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5.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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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한 연구 - ![]() 박상륭 지음/문학과지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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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줍기 얘기
주
해설 / 육조어론_김인환
제5장 제34일
684 그가 허긴, 사내는 사내였던 모양이었다. 듣기로는 목뼈를 부러뜨렸을지도 모른다고 했었는데, 분위기로 내가 느끼기에 글쎄 저 형장 나리는 벌써 멀쩡해진 모양으로, 그래서 해장 소주 거나히 마늘 함께해서 마셔, 오물 냄새를 창자로부터 풀풀 풍기며, "장부들 약속은 약속이란, 말여. 그러니 저 중님을 뿔깡 들어다가시나, 조 목욕탕에다 떤지 넣으란 말이제. 그라고 잘 삶ㄹ아야 되는지, 가만있자, 그라기 전에, 이발하는 계집으로 하여서나, 먼첨 털을 밀어내 뻐리라고 해야 쓰꺼나? 아워쨌던동, 꾀를 활랑 베끼고 먼첨 잡아 처넣을 일이겼다. 넣고시나, 대강 튀겨졌다 싶으먼, 털을 밀어붙이라고. 돼지나 겉으먼 붕알 한점이 소곰하고 좋고, 닭 겉으먼 똥집 한점이 입에 미어지겼지만, 조건 영 묵도 못할 괴기라논개, 씨버갈 녀러, 아그라고 워디를 갔단댜, 조 욕섬 많던 잡년 말여? 조 중님 잠자리 수청 들겼다던 고 잡년 말이다, 불러내 오란 말여 씨버갈 제집년"하고 그는, 떠나가라 하고 떠들고 있었다.
689 나는 좀 눈물기를 느꼈다. 이것은 어쩐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만 느껴졌다. 나로서는 그래서 체 머리를 좀 씰룩씰룩 흔들다 꿇어앉아 더듬어, 그의 발둥을 찾아 그 위에 입 맞추고, 그리고 일어나 다음으로, 그의 입술에 입 맞춰 조금의 침을 건네주고, 그리고 오조 촌장이라는 늙은이가 내게 물림한, 그 해골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것은 그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690 그러나 그는 그것을 받으려고는 하질 않고, 한동안 아무 말도 움직임도 해 보이지 않았는데, 그는 어쩌면, 그 해골의 유산의 의미를 생각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내 그는 그것을 받고, 세 번 내 발등에 이마를 댄 것으로 미뤄보아, 내게 세번 절한 것 같았다. 그러자 내게서는 열예가 일어나며, 이 세상을 산다거나, 하직한다는 일이 결코 싫은 것 같지가 않았다.
690 나는 그리하여, 내가 택해서, 타인에 의해 준비된 무덤에 연좌를 꾸미고 앉았다. 그것은 꼭 하나 몫의 연좌를 수용하게, 관 짜는 목수가 짰을, 정사각형의 깊은 송판 곽인 것을, 나는 만져 살펴보고 확실히 알았다. 그것은 뚜껑이 없는 뒤주 꼴이었다. 그 바닥엔 게다가, 푹신한 방석까지도 하나 깔려 있어서, 이런 호사는 내가 기대치 않은 것이었으나, 어쩌면 촛불중의 고려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었거나, 나리의 갑자기 두터워진 나에의 우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691 이것이 글쎄 내가 택한 죽음이었다 나는, 어떤 광주리에나 망태기에 담겨져, 높은 나무의 그중 높은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지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거기 편안히 담겨서 나는, 서서히 오는 죽음과의 밀회 갖기를 바란 것이었다. 나의 이런 바람을 성의 있게 들어준, 촛불중과 나리와 밤잠을 설쳤을 다른 수인들께 나는 감사해야 할 것이었다. 그들은, 나 하나의 장례를 위해서, 밤잠을 설쳐 동아줄을 꼬았어야 했을 것이며, 그 동아줄을 이 높은 가지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 그들 중의 하나쯤은, 위험을 무릅쓰고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왔었어야 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관곽도 짜야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에, 그러한 장례 절차에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떠올려지는 느낌으로 추측건대, 그들은 아마도 두레박을 끌어 올리는 방법 같은 것으로, 한쪽에 나를 앉힌 관곽을 매달고, 그 줄은 나무의 가지에 걸어서는, 그 다른 쪽 끝을 여러 사람의 힘으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692 나는 이제는 완전히 동떨어져, 한 덩이의 식은 밥도, 한 방울의 수분도 얻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 이슬을, 어쩌다 내리게 될지도 모르는 부드러운 비를 핥으면 되리라. 이제는 그리고, 까마귀 우짖움이며, 어쩌다 부는 바람이 내 둥지를 흔드는 것이며, 갈증 돋우는 햇빛, 밤의 모든 외로움과 추위를 감내해야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자청했고, 그러면서 내가 순화되어, 어느 때 탈바꿈되어지기를 바란 것뿐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나는, 땅으로부터 떠난 것이다, 라고 나는 믿어야 하는 것이다.
692 그러나 어쨌든 드디어 나는, 나를 구속하고, 마음으로 시달리게 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은둔을 성취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쨌든 죽음은 일종의 은둔이다. 내가 숨 쉬는 대기는 향기로우며, 햇별은 쏘기는커녕 달빛처럼 부드러이, 내 어깨 언저리에다 구릿빛 이슬을 바르고 있고 까마귀들은 면계의 아픔은 잊어도 좋을 때라는 것을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없는 시력으로, 그렇기 때문에 시야에 장애를 갖지 않고 더 넓이, 저 세계를 내려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소리 중에서도 아름다운 것, 냄새 중에서도 향기로운 것, 감촉 중에서도 그중 부드러울 것만을 위해 내 혼은 열려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 아래로는 숲이 흐르는 소리가 쉼 없이 들리고, 나는 그 바닥에 멱 감는 어떤 잎 그늘─그 속에 깊이 그늘을 드리웠으나 수면으로 살포시 뜨는 그늘, 그리하여 드디어 나는, 죽음 위에 정박한 작은 배로구나. 죽음이여, 그러면 내게 오라. 내가 그대 위에 드리운 그늘을 온통 밤으로 덮어, 그 그늘의 작은 한 조각을 지워버리도록, 육중한 어둠이여, 이제는 오라, 까마귀들로 더불어, 그러면 오라. 죽음이 거느릴 저 아리따운 아씨들, 빛이 빛이 아닌 빛으로 깃털을 장식한, 저 까마귀들로 더불어, 혹단 같은 발을 내디뎌 내게 이제는 오라. 나만의 것이었던 조그만 내 그림자는 내게 무겁던 것이다. 그 그림자를 이제는 내게서 지워 없애주기만을, 나는 그리하여 사망(死亡)으로써 사망(思望)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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