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한비자 2

한비자 2 한비자 2 - 10점
한비자 (지은이),이운구 (옮긴이)한길사

 

32. 외저설 좌상(外儲說左上)
33. 외저설 좌하(外儲說左下)
34. 외저설 우상(外儲說右上)
35. 외저설 우하(外儲說右下)
36. 난일(難一)
37. 난이(難二)
38. 난삼(難三)
39. 난사(難四)
40. 난세(難勢)
41. 문변(問辯)
42. 문전(問田)
43. 정법(定法)
44. 설의(說疑)
45. 궤사(詭使)
46. 육반(六反)
47. 팔설(八說)
48. 팔경(八經)
49. 오두(五蠹)
50. 현학(顯學)
51. 충효(忠孝)
52. 인주(人主)
53. 칙령(飭令)
54. 심도(心度)
55. 제분(制分)


49. 오두(五蠹)
885 상고 시대에는 사람은 적고 새나 짐승이 많았다. 사람들이 새 · 짐승 · 벌레 · 뱀을 이기지 못하였다. 어느 성인이 일어나 나무를 얽어 집을 만들어서 여러 가지 해악을 피하게 하였다. 그래서 민이 좋아하여 천하의 왕으로 삼고 이름하여 유소씨라고 불렀다. 민은 나무열매 · 풀씨 · 조개를 먹었으나 비린내나고 더러운 냄새로 뱃속이 상하여 병을 많이 앓았다. 어느 성인이 일어나 부싯돌로 불을 일으켜서 비린내를 없앴다. 그래서 민이 좋아하여 천하의 왕으로 삼고 이름하여 수인씨라고 불렀다. 중고 시대에는 천하에 큰물이 나서 곤과 우가 물을 텄다. 근고 시대에는 걸과 주가 난폭하여 탕과 무왕이 정벌하였다. 만약 하후씨의 시대에 나무를 얻거나 부싯돌을 긋는 자가 있었다면 반드시 곤과 우에게 비웃음을 당했을 것이다. 은주의 시대에 물을 트는 자가 있었다면 반드시 탕과 무왕에게 비웃음을 당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요즈음 시대에 요. 순 · 우 · 탕·문 · 무의 도를 찬미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새성인에게 비웃음을 당할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성인은 옛것을 따르기를 기필하지 않고 일정한 법을 지키려 하지 않으며 시대 사정을 문제삼아 알맞은 대책을 세운다. 송 사람으로 밭갈이하는 자가 있었다. 밭 가운데 나무 밑동이 있어 토끼가 달아나다 나무 밑동에 걸려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래서 그는 (밭 갈던) 쟁기를 버리고 나무 밑동을 지키며 다시 토끼 얻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토끼를 다시는 얻을 수 없었으며 자신이 송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지금 선왕의 정치를 가지고 요즈음의 민을 다스리려 하는 것은 모두 나무 밑동을 지키는 것과 같은 부류다. 

887 옛날에는 남자가 농사짓지 않아도 초목의 열매가 먹거리로 넉넉하였고 여자가 짜지 않아도 새나 짐승들의 가죽이 옷 해입기에 넉넉하였다. 힘들여 일하지 않아도 생활이 넉넉하며 사람 수가 적고 물자가 남아 민이 다투지 않았다. 이런 까닭으로 후한 상을 내리지 않고 중벌을 쓰지 않아도 민이 저절로 다스려졌다. 지금은 한 사람에게 다섯 자식이 있어도 많지 않은데 자식이 또 다섯 자식을 가져 조부가 아직 죽지 않으면 스물다섯 명의 손주가 된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 수는 많아지고 재화는 적어지며 힘써 일해 지치더라도 생활이 야박하므로 민이 다투게 되었다. 비록 상을 배로 하고 벌을 더하더라도 혼란에서 면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889 옛날에 문왕은 풍 · 호 사이에 살면서 사방 백리 땅으로 인의를 행하여 서융을 길들이고 드디어 천하의 왕이 되었다. 서언왕이 한수 동쪽에 살면서 사방 오백리 땅으로 인의를 행하자 땅을 베어 조공 드는 자가 서른여섯 나라나 되었다. 초 문왕은 그가 자기를 해칠까 두려워 군사를 일으켜 서를 쳐서 마침내 멸하였다. 이렇듯 문왕은 인의를 행하여 천하의 왕이 되었으며 언왕은 인의를 행하여 나라를 잃었다. 이는 인의가 옛날에는 쓰였으나 지금은 쓰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시대가 다르면 일도 다르다'고 한다. 순의 시대에 유묘가 복종하지 않아 우가 치려고 하였다. 순이 말하기를 '옳지 않다. 군주의 덕이 후하지 않으면서 무력을 행함은 도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삼 년 동안 교화시켜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춤을 추자 유묘가 바로 복종하였다. 공공과의 싸움에는 쇠작살 큰 것이 적에 닿아 갑옷이 튼튼하지 않은 자가 몸에 상처를 입었다. 이는 무무가 옛날에는 쓰였으나 지금은 쓰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일이 다르면 대비도 변한다'고 한다. 상고에는 도덕을 다루고 중세에는 지모를 겨루었으나 오늘날에는 기력을 다툰다. 제가 노를 치려고 할 때 노가 자공을 시켜달랬다. 제 사람이 말하기를 '자네 말이 말이 안 되는 바는 아니나 내가 바라는 것은 토지이지 이런 말이 이르는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드디어 군사를 일으켜 노를 치고 성문과 십 리 거리를 두고 경계를 정했다. 여기서 언왕은 인의를 행하였으나 서는 망하고 자공은 변설과 지모를 부렸으나 노는 (토지)를 깎였다. 이로써 말한다면 도대체 인의나 변설이나 지모는 나라를 지탱하는 수단이 못 된다. 왕의 인을 버리고 자공의 지모를 그만두고 서와 노의 힘을 길러 만승의 나라를 적대하도록 하면 제와 초의 욕망도 두 나라를 당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891 대저 옛날과 지금은 풍속이 다르고 새 시대와 구 시대는 대비가 다르다. 만약 너그럽고 느릿한 정책으로 급박한 세상의 민을 다스리려 한다면 마치 고삐나 채찍도 없이 사나운 말을 부리려는 것과 같다. 이것은 (현실을 알지 못하는 환난이다. 지금 유 · 묵은 모두 일컫기를 '선왕은 천하를 아울러 사랑하였으므로 민을 보기를 부모와 같이 하였다'고 한다. 무엇으로써 그렇다고 밝히겠는가. 말하기를 '법관이 형을 집행하면 군주가 그 때문에 악기를 들지 않고 사형 보고를 들으면 그 때문에 군주가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이것이 높이 받드는 바의 선왕이다. 도대체 군신 사이를 부자와 같이 생각하면 반드시 다스려진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말하면 바로 부자 사이는 틀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타고난 정이란 부모보다 더 앞선 것은 없다. 모두 사랑받는다고 반드시 의가 좋다고는 하지 못한다. 비록 애정이 두텁다 하더라도 어찌 사이가 틀어지지 않겠는가. 지금 선왕이 민을 사랑함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 자식이 반드시 틀어지지 않는다고 하지 못한다면 민이 어찌 다스려지겠는가. 또한 도대체 법을 가지고 형을 집행하면서 군주가 그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하는데 이것이 인을 드러낸 것이라고는 할지라도 그것으로 다스렸다고 할 수는 없다. 대저 눈물을 보이며 형벌을 바라지 않는 것은 인이며 그렇더라도 처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법이다. 선왕이 법을 우선하고 눈물에 따르지 않았으니 인을 정치(수단)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은 또한 분명하다. 

893 또한 민은 본래 세에 굴복하지만 의를 따를 수 있는 자는 적다. 공자는 천하의 성인이다. 행실을 닦고 도를 밝혀 온 천하를 돌아다녔다. 온 천하가 그 인을 좋아하고 그 의를 찬미하였으나 제자가 된 자는 일흔 사람이었다. 대개 인을 귀히 여기는 자가 적고 의를 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크기를 가지고도 제자가 된 자는 일흔 사람이며 인의를 행한 자는 한 사람이다. 노 애공은 하질의 군주다. 남면하여 나라의 군주 노릇을 하자 경내의 민이 감히 신하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이란 자는 본래 세에 굴복하므로 세가 정말 사람을 쉽게 복종시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공자가 도리어 신하가 되고 애공이 도리어 군주가 되었다. 공자는 의에 따른 것이 아니라 세에 굴복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를 가지고 한다면 공자가 애공에게 복종하지 않으나 세에 의존한다면 애공도 공자를 신하로 삼을 수 있다. 지금 학자들"은 군주를 설득하면서 반드시 (남을) 이기는 세에 의존하지 않고 인의만을 힘써 행하면 왕노릇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군주가 반드시 공자에 미치기를 바라고 세상의 평범한 민까지 모두 여러 제자들"같이 생각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결코 될 수 없는 도리다. 

900 또한 세상에서 이르는 현이란 것은 곧고 성실한 행위이다. 이른바 지라고 하는 것은 미묘한 말이다. 미묘한 말은 상지도 알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 많은 사람의 법을 만들면서 상지조차 알기 어려운 것으로 하면 민이 그것을 따라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조강도 배불리 못 먹는 자는 양육을 먹으려고 힘쓰지 않으며 단갈도 완전하지 못한 자는 비단 무늬옷을 기대하지 않는다. 대저 세상 다스리는 일이란 급박한 것을 해내지 못하면서 느긋한 것에 힘쓸 바가 못 된다. 지금 다스리고 있는 정사 중에 민간의 일을 일반 남녀가 분명히 아는 것을 쓰지 않고 상지의 논의에만 마음이 끌린다면 정치가 거꾸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미묘한 말은 민에게 힘쓸것이 못 된다. 막상 곧고 성실한 행위를 어질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속이지 않는 사람을 존중하려 함이다. 속이지 않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또한 속임당하지 않는 술이 없기 때문이다. 서민들 상호 간의 사귐은 서로 이득을 줄 많은 부가 없고 서로 두려워할 위세도 없으므로 속이지 않는 사람을 찾는다. 지금 군주는 사람을 제압하는 권세 자리에 있고 온 나라의 많은 부를 가지고 있다. 두터운 상과 엄격한 처벌이라 할 권병을 잡을 수 있어서 밝은 법술이 비추는데를 닦는다면 비록 전상이나 자한 같은 신하가 있더라도 감히 속이지 못할 것이다. 어찌 속이지 않는 사람을 기대하겠는가. 지금 곧고 성실한 사람은 열도 차지 않으나 국내의 벼슬자리는 백을 헤아린다. 반드시 곧고 성실한 사람만을 임용한다면 인원이 벼슬자리에 부족하다. 인원이 벼슬자리에 부족하면 다스려지는 일은 적고 어지러워지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의 길이란 법을 일정하게 하여 지를 구하지 않고 술을 굳게 지키며 성실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이 무너지지 않으며 여러 벼슬아치들이 간악과 사기를 치지 않게 된다 

908 민의 본래 생각은 모두 안정되고 유리한 것을 쫓고 위험과 궁핍을 피한다. 만약 전쟁을 하게 해서 나아가면 적에게 죽고 물러서면 처벌로 죽게 되면 위험한 것이다. 자기 집 일을 버리고 전쟁의 노고를 다하여 집안이 곤궁한데도 위가 보살피지 않는다면 궁핍한 것이다. 궁핍과 위험이 있는 바를 민이 어찌 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문에 종사하여 (병역)을 온전히 면제 받으며 면제가 온전하면 전쟁을 멀리하고 전쟁을 멀리하면 안정된다. 뇌물을 써서 요로 사람을 기대면 바라는 것을 얻고 바라는 것을 얻으면 유리하다. 안정되고 유리한 바를 어찌 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공민은 적어지고 사인은 많아지는 것이다. 대저 현명한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정사란 상공이나 놀고 먹는 숫자를 적게 하여 이름을 낮추어서 농사일을 재촉하고 상공일을 늦추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측근들이 청탁을 행하면 관작을 살 수 있고 관작을 살 수 있으면 상공들도 미천하지 않다. 간악한 장사와 재화가 시장에서 통용되면 상인 수도 적지 않을 것이다. 거두어들임이 농사일의 갑절이나 되고 존중됨이 경작과 전투에 참가하는 사람보다 지나치다면 성실한 사람"은 적어지고 장사하는 사람만 많아질 것이다. 

910 이런 까닭에 어지러운 나라의 풍속으로 학자들은 선왕의 도를 칭송하여 인의를 빙자하며 용모와 옷차림을 성대히 차리고 말솜씨를 꾸며서 당대의 법을 의문나게 하여 군주의 마음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언담자는 거짓을 세워 속여 말하고 밖으로 힘을 빌려서 사욕을 이루며 사직의 이득은 잊어버리고 있다. 대검자는 도당들을 모아 의리를 내세워 이름을 드러냄으로써 조정의 금제를 범하고 있다. 환자는 사문과 가까이하여 뇌물을 보내고 요직자의 청탁을 받아들여 전쟁의 노고를 물리치고 있다. 상공의 민은 거친 물건을 고치고 호사스런 재물을 모으며 쌓아두고 때를 노려서 농부의 이득을 빼앗고 있다. 이 다섯 가지는 나라의 좀벌레이다. 군주가 이 다섯 가지 좀벌레 되는 민을 제거하지 않고 성실한 사람을 길러내지 못한다면 천하에 비록 깨지고 망하는 나라와 깎이고 멸하는 조정이 있더라도 또한 괴이하게 여길 것이 못 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