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미트루 스터닐로에: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 10점
두미트루 스터닐로에 (지은이),김인수 (옮긴이)비아

머리말
서문
1. 실존의 의미
2. 무한에 대한 갈증
3. 완전한 사랑
4. 구별되나 연결되는
5. 아들의 사랑
6. 성육신
7. 셋은 완전하다
8. 연합의 영
9. 성화
10. 생명의 영을 찬미하라
두미트루 스터닐로에에 관하여
두미트루 스터닐로에 저서 목록



13 거룩한 삼위일체는 존재의 지고한 신비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거가 되기에, 삼위일체 없이 해명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이것이 삼위일체가 신비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고, 어느 정도까지는 논리가 있는 이유다. 달리 말해, 삼위일체는 모든 존재의 깊이임과 동시에 이를 이해할 수 있는 기초로서 참된 형이상학을 제시한다. 형이상학에 관해 말하는 철학자들도 존재의 근원을 다루기는 하지만, 이를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철학자들에게 형이상학의 실재는 진화 법칙의 지배를 받는 본질essence, 혹은 만물을 흘려 내보내는 일련의 발산물emanation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실이 무언가에 의존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런 측면에서 철학자들의 형이상학은 논리의 취약함을 스스로 증언한다. 

14 그러한 면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논의는 일반 형이상학보다 논리의 측면에서 우위를 점한다. 특별히 삼위일체 하느님이 실존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리스도교 고백에 따르면 우리 실존의 근간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이 있다. 삼위일체는 태초 이전부터 있던 사랑이며, 사랑의 확장을 추구한다. 사랑 외에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랑은 끝이 없고, 영원하다. 그 무엇에도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끝이 없기에, 시작도 없다. 시작도 끝도 없는 사랑은 우리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완전한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창조되지 않고, 끝이 없는 법칙을 알아보지 못한 채, 그 법칙에 종속된 철학자들의 형이상학은 우리에게 어떤 빛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21 이 세계에 시작이 없는 존재는 있을 수 없다. 시간 안에 있는 모든 존재는 영원에 잇닿아 있지만, 동시에 자의식과 자유를 형성해야 한다는 제약을 받는다. 영원한 자유에 뿌리를 내린 존재임과 동시에 법과 법칙의 제약을 받는 존재이기에 인간은 양가적 존재다. 이와 같은 양가적 상황에서 인간은 의식을 형성하고 자유 의지에 따라 선택한다. 자유는 결코 아무런 선택도 허용하지 않는 필연 법칙의 산물일 수 없다.  

23 '존재'being를'시작'이 있는 '실존'existence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한 가지는 인정해야 한다. 자의식이 없는 인간 실존은 없다. 인간은 자의식을 형성함과 동시에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존재는 영적인 질서 가운데 실존하며, 이 세상의 어떤 것에 기대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영원부터 스스로 실존하는 존재가 세계에 나타난다면, 그 존재는 끝이 있을 수 없다. 진화라는 법칙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이 끝을 향해, 목적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그러나 이 법칙은 이 법칙을 시작하게 한 무언가가 없다면 나타날 수 없다. 

51 하느님이 단일 인격, 혹은 위격으로 존재한다면, 그분은 영원한 선, 혹은 사랑일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수의 위격으로 존재한다면 각 위격의 상호성은 일그러지고, 결과적으로 삼위일체의 인격성 또한 훼손된다. 하느님은 세 위격으로 있을 때만 하느님으로 존재하실 수 있다. 세 위격일 때 절대적인 사랑을 할 수 있고, 또 받을 수 있는 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세 위격은 각각 다른 위격에 현존하기 때문에 각 위격에서도 전체 하느님을 볼 수 있다. 세 위격은 셋으로 분리된 신이 아니다. 교부들은 일관되게 하느님은 단일 인격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하나의 인격만 있는 신은 하느님도 아니고 사실상 인격이 있다 할 수도 없다. 그러한 신은 전능할지 몰라도 선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다. 어떠한 존재와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독재자를 전능하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신이 무에서 존재를 창조하기를 바랄까? 심지어 그렇게 창조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하느님은 시간 안에서 창조된 존재들과 교감하시기를 바라실까? 하느님이 단일 인격의 신이라면 사실상 진화, 혹은 발산의 법칙, 즉 존재의 기원이나 결과를 설명할 수 없는 자연법칙에 종속된 비인격적 존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93 성부와 성자의 영원한 관계가 없다면, 의식이 있는 존재들이 존재할 근거, 그들이 아들과 형제애를 나누는 복된 상태로 부름받을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성부와 성자의 영원한 관계는 의식이 있는 존재들에게 영양을 공급한다. 인류 최고의 목적은 바로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 온전히 참여하는 것이다. 

121 영원의 차원에서, 성부와 완전한 유대를 맺은 성자는 자신에게 속한 인간에게도 그 유대를 새기신다. 그리하여, 이 유대는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로 믿는 모든 이를 포함하도록 확장된다. 이렇게 인류는 삼위일체가 나누는 사랑의 관계에 참여한다. 성자가 성부를 사랑하고, 성부의 사랑에 응답함으로써 연합하듯이 성자는 인간들도 그 호혜적 관계에 참여할 수 있게 하셨으며, 그 관계로 인간들을 초청하신다. 그렇기에 그분의 사랑 안에서, 그 초청을 받는 가운데 각 사람은 상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선언하고 상대의 응답을 요청한다. 이러한 친교의 바탕에는 성육신하신 성자의 성부를 향한 사랑이 있다. 사랑의 주고받음은 상호 관계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내어줌과 응답의 기원은 삼위일체 하느님이다. 삼위일체는 가장 높은 차원의 사랑의 선언이자 표현이다. 이 선언은 성부와 성자가 빚어내는 사랑의 화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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