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랴코프 일리야: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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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한국인들 중에는 러시아가 지금도 사회주의 국가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사실 많이 놀랍다. '소련'을 기억하는 기성세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젊은 세대가 이런 말을 하면 상당히 당황스럽다. 한편으로는 이해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관심과 정보가 워낙 부족하고, 가끔 나오는 뉴스는 정보가 왜곡되어 있거나, 대놓고 가짜 뉴스를 전달하니 말이다. 

소련과 러시아는 전혀 다른 나라다. 러시아가 한때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었고, 소련 시절 수도와 현재 러시아의 수도가 똑같이 모스크바이다 보니 같은 나라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같은 위치에 자리 잡은 나라라고 해서 동일한 국가라고 할 수는 없다. 500년 전 조선과 현재 대한민국이 자리한 곳은 한반도이지만, 둘이 같은 나라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러시아가 소련을 계승한 것은 맞다. 그러나 정체는 완전히 다르다. 동유럽의 체코나 폴란드 같은 나라들을 지금도 사회주의 국가로 보는 사람은 없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소련은 공산주의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국가였다. 모든 재산은 국가가 소유하고, 시장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체주의 국가이기도 했다. 모든 권력이 하나의 정치 세력에게 몰려 있었다. 삼권분립은 없었다. 표현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 같은 기본 권리 역시 보장되지 않았다. 

지금의 러시아는 자본주의 국가다. 사유 재산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자유롭게 재화를 거래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국민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다. 체제를 놓고 보면 서방 국가들과 큰 차이점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차이가 드러난다. 경제적으로는 서유럽이나 미국보다 생활 수준이 낮다. 법치에 대한 개념이 약해 보이기도 한다.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 국가로 보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하지만 소련하고는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136 러시아 기성세대가 소련 시절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변화의 가장 큰 희생자였기 때문이었단다. 1990년대 초반에 소련이 붕괴되고 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섰을 때, 당시 30~40대들은 성숙한 사회인이자,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에 올라 있던 세대였다. 하지만 체제 변화로 이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이 됐다. 이 세대는 어느 날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이들은 40~50대가 됐고, 10~20대와 동일 선상에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회사 입장에서는 50대 초반보다는 20대 초반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으니, 인구의 절반이 넘는 세대는 쓸모없는 존재가 돼 버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옛날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건 당연했다. 

부모님께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이 두 체제 안에서 살아보니 사회주의의 장점을 확실히 알게 되셨다고 한다. 사회주의 시절에는 교육, 일자리, 부동산 등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국가는 초·중·고 교육을 보장했고, 대학에는 무조건 무상으로 다닐 수 있었다. 모든 대학 졸업자에게 일자리를 100퍼센트 보장했기 때문에 대학 시절에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집도 국가가 무료로 나눠 주고, 차도 국가에서 분양받는 식이었으니 굳이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늙으면 국가에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연금을 주니 노후에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아빠 말로는 대학 때 당신의 걱정거리가 딱 두 가지였다고 한다. 첫째,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해야 하는 것, 둘째, 시험공부를 하면서 연애하는 것. 이 둘 중에 두 번째 걱정거리가 더 컸다고 농담까지 하셨다. 아빠 말씀을 들어 보니 이해가 갔다. 어차피 일자리는 국가에서 정해 주고, 살 집 역시 국가가 무료로 준다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오늘 저녁 메뉴와 이번 주말 데이트 코스 정하기가 되는 게 맞다. 

그렇다면 현재 러시아 자본주의의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이 뭘까. 아빠는 "부족한 게 없다"고 답하셨다. 돈만 있으면 마트에 가서 계절에 상관없이 모든 채소와 과일을 살수 있다는 것, 돈만 있으면 가전제품을 국가가 나눠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오늘 살 수 있다는 것, 돈만 있으면 비행기를 타고 국내 여행, 심지어 해외여행도 할 수 있다는 것 등이었다. '자유'라는 말을 쓰지는 않으셨지만 아빠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자유였다. 이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 

아빠가 '자유'라는 단어를 안 쓴 이유가 있었다. 바로 러시아 사람에게는 '자유'라는 개념과 '무질서'라는 개념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소련이 해체되고 등장한 새로운 정권은 워낙 자유라는 말을 남용해서 이제 러시아 국민에게 자유는 무질서와 불평등, 비리와 횡령, 권력 남용과 다름없는 말이다. 

299 한국에 와 보니 러시아인의 이름이 길고 복잡한 것으로 악명 높았다. 러시아 문학을 읽어 보면, 같은 사람인데 이름이 계속 바뀌거나, 부르는 사람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면, 이름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형식이 다소 복잡한 것은 인정한다.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은 단어 세 개로 이뤄져 있다. 성+이름+부칭(父稱). 내 이름으로 설명해 보면 이렇다. 내가 러시아에서 살 때, 공식 서류상의 이름은 '벨랴코프(성)+일리야(이름)+미하일로비치(부칭)'이었다. 한국에는 부칭 개념이 없어서 한국인으로 귀화했을 때 부칭이 없어졌고, 이제는 '벨랴코프 일리야'가 됐다. 한국어로 쓰고 보면 꽤 길어 보이지만 러시아어로 치면 꽤 간단하고 쉽다. 러시아의 국민기록처에 공개된 통계 자료를 보면, 러시아에서 가장 긴 성은 '흐리스토로쥐데스트벤스끼이'다. 나의 성 '벨랴코프'는 정말 짧지 않나? 

간혹 서양에서 왔으니 '이름+성'으로 표기하는 게 맞지않냐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성+이름'으로 표기하건 '이름+성'으로 표기하건 자기 마음이다. 어떻게 표기할지에 대해 정해진 게 없다. 내가 보기에는 이름과 성, 둘 중 뭐가 먼저 나오는지 표기 규칙이 있다는 게 더 이상하다. 여기서 '성+이름' 순으로 표기한 이유는 단지 러시아의 공문서 양식이 이 순서이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대로 순서를 바꾸면 뭐가 성이고 이름인지 헷갈리지 않냐고? 그렇지 않다. 들어 보면 이름과 성을 바로 구분할 수 있어서다. 내가 '일리야 벨랴코프라고 하건 '벨라코프 일리야'라고 하건 성과 이름을 헷갈릴 일이 없다. 한국 이름도 마찬가지 아닌가. '유재석'이라는 이름을 '재석유'라고 말한다고 해서 성과 이름을 구분할 수 없을까? 한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성과 이름을 구분하는 것처럼 러시아인도 마찬가지다. 

321 그렇다면 러시아에 사투리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사투리가 강한 언어권을 보면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특정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민족이나 부족이 지리적 장애물 때문에 타 지역과 교류를 잘 하지 못한 채 같은 지역에서 쭉 살아왔다는 점이다. 언어를 포함해서 수많은 옛날 전통들이 고스란히 보존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이나 중국을 보면 그렇다. 예전부터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공동체가 많다. 러시아는 다르다. 사람들은 모스크바와 키이우(우크라이나 수도)와 같은 중심지에서 살아왔다. 러시아 동쪽은 나중에 탐험가 및 모험가들이 새로 개척했다. 언어도 새롭게 개척한 곳에 그대로 옮겨졌다. 

러시아어가 러시아는 물론 인접 국가에서 공용어가 된 것은 소련 시절의 영향이 크다. 소련 정권은 러시아어를 사용하지 않던 구소련 국가들에게도 러시아어를 강요했다. 그러고는 소련 전역에 같은 언어 기준을 적용하고 관리했다. 우크라이나든 우즈베키스탄이든 러시아든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똑같은 교과서를 보고 똑같은 방송을 들었다. 모든 서류, 국가 서비스의 표준어 역시 러시아어였다. 이 때문에 소련이 붕괴된 지 30년이나 지난 지금도 구소련 국가 사람들은 여전히 러시아어를 잘한다. 

소련 시절에는 국민의 이동이 잦았고 규모도 엄청났다. 중앙 출신이 극동에 가서 일했고, 수형자는 강제 노동을 위해 시베리아에 이송돼서 현지 인구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이런 국민 대이동 정책 때문에 사실상 출신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소련 국민들이 여기저기 흩어졌고, 언어는 비슷해져 갔다. 20세기 중후반 소련에 속한 나라는 다 비슷한 러시아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해당 지역의 특정 어휘나 어투는 행정력이 미치기 어려운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이 아닌 이상 보기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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