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힘 E. 베렌트: 재즈북

재즈북 - 10점
요아힘 E. 베렌트 지음, 한종현 옮김/자음과모음

서문
제1장 재즈의 스타일
제2장 재즈의 대표적인 뮤지션들
제3장 재즈의 구성 요소
제4장 재즈 악기
제5장 재즈 보컬리스트
제6장 재즈 빅 밴드
제7장 재즈 캄보
제8장 재즈를 정의하자면
제9장 디스코그래피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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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6 이 책의 의도는 래그타임ragtime과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재즈 전체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1980년대에 재즈의 외연이 엄청나게 확장되었기 때문에, 이 기간은 책 한 권의 주제로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새롭게 등장한 많은 뮤지션을 공정하게 다루기 위해서 악기에 대한 장에서는 완벽을 기할 수 없었다. 오늘날 더 이상 결정적인 중요성이 사라졌다고 판단되는 뮤지션들은 이번 개정판에서 누락시켰다. 그러나 스타일과 연주법의 비조에 해당되는 모든 뮤지션은 전혀 누락시키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포괄적인 이해를 원한다면 이 책의 이전 판을 참고하기 바란다. 

7 1980년대 음악에 대한 글쓰기에는 또한 언어의 문제가 따른다. 재즈의 초기 스타일에서 거의 모든 뮤지션은 서로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생각해보라. 1920년대를 지배했던 시카고 스타일Chicago style 전체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은 1990년대 단일 악기의 연주법을 대표하는 뮤지션들보다 그 수가 적었다. 수많은 뮤지션과 스타일들을 구별하기에 말로는 부족한 점이 있다. 음악은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언어보다 훨씬 미묘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음악에 대한 글쓰기의 문제점이다. 많은 뮤지션이 하나 이상의 그룹(분류 집단)에 속하지만, 많은 이름과 사실들을 다루기 위해선 그 대부분을 하나의 그룹에 귀속시켜 소개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뮤지션을 포함하고 있는 테너 색소폰, 피아노, 기타, 드럼에 대한 부분에서는 특히 불가피했다. 이 문제에는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 일반화 없이 비평과 서술은 불가능하다. 저명한 문화사가인 에곤 프리델Egon Friedell은 "인간이 궁리해낸 모든 분류법은 독단적이고 인공적이며 오류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분류법은 인간사고의 본유적 측면과 일치하기 때문에 유용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무엇보다 불가피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 거론되는 모든 뮤지션은 재즈 발달사의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서술된다. 그러나 사실상 한 사람의 일생에서 어느 한 시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직선적이며, 다시 말해 무수한 시점의 연속인 것이다. 그러나 개별 악기에 대한 부분에서는 하나의 '시점' ─ 뮤지션을 카테고리에 귀속시키는 하나의 연주법 ─ 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대다수 비평가가 판단하고 궁극적으로는 뮤지션 자신이 인정하는 카테고리에 각각의 뮤지션을 귀속시키려고 노력했다. 이전 판에서처럼 기존 테스트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비판적으로 치밀하게 검토하였으며, 그에 따라 축소 또는 확장, 수정 또는 개작하였다.

제1장 재즈의 스타일

21 재즈는 항상 소수의 관심사였다. 1930년대 스윙Swing 시대에조차 극소수의 음반을 빼면 창조적인 흑인 뮤지션들의 재즈를 이해하는 이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재즈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결국 다수를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대중음악이 재즈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TV시리즈와 라디오 인기 프로그램, 호텔 로비, 엘리베이터, 영화, 그리고 워크맨Walkman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음악, 찰스턴Charleston에서 록, 펑크funk, 힙합hip-hop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댄스음악, 우리를 삼켜버리는 일상 속의 소리들이 모든 음악이 재즈에서왔다(왜냐하면 비트beat가 재즈를 통해서 서양음악에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재즈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주변의 소리'의 가치, 다시 말해서 음악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음악의 질을 논하는 것이 정당하다면 음악의 질적 수준이란 우리의 영적·지적·인간적 가치, 즉 우리의 의식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즈음처럼 세제 광고나 항공기 이륙 장면에서도 음악이 수반되는 걸 보면, '우리 주변의 소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재즈에 적극적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재즈의 힘, 열정, 깊이를 우리의 삶에까지 연장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재즈의 다양한 종류, 형식, 스타일과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의 시공간 사이에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연관성이 있다. 그 음악적 가치를 제외한다면, 재즈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그 스타일의 발전 과정인 것 같다. 재즈의 발전 과정에서는 모든 진정한 예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연속성, 논리성, 통일성, 내적 필요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발전 과정이 전체를 구성하는 것이며, 그 과정의 일단을 지목해서 그것을 유일하게 타당하다거나 정도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는 시각은 이 개념적 전체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것은 발전 과정의 거시적 통일성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어도 유행은 논할 수 있지만, 스타일은 논할 수 없다. 재즈의 스타일은 실제적인 것이며, 유럽음악에 서 고전주의, 바로크, 낭만주의, 인상주의 음악이 그것에 상당하는 시기를 반영하는 것처럼, 그 특정 시기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이 우리의 확신이다. 

개별적인 재즈 스타일을 살펴보면서 그 다양성을 확실히 느끼는 방법을 한 가지 제시해보겠다. 초기 스타일인 래그타임과 뉴올리언스를 읽은 뒤 몇 단계 건너뛰어 프리 재즈를 읽어보라. 물론 그 특색 있는 레코드도 들어보기 바란다(이 책 뒷부분의 디스코그래피가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타 예술 형식에 50년 만에 이렇게 현저히 발전하면서도 뚜렷한 상호연관성을 갖는 스타일이 있는가? 

재즈 역사의 물 흐르는 듯한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확실히 스트림stream 이란 단어는 재즈 비평가와 뮤지션들이 개별적인 재즈스타일에 여러 차례 일관성 없이 사용해왔다. 처음에는 스윙 재즈에, 나중에는 현대 재즈의 주류에 메인스트림mainstream 이란 말을 쓴 것이나, '서드 스트림third stream'이란 용례를 보면 매우 흥미롭다. 뉴올리언스부터 우리 동시대의 음악까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강력한 흐름stream이 있다. 비밥이나 그 이후의 프리 재즈의 출현과 같은 재즈 역사의 단절이나 혁명조차도 뒤돌아보면 유기적이며 심지어는 불가피한 발전 과정처럼 보인다. 그 흐름은 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소용돌이나 급류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항상 같은 흐름일 뿐이다. 어느 하나의 스타일이 다른 스타일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스타일이 그 이전의 모든 것을 통합하는 것일 뿐이다. 

위대한 재즈 뮤지션들 다수는 그들의 연주 스타일과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연관성을 감지해왔다. 근심 걱정 없이 즐겁기만 한 딕시랜드Dixieland는 제1차세계대전 직전 시대에 해당된다. 광란의 1920년대에는 시카고 스타일이 탄생했다. 스윙은 제2차세계대전 이전 생활의 대중적 규격화를 구체화했다. 아마도 마셜 스턴스Marshall Stearns의 말을 빌리자면,"미국인의그리고 매우 인간적인 큰 것에 대한 애착의 결과였다. 비밥은 1940년대의 신경과민적 불안감의 표현이다. 쿨 재즈는 잘 살고는 있지만 수소폭탄이 대량 비축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체념을 반영한다. 하드 밥은 저항적이며, 그 뒤를 이어서 유사한 성격의 펑크funk와 소울soul 음악이 유행을 탄다. 이 저항은 프리 재즈에서 비타협적이고 급박한 분노로 바뀐다. 이것은 민권운동과 학생운동의 시대적 성격을 반영한다. 1970년대는 새로운 통합의 단계였다. 재즈 록jazz-rock의 일면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시대적 믿음과 부합한다. 반면 1980년대의 재즈는 유족하게 살고 있으나 맹목적인 진보가 초래한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회한을 표현한다. 여기에서 이렇게 일반화 및 단순화시켜 언급한 측면들은 뮤지션 개개인과 밴드들의 다양한 스타일에서는 더 명쾌하게 드러난다. 

많은 재즈 뮤지션들은 과거의 재즈 스타일을 재건하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역사법칙은 재즈의 본질에 역행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재즈는 살아 있으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변한다. 1950년대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c의 음악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을 때, 옛 베이시 밴드의 주 독주자였던 레스터 영Lester Young은 옛 팀 동료와의 녹음을 통해 1930년대의 베이시 스타일을 재건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레스터의 반응은 이러했다. "난 못합니다. 난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연주 못합니다. 나는 다르게 연주합니다. 나는 그때와는 달라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요. 우리는 변합니다. 움직이지요." 역사적인 재즈 스타일의 현대적 재건에 있어서도 이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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