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기: 사통

 

사통 (한정보급판) - 10점
유지기 지음, 오항녕 옮김/역사비평사

일러두기 8
책머리에: 1500년 전에 쓴 ‘역사란 무엇인가’ 10
<사통>을 읽기에 앞서: <사통>의 구조와 역사 비평 15

서문 序 54

내편 內篇
01. 역사가의 여섯 유파_六家 60 / 02. 두 갈래의 역사 체재_二體 88 / 03. 말을 기록하는 역사_載言 98
04. 본기의 유래와 변화_本紀 106 / 05. 세가의 유래와 성격_世家 116 / 06. 열전의 유래와 성격_列傳 126
07. 표력의 유래와 특징_表歷 136 / 08. 서지의 유래와 변화_書志 144 / 09. 다양한 사론의 전개_論贊 188
10. 서문과 범례의 발달_序例 200 / 11. 역사서의 서명과 편제_題目 212 / 12. 역사 편찬 대상 시기_斷限 224
13. 편차의 방식과 오류_編次 238 / 14. 호칭 사용의 정확성_稱謂 252 / 15. 사료 수집의 적절성_採撰 268
16. 문장 인용의 주의점_載文 286 / 17. 주석의 득실과 우열_補注 304 / 18. 인습의 오류와 병폐_因習 314
19. 출신지 기록의 오류_邑里 328 / 20. 언어 표현의 사실성_言語 338 / 21. 어쭙잖은 말과 과장_浮詞 356
22. 서사의 방법과 유의점_敍事 372 / 23. 불합리한 인물 평가_品藻 406 / 24. 직서의 모범과 전통_直書 420
25. 곡필의 사례와 영욕_曲筆 428 / 26. 역사서에 대한 평가_鑒識 442 / 27. 역사서의 배경 억측_探賾 452
28. 역사서 모방의 허실_模擬 468 / 29. 서술의 핵심과 폐습_敍事 486 / 30. 인물의 선정과 평가_人物 502
31. 역사가의 재능 비교_覈才 514 / 32. 서문의 변천과 성격_序傳 524 / 33. 서사의 번잡과 생략_煩省 534
34. 기타 다양한 역사서_雜述 546 / 35. 사관의 태도와 자질_辨職 564 / 36. 나의 역사학과 사통_自敍 574

외편 外篇
01. 사관의 발달과 변화_史官建置 596 / 02. 정사의 흐름과 종류_古今正史 622 / 03. 역사서에 대한 의문_疑古 682
04. <춘추>에 대한 의혹_惑經 710 / 05. 역사서 비교와 우열_ 申左 742 / 06. 번잡한 문장의 삭제_點煩 768
07. 주요 역사서 비평Ⅰ_雜說上 796 / 08. 주요 역사서 비평Ⅱ_雜說中 830 / 09. 주요 역사서 비평Ⅲ_雜說下 860
10. 「오행지」의 오류들_五行志錯誤 900 / 11. 「오행지」에 대한 여러 비판_五行志雜駁 936
12. 무지와 미혹의 사이_暗惑 958 / 13. 이대로는 안 됩니다_?時 986

<신당서> 권132 「유자현전」 1006

부록
<사통>에 등장하는 주요 역사가 1026
찾아보기 Ⅰ : 인명, 지명, 개념어 1030
찾아보기 Ⅱ : 서명, 편명, 작품 1041

 


책머리에
12 「조선왕조실록』. 흥미롭게도 「조선왕조실록』 편찬의 경험은 유지기가 걱정했던 실록 편찬 일반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과정이었다. 실록 편찬은, 기록자와 편찬자가 다르고, 사초나 기타 공문서에 적힌 이해관계자들이 살아 있을 때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화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구조가 내재한다. 조선시대 사화가 사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이유이다. 조선 사람들은 사관의 기록인 사초의 보호에서 시작하여 편찬 과정의 누설 금지, 사후 엄중한 사고 관리를 통해 유지기가 실록 편찬을 지켜보며 걱정했던 문제들을 극복해갔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작동하고 수리되는 동안은 조선이 유지되었고, 그 시스템이 고장 나면서 조선은 무너져갔다. 

12 「사통」은 뭐니 뭐니 해도 인류 최초의 '역사학개론','역사란 무엇인가'이다. 역사서의 범주, 사관 제도의 역사, 역사서에 담기는 기록의 종류, 역사서의 장단점, 분류사의 서술과 특징, 역사 사실의 왜곡과 오류 등을 날카롭게 살핀 사료 비판에 대한 종합적인 관찰과 서술이다. 특히 역사서와 사학사를 다룬 일부를 빼면, 「사통 내편」 후반과 「사통 외편」 중·후반 등에서 다룬 논의는 거의 모두 사료 비판에 치중해 있다. 공자도 사마천도 그의 비평을 피하지 못하였다. 학부 때부터 역사학을 전공한 나는 유감스럽게도 이런 사료 비판 교육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사료 비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유지기의 「사통」이 갖는 가치는 충분하다.

<사통>을 읽기에 앞서
15 전목은 "「사통」은 중국 학술 관련 저작 가운데 매우 특수한 지위를 지닌다. 중국인들은 학문을 하면서 종류의 책을 쓰는 경우가 매우 적은 것 같다. 예컨대 문학통론, 사학통론 같은 책 말이다. 중국인들은 실제적인 작업을 중시하므로 '통론'이나 '개론'을 쓰는 사람이 아주 적다. 「사통」은 중국의 사학통론에 해당하는 책으로서, 아마도 중국 유일의 사학통론서라고 할 수 있다."라고 했다. 

50 전목은 유지기의 「사통」이 훌륭한 책이지만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과 식견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역사가의 존재 이유로 전목이 인용했던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며, 일가의 견해를 이룬다."라는 사마천의 '『태사공자서』의 격조와 넓은 도량에 유지기가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필자는 역사철학적 지향을 배경에 깐 것으로 보이는 전목의 유지기 비판에 공감하지 않는다. 유지기는 「자서」에서 "나의 「사통」이란 책도 당대 붓을 잡은 사람들의 뜻이 순수하지 못한 점을 걱정해서 역사학의 목표나 지향을 변경하여 그 체계와 원칙을 확립하고자 만든 것이다. 이 책이 비록 역사를 위주로 했지만, 여파가 미치는 데는 위로 왕도에 이르고 아래로는 인륜을 펴서 만물을 총괄하고 모든 존재를 포함할 것이다. 『법언 이후 「문심조룡」에 이르기까지 저들을 가슴속에 담아두었으니, 일찍이 작은 문제에 구애된 적은 없었다.”라고 했는데, 이는 과장이 아니다. 관료제의 발달로 문서 생산이 많아지면서 새롭게 등장한 실록 편찬은 사관의 임용과 관청 자체에 변화를 가져왔다. 자격 미달의 사관이 임용되고, 집단 편찬은 비밀 보장을 어렵게 했으며, 무원칙한 편찬 지침이 난무했다. 유지기는 이런 현실을 보고 「사통」 저술을 시작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실록 편찬이라는 사건은 유지기가 퇴행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이었다. 그러나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그 적응이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학개론'인 「사통」을 탄생시켰고, 유지기가 실록 편찬에서 우려했던 문제점은 후일 조선시대 실록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극복되었다. 

50 「사통」에도 한계는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계가 아니라 시대적(=역사적) 특징이다. 지식의 생산과 유통이 현재와 다른 양식으로 작동하던 사회에서 역사가 역시 현재와는 존재 양태가 달랐다. 주로 정부 관원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사관의 사유는 국가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유지기는 국사의 권위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 국가보다 언제나 인간 문명의 전달자로서의 역사가 그에게는 상위 개념이었다. 이 점이 지금까지 유지기의 「사통」이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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