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브라운: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5. 7. 21.
![]() |
마침내 그들이 로마를 바꾸어 갈 때 - ![]() 피터 브라운 (지은이),양세규 (옮긴이)비아 |
들어가며
1. 그리스도교화
- 서사와 과정
2. 불관용의 한계
3. 거룩함의 중재자
- 고대 후기 그리스도교의 성자
부록: 배우는 삶
인물 색인 및 소개
11 로마 세계에서 그리스도교의 발흥을 연구하는 현대 역사가는 당대 그 과정을 경험했던 이들이 남긴 단순한 해석, 문제를 간편하게 만드는 해석을 그대로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312년, 콘스탄티누스의 개종과 이후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여, 그리스도교인들과 이교도 모두는 상황을 설명하는 서사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성공을 설명해야 했고, 이교도들은 몰락을 변명해야 했습니다. 이 책의 첫 장은 4세기와 5세기 여러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지배하던 그리스도교화 서사를 다릅니다. 그리고 사회 상황들과 사람들의 심성이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봅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라틴 세계에서는 기존의 승리 서사가 아닌 훨씬 더 냉정한 관점에 바탕을 둔 서사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관점은 그리스도의 초자연적 승리에 만족하기보다는, 그리스도교 세계에 여전히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영향력을 행사하던 과거 이교의 영향에 주목했습니다.
19 안타깝지만, 이처럼 무한할 정도로 다양한 4세기 종교 세계의 흔적은 그저 매혹적인 단편으로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류 역사 서술의 틈에서 겨우 볼 수 있는 파편으로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이 시기와 관련해 우리에게 익숙한 주류 역사 서술에 따르면 비교적 짧은 기간, 즉 콘스탄티누스가 개종한 312년부터 테오도시우스 2세가 세상을 떠난 450년 사이에 고대 다신교 사회는 종말을 고했으며, 이 종말은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된 '유일신교의 승리'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4세기를 그리스도교와 고대 다신교의 대결로 점철된 시대로 보는 것도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사실 이러한 이해는 5세기 초에 등장한 탁월한 그리스도교 역사가와 논객, 설교자들이 구성한 종교사를 '재현'representation한 것입니다.
30 5세기 초 아우구스티누스와 셰누테 같은 이들에게 '그리스도교화'의 핵심은 단순히 외적인 변화가 아닌 '문두스', 곧 우주를 보는 상상 체계를 그리스도교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우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유일신의 배타적 권능 아래 하나로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고대의 분화된 우주 모형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전통적인 모형에서는 우주의 각 영역을 다른 신적 존재들이 다스린다고 여겼기에 이 땅에서 다양한 종교 관행이 있는 것을 당연시하고 용인했습니다. 문두스에 대한 상상 체계를 그리스도교화하는 과정은 당시 대다수 사람이 갖고 있던 종교 상식과는 완전히 다른, 신의 활동 방식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종교 '상식', 혹은 공통 감각common sense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이제 우리는 하늘에서 땅으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특히 콘스탄티누스와 그 후계자들이 통치하던 4세기 로마 제국으로, 세기말 변화가 있기 전 시점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57 4~5세기 다수의 그리스도교인에게 그리스도교화는 곧 이교 신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초자연적인 승리를 의미했습니다. 오늘날 역사가들에게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저 서사를 비판적으로 보았던 이들이 제시한 대안 서사가 더 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교화란 고대 세계의 뿌리 깊은 전통과 싸운, 느리면서도 영웅적인 투쟁이었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관점 역시 상당 부분 아우구스티누스 세대의 저술이 만들어 낸 서사입니다. 그 결과, '이교' 로마에 대한 기억은 오늘날에도 서구인의 상상속에 '응축된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지배하는 현재'를 끈질기게 뒤따르는 고대 '이교의 과거', 이 '안티퀴타스'는 중세 그리스도교의 매혹적인 동반자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과거를 아담의 죄 아래 살아가는 인간 실존을 상징하는 은유로 여겼습니다. 결국, 로마 세계의 그리스도교화는 여전히 커다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역사가들은 5세기부터 서유럽에 전해진 친숙한 이야기, 그 표면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구조를 지닌 세계의 윤곽을 읽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해야합니다.
78 후기 로마 시기 전반에 걸쳐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꽤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 다른 종교, 신앙에 대한 불관용을 담은 법률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부터 축적되어 온, 전통에 따른 행동 규범과 통치 기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충분히 이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만든 법조차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는 너그러운 제국 행정, 만성적인 구조 결함을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종교의 격변기 가운데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던, 그리스도교 이전의 관행에서 비롯된 업무 처리 자세와 방식이 불관용의 적용을 늦추는 핵심 요인이었다는 것입니다. 후기 제국 지배 계급의 심성은 점성viscosity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끈적한 기름처럼 한 번에 움직이지 않았지요. 당시 문헌들에는 다른 종교와 신앙을 단호하게 배격하고 탄압해야 한다는 말들이 많이 나왔지만, 바로 이 점성 때문에 실제 탄압은 이루어지지 않거나 느리게 적용되었고 그 결과 저 말들은 후기 로마 사회의 다층적이고 복잡한 현실 과는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102 이처럼 로마 제국의 다양한 지역에서 일어난 일들을 상세히 관찰하면 하나의 일반적인 결론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후 시대도 마찬가지이거니와 후기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화 과정은 결코 고립된 채로 다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 장에서는 그리스도 교화라는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악명 높은 특징인 다른 종교와 신앙에 대한 불관용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교 저자들은 다른 종교 및 신앙에 대한 불관용을 거리낌 없이, 열정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이 불관용은 교회의 승리를 서술하는 그리스도교 서사들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고, 자유주의적 성향을 지닌 근대 역사가들은 이를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가능한 한 더 넓은 역사적 배경에 놓고 조망해야 합니다. 다른 종교, 다른 신앙에 대한 불관용은 고대 후기 사회가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의 일부였습니다. 극도로 노골적인 형태뿐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거의 기록되지도 않은 소리 없는 규제라는 형태를 통해서도 말이지요. 이런 움직임은 황제의 법령이나 주교들의 고압적인 발언, 수도사들의 과격한 행동으로만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 움직임을 좌우한 건 자신들이 지배하는 세계를 계속 통제하려 했던 후기 로마 사회 평균적인 권력자들의 권력 의지였습니다.
155 어떤 면에서 제가 이런 태도를 지니게 된 건 퍽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일랜드 남부에서 개신교인으로 자란다는 것은 종교가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을 관통하는 세계에서 자란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주류였던 로마 가톨릭 신자들도 마찬가지였고, 소수파였던 개신교 신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종교와 정체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여섯살 무렵, 다른 아이들이 그랬듯 카우보이 영화에 푹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영웅들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데는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카우보이가 로마 가톨릭인지, 개신교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지요. 지금도 제게 종교 체험을 사회라는 맥락에서 분리해 따로 떼어놓고 연구하는 일은 어딘가 허공을 떠도는 듯한 작업처럼 보입니다. 그리스도교의 부상에 관한 서술이 후기 로마 제국과 초기 중세 사회의 사회, 경제, 문화적 현실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간단히 말해 역사 서술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일은 언제나 힘들고, 때로는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학자의 작업은 결코 정해진 경로를 따라 어떠한 의심도, 아무런 실수도 없이, 거저 주어진 재능으로 척척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책 밑줄긋기 > 책 2023-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비자: 한비자 2 (1) | 2025.07.21 |
---|---|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 법철학 (베를린, 1821년) (0) | 2025.07.21 |
유지기: 사통 (0) | 2025.07.13 |
스타티스 프실로스: 과학적 실재론 (1) | 2025.07.13 |
앤서니 티슬턴: 성경해석학 개론 (0) | 2025.07.13 |
시모다 마사히로: 붓다와 정토 - 대승불전 II (0) | 2025.07.06 |
요아힘 E. 베렌트: 재즈북 (0) | 2025.07.06 |
제럴드 오콜린스: 우리는 부활한 예수를 증언한다 (0) | 2025.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