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크: 성서를 통해 본 기독교의 이치

 

서문

제1장 원죄와 기독교
제2장 영생을 위한 믿음: 예수는 메시아이다
제3장 예수가 메시아라는 복음서의 증언
제4장 예수가 메시아라는 믿음에 담긴 회개와 순종
제5장 예수가 필요한 이유: 참된 삶의 안내자
제6장 사도 서간에 대해
제7장 결론

해제

 


007 내가 접한 대부분의 신학은 내게 어떤 궁금증도 해결해주지 않았고 이론적으로 일관성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신학의 근거인) 성서를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의를 기울여 객관적인 시선으로 성서를 자세히 읽었으며, 그로 인해 내가 알게 된 것을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나의 수고로 인해 여러분이 어떤 깨달음이나 진리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되었다면 저와 더불어 우리를 이해시켜주시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빛이 되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편견 없이 공정하게 읽어보시고, 제가 혹여 복음의 의미나 취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진실한 기독교인인 여러분께서 복음의 정신(자비의 정신)으로 저에게 바른 가르침을 주셔서 구원의 교리로 인도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9 열심히 노력했으나 이해하지 못했다면 어찌 무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성서의 여러 책을 함께 놓고 그것들을 이치에 맞게 이해할 수 없다면 달리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며 자기 생각은 접어두어야 한다. 우리는 신앙의 문제에 있어 미약한 인간에게 이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무한한 자비의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자애로 대해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이성을 주셨고 그것과 더불어 율법도 주셨다. 이성적인 존재인 우리가 불합리한 율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율법은 이성이 지시하는 것과 다를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타락과 불행으로 내달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고려하여 그가 정한 때에 구원자(Deliverer)를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모든 인류에게 그가 보낸 구원자를 약속된 주님으로 믿고, 모든 사람을 죽음에서 부활시키고 심판함 주님이시자 심판자이며 그들의 왕이 통치자라고 믿는 자들은 누구나 구원을 받을 것임을 선포하섰다. 자비로운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약한 사람들을 고려하시어 노동자나 분자들도 이해할 수 있는 아주 분명한 구원의 교리를 주신 것이다. 기독교는 날품을 팔며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인류의 대다수를 배려한 종교이다. 종교에 몸을 담고 있는 문필가나 논쟁가들은 마치 아카데미"나 리세움"을 거치지 않고는 교회에 들어갈 수 없는 양 하느님이 선포하신 것에 세부 사항을 추가하고 그것을 어려운 용어로 표현해 구원에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인류의 대다수는 학문과 논리, 최상의 교육을 받을 여유가 없었다. 손으로 쟁기질과 삽질을 하는 사람이 머리로 숭고한 개념을 떠올리고 난해한 추론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쉬운 말이나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나 일상의 경험과 연관된 짧은 추론만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인류의 대다수를 당혹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려운 개념과 언어를 사용해 종교에 관해 책을 쓰거나 논쟁을 하는 것은 불쌍한 날품팔이 노동자들에게 아랍어로 이야기하며 자신의 말을 이해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비국교도 신자(the dissenting congregation)가 생겨난 것은 신앙의 문제에서 자신들은 올바른 교육을 받았기에 무지하고 저속한 국교도(conformist)들보다 기독교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의 생각에 대해서는 뭐라 말하지 않겠다. 대신에 그들 중에 절반이라도 공부할 여력이 있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아니 그들 중 열에 하나라도 공부할 시간이 있어 오늘날 논문의 주제인 '의화(justification)'에 대한 논쟁을 이해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그들도 그들 간에 벌어지는 논쟁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매우 가치 있고 중요하며, 종교에 있어서 매우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교단을 분리시키고 서로 갈라섰다. 하느님께서 학식이 있는 자와 논객들 그리고 지혜 있는 자만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구원을 받게 하고 싶으셨다면 그들을 위해 치밀한 논리와 모호한 용어 그리고 추상적인 개념들로 채워진 종교를 만드셨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이 고린도전서 1장에서 이야기하듯이 학식과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구원자에 대한 약속을 믿고, 예수께서 그 구원자이며, 그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고, 세상 끝날에 다시 와서 모든 사람을 그들의 행실에 따라 심판하실 것임을 믿는 가난하고, 무지하고, 문맹인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복음의 단순함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반면에 가난한 이들은 그들에게 전해진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명을 다했을 뿐 아니라 표징을 보여주셨다. (마태오복음 11:5)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분명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알기 쉬운 것이었음이 분명하며,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전한 복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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