정한 결과를 얻으려 할 경우에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명령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도 신의 관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또한 자신을 의무에 따르도록 자극하는 요소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36 도덕이 신의 관념을 형성하는 일을 피할 수 없다 할지라도 이런 사실이 신의 존재가 도덕에 기초해 증명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칸트에 따르면 신은 신앙의 대상이지 지식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신앙의 대상이 인간의 도덕적 목적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 실천이성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성 신앙의 핵심이다. 

38 우리의 도덕적 의무는 신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성립한다. 하지만 이성은 자신이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그것을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서의 우리 자신에게 구속력을 지니는 의무로 부과하는 신의 관념에 이끌린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면 종교는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신에 대한 의무가 아니다. 또한 우리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존재는 신이 아니라 이성이므로 종교의 형식적 요소와 관련해서는 신의 존재조차 필요하지 않으며, 단지 실천이성이 만들어내는 신의 관념만으로도 충분하다. 

49 칸트에 따르면 도덕법칙은 그 자체로 행위의 동기를 제공한다. 인간은 때로 자연적인 경향성이나 욕구를 만족시키는 행위가 도덕법칙을 존중하는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런 행위를 하지 않기도 한다. 도덕법칙에 대한 존중은 앞으로 살펴보게 되듯이 가장 우선해야 할 동기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행위의 여러 동기들 중 특수한 하나의 동기에 지나지 않는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칸트가 어떤 순간에 어떤 동기에서 행위하든 간에 인간은 항상 어떤 근거에 따라 행위한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이런저런 동기는 항상 행위의 근거로 작용한다. 인간이 항상 어떤 근거에 따라 행위한다는 말은 곧 인간이 항상 원리에 따라 또는 칸트가 준칙이라고 부르는 것에 따라 행위한다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일 뿐이다. 칸트는 준칙을 '우리의 선택 능력이 자신의 자유를 발휘해 스스로 정하는 규칙'이라고 정의한다(6:21).  

111 칸트는 성서에 등장하는 그리스도를 인간의 도덕적 완전성을 보여주는 이상으로, 달리 말하면 도덕적 완전성의 관념에 어울리는 개인의 구체적 상징으로 해석하려 한다. 물론 칸트가 고려하는 도덕적 완전성의 관념은 우리를 행해야 할 바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이끄는 유혹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항상 자기애가 아니라 도덕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의지의 관념이다. 이렇게 모방해야 할 이상이 우리 안에 존재하는 한 그리스도는 인간의 도덕적 완전성을 보여주는 '원형' (Urbild)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도덕적 완전성의 이상은 오직 실천이성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칸트가 후에 주장하듯이 이 이상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 성서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140 아브라함이 신의 명령을 받아들여 이사악을 결박하고 막 칼로 찌르려 할 때 천사가 나타나 멈추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에서 칸트가 관심을 보이는 기적은 이야기 마지막에 천사가 나타난 부분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는 목소리가 등장하는 첫 부분이다. 누군가에게 살인을 명령하는 이것이 과연 신으로부터 등장한 '기적'일 수 있는가? 칸트는 단호히 아니라고 답한다. 이 명령은 그 자체로 도덕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149 자신의 명령이 동시에 도덕법칙이 되고, 우리의 심정까지 파악할 수 있으며, 우리의 도덕적 가치를 규정하고 이에 비례해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최고의 입법자는 다름 아닌 신뿐이다. 따라서 칸트는 윤리적 공동체는 도덕법칙과 일치하는 신의 명령 아래서 사람들이 결합한 공동체라고 결론짓는다. 

158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와 신앙의 구별이다. 칸트에 따르면 '종교'라는 용어는 오직 참된 도덕적 종교에 대해서만 적용되어야 한다. 단지 역사상 등장한 이른바 종교라고 불리는 것들은 (예를 들면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은) 신앙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참된 도덕적 종교는 오직 하나밖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신앙인들 사이의 차이는 항상 신앙상의 차이일 뿐이며 결코 종교상의 차이가 아니다. 자주 세상을 피로 물들인 다양한 '종교적 분쟁' 도 알고 보면 특정한 교회 신앙들 사이의 분쟁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상 오직 불관용의 국가만이 우리의 신앙을 금지한다. 하지만 이미 알다시피 어떤 국가도 오직 도덕적 행위로 구성되는 참된 종교를 믿는 일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175 칸트는 유대교가 보편적 교회의 역사 안에 설자리가 없는 까닭은 바로 유대교가 유대인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을 공동체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자신들만을 신이 선택한 특별한 민족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설령 유대교의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의미에서 보편적 통치자라고 할지라도 이런 신은 도덕적 명령이 아니라 단지 계율적인 명령만을 내릴 뿐이므로 이런 신의 개념은 도덕적 종교에서 생각하는 신의 개념과 결코 같을 수 없다. 

182 칸트는 우리 자신을 피조물로 생각하기보다는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 아니라 신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신의 나라에 속한 시민으로 규정된 이미 현존하는 자유로운 존재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신의 나라에 속한 시민으로 부름을 받은 존재라는 생각은 실천적인 관점에는 매우 명확하지만 정확히 어떻게 인간이 부름을 받게 되었는지는 누리가 전혀 통찰할 수 없는, 따라서 파악할 수 없는 일종의 신비이다. 

187 신이 존재한다는 신앙은 신에 존재한다는 데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이런 지식을 지닌다면 신앙은 아예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앙은 신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정을 필요로 한다. 다행히 칸트는 자신의 비판철학 체계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증명할 수 없음을 논증했다고 여긴다. 칸트에 따르면 (최소한 사변적인 근거에서) 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또한 인간 지식의 가능한 한계를 벗어난 독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종교는 단지 신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아니다. 확정적인 신앙으로서의 종교는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188 어떤 보편적 종교에서도 ─ 칸트가 종교라는 용어를 엄밀하게 보편적 종교에 대해서만 적용한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 신에 대한 특수한 의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은 '우리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칸트는 자신의 정의가 '신의 비위를 맞추려는 식의 봉사'를 통해 신의 환심을 사려는 모든 시도를 배제한다고 말한다. 이런 신의 관념에 따를 경우 신이 요구하는 바는 오직 우리가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지는 윤리적-시민적 의무를 수행하는 것뿐이다. 

198 '인간이 신을 진정으로 기쁘게 하기 위해 선한 품행 이외에 다른 무엇이라도 행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단지 종교적 망상이며 신에 대한 거짓 봉사일 뿐이다' (6:170-171). 칸트는 이것이 '아무런 증명도 필요로 하지 않는' 원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연종교가 모든 사람이 스스로 지닌다고 확신하는 이론이성이라는 능력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6:157) 칸트의 전제가 옳다면 실제로 이 원리는 아무런 증명도 필요로 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202 칸트는 양심이 우리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그릇될 위험에 처할 때 그런 행위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어떤 증명도 필요하지 않는 도덕 원리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우리가 하려는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면밀히 검토할 의무가 주어진다. 칸트는 어떤 특정한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은 이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양심은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한 이성의 판단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하려는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해 실제로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졌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하는 이성의 판단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양심은 우리 자신이 행하려는 행위의 도덕성을 부단히 탐구할 의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하는 일종의 자기 검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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