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 - 10점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지음, 강대진 옮김/그린비

제1권
제2권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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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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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1. [1] '철학에 아직까지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많은 주제들이 있지만, 브루투스여, 신들의 본성에 관한 문제는 그대도 완전히 모르진 않는 바대로, 지극히 어렵고 지극히 모호한 것입니다. 그것은 정신에 대한 탐구와 관련해서 가장 매력적인 문제이고 또 종교생활에 절도를 부여하는데 긴요한 것인데 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가장 박식한 이들의 견해들이 너무나 다양하고, 너무나 서로 엇갈리고 있어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무지가 철학의 시발점이라는 생각이 아주 제대로 된 논의일 수밖에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아카데메이아 학파 사람들이 불확실한 이론에는 동의하기를 유보한 것도 현명했다고 해야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체 무엇이 경솔함보다 더 보기 흉한 것이겠으며, 잘못된 생각을 고수하거나, 충분히 확실하게 지각되어 알게 되지 않은 것을 조금도 주저함 없이 방어하는 것만큼이나 철학의 진중함과 확고함에 안 어울리는 일이 또 무엇이겠습니까? 

2. 예를 들자면, 이 문제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신들이 존재한다고 말했고, 이것은 극히 진실해 보이며, 자연을 인도자로 삼으면 우리 모두가 여기에 도달하게 됩니다만, 프로타고라스는 자기는 이걸 의심한다 했고, 멜로스의 디아고라스와 퀴레네의 테오도로스는 신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반면에 신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던 사람들은 그토록 의견이 다양하고 서로 불일치해서, 그 생각들을 다 헤아리려면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신들의 형태에 대해서도, 그들이 있는 곳과 그 거처에 대해서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도 많은 것들이 말해졌고, 이들에 대해 철학자들이 극단적인 불일치로써 다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크게 상황을 장악하고 쟁점이 되는 것으로, 신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것에도 애쓰지 않으며, 일들에 대한 걱정과 관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지, 아니면 모든 일이 시초부터 그들에 의해 행해지고 확정되었으며, 무한한 시간에 이르기까지 지배되고 작동되는 것인지 하는 문제가 무엇보다도 큰 불일치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판명되지 않으면, 인간들은 크나 큰 오류에 처하고, 가장 중대한 문제에 대한 무지 속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3. [2] 왜냐하면 신들은 인간의 일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들이 지금도 있고, 과거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주장이 맞는 것이라면, 대체 어떤 경건함, 어떤 경외심, 어떤 종교생활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인간은, 저 신들이 그들을 주목한다는, 그리고 불멸의 신들이 인간 종족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전제가 있어야 그 모든 것들을 신들의 권능을 향해 깨끗하고 순결하게 바칠 것이니 말입니다. 만일 반대로 신들이 우리를 도울 수 없거나, 그럴 뜻이 없거나, 아니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 주목하지 않거나, 그들로부터 인간의 삶을 향해 뻗쳐 올 수 있는 게 없다면, 대체 우리가 그 어떤 숭배 의식이든 명예든, 기원이든 불멸의 신들께 바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지만 다른 덕들이나 마찬가지로, 경건함도 그저 비슷하게 꾸며낸 외양속에는 머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경외심과 종교생활 역시 소멸될 수밖에 없는데, 그것들이 없어지면 삶의 동요와 크나 큰 혼란이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4. 게다가 나로서는, 신들을 향한 경건함이 사라지고 나면, 인간 종족에 대한 신뢰와 연대감, 그리고 가장 탁월한 덕인 정의 역시 함께 사라지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철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위대하고 이름이 높기까지 한 이들로서, 온 세상이 신들의 정신과 이성에 의해 관리되고 다스려진다고 생각하고, 그뿐 아니라, 이 신들에 의해 인간들의 삶도 예지되고 배려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곡식들과 땅이 낳는 다른 것들, 그리고 땅이 산출하는 모든 것이 거기 맞춰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는 바, 날씨와 계절 변화, 천기의 변동이 불멸의 신들에 의해, 인간 종족을 위해 배정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책에서 언급되는 많은 것들, 바로 그것들을 불멸의 신들께서 거의 인간들의 편의를 위해 그렇게 조성한 듯 보일 것들을 끌어모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항해서 카르네아데스가 정신이 민활한 사람들에게 진리를 탐구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많은 것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5. 왜냐하면 학식 없는 사람들뿐 아니라, 박식한 이들까지도 그토록이나 이견을 갖는 문제는 달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견해는 너무나 다양하고, 서로 동떨어진 것이어서,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참이 아닐 경우는 전적으로 가능하지만, 그들 중 하나 이상이 참이기는 확실히 불가능할 것입니다. 

[3] 이 쟁점에 있어서 우리는 호의적인 비판자들을 기쁘게 하고, 또 질시하는 비방자들을 침묵시킬 수 있습니다. 한쪽은 질책했던 것을 후회하도록, 다른 쪽은 자신들이 배움을 얻은 걸 기뻐하도록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정으로써 충고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르침이 베풀어져야 하고, 적대적으로 비난하는 자들은 격퇴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6. 한데 나는, 내가 짧은 시간에 많이도 써냈던 저 책들과 관련해서 여러 다양한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일부는 대체 어디서 철학에 대한 이 열정이 나에게 갑자기 생겨났는지 놀라는 사람들에게서, 일부는 내가 각각의 사안들에 대해 어떤 확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얘기들입니다. 또 나는, 많은 사람들이, 사물들에게서 빛을 빼앗는, 그리고 말하자면 밤의 어둠을 쏟아붓는 그런 종류의 철학에 내가 특히 찬동한 것에 대해, 그리고 이미 예전에 버려지고 폐기된 학설을 예기치 않게 후원한다는 사실에 놀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철학공부를 갑작스레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초년부터 평범치 않은 노력과 주의를 거기 기울였으며, 가장 덜 그러한 것으로 보이던 때에, 가장 큰 정도로 철학을 연구해 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철학자들의 발언으로 채워진 내 연설들과, 내 집을 항상 꽃피게 해 준 가장 박식한 인물들과의 친교가, 그리고 내가 가르침을 받은 디오도토스, 필론, 안티오코스, 포세이도니오스" 같은 저 으뜸가는 인물들이 입증해 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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