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O. 러브조이: 존재의 대연쇄

존재의 대연쇄 존재의 대연쇄 - 10점
아서 O. 러브조이 (지은이),차하순 (옮긴이)탐구당

 

윌리엄 제임스 강연 시리즈에 관하여 • 3
서문 • 7
개역판에 붙여 • 11
역자서문 • 13
Ⅰ. 서론: 관념사의 연구 • 15
Ⅱ. 그리스 철학에서의 존재의 연쇄 관념의 시작: 3대원리 • 41
Ⅲ. 존재의 연쇄와 중세사상에 있어서의 내적 대립 • 103
Ⅳ. 충만의 원리와 새로운 우주관 • 154
Ⅴ.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에 있어서의 충만과 충분이유 • 223
Ⅵ. 18세기 사상에 있어서의 존재의 연쇄와 자연 속의 인간의 위치와 역할 • 285
Ⅶ. 충만의 원리와 18세기의 낙관주의 • 327
Ⅷ. 존재의 연쇄와 18세기 생물학의 양상 • 359
Ⅸ. 존재의 연쇄의 시간화時間化 • 382
Ⅹ. 로만주의와 충만의 원리 • 453
XI. 역사의 결과와 그 교훈 • 493
아서. O. 러브조이에 관하여 • 519
찾아보기 •537


15 이 강연은 일차적으로는 관념사에 기여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이다. 흔히 관념사라는 용어 자체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뜻보다는 더 모호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본론에 들어가기 이전에 내가 그 명칭으로 부르고자 하는 일반적인 연구 영역, 목적 그리고 방법에 대해 간단한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말하는 관념사는 철학사보다는 더 구체적이며 동시에 덜 한정적인 것이다. 그것은 주로 대상으로 삼는 단위의 성격에 따라 차별화된다. 물론 그것은 사상사의 다른 분야와 동일한 자료를 대부분 다루고 그 분야에서의 선행 업적에 크게 의존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은 그 자료를 구체적인 방식으로 구분하며, 그 자료의 부분들을 새로이 분류하거나 관련성을 찾아 뚜렷한 목적을 지닌 관점에서 관찰하는 것이다. 그 시작의 과정은ㅡ위험스러운 비유이긴 하지만ㅡ분석화학의 과정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철학적 학설의 역사를 다룰 때 관념사는 움직일 수 없는 하나하나의 체계로 나누어 자체의 목적을 위하여 이 체계들을 다시 구성 요소, 즉 단위 관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쪼갠다. 어떤 철학자나 학파가 가진 학설의 총체란 흔히 철학자 자신도 의심치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거의 항상 복합적이고 이질적인 것들의 집합체이다. 그것은 단지 복합물일 뿐 아니라 불안정한 복합물이며,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대마다 새 철학자들은 보통 이 우울한 진실을 잊고 있다. 이러한 복합물에서의 단위 관념을 추구한 결과로 얻는 성과 중 하나는 대부분의 철학적 체계가 그 구성 요소보다는 오히려 그 구성의 짜임새에서 독창적이거나 독특하다는 사실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관념사 연구자가 현행의 역사 교과서에 가득 써있는 논점이나 견해의 방대한 연속을 볼 때에 그는 제시된 문제의 중복성과 그럴 듯한 다양성에 난처해할 것이다. 자료의 배열이 학파나 주의에 의한 철학자들의 관례적인 대체로 오도된 분류법을 빌어 약간 단순화된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극도로 다양하고 복잡하다고 생각될 것이다. 각 시대마다 낡은 동일한 문제에 대한 새로운 추론과 결론을 전개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적 관념이나 변증법적 주제의 수는 진짜 다른 농담의 수가 그러하듯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물론 독창적 관념의 수는 독창적 농담의 수보다는 훨씬 더 많기는 하지만 많은 체계에서 외견상의 새로움이란 전적으로 이 체계를 구성하는 낡은 요소들의 응용이나 배열의 새로움 때문이다. 이 점을 인식할 때 관념은 전체적으로 훨씬 더 다루기 쉬운 것으로 보일 것이다. 물론 시대에 따라 본질적으로 새로운 관념이나 새로운 문제 혹은 새로운 추론 방식이 사상사에 출현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전혀 다른 새로움의 증가란 생각보다 매우 드물다고 여겨진다. 화학적 화합물의 성질이 그 구성 요소의 성질과 다르듯이, 철학적 학설의 요소는 상이한 논리로 결합할 때에는 항상 쉽게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사실이다. 더욱이 분석하기 전에는 똑같은 복합체조차도 다르게 표현하면 동일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철학자의 기질이 다양하기 때문이며, 또 이에 따른 여러 부분에 대한 강조점이 다를 수가 있기 때문이며, 또한 부분적으로 동일한 전제로부터 상이한 결론이 도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41 우리가 이제 역사적 고찰을 해야 할 관념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플라톤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 뒤에 오는 거의 모든 논의는 화이트헤드 교수의 유명한 말에서 설명될 것이다. 즉, 그는 “유럽의 철학적 전통의 특징을 가장 무난하게 일반적으로 규정짓는다면 이는 곧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되어 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플라톤과 플라톤 전통에는 두 가지 대립하는 주요 경향이 있다. 철학적 혹은 종교적 체계를 갈라놓는 가장 깊고 넓게 벌어진 분열에서 플라톤은 양쪽에 다 걸치고 있었다. 따라서 후세에 끼친 그의 영향은 두 가지 상반되는 방향으로 작용하였다. 내가 말하는 분열이란 이른바 내세성과 현세성 사이의 분열이다. 내세성이라 해서 미래의 삶에 대한 믿음이나 미래의 삶에 대한 몰두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관심과 사후에 기다리고 있을 기쁨을 이리저리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극단적 형태의 현세성일 것이다. 또 만일 내세가 질적으로 현세와 전혀 다름이 없고 대체로 비슷한 점이 더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면 즉, 변화와 감성과 복수성과 사회적 친분으로 되어 있는 지상의 존재 양식의 연장에 불과하고, 단지 지상의 존재의 하잘것없고 고통스러운 면이 없어지고 좀 더 이 세상의 세련된 안락을 높이고 지상에서의 욕구불만을 보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면 내세란 본질적으로 현세의 극단적 형태이다. 빅토리아 시대 시인들이 생존에 대한 개인의 회망을 표현한 유명한 시는 이를 완전히 설명해 준다. 현세의 삶에 대한 브라우닝의 생생한 기쁨은 "이곳에서처럼 피안에서도 계속 싸우고 항상 성취하자"는 그의 희망에서 가장 명백히 나타나 있다. 그리하여 테니슨의 <죽음의 명상>(meditatio mortis)이 단지 "살아남아 죽지 않는다는 응보"에 대한 기도로 끝났을 때 그도 역시 그다지 떠들썩한 말투는 아니지만, 공통적 경험을 통해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생존의 일반적 조건의 충족된 가치를 선언하고 있다. 비록 현재의 역사 연구에서는 이전부터 있었음을 보여주긴 하지만, 사실 이 양자는 모두 로만주의 시대 이전에는 어느 정도 예외였으며 그들 자신의 큰 시대적 특징인 특별한 느낌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는 생존의 주요 가치를 시간의 진행 과정이나 시간과의 싸움과 동일시하는 것이며, 만족이나 종결에 대한 반감 및 파머 교수의 말을 사용하면, 일종의 “미완성의 영광"을 느끼는 감각이었다. 이는 내가 말하는 내세성의 완전한 부정이다. 왜냐하면 좀 약하게 나타나는 경우에서조차 다소 일반적인 <현세의 경멸>(contemptus mundi)이 내세성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설사 서양사의 대부분의 시기에 개별적 인간의 불로장생에 대한 갈망과 실제 관계가 있긴 하지만, 필연적인 관계는 없었다. 그리하여 더 철저한 형태에서 이성질은 모든 비참의 뿌리와 생존의 허무, 그리고 극복해야 할 최대의 적을 갈망하는 것에서 나타났다. 

65 고대와 현대를 망라하여 플라톤의 해석자들은 이러한 절대적 <선>의 개념이 그에게는 신의 개념과 동일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두고 끝없는 논쟁을 벌여 왔다. 이와 같이 단순하게 말해 버린다면 이 문제는 무의미하게 된다. 왜냐하면 신이라는 말은 궁극적으로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스콜라 철학자들의 이른바 <완벽한 존재>, 즉 존재의 계층의 정점, 즉 궁극적이며 유일하게 완전한 만족을 줄 수 있는 관조와 숭배의 대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면 <선의 이데아>가 플라톤의 신<이었다>는 것에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더욱이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이 되었고, 그리고 대부분의 중세의 철학적 신학과 거의 모든 현대의 플라톤적인 시인이나 철학자의 <신>의 요소나 '양상'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데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에게와 마찬가지로 플라톤에게는, 의식 있는 삶과 지복의 느낌의 승화된 방식에 대한 어떤 막연한 관념이 이러한 내세적인 <절대자>의 관념에도 계속 존재해 있긴 했지만, 이것을 넘어서면 그 이상은 이러한 신의 속성이란 엄밀히 말해서 현세의 속성을 부정함으로써만 표현될 수 있다. 자연적인 경험에 제시된 대상의 성질이나 관계 혹은 종류를 하나씩 차례로 택하여, 예컨대 우파니샤드에서의 성자처럼 참다운 실재란 이것과 같지도 않고 저것과도 같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다-단지 그것이 훨씬 더 나은 것이라고 덧붙여 말할 수 있을 뿐이다. 

153 플로티노스가 그노시스주의의 성향과 원리를 부인한 것과 더 극단적으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마니교로부터 개종한 것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성과가 큰 모순을 받아들이기로 한 결정의 의의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았으며 실로 18세기에 이르기까지도 완전히 드러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공식적 설이 압도적으로 내세적인 시대인 중세를 통해 본질적으로 '현세 지향적인' 철학의 뿌리는 적어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즉, 신의 본질인 <이데아>의 세계에는 진정한 내재적 다양성이 있다는 가정, 더 나아가 "존재는 선하다"는 것, 즉 보편적인 것에 구체적 현실성을 덧붙이는 것이나 초감각적 가능성을 감각적 현실성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가치의 상실을 뜻하지 않고 그 반대로 증가를 뜻한다는 것, 또한 실로 선의 본질 자체는 다양성을 최대한 현실화하는 데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시간적·감각적 경험의 세계는 선한 것이며 신적인 것의 최고 표현이라는 것 등과 같은 가정은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었다. 

221 서양 사상에서 우주관과 도덕적·종교적 감정 사이의 관계의 역사에는 상당히 기묘한 모순이 존재해 왔다. 유한한 지구 중심적 우주에 당연히 알맞은 정신적 습관은 우주가 사실상 그러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시대에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지만 과학과 철학에서 이러한 생각이 폐물이 되어 버리고 난 오랜 후에야 비로소 최대한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모순에는 두 가지 주요한 측면이 있다. (1) 이해력과 상상력을 난처하게 만들고 파스칼과 같은 특정 유형의 인물에게는 인간의 자연적인 희망과 야망과 노력을 사소하고 공연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공간적·시간적 무한성은 그 자체로서 내세성을 생기게 하는 경향이 있다. 사고와 의식이란 스스로가 의존해야 할 어떤 궁극성을 추구하면서, 또한 이 세상에서 이것을 찾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 찾는다. 대부분의 인도 종교 철학에서 심오한 내세성은 이 인종의 상상력의 어떤 수학적 장대함, 또한 그 상상력이 직면하는 모든 지평선─이 중에서도 특히 시간이란 지평선─이 지루할 정도로 한없다는 것 등과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 사상에서는 형이상학적 내세성과 실제적 내세성이 수세기에 걸쳐 우주론적 유한론과 공존해 왔으며, 더욱이 한편으로 우주론적 유한론이 이론적으로 포기되기 시작했을 때 초감각적·초시간적 실재에 대한 인간의 정신적 선입견도 역시 점차 감소되었고 종교 자체는 더욱더 현세적인 것으로 바뀌는 변칙성을 우리는 발견한다. (2) 중세적 우주관과 근세적 우주관사이의 이러한 일반적 척도의 차이를 제쳐놓는다면, 중세적 우주관은 그 재생되지 않는 상태의 인간에게 아무리 낮은 지위를 할당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현세의 역사에 독특한 의의를 부여하였다. 비슷한 드라마 혹은 더 중요한 드라마가 각각 독립적으로 다른 천체의 진로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연출되는 천체는 달리 없었다. 우주란 적어도 공연 무대가 많은 서커스가 아니었다. 그러나 또다시 이러한 선입관에서 생길 것으로 얘기될지도 모를 기질에는 중세 사상의 특징이 비교적 거의 없었다. 지구의 거주자가 지상의 사건의 일반적 움직임에 대해 최대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이윽고 인간 자신의 실제적· 잠재적 업적에 관해서─이들의 전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시간의 무한한 영고성쇠 속에서는 실로 순간적인 에피소드에 불과하며 헤아릴 수 없는, 이해를 초월한 우주 속의 작은 섬에 불과한 것을 무대 위에 상연시키고 있긴 하지만─우주의 운명 전부가 자기들에게 달려 있고 거기에서 완성되는 것처럼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은 지구가 그 독점을 상실한 <후>부터였다. 호모 사피엔스가 우주라는 무대의 극히 작은 한구석에서 자신을 가장 중요시하며 또 자기만족에 빠져 법석댄 것은 13세기가 아니라 19세기였다. 물론 이러한 모순이 생긴 이유는 19세기에서도 13세기에서와 마찬가지로 특정 관념 연합이 당시 수용된 우주론적 전제가 갖는 특징적 경향에 크게 거슬러 작용하였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여기에서 더 이상 이러한 반작용적 요인들의 성질을 구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시공의 척도와 사물의 체계를 도입함으로써 당연히 생겼는지도 모르는 어떤 결과는 실제로는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비록 약간의 변동은 있지만 천천히 부분적으로 드러났으며 그 충격의 전부는 아마도 아직 미래에 속하리라는 것에 주목하는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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