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벤느: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 | 폴 벤느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 | 폴 벤느 - 10점
폴 벤느 (지은이),김현경 (옮긴이)필로소픽

머리말
들어가며

역사적 진실이 전승이자 불가타일 때
진실한 세계들의 복수성과 유사성
지식의 사회적 분배와 믿음의 존재양식
믿음의 사회적 다양성과 두뇌의 발칸화
이 사회학의 뒤에는 암묵적인 진실 프로그램이 있다
어떻게 신화에 그 근원적 진실을 되찾아줄 것인가
판에 박힌 말처럼 사용되는 신화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파우사니아스
위조자의 진실과 문헌학자의 진실
문화와 진실에 대한 믿음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성

 


19 우리의 처지는 엄청난 양의 전설을 수집한 민속학자나, 과대망상증 환자의 장광설을 듣는 프로이트와 비슷하다. 이 쓸모없는 말의 더미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이 모든 것에 어찌 무슨 의미나 동기, 기능, 아니면 적어도 구조가 없겠는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들 안에 진짜 알맹이가 있느냐 하는 질문은 결코 긍정의문문의 형태로 제기되지 않는다. 미노스 왕이 존재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신화가 헛소리일 뿐인지, 아니면 변형된 역사를 담고 있는지를 확정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실증주의적 비판도 허구나 불가사의와 싸워서 완승을 거두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전설을 더 이상 믿지 않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아테네 민주주의의 아버지인 테세우스를, 로마의 건국자인 로물루스를, 로마사의 처음 몇 백 년의 역사성을 믿지 않게 되었는가? 어떻게 해서 우리는 프랑크왕국이 트로이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는가? 

21 학문의 역사는 좋은 방법과 참된 진리들을 점진적으로 발견해 나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신화를 믿는, 혹은 의심하는,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우리의 방식과 겉보기에만 비슷했다. 그들에게는 또한 역사를 쓰는 자기들만의 방식, 우리와는 다른 방식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의 방식에는 어떤 암묵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그들이 일차문헌과 이차문헌을 구별하지 않은 것은 방법론적인 결함 때문이 아니다. 단지 이 암묵적인 전제가 그러한 구별을 부적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파우사니아스는 이점과 관련하여 훌륭한 사례를 제공한다. 앞으로 우리는 그를 자주 인용할 것이다. 

24 고대의 역사가가 원사료와 이차사료를 구별했는지 확인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고대의 역사가는 출처를 언급하지 않거나, 아주 드물고 불규칙하게, 그리고 우리가 출처를 밝히는 이유와는 전혀 무관한 이유에서 언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침묵이 함축하는 바를 알아내고자 한다면, 그리고 탐구의 실타래를 계속 따라간다면…… 우리는 마침내 피륙을 발견할 것이다. 고대의 역사는 우리가 아는 역사와 이름만 같을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고대의 역사학이 불완전했으며 온전한 학문으로 성립하려면 아직 더 많은 발전을 거쳐야 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고대의 역사학은 그 자체로서 이미 하나의 학문이었다. 하나의 장르로서, 우리의 저널리즘이 그렇듯이 "믿게 만드는 수단"으로서, 그것은 완성되어 있었다(고대의 역사학은 저널리즘과 비슷한 데가 많다).  

25 고대의 역사가는 "페이지 하단에 주석을 달지 않는다." 독창적인 연구든, 이차사료의 가공이든, 그는 자신의 말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저자를 발견하고 자랑스러워할 때나, 사료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기념비인 귀중한 텍스트를 부각시키려 할 때를 제외하고는. 

27 이 놀라운 일화는 우리의 역사 개념과, 고대의 역사가들뿐 아니라 파스키에의 동시대인들도 가지고 있었던 또 하나의 역사 개념 사이에 얼마나 깊은 심연이 자리 잡고 있는지 보여준다. 후자에 따르면, 역사적 진실이란 일종의 불가타vulgate, 즉 오랜 세월을 거치며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진짜라고 인정받은 텍스트다. 합의는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의 명성을 승인하듯이, 혹은 상상컨대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승인하듯이, 역사적 진실을 승인한다. 파스키에는 인용주에 기대어 진실을 확립하는 대신, 자신의 책이 진짜 텍스트로 인정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마땅했다. 그런데 그는 페이지 하단에 주석을 달면서, 법률가들이 하듯이 증거를 제시하면서, 경솔하게도 자신의 책에 대한 후세의 동의를 억지로 끌어내려 했던 것이다. 

30 그는 도대체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는가?" 그 선배 역사가에게는 다른 선배들이 있었을 테고 그들 중 맨 앞에 있는 누군가는 그 사건을 직접 목격했을 거라고 생각해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로마의 가장 오래된 역사가들조차 로물루스보다 4세기 뒤에 태어났음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그 점을 조금도 문제 삼지 않았다. 전승이 여기 있고, 그것은 진실이다. 그게 전부다. 설령이 최초의 전승이 최초의 역사가들 사이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어떤 원천들, 어떤 전설들, 어떤 기억들이 그들의 용광로 안에서 섞였는지─알았다 하더라도, 디오니시오스와 티투스-리비우스는 거기서 그저 전승의 전사를 보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을 진짜 텍스트가 되기 전의 무엇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34 역사가 하나의 불가타로 나타나는 이 진실 프로그램 programme de verine이 어디서 탄생했는지 추측해보아도 좋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하겠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전승에 대한 고대 역사가들의 존중은, 그들에게는 역사가 우리처럼 논쟁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조사─이것이 그리스어 히스토리아historia의 정확한 의미다─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에 의해 설명된다고, 여행자이든 지리학자이든 인류학자이든 혹은 기자이든 간에, 조사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이러이러한 발견을 했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으로부터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에 굳이 정보제공자 명단을 첨부할 필요는 없다. 누가 그걸 검증하겠는가? 우리는 정보제공자들이 얼마나 존경할 만한 사람들인가를 가지고 저널리스트를 평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연한 계기에 드러나는 그의 편파성이나 무지가 더 결정적이다. 즉 우리의 비판은 내재적이다. 

39 만약 근대의 역사가가 그 자신은 거의 믿지 않는 사실이나 전설을 학문 공동체에 제출한다면, 그는 학문적 정직성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고대의 역사가들은, 정직성에 대한 생각은 그와 다르지 않았다 해도, 최소한 독자층이 달랐다. 그들의 독자는 전문가가 아니었고, 신문의 독자층 못지않게 불균질한 공중을 형성했다. 그에 따라 그들은 마음속에 있는 것을 전부 말하지 않을 권리를, 심지어 의무를 가졌으며, 어느 정도 책략을 쓸 자유를 누렸다. 진실 자체는 그들의 입을 통해 표현되지 않는다. 진실을 머릿속에서 구성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고대의 역사 장르가 근대의 역사학과 아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수많은 차이들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고대 역사가들의 청중은 혼합적이다.  

44 비판적인 태도─파우사니아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헤로도토스에게서도 나타나는─는 신화를 일종의 구술 전승으로, 비판이 필요한 역사적 자료로 간주한다. 이는 탁월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고대인들이 천 년이 지나도록 벗어날 수 없었던 가짜 문제를 만들어냈다. 급격한 역사적 변화를, 즉 기독교를 겪은 뒤에야 그들은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그것도 해결이 아니라 망각을 통해서였다. 그 문제는 다음과 같다. 신화적 전승이 전달하는 진실한 핵심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전설로 둘러싸인다. 어려움을 일으키는 것은 이 전설들이지 핵심이 아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파우사니아스는 이 전설적인 첨가물에 대해서, 오직 그것과 관련해서만, 사유를 발전시켰다. 

45 고고학자들의 알쏭달쏭한 발견들을 다른 식으로 해석할 것이다. 방법의 문제와 실중성의 문제 밑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신화란 무엇인가? 변질된 역사 부풀려진 역사? 집단적 허언증? 알레고리? 그리스인들에게 신화는 무엇이었는가? 우선 이렇게 말해두기로 하자. 진실이라는 느낌은 아주 폭이 넓어서 신화도 끌어안을 수 있다고. 뿐만 아니라 "진실" 자체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고. 허구를 포함시킬 수 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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