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다 마사히로: 붓다와 정토 - 대승불전 II

붓다와 정토 붓다와 정토 - 10점
시모다 마사히로,닛타 토모미치(지은이),원영상 (옮긴이)

 

제1장 정토사상의 이해를 향해서 시모다 마사히로
제2장 대승의 붓다의 연원 닛타 토모미치
제3장 정토에 태어나는 여인들-문헌학으로서 불교학의 의의 폴 해리슨 / 야오 후미 번역
제4장 『유마경』의 불국토 다카하시 히사오.니시노 미도리
제5장 아촉불과 그 불국토 사토 나오미
제6장 아미타불 정토의 탄생 스에키 후미히코
제7장 정토와 예토-『비화경(悲華經)』 개관 이와가미 카즈노리
제8장 정토교의 동아시아적 전개 니시모토 테르마

 


7 첫 번째 반론은 불교학의 방법론을 검토하기 위한 중요한 문제 제시이다. 이것에 대한 회답은 정토사상 연구의 기본적 의의의 이해와 관련되어 있다. 이를 위해 본 절과 다음 절에 지면을 할애해 살펴보자. 

이 물음에 대한 고찰의 전제로서 주의해야만 하는 것은, 애초에 정토사상이라고 하는 특별한 사상이 고대 인도불교 가운데 역사적 사실로서 자립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토사상의 전제가 되는'원시 정토사상'은 후지타(1970)에 의해 구성된 가설적 개념이다. 이 가설의 근거는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관한 주요한 술어를 지닌 대승경전, 구체적으로는 『무량수경』과 『아미타경의 두 경전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의 경전에서 '사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체계적 이론이 전개되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사상의 이름에 준하는 구조나 체계를 가진 논의는-뒤에서 기술하는 정토론을 제외한다면-후대로 내려와 동아시아에서 전개된 것이다.  

이 점에서 정토사상은, 같은 '사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중관사상이나 유식사상과 동렬에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관이나 유식은 인도불교의 역사에서 무언가의 형태로서 학파의식과 함께 존재하고, 여러 논서에서 체계적 언설을 갖추고 있으며, 사상이라고 부르는 것에 어울리는 요건을 갖고 있다. 따라서 중관이나 유식사상은 이미 인도에서 체계화된 내용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으로써 상당한 정도까지 재구성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정토사상은 특정한 관점에서 여러 개념을 체계화하는 시도를 연구자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상이라는 말을 사용하더라도 가설로서의 사상과 사실로서의 사상을 구별해 놓지 않으면 안된다. 가설로서의 사상을 취급할 때에 물어야만 하는것은, 첫째로 후대의 연구자에 의한 사상의 구성이 과연 의미를 가지는가, 더하자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가라는 물음이며, 둘째는 그 구성을 할 때에 어떠한 작업 구조framework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물음이다. 

첫째의 물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아미타불의 극락 정토를 둘러싼 사상은 불교의 중요한 요소로서 동아시아 불교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 체계화되지 않고, 사상의 이름도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도학이나 불교학의 해명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그것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것에 하나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에 의해, 즉 사상으로 가정하는 것에 의해 처음으로 본격적 고찰의 대상이 된다. 사상연구는 이미 기록되어 있는 사실의 재현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잠재하는 요소를 구해내서 현재화시키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이러한 회답이다. 

58 초기 대승경전에 등장하는 석가불은 연등불을 훨씬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의 붓다로부터 계승된 계보의 후예에 위치한다. 요원한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붓다들의 계보 위에, 과거로부터 현생에 이르기까지 수 없는 생애를 거쳐 온 보살로서의 붓다에 대한 이해에 입각하여 처음으로 붓다의 존재가 인정되고 있다. 그것이 부파, 대승을 가리지 않고 불교도들이 이구동음으로 인정하는 붓다이다. 

72 정토경전의 전승의 정통성이,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인가되고 수용될 때에 수립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이상의 이해로서 충분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에 정토경전에서 염불과 믿음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것일까. 이것은 실은 정토경전에 한하지 않고, 불교 그 자체의 전통의 정통성에 관한 기원과 성립에 깊이 관계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전승되는 불교의 여러 요소 가운데 붓다, 붓다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 그 위에 주의해야만 하는 것은 불교의 전승이라는 테마는 역사적 붓다의 '존재'로부터가 아니고, 그 '부재'로부터, 명료하게는 그 '입멸'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전승은 소멸의 위기에 처하여 그 존재를 나타내고, 존속의 필요성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킨다. 그렇다면 불교도들은 석가불이 입멸한 불부재의 세계에서 어떻게 해서 붓다의 존재를 전승할수 있었던가.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모습의 형태, 조형이 된 붓다, 불탑이나 그 주위에 그려진 여러 조형물을 통해서이다. 또 하나는 언어가 된 붓다. 즉 경전의 교설에 의해서이다. 그 교설 가운데 직접적으로 붓다의 존재에 관계된 것은 '염불=불수념'이다. 

74 모든 존재들에 의해 공양될 만한 가치가 있는 자, 순수하며 진정한 깨달음에 이른자, 지혜와 체험을 완비한 자, 최고의 신분에 이른 자, 세계 모두를 다 아는 자, 최고로서 최상인자, 제어되어야만 하는 강자를 제어하는 자, 신들과 사람들의 사부인자, 진여로부터 와서 진여로 간자-이러한 붓다의 공덕의 이름은 불전의 내용과 불탑 부조물의 각 장면에 놀라울 정도로 중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붓다의 전승은 조형이 된 붓다. 즉 색신과 십호라는 말이 된 붓다. 즉 법신과의 두가지가 서로 영향을 주고, 서로 융합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거기에는'인물화'된 '개아'로서의 붓다의 시각 이미지는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석가불의 입멸 이래 불교도들에게는 십호가 된 붓다의 이름을 외고, 듣고, 듣게 하고, 칭하게 하는 것이 붓다를 전승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장대한 불전과 불탑은 태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219 오늘날 정토라고 하면 대부분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로 특화되고, 정토교라고 하면 아미타불 신앙과 동일시되어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바라는 신앙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원래부터 말하자면, 이는 아미타불의 정토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타방불사상이 진전하는 가운데 형성된 것이므로, 이 사바세계 이외에도 시방에 무수한 불국토가 있으며, 그것이 각각 다른 붓다에 의해 지도되고 있다는 것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다만, 그 가운데 실제로 어느 정도의 신앙 확장이 발견되는 것은, 아미타정도 외에 아촉불의 묘희세계, 약사불의 정유리 세계 등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에서는 정토개념이 널리 응용적으로 이해되어, 대일여래의 밀엄정토, 석가불의 영산정 등이 신앙되었다. 또한 미륵불이 이 세계에 출현하기 전에 대기하고 있는 도솔천도 도솔정토, 미륵정토라고 불리며 극락정토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신앙되었다. 관음보살의 보타락산 보타락정토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고야 정토와 같이, 실재하는 성지가 사후의 정토로 생각되는 경우도 있었다. 

221 정식화된 대승의 이론에서는, 성불하는 것이 곧 동시에 불국토를 가지는 것이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되므로 보살은 정토의 실현을 지향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토사상이라고 하면 구제되는 측으로부터 '가는 정토'가 강조되지만, 대승불교보살의 이념에서 본다면 '되는 정토' 혹은 '만드는 정토'의 측면이 정토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아미타경 등 정토사상의 옛 형태의 경우 정불국토사상의 영향은 받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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